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운동은 문학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운동이었다.
프로레타리아예술운동은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단체는 송영이 이끄는 1922년에 결성된 염군사焰群社와 김기진, 박영희 등이 1923년에 결성한 문예단체 파스큐라PASKYULA가 1925년에 결합되면서 생겨났다.
파스큐라는 동경 유학생에 의한 연극단체 토월회의 멤버 김기진, 김복진, 연학년, 안석영 등과 문학동인 백조의 멤버 박영희와 이상화에 의해 구성된 단체이다.
염군사가 지닌 사회운동 단체로서의 성격과 파스큐라의 문화적 성격이 합쳐져 출범한 단체이다.
1926년 1월에 잡지 『문예운동』을 간행했는데 집필은 주로 파스큐라 동인들이 맡았다.
이듬해에 소위 후쿠모토주의 영향으로 개편되어 제1차 방향전환이 진행되었다.
당시 조선과 일본 프로레타리아운동은 교류하고 있었다.
후쿠모토주의福本主義는 야마카와 히토시山川均가 제창하는 야마카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났다.
야마카와주의란, 일본 당국의 엄한 탄압을 피하기 위해 공산당을 합법적인 무산 정당으로 해소시키고자 하는 해당주의解龜主義이며, 후쿠모토는 그것에 대하여 우선 당내의 전위당前衛龜을 분리시키고 다음 단계에서 그것을 대중과 결합하고자 주장했다.
그러나 후쿠모토주의는 지식층으로 구성된 전위당과 대중단체의 분리를 의미하며, 공산당이 지녀야 되는 혁명적·대중적인 성격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결국 후쿠모토주의는 1927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회의에서 비판받고 부정되고 말았다.
후쿠모토주의가 당시 큰 힘을 갖게 된 것은 공산당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 공산당의 임무와 역할을 새로 규정해주는 이론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운동은 1927년부터 이듬해까지 각 지역 지부 구축에 힘썼는데 1927년에는 동경지부 발족과 더불어 기관지 『예술운동』 창간호를 발행했다.
1928년에는 카프가 추진하던 ‘아지·프로’ 예술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서 무정부주의자들이 카프로부터 탈퇴했다.
1929년 무렵 예술운동의 볼셰비키화가 진행되어 1930년에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운동은 카프KAPF로 개칭되고 기관지 『군기』를 발행했지만 1931년에 대검거를 당하게 되었다.
1934년 제2차 검거 때 80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23명이 기소되었다.
이후 카프는 총독부에 해산계를 제출하고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운동은 총독부의 엄격한 탄압에 의해 저지된 것이다.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의 예술론에 김용준, 심영섭, 김주경 등이 적극 반대했다.
이들이 훗날 월북한 것을 상기하면 이들의 반대가 사회주의 이념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예술을 이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순수예술론의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