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에 대한 인식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작품에 대한 1913년 3월 11일자 『매일신보』의 기사에서 당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서양화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동양의 그림과 경위가 다른 점이 많고, 그리는 방법도 같지 아니하며, 또한 그림 그리는 바탕과 그 쓰는 채색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그림인데 … 기름기 있는 되다란 채색으로 그리는 이 서양화는 …”

이 기사에서 서양화 재료에 대한 명칭도 알려지지 않았고 서양화를 생소한 그림으로 바라보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가 1922년부터 시행한 선전이 매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 서양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서양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선전이 열리면서부터였다.
한국화에 대한 자의식이 1920년대 중반부터 생겼는데, 처음부터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국화의 정체성을 규정하려고 한 시도는 회화를 탈이념적인 예술의 장르로 보지 않은 우매한 현상이었다.
1925년에 결성된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은 김복진, 안석주, 홍득순, 윤희순 등에 의해 사회주의 색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안석주는 1925년 3월 30일자 『동아일보』에 ‘제5회 협전을 보고’란 제목의 글에서 적었다.
“예술 그것은 그 시대인에게 아무런 반향이 없으면 자가희농물自家戱弄物에 그칠 것이다.
예술 거기에는 그 시대인의 생활 그것이 간접으로 드러나서 다시 그것에게서 민중이 자기의 생활을 엿보아 자기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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