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금과 청동의 가발을 쓴 
 

훌륭한 이라크 조상 수메르인이 기원전 3500년과 3000년 사이에 흰 대리석으로 제작한 여인의 흉상을 보면 조각가가 여인의 눈을 화장시켰고 머리에 금과 청동의 가발을 씌웠음을 본다.
여인의 흉상보다 500년가량 후에 제작되었다고 믿어지는 텔 아스마르Tell Asmar에서 발견된 많은 동상들을 보면 대리석으로 제작되었으며 큰 것은 불과 30인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작은 크기의 것들인데 소위 식물의 신으로 불리웠던 아부Abu를 상징했다.
보다 작은 크기의 여신을 상징하는 조각도 있으며 그 밖의 것들은 제사장들이나 숭배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들이다.
가발을 쓴 여인의 흉상과 더불어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기하적이며 표현적이고 이집트인의 사실주의 조각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얼굴과 몸이 단순화되었으며 도식적이고 눈을 커다랗게 과장하면서 눈이 혼의 창문임을 시사했는데 이집트인은 사람의 눈을 입방체로 묘사한 데 비해 수메르인은 콘과 시린더 형상으로 묘사한 것이 특이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메르인은 사람의 모습을 제작할 때 
 

수메르인은 사람의 모습을 제작할 때 팔과 다리를 튜브 형태로 둥글게 했다.
20세기 입체주의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가 그림을 그릴 때 이런 식으로 그려서 동갑내기 피카소는 레제를 가리켜 '튜브쟁이'라고 불렀다.
수메르 조각가들은 튜브쟁이들이었다.
수메르인이 제작한 것들 중 흥미로운 작은 조각품이 하나 있는데 <양과 나무 Ram and Tree>로 명명된 것으로 20인치에 불관한 작품이다.
나무와 금을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꽃이 핀 나무 뒤에 양이 사람처럼 서 있다.
이것은 우르Ur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2600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뿔이 달리고 마귀처럼 보이는 이 조각은 생동감이 있으며 양이 나무가지와 꽃들 사이에 서 있으므로 더욱 그렇게 보인다.
기록으로 전해오는 바는 없으나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조각에 나타난 동물들은 신화와 관련이 있어 보이고 이솝의 우화처럼 이런 동물들의 행위는 구전으로 내려온 전설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현존하는 기원전 300년에 제작된 봉람Seal에 나타난 흙으로 제작한 조각에는 신을 상징하는 반은 황소이며 반은 사람인 미노타우르Minotaur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중앙에 사람이 두 동물 사이에 서 있다.
아마 영웅을 묘사한 것 같다.
영웅은 왕이 되었고 왕이 된 후 그는 신성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수메르인은 천하를 신이 소유하고 왕에게 대신 관리를 맡긴다고 믿었다.
왕은 동시에 종교적 지도자이기도 해서 어찌보면 신성국가였다.
종교의 중심지는 마리Mari였으며 사랑과 출산의 여신이며 동시에 전쟁의 여신 이스타Ishtar를 섬겼다.
수메르인은 처음으로 인간처럼 생긴 모습을 종교적 의식의 장면에 삽입시킬 줄 알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메르인은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다 
 
수메르Sumer는 기원전 2400년과 2350년 사이에 셈족이 이끄는 이웃 도시국가 아카드Akkad의 왕 사르곤Sargon에 의해 패망했다.
사르곤의 군대는 원정을 가 이집트와 이디오피아를 침략한 강성한 군대였으며
사르곤의 궁정이 얼마나 컸던지 군인 5400명이 그의 궁정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수메르인이 독립을 쟁취한 것은 기원전 2200년경이었다.
우르의 제3왕국의 첫 왕은 자신이 수메르와 아카드 모두의 왕임을 선포했다.

이렇듯 이라크의 조상들은 멸망 후에 재건할 수 있었던 훌륭한 족속이었다.
수메르인의 미술품에서 왕의 권력이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우르 지방에 있는 왕릉에서 수금, 오보, 그리고 하프가 발굴되었는데 기원전 2500년에 제작된 것들로 수메르인이 이런 악기를 켜서 음악을 즐긴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사원을 대규모로 지었으며 그들의 유적에서 아카드인의 문명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물들이 발굴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우르인으로 부족장 
 

기원전 2000년경 이람인들이 우르Ur를 점령했다.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아직은 아브람)은 우르인으로 부족장이었는데 그가 문명의 도시 우르를 떠나 정처없이 방랑의 길을 떠난 것은 아마 이란인들의 침공을 두려워서 미리 피난의 길에 올랐던 것 같다.

함무라비Hammurabi(기원전 1792-1750년)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건 기원전 1792년의 일이었으며 그의 바빌론 왕국이 멸망한 것은 기원전 1600년 이후였다.
함무라비는 과거로부터 지켜져온 법을 집대성해 282개의 법령을 돌에 새겼는데 이 법령에는 임금, 이혼, 의료비 등에 관한 해결책이 있다.
이런 문제는 현대인들에게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로 당시 법령으로 해결했다.

루브르 뮤지엄에 있는 높이 2.25m의 법령이 새겨진 기념비Law-Codex of Hammurabi는 바빌론의 도시에 세워졌던 것으로 이람인들이 12세기에 기념비를 전리품으로 삼아 수사Susa로 옮겨졌고 훗날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루브르에 오게 되었다.
기념비는 기원전 1760년에 제작된 것으로 꼭대기 28인치 높이에는 바빌론 제1왕국의 여섯 번째 왕 함무라비가 태양의 신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함무라비의 머리에는 두건이 쓰여져 있는데 구데아Gudea로 보이고, 왼팔로 오른팔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명상에 잠긴 듯 하다.
태양의 신 사마스Shamash는 정의를 상징하는 신으로 그의 어께에 있는 화염이 그의 권위를 말해준다.
사마스가 쓴 관을 보면 네 쌍의 뿔이 있는데 신성을 상징하며 사마스가 신들 가운데 가장 권위가 있음을 시위하는 것이다.

신들 중 가장 권위가 있다는 말은 도시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되고 정복한 나라의 신은 자연히 피정복 나라 신보다 권위를 갖게 된다.
남신을 섬기는 나라와 여신을 섬기는 나라가 싸운 경우에는 두 신은 결혼을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남신이 여신을 임신시켜서  
 

이집트와 바빌론의 신들은 여느 농경사회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성별이 남성이었다.
여신들은 주로 땅을 다스리는 일을 했다.
이는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팔레스타인에서 발굴된 고대 여신의 조각들을 보면 20세기 표현주의 조각처럼 젖가슴과 엉덩이가 유난히 과장되었는데 출산의 풍요로움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기원전 5천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조각 한 점을 루브르 뮤지엄에서 본 적이 있는데 티그리스 강가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이가 5.4cm에 불과하다.
얼굴은 눈을 생략한 추상형태였다.
이것을 뉴욕의 모마에 가져다 놓으면 아무도 고대인의 작품으로 믿지 않을 것이다.
현존하는 표현주의 작가의 작품으로 생각할 것이다.
중동에 살던 사람들은 하늘의 남신이 비를 통해 땅의 여신을 임신시켜서 농작물의 풍년을 약속한다고 믿었다.

바빌론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지만 마르둑Marduk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바빌론이 한 나라로 통일되기 전 각 도시국가에는 그곳 주민들이 섬기던 신들을 각각 있었다.
함무라비가 모든 도시국가들을 통일해 한 나라를 건립하자 각 신들 또한 함무라비가 섬기던 마르둑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마르둑은 그리스인들이 섬긴 제우스Zeus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신들의 간음으로 남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신들도 있었으므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하게 되면 남신과 여신의 신방을 꾸미게 된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2세 신들 가운데는 철없는 우리나라 재벌 2세들처럼 개구장이들이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