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싱과 빈켈만으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은 괴테
 

레싱과 빈켈만으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는 인간에게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천재적인 본성이 있음을 명백히 했다.
그는 빈켈만과 마찬가지로 감성적 견해를 모든 예술 관찰의 토대로 보았으며, 이론을 단지 예술가 자신과의 관계에 한해서만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괴테는 줄쩌Johan Georg Sulzer(1720-79)의 <그 기원에서 본 참된 예술, 그 참된 본성과 최상의 적용>(1772)을 비평하면서 <프랑크프루트 학술 소식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하였다

어떻게든지 사변적인 노력이 예술에 유용하다면, 그것은 예술가와 직접 관계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술가만이 자신의 예술에서 어떤 삶의 축복도 느끼지 않고 그의 도구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단지 자신의 느낌과 힘을 갖고 거기서 살아가는 것이다.

멍청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대중에게 그들이 왜 멍청하게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이 속해 있는지 생각하게 할 수 있는가? ...
예술로부터 감성적 경험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차라리 예술을 그냥 놓아두어야 할 것이다.
왜 그가 예술에 몰두해야 하는가?
그것이 유행이기 때문에?
모든 이론은 참된 향유로 향하는 길을 봉쇄해버린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론보다 더욱 해로운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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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시대는 언어의 제작과 사물의 제작이라고 하는 
 

계몽주의 시대는 예술을 순수예술과 기능술로 나눴을 뿐 순수예술을 세분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었는데 시각예술에서 문예를 분리시키고 순수예술에서 순문학belles-lettres을 분리시킨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는 언어의 제작과 사물의 제작이라고 하는 창조성의 심오한 이원성을 인식했다.
이런 인식은 한 예술을 다른 종류의 예술을 본받도록 하자는 슬로건인
"시는 그림과 같이"
그리고
"그림은 시와 같이"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에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1729-81)이었다.

바움가르텐과 마찬가지로 크리스천 볼프를 통해 라이프니츠의 영향을 받은 레싱은 미학에 새로운 활기를 고취시켰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말년에 신학에 몰두했지만 그의 주요 관심사는 문학과 미술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미란 질료적인 것으로서 시의 본질적인 특성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시에서의 미의 지위에 관하여 언급할 때 그는 질료적 미가 얼마만큼이나 언어로 유용하게 묘사될 수 있을까 하는 데 의문을 제기하면서 버크의 우아함의 개념을 좇아 다만 그것의 결과들을 시사하거나 매력적인 점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레싱은 미를 운동 안에서 규정했다.
그에게 시와 미술은 대조가 되는 것들이었다.
그는 1766년에 출간한 <라오콘 혹은 회화와 시의 경계 Laokoon oder uber die Grenzen der Malerei und Poesie>(이를 짧게 '라오콘'이라 한다)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회화와 시는 서로 비슷하게 여러 가지의 상징들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회화의 상징은 공간 내의 형태와 색이며, 시의 상징은 시간 속에서 발음된 소리이다.
회화의 상징은 자연스러운 것들이며, 시의 상징은 임의로운 것들이다.
...
회화는 공간적으로 연속된 대상들을 재현할 수 있으며, 시는 시간적으로 연속된 대상들을 재현할 수 있다.

<라오콘>의 핵심이 되는 내용은 문학과 조형미술의 경계를 긋는 것, 즉 시적 그리고 회화적 미 사이의 관계였다.
레싱은 조형미술은 "늘 가변적인 속성으로 인해 결코 단 한순간 이상의 어떤 것을" 재현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라오콘>에 "이 단 한순간이 예술을 통해 불변의 지속성을 얻게 되면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그 어떤 대상도 표현하지 못할 것이 틀림 없다"고 적었다.

레싱에게 미와 표현은 양립되지 않는 것들로 하나가 오로지 다른 하나의 손실에 의해서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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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루나와 인드라

 
인도에는 특기할 만한 두 신이 있었다.
하나는 바루나Varuna로 하늘에 거주하는 신으로 자연의 질서와 정의를 실현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고,
다음은 인드라Indra로 전쟁의 신인데 인드라는 매년 용을 살해하여 하늘로부터 물창고를 열어 땅을 적시는 비를 내리는 임무를 맡았다.
인드라는 농사와 직접 관련이 있었다.

이 두 신에 관한 내용이 기원전 1천 년경에 쓰여진 인도인의 경전 릭-베다Rig-Veda(veda of hymns 찬송의 베다)에 기록되어 있다.
릭-베다에는 신을 찬양하는 1천 개 이상의 글이 적혀 있다.
이 찬송들은 브라만이 섬기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문들인데 릭-베다가 중요한 이유는 인도인들의 종교와 아리아인들의 문화를 아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많은 사람이 거주했는데 기원전 400년경 약 25,000,000명이 살았으며 이는 당시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에 해당했다.
기원전 1천 년경부터 힌두Hinduism가 종교의 우량품종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불교와 자이니즘은 힌두교의 두 개신교들이었다.
불교가 대중화되기에 적당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다.

오늘날까지 전래되는 종교가 과거 도태된 종교보다 더욱 고상하다든가 지성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동,식물이 유량품종만 살아남지만 이는 환경에 적응했다는 뜻이지 반드시 가장 훌륭한 품종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종교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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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의하면 정신은 혼의 일부분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신이란 로고스Logos로서 이성Reason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데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를 창조한 플로티누스Plotinus의 '나우스Nous'에 좀더 가까운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의하면 정신은 혼의 일부분이며
소수만이 정신을 갖고 있고
정신은 운동의 원인이 될 수 없으며
무엇이 실질적인지에 관해서는 사고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니코마케안 윤리학 Nicomachean Ethics>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혼에는 이성적 요소와 비이성적 요소가 있다면서 비이성적 요소에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 화초조차도 지니고 있는 성장력Vegetative과 모둔 동물이 지니고 있는 식욕Appetitive이 포한된다고 적었다.

반면 혼의 이성적 요소는 숙고Contemplation 혹은 명상Meditation을 할 수 있는데 온전할 정도로는 할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온전한 행복이 된다고 적었다.
정신 혹은 이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것의 영원함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신의 영원함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사람이 이성적일 때 신성에 더욱 더 가까워진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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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윤리
 

윤리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황금률은 유명한데 공자의 손자 자사가 썼다는 <중용>의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부덕이라는 양극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라면서 예를 들어
용기는 비겁함과 조급하고 경솔함 중간이 위치하며 너그러움은 방탕함과 비열함 중간에 위치하고 고유한 자긍심은 허영심과 겸손 중간에 위치하며 기지 또는 재치있는 위트는 익살과 상스러움 중간에 위치하고 겸손하고 소박함은 수줍어함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함 중간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윤리는 오늘날 우리가 주장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고 정의는 평등이 실현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에게 있어 정의란 평등한 상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분배proportion가 이루어질 때 가능한데 바른 분배란 때에 따라서는 불평등할 수가 있다.
불평등하기 때문에 정의가 가능한 경우를 그는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했다.

아버지의 정의는 노예와 아들 그리고 시민의 정의와는 다른데 아들이 사악하면 아버지는 그 아들과 인연을 끊을 수 있지만 아들은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들은 어버지에게 빚이 많기 때문이며 특히 출생에 있어 빚이 있다.
이런 특수한 경우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이론에 반하는 것은데 그는 우수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을 구분하면서 우수한 사람이 열등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열등한 사람은 더욱 우수한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내, 자녀, 종은 남편, 부모, 주인에 비하면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 그의 이론에 포함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에 관한 세 가지 이론 중 두 가지는 그의 제자가 썼다고 하며, <니코마케안 윤리학>의 일부인 5, 6, 7장 역시 제자들의 이론이라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이런 견해를 따라 윤리를 구분하기보다는 저서의 모든 내용을 통털어 그의 윤리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에 있어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고 당시 사람들의 경험과 학문적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론을 따로 정립했다.

그는 선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으면서 혼이 선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이 혼을 이성적인 점과 비이성적인 점으로 나눈 건 옳았다며 스승을 두둔하면서 비이성적인 점을 성장력vegetative과 식욕appetitive으로 구분했다.
그는 식욕에 이성적 요소가 있어 이성의 요구에 부응해서 대상을 찾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이성Nous(또는 정신) 자체는 숙고적인데 식욕의 도움 없이는 어떠한 실질적인 행위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미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면서 지성적인 점과 도덕적인 점인데 이것들은 혼의 이성적 요소와 비이성적 요소와 관련이 있다면서 지성적 미덕은 가르침으로부터 기인하나 도덕적 미덕은 습관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억지로라도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해서는 좋은 행위를 하는 재미를 톡톡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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