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시대는 언어의 제작과 사물의 제작이라고 하는
계몽주의 시대는 예술을 순수예술과 기능술로 나눴을 뿐 순수예술을 세분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었는데 시각예술에서 문예를 분리시키고 순수예술에서 순문학belles-lettres을 분리시킨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는 언어의 제작과 사물의 제작이라고 하는 창조성의 심오한 이원성을 인식했다.
이런 인식은 한 예술을 다른 종류의 예술을 본받도록 하자는 슬로건인
"시는 그림과 같이"
그리고
"그림은 시와 같이"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에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1729-81)이었다.
바움가르텐과 마찬가지로 크리스천 볼프를 통해 라이프니츠의 영향을 받은 레싱은 미학에 새로운 활기를 고취시켰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말년에 신학에 몰두했지만 그의 주요 관심사는 문학과 미술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미란 질료적인 것으로서 시의 본질적인 특성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시에서의 미의 지위에 관하여 언급할 때 그는 질료적 미가 얼마만큼이나 언어로 유용하게 묘사될 수 있을까 하는 데 의문을 제기하면서 버크의 우아함의 개념을 좇아 다만 그것의 결과들을 시사하거나 매력적인 점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레싱은 미를 운동 안에서 규정했다.
그에게 시와 미술은 대조가 되는 것들이었다.
그는 1766년에 출간한 <라오콘 혹은 회화와 시의 경계 Laokoon oder uber die Grenzen der Malerei und Poesie>(이를 짧게 '라오콘'이라 한다)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회화와 시는 서로 비슷하게 여러 가지의 상징들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회화의 상징은 공간 내의 형태와 색이며, 시의 상징은 시간 속에서 발음된 소리이다.
회화의 상징은 자연스러운 것들이며, 시의 상징은 임의로운 것들이다.
...
회화는 공간적으로 연속된 대상들을 재현할 수 있으며, 시는 시간적으로 연속된 대상들을 재현할 수 있다.
<라오콘>의 핵심이 되는 내용은 문학과 조형미술의 경계를 긋는 것, 즉 시적 그리고 회화적 미 사이의 관계였다.
레싱은 조형미술은 "늘 가변적인 속성으로 인해 결코 단 한순간 이상의 어떤 것을" 재현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라오콘>에 "이 단 한순간이 예술을 통해 불변의 지속성을 얻게 되면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그 어떤 대상도 표현하지 못할 것이 틀림 없다"고 적었다.
레싱에게 미와 표현은 양립되지 않는 것들로 하나가 오로지 다른 하나의 손실에 의해서만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