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첫 번째 표현주의자는 누구였을까?"
표현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재현하기보다는 사고한 것을 나타내는 데서 회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코자 했다.
눈에 보이는 오브제를 어떻게 흡사하게 모사할 수 있을까보다는 정신에 내재한 갖가지 의식과 무의식을 어떤 이미지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표현주의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점이었다.
표현주의라 하면 프랑스의 야수주의, 독일의 다리 그룹, 오스트리아의 삼총사 클림트, 쉴레, 코코슈카 세 사람을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대부분의 미술사나 모던 아트 책이 이 세 가지 유형의 표현주의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며 표현주의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해로 1905년을 꼽는다.
표현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야 이제 와서는 쉬운 일이지만 1905년에 표현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못박을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과연 첫 번째 표현주의자는 누구였을까?"
표현이 강렬하게 나타난 작품으로 말하라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엘 그레코가 피렌체 대성당에 장식한 <십자가에서 내림>을 지적할 수 있다.
렘브란트와 고야가 말년에 그린 그림들도 마찬가지이고 바로크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도 표현적인 요소는 발견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상상 가능한 이미지들에 불과할 뿐 표현 자체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거나,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으나 깊숙한 잠재의식에서 자아를 괴롭히며 분출되는 충동을 솔직하게 묘사한 표현주의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작품은 뭉크로부터 비롯되었다.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그림에는 프랑스와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다루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아주 많다.
그냥 덮어둘 수 없는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이들의 그림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미술사에서 세 사람의 공헌은 이런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표현'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앙리 마티스이지만 표현주의 그림을 먼저 그린 사람은 뭉크이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제임스 앙소르 등과 함께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칭송을 받는다.
이같은 표현주의 회화는 19세기 말 자연주의와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상징주의와 아르 누보와 관련해서 주관주의의 일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주관주의 회화란 극적인 주제를 선택하여 간결하고 명료한 형상과 강렬한 색채를 통해 오브제를 모사하는 회화와는 달리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뭉크처럼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한 화가는 드물 것이다.
그가 외부세계보다 내면세계에 집착하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경험과 불안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으며 자신도 병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의 가정을 죽음의 가정으로 기억하면서 그런 불행을 극복할 수 없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고 이런 의식이 그대로 그림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뭉크의 미학은 한 마디로 '혼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더이상 숨길 수 없는 혹은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고백의 형상들로 창조해냈는데 <절규 the Scream>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만화처럼 과장하고 왜곡시켰다.
몸을 비틀면서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인물은 과연 무엇에 놀란 것일까?
원근법을 사용하면서 화면을 큰 경사로 단절시키는 다리와 난간, 후방의 가늘고 긴 두 사람, 황색, 적색, 청색에 의한 다이나믹한 필치, 강에 떠 있는 두 척의 배 이외에는 세부를 생략한 표현 등은 극적 효과를 높인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감정, 표면적으로는 평온한 가운데 돌연 누군가에 의해 습격당하고, 그리고 주변은 변함없이 평온하게 느껴질 때 한층 불안감정이 더해지고 체념하여 절규하고픈 충동에 쫒긴다.
이 작품에서 절규하고 있는 이와 원경의 인물의 무관함은 이러한 상황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불안한 현대인의 공감을 자아낸다.
표현주의 그림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정신적 동요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물론 더 나아가 기억의 형태까지도 변화시킴을 뭉크의 그림에서 알 수 있다.
이는 표현주의가 추구하는 점이기도 하다.
뭉크의 그림들은 전통을 무시한 새로운 양식의 회화이며 표현이 매우 강렬해서 회화가 결국 표현임을 충분히 웅변하고 있다.
표현주의가 공식적으로 출볌하기 10년 혹은 그 이전에 이미 표현주의 회화를 추구하고 있는 그는 표현주의의 선구자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