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정의될 수 없다는 사고는 물론 새로운 것이 못된다
 

베리스 고트Berys Gaut는 <집단개념으로서의 예술 'Art' as a Cluster Cincept>이란 제목으로 예술의 정의에 관해 논증했다.

그는 서언에서 예술의 정의를 말하는 철학자들의 시도들에서 만족할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며 주요 논증들인 기능주의자들의 정의, 역사적 정의, 그리고 이 둘에 대한 다양한 혼성물과도 같은 많은 정의들이 나중에 소개되었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고 일축한다.
이런 정의들에서 집중적 실패를 보고 또는 분석철학의 파산 징조를 보게 된다.
만약 예술의 정의를 내리는 일이 정녕 분석철학의 유일한 목표하면 고트는 말하기를 이 사업은 심각할 정도로 지불불능의 상태 또는 담보물을 찾을 권리를 상실한 절박한 위험에 직면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더욱이 게티어 이후post-Gettier '지식 knowledge'을 규정하는 시도들의 역사는 정확한 분석들을 보장하는 어려움을 충분히 예증하며 만약 분석들이 지식의 관념 위에 무너진 것이라면 그렇게 논의된 그리고 예술의 것과 같은 무정형의 한 관념과 더불어 성공을 보장해주는 어떤 희망이라도 있겠느냐고 고트는 묻고 있다.

'예술'이 정의될 수 없다는 사고는 물론 새로운 것이 못된다.
이런 사고는 1950년대 자신들의 입장을 떠받쳐주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관념'에서 변화하는 방법들로 끌어들인 몇몇 미학자들에게는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주장이었다.
현재도 예술을 유일하게 명기하는 필요조건과 공동충분조건들을 개별적으로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예술이 정의될 수 없다는 그들의 부정적인 주장은 몇 가지를 예외로 하고 부인된 반면 개념의 타당한 특징여부가 가족유사조건들 속에 있다는 그들의 긍정적인 주장은 오히려 더욱 더 폭넓게 배척되었고 이에 대한 변명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가 예술품들을 특정한 패러다임들을 닮은 것들로 특징짓는다면,
첫째 변명이 불완전해서 어떤 오브제들이 패러다임 작품들인지 언급할 필요가 있고
둘째 유사의 관념, 즉 어떤 것이 또 다른 것과 몇 가지 속성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어떤 것은 이런저런 점에서 또 다른 것과 유사하다는 것은 매우 무의미해서 특징의 부여가 어떤 것이라도 예술로 간주할 것이다.
특별히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입장에 합당하게 진전시킨 비트겐슈타인 학파의 논증들이란 없다.
정의를 찾아내는 데 대한 실패는 '예술'을 상관적이기보다는 본질적 조건들, 즉 따라서 제도적 그리고 역사적 이론들이 다음으로 인기가 있는 그런 조건들 안에서 정의하는 시도로 설명된 반면,
예술이 근본적으로 창조적이므로 '예술'이 정의를 거스린다는 주장은 실제 작업이 아직까지는 부정될 만한 고유한 방법들 안에서 추구되거나 혹은 생산품들이 본래의 것들이 되는 '예술' 정의의 일부가 될 것이므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직도 일반적인 승인을 보장해주는 상관적인 정의들의 버금가는 실패는 '예술'이 정의될 수 없기 때문에 정의된 적이 없다는 식의 사고를 부활시켜야만 하며 그렇게 쉽사리 내칠 수 없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만큼이나 강력한 철학에 근거를 둔 예술의 한 견해가 되는 그런 사고를 경고의 정신이 고무시켜야 만한다.
고트는 이를 '유사에서 패러다임으로resemblance-to-paradigm' 해석할 수는 없더라도 예술에 대해 정확한 특징부여를 주는 가족유사family resemblances에 대한 집단개념으로는 해석될 수 있음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런 해석을 위한 논증이 예술에 있어 원형의 중요성에 달려 있는 건 아니더라도 추정되고 있는 예술 오브제들의 실재적 그리고 사실에 입각하지 않는 사례들에 관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정밀검사에 주로 달린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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