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의상의non-definitional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정의에 대한 반본질주의anti-essentialism의 입장을 단순히 예술은 정의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로버트 스텍커Robert Stecker의 입장이다.
이보다는 더욱 더 복잡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이론이다.
말하자면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부정적인 측면은 기능주의자들의 명확한 예술의 정의들을 배척하는 데 있다.
반본질주의는 기능주의자들의 정의들을 반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또한 왜 이런 정의들이 자연스럽게 대두될 수 있었던가 하는 데 대한 이론들의 동기에 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기능주의자들이 예술을 정의함에 있어 가장 영향을 받은 개념은 예술의 가치있는 기능이 시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데 있었다.

긍정적인 측면이란 반본질주의자들의 주장은 비정의상의non-definitional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개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본질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예술은 정의될 수 없다는 주장에 매우 고무되었다.
반본질주의를 '가족유사개념'이거나 '집단개념'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
'가족유사개념'과 '집단개념'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간단하게 말하면,
'가족유사개념'은 다양한 상이한 종류의 패러다임들에 유사 성분들의 장점의 조건하에서 어떤 것을 예술로 보는 시각이다.
이에 반해 '집단개념'은 조건들의 한 조(set)의 일부를 만족시키는 장점의 조건하에서 어떤 것을 예술로 보는 시각이다.
이 두 접근법 모두
"어떤which 유사점들이 혹은 조건들이 예술임을 부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한 결국 예술을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반본질주의가 새로운 농작물의 씨를 뿐린 것처럼 예술의 정의의 문제에 활기를 띠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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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자는 예술을 정의함에 있어 

 
<예술을 정의하는 시도가 타당한가? Is It Reasonable to Attempt to Define Art?>
이것은 로버트 스텍커Robert Stecker의 논문 제목이다.
말 그대로 예술을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느냐고 묻는 것이다.
미국의 미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예술의 정의의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많은 견해들이 있었고 어느 한 견해가 나머지 견해들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술의 정의는 어떠해야 하는 것이며 예술이 정의될 수 있는 조건들에 관한 논쟁이었다.

스텍커는 논문 앞부분에서 예술을 정의하는 데 있어 '일치하는' 견해에 관해 먼저 설명했다.
소제목이 Defining Art: The "Consensus" View 이다.
예술의 정의와 관련해서 20세기 첫 50년 동안의 입장은 기능주의 제안자들이 주장한 기능주의였다.
이는 대체로 예술은 예술이 이행하는 혹은 하나 이상의 가치가 있는 기능의 조건하에서 예술이 정의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이 가치를 부여하는 속성들의 조건하에서 정의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가치있는 속성을 지니거나 제시하는 것을 예술의 기능function으로 보는 것이다.
기능주의자는 예술을 정의함에 있어
예술작품이 의미있는 형상인 것,
가능하면 특별한 방법으로 감성을 환기시키거나 표현하는 것,
의미있는 미적 경험을 의도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꼽는다.
이런 단순하simple 사례들이 기능주의자의 정의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의 기능, 하나의 가치있는 속성의 조건하에서 예술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반본질주의자anti-essentialist(혹은 반정의주의자anti-definitionist)의 반발이 있기 전만 해도 기능주의자의 정의는 불행하게도 복잡했으며 점차 모호해졌다.
그래서 우기체설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는 "예술이 분리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심미적 매체 안에 제시된 효험있는 관련들은 원인의 요소들이 구분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는 유기적 전체의 한 부류"라는 견해를 말한다.

그리고 주의설voluntarism(비의존주의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이란 것도 있었는데 이는 예술이 "상상력, 사회적 중요성, 그리고/혹은and/or 하모니를 통한 만족을" 제공하는 어떤 것이라는 견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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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한 개념 a different concept' 
 

데이브스와 마찬가지로 데니스 듀턴Denis Dutton 역시 예술의 이론
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종족 예술에 관심을 기울어야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듀턴은 이런 논의들이 잘못 진행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예술 개념에 관한 논쟁에서 종종 우리 자신들의 것들보다는 문화가
예술의 개념을 결여했거나
혹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개념의 결여가 지적되어 왔다.
더욱이 종종 이러한 추정되는 누락들이 그럭저럭 예술을 특징짓는
시도들과 타협된 것으로 가정되어 왔다.

듀턴은 자신의 논증 <그러나 그들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갖
고 있지 않다 But They Don't Have Our Concept of Art>에서 이런
의심에 직면하여 문화적 상이함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런 주장
들은 종종 오류이거나 혹은 적절치 못한 비교들에 근거했으며 서양
문화 속에서의 예술의 폭과 통용되는 예술론의 진가를 인정하지 못
하는 것임을 논했다.
듀턴은 말했다.

어떤 상이한 문화가 우리의 것들로부터 '상이한 예술 개념 different
concept of art'을 갖고 있다고 말할 때 그런 주장 속에는 '우리의
our'란 말처럼 불분명하게 표시된 극단적으로 한계를 정한 그리고
역사적으로 특정한 예술의 정의가 있다.

이런 그의 주장은 정말이지 더욱 더 좁은 의미로 그리고 상이함을
지적하는 친구보다 덜 묘사되는 정의를 의미한다.
듀턴은 더 나아가 "'상이한 개념 a different concept'의 관념은 대부
분 그런 정황들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남용되고 나는
아직도 그것이 예술과의 관련 안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본
다"고 했다.

상이함을 주장하는 학파에 대항해서 듀턴은 예술의 다양한 실천은
동류어들과 일치관계에 의해 관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명명한 종족의 영역, 문자 사용 이전의 예술(어쩌면 고
트가 '집단개념들 cluster concepts'이라고 명명한 방식을 따라 문
자 사용 이전의 예술nonliterate art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의 한계
를 정하는 쓸모있는 일을 하는 독특한 특징들의 리스트를 옹호했
다.
듀턴의 글은 대이브스의 글처럼 철학 밖의 인문학의 소수 이문화집
단 거주지에서 주로 보급되는 비서양예술에 관한 논문과 대조적으
로 분석적 미학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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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픈 대이비스Stephen Davies
 
스테픈 대이비스Stephen Davies는 논증 <비서양예술과 예술의 정
의 Non-Western Art and Art's Definition>에서 폭넓은 논점들을 다
루는 가운데 비서양예술의 한 특징에 관해 언급했다.
이 특징이 유럽인과 미국인을 포함하여 국외자들의 비서양예술을
예술로 인정하는 능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이브스는 인류의 보편적 관심과 인류에 호감을 주는 것들을 통솔
하는 미학적 속성들에 뿌리를 둔 문화를 초월하는 미학이 존재함을
논했다.
이런 문화를 초월하는 관심이 차례로 우리 자신들의 것과 같은 최
고 권위의 문화들 중에서 고상한 예술High Art과 대조가 되는 작은
한a 예술이라고 불리울 만한 것을 발생시킨다.
고상한 예술은 종종 사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묵상을 위한 것으로
강력히 주장되었으므로 예술작품의 미학적 성격이 기능면에서의 본
질적이라는 의미에서 고상한 예술과 마찬가지로 작품에 없어서는
안 될 미학적 속성들을 지닌 작은 한a 예술, 예를 들면 도기류와 같
이 오랫동안 유용할 것이다.
종족 예술이 많은 서양의 전통예술과 대중예술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같은 조건에 부합된다.
종족 예술은 작은 한a 예술이며, 미학적 특징에 대한 강조는 예술
자체의 우주적인 점, 비교문화의 인식할 수 있는 점을 설명하고 있
다.

대이브스의 논증은 예술론에 교훈적인 점을 기여할 뿐 아니라 또한
예술작품의 기능적 일체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절차상 그리고/혹은
and/or 역사적 정의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흥미있는 가설을 제안한
다.
대이브스는 말했다.

늘 그렇지 않다면 최초로 모든 문화권 내에서의 예술작품들은 미학
적 관심을 위해 산출된다.
이는 미학적 달성, 즉 이런 효과가 기능에 우선적이면서 또한 본질
적이 되게 품목이 디자인된 점을 고려해서 그것들이 전시되도록 창
조되었음을 말한다.
말하자면 이는 역사적으로 우선적 관심이란 것이 있으며 모든 미술
계 속의 최소한 일부 예술작품들이 이를 위해 고의적으로 만들어졌
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인류 뮨화의 유포를 가로질러 본 예술만들기의 주의를
끄는 특징으로 우리가 어떻게 모든 문화를 예술만들기 것들로 지각
하는지 그리고 미술계들을 가지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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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추측하기를 예술론들이 
 

베일리의 이론과 같은 최근의 많은 이론들이 역사적 사회적 정황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펙 지글린 브랜드Peg Zeglin Brand는 논란거리가 된 그녀의 논증
<전통 예술론들에서의 역력한 누락 Glaring Omissions in
Traditional Theories of Art>에서 과거 예술적 실천들에 관한 이론
들의 신뢰는 실제에 있어 여자들의 예술과 유색인종에 대항해서 관
습적 편견들을 영속시키는 것임을 논했다.

브랜드는 추측하기를 예술론들이 그것들의 생산과 용인의 패러다임
들을 위한 역사적 전례들에 의존하는 곳에서는 이론들이 남자, 정말
이지 백인남자의 관점에 한정될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관점은 다른 관점들에 의한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무
시당하고 도외시되기조차 하는 그런 식으로의 관점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브랜드는 몇 가지를 거론하는 중에 과거 미술계에
서의 권위자 역할들이 미술사가 직선적이 아니며,
성차별주의자와 인종차별주의자의 가정들이 애초부터 철학적 미학
에 퍼졌고,
인종과 성별이 미술계 정황의 부분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았다는 특정한 협의사항에 의해 두드러진 것으로 알려진 그
녀 자신 관습을 좇지 않는 페미니스트 예술론이라고 명명된 것을 위
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브랜드는 미술계가 참으로 민주적이 된다면 이런 류의 이론화가 필
요할 것임을 강력히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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