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는 장인匠人(artisan)이냐? 예술가藝術家(artist)냐?



우리나라 공예가들만이 유독 자신들이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훌륭한 공예가들은 대를 이어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데, 우리나라 공예가들 특히 대를 잇지 않고 대학에서 공예를 배운 사람들이 유독 예술가로 행세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자신의 전공분야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예工藝는 공예기술Industrial arts 혹은 기술체계technology입니다.
즉 공예를 전공한다고 하는 것은 혹은 공예가가 되겠다는 것은 공예기술 혹은 기술체계를 습득해서 그 분야에 탁월한 기술technique을 보유하겠다는 것입니다.
공예가工藝家는 technologist 혹은 기술자技術者나 기공가技工家(handicraftsman) 혹은 장인匠人(artisan)입니다.
공예가들이 혼돈하는 것은 예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예art란 기술이란 뜻입니다.
예가 원래 그리스어로 기술을 의미합니다.

요리사들이 자신들을 가리켜서 후드 아티스트food artist라 하고, 메이크업makeup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리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자칭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티스트란 전문가專門家 혹은 기술자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후드 기술자, 메이크업 기술자란 뜻입니다.
같은 이유에서 옻칠lacquer art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즉 칠공漆工(lacquer)은 옻칠 기술자가 되고, 도자기ceramic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도공陶工(ceramist)이 되며, 나무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은 목공woodworker(혹은 carpenter)이 됩니다.
금속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은 자연히 금속공metal technologist가 되는 것입니다.
공工은 숙련공mechanic(혹은 worker)을 의미합니다.
공예가들이 이런 사실을 필히 숙지하기를 바랍니다.

공예가가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으면 예술행위를 해야만 합니다.
예술가가 되는 특별한 방법이란 없습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藝術家란 예술적 기질artistic temperament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예술행위는 예술적 기질을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칠공, 도공, 금속공 등이 기술로 제작하는 것은 예술행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예술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술품을 제작하는 데 기술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예술을 하려는 자의식 혹은 기질이 있어야만 행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예가들이 거의 기술로 제작한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이 장인匠人(artisan)이 아닌 예술가藝術家(artist)로 대접을 받기를 바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장인의 자부심은 예술가의 자부심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장인이 없으면 과거의 기술이 전래될 수 없습니다.
장인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합니다.
공예가들은 그런 역할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필히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기술행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행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창작creative work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오랫동안 행해졌던 것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시각행위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칠공은 칠을 계속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나타난 형태가 전통 칠예의 범위 안에 있다면, 즉 기술에서 진일보했거나 재료에서 다양해졌더라도 칠예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장인匠人의 행위이지 예술가의 행위는 아닙니다.
도공이 금속공이 기술에서 진일보했거나 재료에서 다양해졌더라도 도예와 금속공예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의당 장인匠人들의 행위인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칠공이든, 도공이든, 금속공이든 혹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도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창작으로서 자신이 예술가임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창작, 그것을 할 수 없으면서 예술가를 탐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것을 탐하는 것입니다.
창작만이 예술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열쇄란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공예가 여러분들,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창작을 하세요.

 

 

혹자는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구분을 말합니다. 디자이너란 옷, 건물, 기계 그 밖의 오브제들을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사람들이므로 기술적인 예술가라는 뜻의 아르티장artisa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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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길고 넓을 수 있다



하루는 길고 넓을 수 있다는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부여로 갔습니다.
금강을 따라 달리는 버스 창밖의 풍경은 매우 평온했습니다.
마중 나온 최교수의 안내를 받고 전통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어린이날이라 캠퍼스는 고요했지만, 여기저기 작업장의 문을 열면 몇몇 학생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어린이날이 공휴일인 것도 이상하고, 어린이날에 대학이 휴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의 범위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린이날에 초등학교만 휴교해도 되는 것이 아닌지?
어린이날을 제창한 분이 살던 시대에는 한 집에 어린이가 많았고 먹고살기 어려워 어린이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으니까 하루만이라도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날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 집에서 하나 혹은 둘을 양육하는 것이 보통이라서 어린이들이 예전과 같이 푸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불쌍한 건 학원비를 포함해서 어린이를 양육하기 위해 허리가 휘어지고 있는 부모들이 아닐까요?

암튼 전통학교를 둘러본 뒤 최교수와 함께 공주로 갔습니다.
공주대학의 윤교수 개인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개인전을 본 뒤 윤교수의 안내로 청국장과 닭도리탕으로 유명한 고갯마루 식당으로 갔습니다.
누룽지를 입맛돋구기로 내어놓고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데 3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과연 충청도 사람들은 느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 기다리다 식사를 했으므로 사람들이 그 집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배고플 때에는 뭔들 맛있지 않겠습니까?
음식 잘한다는 소문이 나려면 음식을 늦게 내놓는 것도 방법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주에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한남대학의 최영근 교수 개인전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분의 작품에 대한 평을 제가 썼기 때문에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가야겠다고 벼르던 것이 공주까지 간 김에 간 것입니다.
공주에서 대전까지는 길을 차들로 붐볐습니다.
무려 1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최교수와 충청남도 부도지사가 있었습니다.
부도지사가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인근 식당으로 갔습니다.
부도지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공무원은 무능하고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모든 공무원을 그런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도지사는 스마트했고, 정상적인 공무원이었습니다.
모르는 분야를 공부해가며 열심히 자신의 일에 정진한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다만 한정식이 약간 짰고, 포도주는 그리 훌륭한 편이 못된 것이 아쉬웠지만 ...
허긴 공무원에게 지나치게 비싼 음식을 대접받아서야 되겠나 생각하니 그런 정도면 양호하다는 생각을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상경할 시간이라 대전역으로 가니 9시 45분 KTX가 있는데 입석이랍니다.
마침 기저귀를 가는 칸에 의자가 있어 약간 술기운이 도는 몸을 그곳에 안착시켰습니다. 

하루가 길고 넓을 수 있다는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불과 16시간이었지만, 부여, 공주, 대전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한 하루였습니다.
만난 사람들 중에는 부산에서 부여로, 수원에서 부여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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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독일에서 온 출판사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코엑스에 갔습니다.
금년 주빈국이 일본이라서 일본 출판사 대표들과 우리나라 여성편집자들의 모임이 주최한 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상황은 비슷한데, 책이 잘 팔리지 않아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e-book, mobil 등 책의 활용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내 생각은 출판의 현황이 인문학의 위기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그리고 인문적인 책들이 팔리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관광가이드, 요리방법, 컴퓨터기술 관련, 몇몇 소설가와 시인들의 책 등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다만 인문학 그리고 인문적인 책들이 팔리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며, 이는 비단 일본과 우리나라만의 현상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적인 현실로서 이미 많은 학자들이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독자들은 인문학 내지는 인문적인 지식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매우 우려되는 점입니다.
인간은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되는 동물이 아닙니다.
너무 잘 먹어서 몸을 살찌운 뒤 다이어트 책을 읽으면서 살 빼느라 고심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평수가 많은 아파트에 살면서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하기 위해 사는 동물은 아닙니다.
특별히 세계관, 인생관을 가지지 않고 자기에게 유익하기만 하면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하면서 기회주의자로 사는 동물도 아닙니다.

인터넷이 무척 발달되어 있어 인터넷에서 무상으로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므로 독서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그리고 인문적인 책에 등을 돌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인문학자, 작가, 인문주의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인문학의 영역을 더욱 넓혀서 자연과학과 영역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자연과학의 지식으로 인문적인 문제를 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학문이 세분되다 보니 학문들 간의 소통이 부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연과학에서도 생물학자와 두뇌과학자 간에 소통이 부재합니다.
예술 전공자와 사회학자 혹은 경제학자 간에 소통이 부재합니다.
철학자와 물리학자 혹은 화학자 간에 소통이 부재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전합니다.
MIT 대학의 철학교수가 식당에서 물리학 교수를 만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철학교수가 물리학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철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리학교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타 학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학문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세분화된 지식에 평생을 거는 삶이란 무슨 의미가 되겠습니까?
“나는 평생 악어의 생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이 온당한 것일까요?
악어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이 인류에게 중요한 지식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악어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태에 관한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란 바로 인간의 생태에 관한 학문입니다.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악어 전공자는 인간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인문학 전공자는 인간과 관련해서 악어의 생태에도 관심을 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학문 간의 소통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산되는 문화상품으로서의 책이 출간된다면 출판의 불황이 타개될 것이라고 봅니다.
철학자, 문인, 예술가는 물리학, 생물학, 화학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는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말할 수 있어야 학문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건축가와 종교인이 인류학에 관해 말하고 인류학자는 건축과 종교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문 간에 소통이 발생하지 않으면 세분화된 지식들은 인류에게 능률적으로 기여할 수 없습니다.
악어의 생태에 관한 지식이 악어 전공자들에게만 만족을 준다면 얼마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식이겠습니까?
지식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앞으로 지식인들이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자들도 편식을 하지 말고 지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게임을 잘 하고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밖의 지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알아야 컴퓨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은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지식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많은 음악을 들은 사람이 음악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더 잘 즐길 수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가 곧 출판의 불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는 사람들이 독서하지 않는다고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출간해야 합니다.
그러한 책은 학문 간의 소통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며,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책들이 서점에 즐비하게 꽂힐 때 독서하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독일인을 만나 독일 교과서를 여러 권 보았습니다.
독일의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은 참 훌륭한 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독일의 초등학생들의 교과서라면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읽을 수 있고, 독일의 중고등학생들의 교과서라면 우리나라 성인들이 읽을 수 있으며, 독일의 대학생들의 교과서라면 우리나라 전공자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불행하지만 문화의 현주소입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오로지 진학하기 위해 공부할 뿐입니다.
최종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입시공부 외에는 아무런 공부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독일뿐 아니라 선진국의 교과서에는 다양한 지식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해서 풍요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식들이 쌓여진 책들이 출간되기 바랍니다.
학문 간의 소통이 활발한 책들이 출간되기 바랍니다.
독자들도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지식을 섭취하기 바랍니다.
관심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인문학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바랍니다.
인문학의 영역은 철학, 종교, 역사, 언어, 문학,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법학, 정치학, 인류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합니다.
우주의 기원, 인류의 기원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등의 관심일 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의 관심이기도 하고, 문학과 예술의 관심이기도 해야 합니다.
학문의 징검다리가 놓이지 않으면 지식은 불구가 됩니다.

어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하루였습니다.
코엑스를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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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빼어난 불화 수월관음도를 감상했습니다


관음보살의 우아하고 성스런 자태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관음보살이 기암奇巖 위에 부들자리를 깔고 왼쪽 측면을 향해 반가좌한 자세로 앉아 있고, 뒤로 대나무 두 그루가 보이며, 앞에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있고, 오른쪽 하단에 선재동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일반 <수월관음도>의 경우 관음보살이 화면 왼편을 향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은 반대로 구성된 것이 특기할 만합니다.
관음보살의 도톰한 오른발은 흰 파도와 함께 솟아난 연꽃 위에 얹혀 있습니다.
머리에는 아미타여래 화불化佛이 그려진 보관寶冠에 얹혀 있고, 보살의 상반신은 금색 피부입니다.
착의着衣는 흰색으로 묘사한 귀갑문龜甲文 바탕에 연꽃패턴이 있는 붉은 치마이며,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속이 비치는 얇은 사라紗羅가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사라에는 금니金泥의 구름과 봉황이 수놓아져 화려함이 극치를 이룹니다.
가슴의 띠 부분에는 흰색 외에도 녹색, 청색의 패턴이 7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돋보입니다.
양팔에 걸쳐 흘러내리는 천의자락과 치마의 끝단에도 보상화寶相華 패턴이 금니로 수놓아졌습니다.
화면 하단 오른편에 있는 선재동자는 관음보살을 합장한 모습으로 간절한 구도의 눈빛을 보내는 모습입니다.
청색 머리카락을 앞으로 모아 붉은 리본으로 묶은 것이 특이하며 인상적입니다.

에도시대인 1812년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의 『측량일기測量日記』에 따르면, <수월관음도>는 고려 제26대 충선왕忠宣王(1298, 1308-13년 재위) 2년 즉 1310년 5월에 숙비叔妃의 발원으로 내반종사內班從事 김우문金祐文, 한화직대조翰畵直待詔 이계李桂, 임순林順, 송연색宋連色, 중랑中郞 최승崔昇 등 총 8명의 화원이 그린 것입니다.
숙비는 충선왕의 후궁 김씨金氏를 말합니다.
그녀는 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를 지낸 김양감金良鑑의 딸이자 문신 김문연金文衍의 여동생으로 충렬왕忠烈王의 숙창원비淑昌院妃였다가 후에 충선왕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월관음도>가 일본에서 소장된 지 600여 년이나 된 것으로 보아 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당시 일본인이 고려 불화를 열광적으로 수집했으므로 누군가에 의해 팔려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통도사를 나와 시내로 들어가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1차에서 곰장어, 2차에서 조개구이를 먹고, 3차에서 노래방, 해변에서 마시고 놀다보니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전날 해운대에서 회를 먹을 때는 식당마다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근처 호텔에서 해수온천 물에 몸을 담갔다가 이튿날 해수온천을 오래 즐기고 나니 모든 피로가 가신 듯했습니다.
아침 해운대에서의 복어국은 일품이었습니다.

어제 늦게 상경하니 대한문 앞 분향소를 경찰이 철거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저들이 저들의 명을 재촉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중의 분노를 매우 낮은 자세로 받아들이고 성찰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으로 누르려는 발상은 참으로 한심합니다.
6월이 오늘 시작되는데, 아무래도 6월에는 격변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대통령이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을 모두 바꾸고 새로운 정치,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펴지 않는다면 국내의 혼란은 권력으로 평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통도사通度寺의 통도사성보박물관에 가서 고려의 빼어난 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감상했습니다.
금요일 서울역에서 현 정권에 희생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분향하고 기차로 부산을 향했습니다.
부산 시내에서 양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통도사에 편안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1km를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면 양편에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특이한 점은 곧게 뻗은 소나무는 거의 없고 대부분 기형적인 모습입니다.
뱀의 모습처럼 구불구불한 것과 45도 또는 그 미만으로 기운 소나무들도 많았으며, 더러는 아예 땅과 수평이 되어 받침대로 고정시킨 것들도 있었습니다.

통도사는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佛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을 받아 이 절을 창건하고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法式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때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많은 이들로 하여금 득도得道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강계단은 자장과 제27대 신라의 선덕여왕善德女王(632-647 재위)이 축조하여 진신사리를 안치한 것입니다.
65동 580여 칸에 해당하는 대규모의 사찰寺刹이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선조 34년 1601년에, 인조 19년 1641년에 중수했습니다.
대광명전大光明殿을 제외하고 모두 근세의 건물들입니다.
이 사찰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웅전大雄殿은 국보 제290호입니다.
근처에 13개의 암자가 있는 매우 큰 사찰입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1987년에 개관했습니다.
이 박물관은 지난 10년 동안 불사리장엄전, 티베트 특별전, 감로탱 특별전 등 불교 미술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데 앞정 서고 있습니다.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에 소장되어 있던 <수월관음도>가 현재 통도사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가가미진자는 5세기 한반도 신라에 원정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인물 신공황후神功皇后를 모시는 신사입니다.
730년 사전社殿을 마련하고 745년에 창립된 이 신사는 1770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이듬해에 제1궁이 재건되었으며, 제2궁은 1790년에 재건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현존하는 고려의 불화가 160여 점인데, 국내에는 불과 10여 점만 있고, 대부분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는 위탁, 보관 중인 사가현립박물관에서도 1년 중 38일만 공개하는 국보급입니다.

<수월관음도>는 고려 불교 미술의 결정체結晶體입니다.
비록 일본에 소장되어 있더라도 현존하여 700년이 지난 후손들이 조상의 놀라운 회화 솜씨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수월관음도>는 1310년에 제작되었으며, 서양으로 말하면 르네상스가 막 시작된 때입니다.
조토의 자연주의 그림이 르네상스를 열었는데, 조토의 작품과 이것을 비교하면 조토의 그림은 어린이의 그림에 불과합니다.
인체의 비례가 정확할 뿐 아니라 투명한 물감을 섬세하게 사용하면서 화려한 색상의 사용은 성기르네상스의 작품보다도 앞선 것입니다.
어깨에서부터 발에까지 흘러내리는 투명한 엷은 천을 수놓은 나는 새의 장식과 천을 통해 보이는 배경에 의한 입체감은 매우 뛰어납니다.
비단의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모습이 뚜렷하여 훼손된 부분은 감상자가 능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수월관음도>는 현재 세로 430cm 가로 254cm의 크기이지만, 에도시대江戶時代인 19세기 기록에 따르면 세로 500cm 가로 270cm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이런 거폭의 비단을 회화를 위해 제작한 것은 중국과 일본 회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사례입니다.
화면의 네 변이 조금 잘린 채 장황裝潢된 상태인 것이 아쉽습니다.
그림이 너무 커서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아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사상에 근거하여 제작되었으며, 배경은 『화엄경華嚴經』의 「입법계품入法界品」입니다.
「입법계품」은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서 발심한 선재동자가 보살의 가르침대로 53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보살도菩薩道를 배우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원願과 행行을 성취함으로서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대승불교가 말하는 보살의 길을 선재동자를 통해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입법계품」에 따르면 관음보살은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머물며 중생을 제도했습니다.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다니다가 28번째로 이곳을 방문하여 관음보살과 대면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수월관음도>입니다.
관음보살이 보타락가산의 바닷가에 앉아 선재동자와 대면하는 장면이 <수월관음도>이고, 따라서 여러 종류의 <수월관음도>가 현존하는데, 지금 통도사에서 전시하고 있는 이 <수월관음도>가 가장 빼어납니다.
‘수월관음’이라 부르는 것은 달이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이 물가의 벼랑 위에 앉아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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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값싼 동정심을 받게 되면 더 부아가 치밀 것 같아 말하지 않고 꼭꼭 숨겨놓은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꼭꼭 숨겨놓게 된다.
값싼 동정심과 맞바꾸기에는 너무 애절한 이야기라서 스트레스로 남기게 된다.
어쩜 택시기사는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아내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다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해서 그는 고통의 통로를 벗어난 것 같았다.
스트레스는 말로 쏟아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도착하자 따뜻한 공기가 뺨을 스치는데, 기사의 이야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강실장이 맛있는 차, 백설기, 포도주, 고량주 등으로 대접해주어 담소하느라 우울한 이야기는 이내 사라졌다.
미식가인 강실장이 데려간 곳에서 굴국밥과 굴부추전을 먹으니 일품이었다.
대전의 특산물로 삼계탕과 칼국수 대신에 굴국밥과 굴부추전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 책상 앞에 앉으니 그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다.
아내의 목을 졸랐다는 인생,
하반신이 마비된 인생,
분노를 삭이며 살아가야 하는 그 인생이 여간 딱하지 않다.
세상에는 딱한 이야기가 아주 많은 것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들 ... 


어제 대전에 소재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습니다.
기차에 탑승하기 전에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건 습관입니다.
노숙자 한 사람이 다가와 “형님, 담배 하나 주십시오” 한다.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는 “동료에게 줄 것도 하나 주십시오” 한다.
안 돼!” 하고 말했다.
알았습니다” 하고 저만치 간다.
기차를 타러 가면서 내가 왜 안 된다고 말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제 주제에 동료의 것까지 챙기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호두과자를 먹고 있었다면 그에게 그의 동료의 것도 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평소에 유해음식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걸 그의 동료에게까지 준다는 게 싫었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꼭 한 시간 만에 대전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국립문화재연구소로 가자고 하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주소를 말하니 기사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이놈의 내비게이션이 빨리 작동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한다.
그쯤 유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아 대전 특산 음식물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없다면서 대전시가 근래에 삼계탕과 칼국수를 대전의 특산 음식물로 지정했다고 말한다.
그게 대전 특산물이 되겠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장이 그렇게 정했다고 말한다.
대전이 특색 없는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온천에 관해 물었다.
지난번 유성온천장에 묵었는데, 호텔마다 다 온천수를 사용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과거에 목욕탕을 한 경험이 있어 잘 안다면서 온천수를 100% 사용하는 데는 한 곳도 없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곳에서는 70%의 온천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보통 온천수를 탱크에 받아 수돗물과 섞어 사용하는데, 온천수를 30%만 사용하는 곳도 많다고 한다.
물을 미끄럽게 만드는 곳도 있는데, 소금을 섞기 때문이라며 그런 곳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온양온천도 마찬가지라며 정부에서 온천수의 사용을 법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많이 사용할 경우 부과세를 더 내야 하므로 물을 많이 섞는다고 말한다.
몇몇 곳은 온천수를 60%까지 사용한다면서 그런 온천장을 말해주었다.
기사를 통해 온천에 대한 지식이 생겼다.

기사의 다음 이야기는 마음을 어지럽혔다.
자신의 하반신은 마비된 상태이고 오줌만 겨우 눌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운전을 하느냐고 물으니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손으로 운전한다고 말한다.
기사의 말인즉,
자신이 큰 규모의 목욕탕을 논산과 대전에 각각 열고 사업이 잘 되었는데, 아내와 큰아들이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보증을 섰다가 두 곳 다 날아갔다는 것이다.
법정관리가 6개월인데, 자신이 그 사실을 안 건 6개월 하루 뒤였다고 한다.
손쓸 시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재산을 날렸다고 한다.
2004년의 일인데, 너무 분해서 신경성으로 서울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었고,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의사도 병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자다가도 누군가가 불방망이로 자신의 허리를 쑤시는 듯한 환상에 빠지고, 한 번은 아내를 죽이려고 목을 졸라 아내가 중환자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대목에 이르러선 “이거 택시를 잘못 탔구나” 하고 생각했다.
기사와 승객이 가볍게 나눌 수 있는 대화로서는 섬뜩했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청한 노숙자에게도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라고 하면 뜻밖의 이야기가 술술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품고 산다.
나에게도 아무한테나 말할 수 없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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