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길고 넓을 수 있다
하루는 길고 넓을 수 있다는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부여로 갔습니다.
금강을 따라 달리는 버스 창밖의 풍경은 매우 평온했습니다.
마중 나온 최교수의 안내를 받고 전통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어린이날이라 캠퍼스는 고요했지만, 여기저기 작업장의 문을 열면 몇몇 학생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어린이날이 공휴일인 것도 이상하고, 어린이날에 대학이 휴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의 범위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린이날에 초등학교만 휴교해도 되는 것이 아닌지?
어린이날을 제창한 분이 살던 시대에는 한 집에 어린이가 많았고 먹고살기 어려워 어린이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으니까 하루만이라도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날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 집에서 하나 혹은 둘을 양육하는 것이 보통이라서 어린이들이 예전과 같이 푸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불쌍한 건 학원비를 포함해서 어린이를 양육하기 위해 허리가 휘어지고 있는 부모들이 아닐까요?
암튼 전통학교를 둘러본 뒤 최교수와 함께 공주로 갔습니다.
공주대학의 윤교수 개인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개인전을 본 뒤 윤교수의 안내로 청국장과 닭도리탕으로 유명한 고갯마루 식당으로 갔습니다.
누룽지를 입맛돋구기로 내어놓고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데 3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과연 충청도 사람들은 느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 기다리다 식사를 했으므로 사람들이 그 집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배고플 때에는 뭔들 맛있지 않겠습니까?
음식 잘한다는 소문이 나려면 음식을 늦게 내놓는 것도 방법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주에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한남대학의 최영근 교수 개인전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분의 작품에 대한 평을 제가 썼기 때문에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가야겠다고 벼르던 것이 공주까지 간 김에 간 것입니다.
공주에서 대전까지는 길을 차들로 붐볐습니다.
무려 1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최교수와 충청남도 부도지사가 있었습니다.
부도지사가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인근 식당으로 갔습니다.
부도지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공무원은 무능하고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모든 공무원을 그런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도지사는 스마트했고, 정상적인 공무원이었습니다.
모르는 분야를 공부해가며 열심히 자신의 일에 정진한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다만 한정식이 약간 짰고, 포도주는 그리 훌륭한 편이 못된 것이 아쉬웠지만 ...
허긴 공무원에게 지나치게 비싼 음식을 대접받아서야 되겠나 생각하니 그런 정도면 양호하다는 생각을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상경할 시간이라 대전역으로 가니 9시 45분 KTX가 있는데 입석이랍니다.
마침 기저귀를 가는 칸에 의자가 있어 약간 술기운이 도는 몸을 그곳에 안착시켰습니다.
하루가 길고 넓을 수 있다는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불과 16시간이었지만, 부여, 공주, 대전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한 하루였습니다.
만난 사람들 중에는 부산에서 부여로, 수원에서 부여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