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빼어난 불화 수월관음도를 감상했습니다
관음보살의 우아하고 성스런 자태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관음보살이 기암奇巖 위에 부들자리를 깔고 왼쪽 측면을 향해 반가좌한 자세로 앉아 있고, 뒤로 대나무 두 그루가 보이며, 앞에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있고, 오른쪽 하단에 선재동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일반 <수월관음도>의 경우 관음보살이 화면 왼편을 향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은 반대로 구성된 것이 특기할 만합니다.
관음보살의 도톰한 오른발은 흰 파도와 함께 솟아난 연꽃 위에 얹혀 있습니다.
머리에는 아미타여래 화불化佛이 그려진 보관寶冠에 얹혀 있고, 보살의 상반신은 금색 피부입니다.
착의着衣는 흰색으로 묘사한 귀갑문龜甲文 바탕에 연꽃패턴이 있는 붉은 치마이며,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속이 비치는 얇은 사라紗羅가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사라에는 금니金泥의 구름과 봉황이 수놓아져 화려함이 극치를 이룹니다.
가슴의 띠 부분에는 흰색 외에도 녹색, 청색의 패턴이 7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돋보입니다.
양팔에 걸쳐 흘러내리는 천의자락과 치마의 끝단에도 보상화寶相華 패턴이 금니로 수놓아졌습니다.
화면 하단 오른편에 있는 선재동자는 관음보살을 합장한 모습으로 간절한 구도의 눈빛을 보내는 모습입니다.
청색 머리카락을 앞으로 모아 붉은 리본으로 묶은 것이 특이하며 인상적입니다.
에도시대인 1812년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의 『측량일기測量日記』에 따르면, <수월관음도>는 고려 제26대 충선왕忠宣王(1298, 1308-13년 재위) 2년 즉 1310년 5월에 숙비叔妃의 발원으로 내반종사內班從事 김우문金祐文, 한화직대조翰畵直待詔 이계李桂, 임순林順, 송연색宋連色, 중랑中郞 최승崔昇 등 총 8명의 화원이 그린 것입니다.
숙비는 충선왕의 후궁 김씨金氏를 말합니다.
그녀는 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를 지낸 김양감金良鑑의 딸이자 문신 김문연金文衍의 여동생으로 충렬왕忠烈王의 숙창원비淑昌院妃였다가 후에 충선왕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월관음도>가 일본에서 소장된 지 600여 년이나 된 것으로 보아 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당시 일본인이 고려 불화를 열광적으로 수집했으므로 누군가에 의해 팔려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통도사를 나와 시내로 들어가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1차에서 곰장어, 2차에서 조개구이를 먹고, 3차에서 노래방, 해변에서 마시고 놀다보니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전날 해운대에서 회를 먹을 때는 식당마다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근처 호텔에서 해수온천 물에 몸을 담갔다가 이튿날 해수온천을 오래 즐기고 나니 모든 피로가 가신 듯했습니다.
아침 해운대에서의 복어국은 일품이었습니다.
어제 늦게 상경하니 대한문 앞 분향소를 경찰이 철거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저들이 저들의 명을 재촉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중의 분노를 매우 낮은 자세로 받아들이고 성찰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으로 누르려는 발상은 참으로 한심합니다.
6월이 오늘 시작되는데, 아무래도 6월에는 격변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대통령이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을 모두 바꾸고 새로운 정치,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펴지 않는다면 국내의 혼란은 권력으로 평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통도사通度寺의 통도사성보박물관에 가서 고려의 빼어난 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감상했습니다.
금요일 서울역에서 현 정권에 희생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분향하고 기차로 부산을 향했습니다.
부산 시내에서 양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통도사에 편안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1km를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면 양편에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특이한 점은 곧게 뻗은 소나무는 거의 없고 대부분 기형적인 모습입니다.
뱀의 모습처럼 구불구불한 것과 45도 또는 그 미만으로 기운 소나무들도 많았으며, 더러는 아예 땅과 수평이 되어 받침대로 고정시킨 것들도 있었습니다.
통도사는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佛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을 받아 이 절을 창건하고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法式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때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많은 이들로 하여금 득도得道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강계단은 자장과 제27대 신라의 선덕여왕善德女王(632-647 재위)이 축조하여 진신사리를 안치한 것입니다.
65동 580여 칸에 해당하는 대규모의 사찰寺刹이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선조 34년 1601년에, 인조 19년 1641년에 중수했습니다.
대광명전大光明殿을 제외하고 모두 근세의 건물들입니다.
이 사찰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웅전大雄殿은 국보 제290호입니다.
근처에 13개의 암자가 있는 매우 큰 사찰입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1987년에 개관했습니다.
이 박물관은 지난 10년 동안 불사리장엄전, 티베트 특별전, 감로탱 특별전 등 불교 미술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데 앞정 서고 있습니다.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에 소장되어 있던 <수월관음도>가 현재 통도사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가가미진자는 5세기 한반도 신라에 원정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인물 신공황후神功皇后를 모시는 신사입니다.
730년 사전社殿을 마련하고 745년에 창립된 이 신사는 1770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이듬해에 제1궁이 재건되었으며, 제2궁은 1790년에 재건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현존하는 고려의 불화가 160여 점인데, 국내에는 불과 10여 점만 있고, 대부분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는 위탁, 보관 중인 사가현립박물관에서도 1년 중 38일만 공개하는 국보급입니다.
<수월관음도>는 고려 불교 미술의 결정체結晶體입니다.
비록 일본에 소장되어 있더라도 현존하여 700년이 지난 후손들이 조상의 놀라운 회화 솜씨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수월관음도>는 1310년에 제작되었으며, 서양으로 말하면 르네상스가 막 시작된 때입니다.
조토의 자연주의 그림이 르네상스를 열었는데, 조토의 작품과 이것을 비교하면 조토의 그림은 어린이의 그림에 불과합니다.
인체의 비례가 정확할 뿐 아니라 투명한 물감을 섬세하게 사용하면서 화려한 색상의 사용은 성기르네상스의 작품보다도 앞선 것입니다.
어깨에서부터 발에까지 흘러내리는 투명한 엷은 천을 수놓은 나는 새의 장식과 천을 통해 보이는 배경에 의한 입체감은 매우 뛰어납니다.
비단의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모습이 뚜렷하여 훼손된 부분은 감상자가 능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수월관음도>는 현재 세로 430cm 가로 254cm의 크기이지만, 에도시대江戶時代인 19세기 기록에 따르면 세로 500cm 가로 270cm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이런 거폭의 비단을 회화를 위해 제작한 것은 중국과 일본 회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사례입니다.
화면의 네 변이 조금 잘린 채 장황裝潢된 상태인 것이 아쉽습니다.
그림이 너무 커서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아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사상에 근거하여 제작되었으며, 배경은 『화엄경華嚴經』의 「입법계품入法界品」입니다.
「입법계품」은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서 발심한 선재동자가 보살의 가르침대로 53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보살도菩薩道를 배우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원願과 행行을 성취함으로서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대승불교가 말하는 보살의 길을 선재동자를 통해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입법계품」에 따르면 관음보살은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머물며 중생을 제도했습니다.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다니다가 28번째로 이곳을 방문하여 관음보살과 대면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수월관음도>입니다.
관음보살이 보타락가산의 바닷가에 앉아 선재동자와 대면하는 장면이 <수월관음도>이고, 따라서 여러 종류의 <수월관음도>가 현존하는데, 지금 통도사에서 전시하고 있는 이 <수월관음도>가 가장 빼어납니다.
‘수월관음’이라 부르는 것은 달이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이 물가의 벼랑 위에 앉아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