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의 삼성오신(三省吾身)
하루에 세 번 내 몸을 살핀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하루에 세 번 내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하여 일을 꾸미되 충성되지 않음이 없었는가?
벗과 사귐에 신의를 잃지 않았는가?
배움을 익히지 않음이 없었는가?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논어』, 「학이」편

증자는 하루에 세 번 자기를 반성했다.
첫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줄 때 성실함이 없지 않았는가.
둘째 친구와의 사귐에서 신의 없는 행동은 없었는가.
셋째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전한 일은 없는가.
증자는 공자가 사랑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대학』을 저술했다.
대학은 큰 배움의 도라는 뜻이다.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전했다.
자사는 증자의 제자로 『중용』을 지어 공자의 중용사상을 후세에 전했다.
맹자는 자사의 제자로 공자의 도를 전하는 『맹자』를 썼다.
『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사서(四書)라고 하는데 모두 유교의 경전이며 동양의 지도사상이다.

일찍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제자가 있었기에 소크라테스가 대철인이 되었고, 장자, 열자, 한비자 같은 제자가 있어서 노자가 대성이 될 수 있었다.
공자가 위대한 성인이 된 것 역시 증자, 자사, 맹자 같은 제자들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증자가 앓거늘 맹경자(孟敬子)가 문병했다.
증자가 말하되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군자에게 귀한 도가 셋이 있으니 몸가짐에 있어서 사납고 거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르게 하여 신의를 가까이할 것이며, 말을 예에 맞게 하면 더러움을 멀리할 수 있다. ●『논어』, 「태백」편

너무도 유명한 증자의 이 말은 후대에까지 전해진다.
죽으려는 새의 울음소리는 슬프고, 죽음에 임하는 사람의 말은 착하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죽을 때는 선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용모에 공손하며 포악하고 거만함을 멀리하며, 둘째 얼굴표정을 단정히 하고 성실성을 지키며, 셋째 말씨를 부드럽게 해서 야비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피하라는 것이다.
그는 세 가지 실천도덕으로 삼성(三省)을 가르쳤고, 임종 시에는 지도자의 세 가지 지도지침을 유언으로 남겼다.

증자가 병이 위독하여 제자들을 불러 말하되 나의 발을 펴고 손을 펴라.
시경에 이르되 몸과 마음을 경계하기를 전정긍긍(戰戰兢兢) 깊은 연못에 떨어질 듯, 살얼음을 밟듯 하라 하였으니 이제야 나는 근심을 풀었노라, 제자들아! ●『논어』, 「태백」편

증자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효행이 가장 두터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임종 시에 제자들을 불러서 몸에 이상이 없는가를 살펴보라고 했다.
그는 『시경』을 인용하여 깊은 못을 들여다보듯, 살얼음을 밟고 건너가듯,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몸을 지켜왔다가 이제 완전한 몸으로 죽으니 걱정이 없다고 한 것이다.

『효경』에서는 “신체의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몸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효의 근본이다.
이것은 효를 다했다는 즐거움과 충실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는 의무에서 풀려났다는 승리감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라고 했다.
사람이 죽을 때 이와 같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대한 죽음이다.

유능하면서 무능한 자에게 물어보며, 다문다식 하되 견식이 낮은 자의 의견을 들으며, 있되 없음과 같고, 충만하되 빈 듯하며, 남이 덤벼 와도 대항하지 아니하니 옛날에 나의 벗이 이와 같았느니라.
●『논어』, 「태백」편

이것은 증자가 옛 친구 안회의 겸허한 인격을 평한 것이다.
안회는 공자의 제자로 32세에 요절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증자와 함께 그의 스승 공자의 말씀을 전하는 데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다.
안회 자신은 훌륭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자신은 지식과 견문이 풍부한데도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인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충실한 인격을 갖추었어도 겸손하게 행동하며 다른 사람이 싸우려 해도 대항하지 않는다.
옛날 나의 벗 중에 이처럼 훌륭한 인격자가 있었다고 안회를 추모하는 동시에 그의 겸허한 생애를 자신의 철학으로 삼았다.

증자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증자의 부인이 저자에 가려고 할 때 아이들이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돌아와서 돼지고기 반찬을 해서 저녁밥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부인이 돌아오니 증자는 돼지를 잡고 있었다.
부인이 놀라서 말하기를 “아이들에게 말한 것은 농담이었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증자는 말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오. 순진하고 무지한 아이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이오. 지금 아이들을 속이는 것은 자식에게 사람을 속이라고 가르침과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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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의 어부사(漁父辭)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굴원이 이미 내침을 받으매 강담(江潭)에 놀아
못가를 걸으며 읊조리니 낯빛이 바짝 마르고
모양이 마른 나무처럼 시들었더라.

고기잡이 늙은이가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이르렀는고.
굴원이 가로되, 온 세상이 다 흐렸는데 나 홀로 맑았고
뭇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었노라.
이러므로 내침을 받았노라.

고기잡이 늙은이 가로되, 어진 이는 무엇에나
엉키고 걸림이 없어 세상과 더불어
잘 어울려 옮겨가는 것이라.
온 세상이 흐렸거든 어찌하여 그 진흙을 휘저으며
그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고.

굴원이 가로되, 나는 들으니 새로 머리를 감은 이는
반드시 감투를 튕겨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이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 하니
어찌 내 몸의 깨끗함을 가지고
남의 얼룩진 것을 받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소상 강에 나아가 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또 어찌 참아 희고도 흼을 가지고
더러운 세상의 티끌을 무릅쓸 수 있겠는가.

고기잡이 늙은이 빙긋이 웃고 배 삼1을 처
떠나가면서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 맑거들랑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흐리거들랑 내 발을 씻음세나.
드디어 가 버린 다음 서로 다시 말이 없더라.
●굴원, 「어부사」

주> 1 삼: 뱃바닥에 댄 널

굴원은 기원전 3세기 초(楚) 회 왕 때 사람이다.
왕족으로서 문장이 능했고, 왕의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三閭大夫)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정치에 밝았으며 마음이 곧고 학문을 좋아했다.
그는 우국시인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많은 작품을 남긴 그가 중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이백과 두보에 버금갈 만큼이라고 한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굴원의 지조를 높이 평했다.
“진흙 속에서 씻어 진흙을 벗어나고, 먼지 바깥에 유리하여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진흙 속에서 결백을 지녔다. 굴원의 지조를 살펴보면 일월(日月)과 빛을 다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회 왕은 굴원을 신임하여 모든 정사를 의논했으나 간신의 모략으로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
굴원은 슬프고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돌을 안고 멱라수에 빠져죽었다.
이 글은 자신의 심경을 그린 것이다.
짤막한 글이지만 그 안에는 곧고 깨끗하게 충성을 다해서 나라를 생각하던 굴원이 왜 죽을 결심을 했는지, 그 심경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결백을 주장한다.

진흙 속에서 참혹했던 자기 처지를 의식한 굴원은 아픈 마음으로 강가를 헤매다가 강물에 비치는 자기 얼굴을 보고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나’를 생각한 것이다.
임금이 자기의 욕심 없는 충성심을 몰라줄 때 ‘그분이 어찌 내 마음을 몰라줄까’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그는 이 억울함을 초월해야 했다.
‘나는 이 나라의 신임을 받았던 삼려대부가 아니었던가?’
그는 강가를 거닐면서 자문자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굴원은 결백한 사람이었다.
온 세상이 다 흐렸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다.
다시 말해서 사회는 부패했고 공의(公議)는 땅에 떨어졌다.
그는 결백해서 결코 비겁하게 부귀나 권력에 굴해 타협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반성해본다.
흐리면서도 흐리지 않는 것이 강물이듯이 취한 세상에서도 취하지 않는 것이 성자의 길이 아니냐고 생각해본다.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 쓰고 옷을 흔들어서 입는다.
이것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는 ‘차라리 죽더라도 깨끗한 편을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마지막에 고기잡이 늙은이가 빙긋이 웃었다는 것은 굴원이 그의 이성과 감정에 호소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을 얻은 증거일 것이다.
여기서 고기잡이 늙은이는 속세를 초월한 굴원 자신이다.
그리고 배 삼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떠나는 데서 마음의 여유를 엿볼 수 있다.

창랑의 물 맑거들랑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흐리거들랑 내 발을 씻음세나.

이것은 은자의 자리를 완전히 인정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내 자리는 내 자리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대로 하시오, 나는 또 나대로 하리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서로 말이 없었다.
서로 이해하고 갈라진 것이다.
그 후에 그는 곧장 돌을 안고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예로부터 굴원의 죽음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그가 꼭 죽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굴원이 되어보지 않고는 판단하기 어렵다.

유하혜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보고도 “어느 임금은 내 임금이 아니냐” 하고 섬겼으며, “어느 백성은 내 백성이 아니냐” 하고 다스렸다.
백이숙제는 맑지만 좁고 변통이 없는 것 같고, 유하혜는 도량이 크고 세상을 건질 생각이 더 적극적인 것 같다.
마원은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백이숙제는 되려다 못 되더라도 걱정이 없지만, 유하혜는 되려다 못 되면 큰 일이다”라고 했다.

굴원의 「어부사」는 그가 죽음을 택한 심경을 잘 설명해주는 유명한 글이다.
저자는 굴원이 아니요, 후세에 굴원을 존경하는 다른 사람이 썼다는 설도 있다.
그 외에 많은 작품이 있으나 임금을 그리워하는 그의 작품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조국을 근심하는 「이소(離騷)」는 오늘날까지 불후의 명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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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도(五達道)와 삼달덕(三達德)
군자는 성(誠)을 귀히 여긴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천하의 달도(達道) 다섯에 그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셋이다.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夫婦), 형제(兄弟),

붕우(朋友)의 사귐 이 다섯은 천하의 달도(達道)요,
지(智), 인(仁), 용(勇) 이 셋은 천하의 달덕(達德)이니
이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이다. ●『중용』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군신관계는 국가와 사회조직의 기능과 조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자관계는 영원불변의 천륜이며, 나아가서 남의 부모와 남의 자식에게까지 확대 해석해야 한다.
부부관계도 남녀평등, 여성해방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형제관계도 사해동포주의로 비약시킬 수 있다.
붕우의 사귐은 모든 사회생활의 신의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인(仁)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이 오달도를 실현시키는 것은 삼달덕인 지(智), 인(仁), 용(勇)이 아니라 성(誠) 하나라는 것이다.

배우기를 좋아함은 지(智)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몸을 닦을 바를 알 것이요, 몸을 닦을 바를 알면 사람 다스릴 바를 알 것이요, 사람 다스릴 바를 알면 천하 국가 다스릴 바를 알 것이다. ●『중용』

지·인·용을 설명한 이 말은 호학(好學), 역행(力行), 무치(無恥)를 제시하고 있다.

아랫자리에 있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으리라.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는 도가 있으니 벗들에게 불신을 받으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리라.
벗들에게 믿음을 받는 데는 도가 있으니 어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벗들에게 불신을 받으리라.
어버이 마음에 들게 하는 데는 도가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 보아 진실하지 못하면 어버이 마음에 들지 못하리라.
자신을 진실하게 하는 데는 도가 있으니 선(善)에 밝지 못하면 자신을 진실하게 못 하리라. ●『중용』

이는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할 생활철학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친구에게도 신임을 받고, 친구의 신임을 받는 자가 윗사람에게도 신임을 받고 아랫사람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성(理性)을 하늘에서 받았다.
하늘에서 받은 성(性)은 선한 것이므로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이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고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며 도를 가르치는 것이 교(敎)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을 삼가고 두려워하라 했다.

성(誠)은 하늘의 도요
성(誠)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진실은 하늘의 도요, 진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사람이 진실해지려고 함으로써 천인합일을 이룬다.

성(誠)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요, 도(道)는 스스로 가는 길이다.
성은 사물의 처음이요 끝이니 성이 있지 않으면 사물은 없다.
그런고로 군자는 성을 귀히 여긴다.

誠者 物之始終 不誠 無物 是故 君子 誠之爲貴 ●『중용』

동양사상에서는 인격적인 신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성(誠), 즉 진실함을 만물의 생성 본체로 삼았다.
그리고 지성(至誠)은 여신(如神)이라고 하여 지극한 진실함은 신과 같다고 했다.
성은 사물의 처음이요 끝이라고 했으니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한 말과 같다.
성(誠)은 말씀 언(言) 변에 이룰 성(成), 즉 말씀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중용의 성은 기독교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씀과 비교가 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인 데 비해 유교의 하늘은 비인격적인 자연의 존재이다.
공자는 『논어』, 「양화」편에서 자공이 묻는 말에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래도 사시(四時)는 운행되고 만물은 생겨나지 않는가”라고 했다.
또 내세를 묻는 제자에게 “삶도 알지 못하는데 죽은 후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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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임화시(淸任和時)
조리 있게 시작하고 조리 있게 끝낸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위대하다. 성인의 도여! 양양(洋洋)히 만물을 발육케 하여 높고 크기가 하늘에 극했도다. 우우(優優)히 크기도 하다. 예의(禮儀) 3백과 위의(威儀) 3천이구나. 그 사람을 기다린 뒤에야 도는 행해지는 법, 그러기에 진실로 지덕(知德)이 아니면 지도(至道)는 이룩되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군자는 덕성을 높이며 학문을 길로 삼는 것이니 광대함에 이르되 정미(精微)함을 다하고, 고명을 극하되 중용을 길로 하고,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며 돈후(敦厚)히 함으로써 예를 존숭할 것이다.
이는 윗자리에 있어 교만하지 아니하고 아랫사람이 되어 배반하지 않아,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그 언론이 기용 받기에 족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엔 그 침묵이 용납되기에 족하나니, 시에 “이미 밝고 또 지혜로워 이로써 그 몸을 보존하는 도다[旣明且哲 以保其身]”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자신에게 뿌리내리고 나서 민중들에게 증험(證驗)하고, 삼황(三皇)에 상고해보아 그릇됨이 없고, 천지에 세워보아 배치되지 않고, 귀신에게 물어보아 의심이 없고, 백세 후의 성인을 기다려서도 의혹 받지 아니한다.
귀신에게 물어보아 의심이 없음은 천리(天理)를 앎이요, 백세 후의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받지 아니함은 인도(人道)를 앎이다. ●『중용』

여기서 성인은 훌륭한 정치를 하는 임금, 즉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과 같은 임금들을 말한다.
성인들의 도는 왕도사상으로 백성들을 인(仁)을 기본으로 다스리는 인도주의 정치사상이다.
성인을 기다린다는 것은 성왕(聖王)을 기다린다는 말로,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을 기다리는 메시아 사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군자는 덕성을 높이며 학문을 도로 삼으라고 했다.
윗자리에 있는 자는 교만하지 말아야 하고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중용에서 여러 번 나오는데 교만과 배반은 중용사상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교만한 천사가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다고 하듯이 교만은 죄의 핵심이다.
배반은 멸망의 길이며 회개하고 돌아와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도가 있을 때에는 언론이 기용되고, 도가 없을 때엔 침묵하고 예지로 그 몸을 보존하는 것이 군자의 소치이다.
여기서 명철보신(明哲保身) 사상은 잘못하면 현실도피로 오해받을 수 있으나 원래 명철이란 천하의 사리에 통달함으로써 재난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즉 공자의 가르침에서 수사선도(守死善道)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명철보신의 근본정신이다.

맹자는 말했다. 성인 중에서 백이는 청렴했고, 이윤은 사명감이 뛰어났고, 유하혜는 조화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성인 중에서 때를 잘 맞추어 일해나간 사람이다.
공자 같은 사람을 가리켜 집대성한 자라고 하는 것이다.
집대성했다는 것은 금속 소리를 울린 데다가 옥 소리를 떨쳐내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음악에서 각 음이 하모니를 이루는 것과 같이, 금속 소리를 울린다는 것은 처음에 조리 있게 시작하는 것을 말하고 옥 소리를 떨쳐낸다는 것은 조리 있게 끝낸다는 것이다.
조리 있게 시작하는 것은 지(智)가 할 일이고 조리 있게 끝맺는 것은 성인이 할 일이다.
공자를 가리켜 집대성한 사람이란 것은 오직 그만이 이 모든 것을 다 겸해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청임화시(淸任和時), 즉 청렴하고, 사명감 있고, 조화시키고, 때를 잘 맞추는 기질을 겸비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만이 집대성한 분이란 말이다.

한번은 공자가 악당들에게 포위되어 죽게 되었다.
제자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공자는 태연하게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러 동행하던 제자들을 위로했다.
제자들이 놀라서 선생님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공자는 “하늘이 문왕 후 5백 년 만에 처음으로 문(文)을 지니고 있는데 나의 생명을 끊어버릴 이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참으로 사명감이 강하고 신앙이 깊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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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임화시(淸任和時)
조리 있게 시작하고 조리 있게 끝낸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중용은 사서(四書) 중의 하나로, 저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이다.
그가 공자의 중용사상을 정리해서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내용은 「도와 중용」, 「군자와 중용」, 「도론(道論)」, 「성(誠)과 정치」, 「성인(聖人)과 지성(至誠)」 등 다섯 편으로 되어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중용의 힘은 지극히 높고 지극히 선함인저! 이를 행하는 자 예부터 매우 적으니라”고 했다.
중용은 성선설(性善說)에 입각하여 하늘과 인간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 근본이념이다.

하늘이 주신 것이 성(性)이요,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요, 도를 마름하는 것이 교(敎)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을 삼가고 두려워하나니, 숨긴 것보다 더 드러나는 곳은 없고, 미세(微細)한 일보다 더 뚜렷해지는 일은 없다.
때문에 군자는 그 내오(內奧, 깊숙한 마음속)를 삼가야 한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발(發)하지 않는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발해서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대본(大本)이요, 화는 천하의 달도(達道)이다.
중화(中和)의 덕을 극진하게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지키며 만물을 길러낸다.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움은 인간의 정서이다.
인간의 정서를 잘 중화시켜서 화를 이루는 것이 중용의 철학이다.
중화사상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의 조화, 천지의 조화로 우주의 생성원리가 된다.

중용은 동양사상의 극치

중용은 유교의 중심사상이다.
중용은 중도(中道)를 말하며, 중화(中和)의 도이다.
중은 치우침도 없고,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다.
중용의 덕은 지극히 높고 지극히 선한 덕이다.
중용은 영어로는 The mean 혹은 Golden mean으로 번역된다.
중국의 임어당(林語堂)은 중용을 ‘Half and half’의 철학이라고 했는데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다.
이 중용사상은 유교, 불교, 도교 이 세 종교를 마찰 없이 조화시켜서 왕도사상의 정치이념이 되었고, 봉건시대에는 귀족과 평민의 갈등, 군신간의 갈등을 중화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까치가 집 지으면 비둘기 가서 사네.
아가씨 시집올 땐, 수레 백 채 마중하네.

까치집 지으면 비둘기가 같이 사네.
아가씨 시집올 땐, 백 량의 수레 배웅하네.

까치가 집 지으면 비둘기 가득 차네.
아가씨 시집올 땐, 백 량의 수레 따라오네.
●『시경』, 「소남」편

수레 백량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귀족계급을 소재로 한 듯하나, “까치집 지으면 비둘기가 같이 사네”라고 세 번 반복한 것은 귀족과 민중이 갈등 속에서도 화목하게 산다고 하는 중용의 도를 노래했다.
이 중용사상은 동양사상의 극치라고 할 것이다.

유교와 도교를 중화시킨 중용

중용사상은 유가의 보수사상과 노장의 혁신적인 냉소주의를 중화시키는 논리적인 사상으로 양극단을 조화시켰다.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유·불·도, 이 세 종교가 민중 속에서 아무런 갈등 없이 공존해 왔다는 것은 중용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동양인들의 자랑이다.
명나라 시인 이밀암(李蜜岩)은 중용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중용가(中庸歌)

세상만사는 중용이 제일
살아온 인생을 통해 그 맛을 보니 참으로 이상도 하다.
이 ‘중용’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네.
이 중용의 기쁨보다 더한 기쁨 어디 있으리.
인생의 자미(滋味)는 중용이 제일
서둘지 않고 덤비지 않으니 마음도 편하네.
하늘과 땅 사이는 넓은 것, 도시와 시골의 중간에 살며
산과 내 사이에 농토를 갖네.

알맞은 선배 알맞은 지주 일 절반 놀음 절반
친척 간에도 알맞게 대하네.
집은 좋지 않고 나쁘지도 않고 치장이 절반 그대로가 절반
헌 옷도 아니고 새 옷도 아니고, 먹고 마시는 것도 알맞은 것.

부리는 하인은 바보와 영리함의 중간,
아내의 머리도 알맞은 정도
그러고 보면 나는 반은 부처요 반은 노자 정도
이 몸의 절반은 하늘로 돌리고 나머지는
속세에 남겨 자식의 일도 잊지 않지만
죽어서 염라대왕께 아뢸 말씀 이럴까 저럴까 생각도 절반.

술도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하고,
꽃도 볼품은 반쯤 피어 있을 때가 제일
돛단배도 돛을 절반 올렸을 때가 안전,
말고삐도 반완 반급이 제일
재물이 지나치면 조심이 생기고,
가난하면 둔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
세상은 달고도 쓴 것이라고 깨달으면
단맛 쓴맛이 합쳐진 반 맛이야말로 그 중 제일이라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중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에는 자연주의보다 훨씬 위대한 철학이 있다.
그것은 휴머니즘, 즉 인간주의 철학이다.
중국사상의 최고 이상은 자기의 타고난 천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사회와 인간생활로부터 도피할 필요가 없다는 인생관이다.
인간세계로부터 도피하여 산 속에서 홀로 사는 은자는 아직도 환경에 좌우되는 인류의 은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은(大隱)은 시중에 숨는다.
왜냐하면 위대한 은자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거나 독립하여 안주할 힘을 갖추었으므로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거리로 돌아와서 백성과 같이 먹고 마시며 사귀고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고승(高僧)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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