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의 어부사(漁父辭)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굴원이 이미 내침을 받으매 강담(江潭)에 놀아
못가를 걸으며 읊조리니 낯빛이 바짝 마르고
모양이 마른 나무처럼 시들었더라.
고기잡이 늙은이가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이르렀는고.
굴원이 가로되, 온 세상이 다 흐렸는데 나 홀로 맑았고
뭇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었노라.
이러므로 내침을 받았노라.
고기잡이 늙은이 가로되, 어진 이는 무엇에나
엉키고 걸림이 없어 세상과 더불어
잘 어울려 옮겨가는 것이라.
온 세상이 흐렸거든 어찌하여 그 진흙을 휘저으며
그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고.
굴원이 가로되, 나는 들으니 새로 머리를 감은 이는
반드시 감투를 튕겨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이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 하니
어찌 내 몸의 깨끗함을 가지고
남의 얼룩진 것을 받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소상 강에 나아가 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또 어찌 참아 희고도 흼을 가지고
더러운 세상의 티끌을 무릅쓸 수 있겠는가.
고기잡이 늙은이 빙긋이 웃고 배 삼1을 처
떠나가면서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 맑거들랑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흐리거들랑 내 발을 씻음세나.
드디어 가 버린 다음 서로 다시 말이 없더라.
●굴원, 「어부사」
주> 1 삼: 뱃바닥에 댄 널
굴원은 기원전 3세기 초(楚) 회 왕 때 사람이다.
왕족으로서 문장이 능했고, 왕의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三閭大夫)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정치에 밝았으며 마음이 곧고 학문을 좋아했다.
그는 우국시인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많은 작품을 남긴 그가 중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이백과 두보에 버금갈 만큼이라고 한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굴원의 지조를 높이 평했다.
“진흙 속에서 씻어 진흙을 벗어나고, 먼지 바깥에 유리하여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진흙 속에서 결백을 지녔다. 굴원의 지조를 살펴보면 일월(日月)과 빛을 다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회 왕은 굴원을 신임하여 모든 정사를 의논했으나 간신의 모략으로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
굴원은 슬프고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돌을 안고 멱라수에 빠져죽었다.
이 글은 자신의 심경을 그린 것이다.
짤막한 글이지만 그 안에는 곧고 깨끗하게 충성을 다해서 나라를 생각하던 굴원이 왜 죽을 결심을 했는지, 그 심경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결백을 주장한다.
진흙 속에서 참혹했던 자기 처지를 의식한 굴원은 아픈 마음으로 강가를 헤매다가 강물에 비치는 자기 얼굴을 보고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나’를 생각한 것이다.
임금이 자기의 욕심 없는 충성심을 몰라줄 때 ‘그분이 어찌 내 마음을 몰라줄까’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그는 이 억울함을 초월해야 했다.
‘나는 이 나라의 신임을 받았던 삼려대부가 아니었던가?’
그는 강가를 거닐면서 자문자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굴원은 결백한 사람이었다.
온 세상이 다 흐렸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다.
다시 말해서 사회는 부패했고 공의(公議)는 땅에 떨어졌다.
그는 결백해서 결코 비겁하게 부귀나 권력에 굴해 타협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반성해본다.
흐리면서도 흐리지 않는 것이 강물이듯이 취한 세상에서도 취하지 않는 것이 성자의 길이 아니냐고 생각해본다.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 쓰고 옷을 흔들어서 입는다.
이것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는 ‘차라리 죽더라도 깨끗한 편을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마지막에 고기잡이 늙은이가 빙긋이 웃었다는 것은 굴원이 그의 이성과 감정에 호소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을 얻은 증거일 것이다.
여기서 고기잡이 늙은이는 속세를 초월한 굴원 자신이다.
그리고 배 삼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떠나는 데서 마음의 여유를 엿볼 수 있다.
창랑의 물 맑거들랑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흐리거들랑 내 발을 씻음세나.
이것은 은자의 자리를 완전히 인정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내 자리는 내 자리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대로 하시오, 나는 또 나대로 하리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서로 말이 없었다.
서로 이해하고 갈라진 것이다.
그 후에 그는 곧장 돌을 안고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예로부터 굴원의 죽음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그가 꼭 죽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굴원이 되어보지 않고는 판단하기 어렵다.
유하혜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보고도 “어느 임금은 내 임금이 아니냐” 하고 섬겼으며, “어느 백성은 내 백성이 아니냐” 하고 다스렸다.
백이숙제는 맑지만 좁고 변통이 없는 것 같고, 유하혜는 도량이 크고 세상을 건질 생각이 더 적극적인 것 같다.
마원은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백이숙제는 되려다 못 되더라도 걱정이 없지만, 유하혜는 되려다 못 되면 큰 일이다”라고 했다.
굴원의 「어부사」는 그가 죽음을 택한 심경을 잘 설명해주는 유명한 글이다.
저자는 굴원이 아니요, 후세에 굴원을 존경하는 다른 사람이 썼다는 설도 있다.
그 외에 많은 작품이 있으나 임금을 그리워하는 그의 작품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조국을 근심하는 「이소(離騷)」는 오늘날까지 불후의 명작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