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Wedding dress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비교적 최근까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젊은 여성들에게 결혼 전의 행실이 순결했음을 선언하는 수단이었다.
하얀 드레스는 순결한 처녀로 결혼식에 이른 여성에 대한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칭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칭찬이 의미가 없을 만큼, 도덕이 땅에 떨어졌지만 하얀 드레스의 사회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
웨딩드레스의 흰 빛은 신부가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소녀라는 것이 아니라 순결하고 청초하고 희생적인 백합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젊은 여성이 옛날부터 항상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것은 아니다.
이 유행은 18세기 말 이후에야 출현한 현상으로, 이것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세기에 이르러 개혁적인 프로테스탄트와 반개혁적인 가톨릭의 두 고전적 가치체계가 결합하여 이른바 ‘부르주아적 가치관’ ― 기묘한 가치관의 탄생이지만 ― 이 탄생했을 때부터였다.
이 풍습이 비교적 늦게 침투한 농촌사회를 포함해서 모든 사회계급에게 널리 확산되었다 하더라도,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는 여전히 부르주아적 가치관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옛날 농촌지역에서는 몇 세기 동안 흰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빨간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흰색은 확실히 순결과 처녀성의 상징이었다(이것은 성경적 문화와 일반적인 고대인의 감각에 기인한다).
그러나 결혼식 날 젊은 신부는 자신이 처녀임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가장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장 예쁜 웨딩드레스라는 것이 염료와 염색의 기술의 한계 때문에 대부분 빨간색이었다.
사실 19세기까지 염색공장에서는 대부분 식물성 염료를 사용했는데, 직물의 섬유 속에까지 색을 침투시키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래서 그 색이 ‘선명한 염색’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이다.
물(비와 세탁), 공기, 태양광선의 작용 때문에 곧 퇴색되었다.
그래서 서유럽 농민은 오랫동안 색이 흐리고, 낡고, ‘누렇게 바랜’ 옷을 입어야 했다. 파랑, 녹색, 노랑, 검정, 하양, 갈색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빨강만은 달랐다. 당시는 대청28에서 추출한 염료(파랑), 물푸레나무 또는 금작화에서 추출한 염료(노랑), 쐐기풀과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염료(녹색), 호두나무에서 추출한 염료(검정), 오리나무에서 추출한 염료(회색) 등으로 다양한 색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빨강 색조 중에서 꼭두서니 ― 키가 큰 풀로 그 뿌리에서 추출한 염료는 상고시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 로 물들인 빨강만은 위에 열거한 염료로 얻어진 색보다 몇 배나 결과가 좋았다.
가장 초보적인 매염제(주석산, 오줌, 식초)를 포함하여 동일한 매염제와 동일한 기술을 사용했어도 다른 어떤 식물성 염료보다 깊이 침투했다.
그리고 물, 공기, 빛에 대한 저항성도 강했다. 이것이 농촌에서 잘 차려입은 여성의 옷이 대부분 빨간색이었던 이유이다.
가장 색이 진하고 선명하고 안정된 색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빨강은 항상 축제와 쾌락과 기쁨의 색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신부라고 하면 으레 빨간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것이 다음에는 빨강과 흰색이 함께 사용되다가, 그 후에는 흰색만이 사용되었다. 오늘날 결혼율은 옛날에 비해 낮아졌다.
그러나 지금도 결혼한다고 하면 여전히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으려고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처녀가 드물어진 지금은 옛날처럼 신부가 처녀임을 공표하기 위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은 아니다.
단지 1세기 반 동안 흰색이 전형적인 결혼의 색이 된 것뿐이다.
⊙ 「빨강」, 「아기」, 「약」, 「이불보」, 「속옷」, 「하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