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추방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 중에서


아담과 이브는 원래 한 몸에서 창조되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진흙으로 아담을 빚어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 숨을 쉬는 사람으로 만들고서 에덴동산으로 데려가 살게 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르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21~5)

성서에서는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동물로 뱀을 꼽는다.
하루는 뱀이 이브에게 “하나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고 묻자 이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고 응답했다.
그러자 뱀이 이브를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거니와 그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이브는 뱀의 꾀임에 빠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세기 3:7)
아담과 이브는 죄를 통해 서로에게 성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면서 그 두 사람에게 원죄에 대한 벌을 내렸다.
이브에게는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하고 벌하고서 아담에게도 벌을 내렸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게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7~9)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는 이제 일시적인 삶을 살게 되는 운명에 처해졌고 미켈란젤로는 두 사람이 죽음이 기다리는 삶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을 묘사했다.
과거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원죄를 받고 서 있는 모습으로만 묘사했지만 미켈란젤로는 화면 중앙에 나무를 그리고 새로운 구성을 시도했다.
이브는 로마인처럼 게으른 모습으로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누워 있다.
서 있는 아담은 이브를 넘어 나뭇가지 쪽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동작은 잘 이해되지 않고 팔다리의 부위도 명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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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야트족Burjat의 성무의례

 

부르야트족의 성무의례가 가장 복잡합니다.
처음으로 접신을 체험(접신몽, 환상, 영신들과의 대화 등)한 뒤에 입문자는 독거하면서 자신을 무당으로 세울 준비를 합니다.
이 동안에 입문자는 늙은 스승 무당, 특히 ‘신 아버지’로 불리는, 장차 자기 입문의례의 집행자가 될 무당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또한 그는 굿을 하기도 하고 신들이나 영신들을 부르기도 하며 무업의 비의를 배우기도 합니다.
부르야트족의 경우에도 무당 후보자는 공개행사에서 자기의 무력을 선보인 다음 비의의 계시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스승으로부터 직접 성별을 받습니다.

성별의 날짜가 정해지면 재계의식齋戒儀式(purification ceremony)이 치러집니다.
이 재계의식은 이론상 세 번에서 아홉 번 치러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두 번만 치러집니다.
‘신 아버지’와, ‘신 아들’로 불리는 젊은이 아홉이 3개의 우물에서 물을 긷고는, 우물의 영신들에게 타라순tarasun(보드카)을 제주祭酒로 바칩니다.
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어린 자작나무를 뽑아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물을 끓이되, 이 물을 정화하기 위해 야생 백리향과 노간주나무와 소나무 껍질 그리고 숫염소의 귀에서 잘라낸 털 몇 올을 솥에다 넣고 끓입니다.
이어서 이들은 이 숫염소를 잡아 피 몇 방울을 솥에다 떨어뜨리고는, 고기는 여자들에게 내주어 요리하게 합니다.
‘신 아버지’는 양의 견갑골로 점을 친 뒤, 후보자의 조상 무당들을 불러 타라순을 바칩니다.
헌주가 끝나면 ‘신 아버지’는 자작나무 잔가지로 만든 빗자루를 솥에다 담그고 후보자의 맨등에다 손을 올립니다.
‘신 아들들’이 이런 의례적인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신 아버지’는 무당 후보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너의 도움을 바라거든 도움을 베풀되 사례는 적게 청하고, 주는 것을 받는 데 만족해라. 늘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되 이들을 악령으로부터 지켜주시도록 이들을 보호해주시도록 신께 빌어라. 부자가 너를 부르는 일이 있으면 이들을 도와주되 너무 많은 사례를 요구하지 말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동시에 너를 부르거든 가난한 사람을 먼저 찾아본 연후에 부자를 찾아보도록 해라.”

무당 후보자는 이 말에 따를 것을 서약하고 스승이 선창하는 기도문을 되받아 읊습니다.
재계齋戒에 이어 수호영신들에 대한 신주神酒 타라순의 헌작獻爵(술잔을 올림)이 있으면 이 준비 제의는 끝납니다.
물에 의한 이런 재계는 매월 초승달이 뜰 때마다 한 번씩 해야 합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도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치러야 합니다.
이에 덧붙여 무당은 부정을 탔다고 여겨질 때마다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재계해야 합니다.
그 부정의 정도가 심한 때는 재계하되 피로써 해야 합니다.

이 입문의식을 치른 뒤에는 최초의 성별의식이 있습니다.
이 의식에 드는 경비는 공동체가 분담합니다.
준비과정에서 무당과 무당의 보조자들인 ‘신 아들들’은 제물을 걷습니다.
말을 타고 마을들을 다니면서 제물을 걷습니다.
이들이 제물로 걷는 것은 머릿수건이나 댕기일 경우가 보통이나 돈을 제물로 걷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습니다.
나무잔, 마장용馬杖(horse stick)用 방울, 비단, 술 등 필요한 물건을 걷습니다.
러시아 발라간스크 지역의 경우 무당 후보자와 ‘신 아버지’ 그리고 이 신 아버지의 아홉 ‘신 아들들’은 천막으로 들어가 아흐레 동안 금식합니다.
금식기간 동안 이들은 차와 밀가루죽밖에 입에 대지 않습니다.
천막 주위로는 말총을 꼬아 만든 금줄이 세 겹으로 내걸립니다.
이 금줄에는 동물의 생가죽이 꿰어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입문의례를 여러 차례 치른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입문의례는 첫 번째 입문의례를 치른 지 각각 3년 그리고 6년 뒤에 베풀어집니다.
이런 무속의 제의에서 자작나무는 우주수宇宙樹 혹은 세계의 축軸, 따라서 세계의 중심을 점유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형이 다른 입문의례에서도 나무나 기둥에 오르는 절차는 대단히 중요한 몫을 하며, 이런 절차는 천계상승이라는 신화적, 제의적 테마의 변형입니다.
이와 같은 상승의 상징체계는 자작나무를 연결하고 여러 가지 색깔의 댕기(무지개의 색층, 서로 다른 천상계 지역들)가 걸린 끈(다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 지역과 알타이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이런 신화적 테마와 제의는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나타나므로 이 지역 문화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부르야트족의 입문의례에는 미트라교Mithra(페르시아 신화에서 미트라는 빛, 진리의 신이었으며, 후에 태양신이 되었습니다.
미트라교는 미트라를 숭배하는 종교로 기원전 3세기에 페르시아에서 생겨나 소아시아, 로마제국 등지에서 성행)의 비의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부르야트족의 입문의례에서 무당 후보자는 염소의 피로써 재계를 받는데, 이 염소가 바로 이 무당 후보자의 머리 위에서 도살되는 수도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무당 후보자가 희생된 짐승의 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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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야트족의 무복


부르야트족 여무女巫는 끝에 말머리가 새겨져 있고 방울로 테를 두른 지팡이 두 개를 가지고 다닙니다.
어깨에는 검은색과 흰색 가죽으로 만든 서른 마리의 뱀이 땅에 닿을 듯이 늘어져 있습니다.
여무女巫의 모자에는 쇠로 만든 세 개의 투구 뿔이 솟아 있는데, 그 모양은 사슴의 뿔과 비슷합니다.
부르야트족 무당에게는 다음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모피가 있어야 합니다.
선한 영신들을 몸주主(몸에 처음 내린 신으로 무당은 그 신을 주신主神으로 모심)로 섬기는 ‘백’ 무당에게는 흰 모피, 악령을 몸주로 섬기는 무당에게는 검은 모피가 있어야 합니다.
이 모피에는 말, 새 등의 동물 모양을 본뜬 많은 쇠붙이 장식이 꿰매져 있습니다.
둘째, 살쾡이 모양의 모자도 있어야 합니다.
입문의식入門儀式을 치른 지 며칠 뒤에 있게 되는 다섯 번째의 재계의식이 끝나면 무당은 쇠로 된 두 개의 투구 뿔을 받아 모자에 꽂습니다.
꼬부라진 두 개의 투구 뿔은 두 개의 뿔을 상징합니다.
셋째, 나무나 쇠로 된 마장馬杖(horse stick)도 있어야 합니다.
나무로 된 마장은 첫 번째 통과의례를 치른 날 밤에 준비되는데, 이 마장을 준비한 사람들은 이 마장을 잘라낸 자작나무가 죽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쇠로 된 마장은 다섯 번째 통과의례를 치른 다음에야 받게 되며, 이 마장의 한쪽 끝에는 말머리가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많은 방울이 달려 있습니다.

머리 위로 솟는 둥근 부분에 많은 쇠테가 감긴 쇠모자에 두 개의 뿔을 만들어 세웁니다.
뿔 뒤에는 고리가 아홉 개인 쇠사슬이 있습니다.
아래쪽으로 맨 끝에는 창날 같은 쇠붙이가 매달리는데, 이 쇠붙이는 등뼈nigurasun(척추골이란 뜻이다)라고 불립니다.
이 모자의 양쪽, 그러니까 관자놀이와 만나는 부분에는 하나의 쇠고리와 길이가 4.445cm(1베르쇼크)인 세 개의 쇠막대기가 매달려 있습니다.
주조과정에서 서로 꼬이게 만들어진 이 장식물은 쿠올부가스qolbugas(짝으로 혹은 쌍으로 결합하다로 띠, 매듭, 유대라는 뜻)로 불립니다.
사냥 동물과 가축의 색깔과 같은, 색색의 비단, 무명, 모직, 벨벳을 꼬아서 만든 뱀 모양의 타래를 모자 양옆과 뒤에 늘어뜨립니다.
그러고는 쾨뤼네körüne, 다람쥐, 노란 족제비 털 색깔의 무명천 조각도 여기에 늘어뜨립니다.
이 머리장식은 덮개maiqabci로 불립니다.

폭 30cm 정도 되는 무명천 조각을 옷깃에 붙입니다.
이 천 조각에는 갖가지 뱀 모양과 사냥 동물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것이 날개dalabci 혹은 지느러미ziber입니다.

길이가 2.4m 정도 되는 두 개의 목발 모양의 장대의 거칠게 다듬어진 위쪽은 말머리 모양으로 깎입니다.
말馬의 목에 해당되는 부분에 세 개의 쿠올부가스가 달린 쇠고리가 꿰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말갈기라고 부릅니다.
장대 아래쪽에도 비슷한 쿠올부가스 고리가 달립니다.
이것은 말꼬리입니다.
이 나무의 앞면에도 쿠올부가스 고리 하나와, 조그맣게 축소하여 쇠로 만든 등자, 창, 칼, 도끼, 철퇴, 배, 노, 작살 같은 것들이 박힙니다.
이 아래로는 또 세 개의 쿠올부가스 고리가 붙습니다.
이 네 개의 쿠올부가스 고리는 말의 다리로 불립니다.
이 두 개의 장대는 소르비sorbi라고 합니다.

수콰이suqai라고 불리는 채찍도 만들어집니다.
여느 채찍 위에다 사향-들쥐 가죽으로 여덟 겹 싸고 세 개의 쿠올부가스가 달린 쇠고리를 끼운 뒤, 축소 모형으로 만든 철퇴, 칼, 창, 뾰족뾰족한 돌기가 있는 몽둥이를 달고 무명과 비단 끈으로 묶은 채찍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살아 있는 것’을 다스리는 채찍이라고 부릅니다.
무당인 뵈게böge는 굿을 할 때마다 하나의 소르비와 이 채찍을 손에 듭니다.
천막 안에서 굿을 할 때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쓰기도 합니다.

특기할 점은 부르야트족 무당이 말馬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이는 중앙 그리고 북아시아 샤머니즘의 특징입니다.
이들이 말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말이 무당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풍습은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올혼스크Olkhonsk 지역의 부르야트족에게는 앞에 언급한 무구巫具 외에도 무고巫鼓, 마장馬杖(horse stick), 모피毛皮, 방울 등의 주물呪物을 넣는 상자가 있습니다.
이 상자에는 해와 달 그림이 장식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부르야트족 무당에게는 무구가 두 가지 더 있는데, 가죽이나 나무 혹은 쇠로 만들고 그 위에다 수염을 잔뜩 그려 넣은 무시무시한 가면인 아바갈데이abagaldei와 열두 가지 동물 모양이 그려진 금속제 거울인 톨리toli가 그것입니다.
무당은 톨리를 가슴이나 등에 매달고 다니거나 카프탄caftan(터키인이 입는 셔츠 모양의 기다란 상의)에 붙여 가지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무구는 사용되지 않은 지 오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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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본문에서 다룬 사자의 성질에 관한 내용은 고전 문헌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아엘리아누스·플리니우스·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사자에 관한 기록과 좋은 비교를 이룬다.
그러나 직접 내용을 빌려왔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다른 동물들이 가진 습성을 사자의 성질로 바꾸어 설명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즉 자신의 꼬리를 휘저어서 발자국을 지우는 여우의 습성이나, 눈을 뜨고 잠자는 토끼의 습성, 그리고 새끼를 혀로 핥아서 깨우는 곰의 습성을 사자에게 모은 것으로 보인다.

1 창세기 49: 9
라틴 성서의 “Catulus leonis Iuda a praeda fili mi ascendisti requiescens accubuisti ut leo et quasi leaena quis suscitabit eum”은

“유다는 사자의 새끼다.
내 아들아, 너는 먹이를 올라탔구나.
너는 수사자처럼, 그리고 암사자처럼 길게 누워서 쉬고 있구나.
그러니 누가 그를 건드릴 수 있으랴”라고 옮길 수 있다.

2 요한묵시록 5: 5
그러나 원로들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였으니 그분이 이 일곱 봉인을 떼시고 두루마리를 펴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3 요한 1: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4 시편 24: 8-10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야훼이시다.
싸움터에서 그 용맹 떨치신 야훼이시다.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왕께서 드신다.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영광의 왕은 만군의 야훼 그분이시다.

5 아가 5: 2

6 마태오 26: 64
예수께서는 그에게 “그것은 너의 말이다” 하시고는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또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 22: 69
“사람의 아들은 이제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7: 55
이 때 스데파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7 시편 121: 4

8 골로사이 1: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9 창세기 49: 9
라틴 성서의 “Quis suscitabit eum,” 곧 “누가 그를 건드릴 수 있으랴”는 공동번역에서 누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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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마뱀이 뱀처럼 청춘을 회복하는 성질이 있다고 기록한다.
시력을 회복할 뿐 아니라, 에페소 4 : 22와 골로사이 3 : 9의 기록을 인용함으로써 구태를 벗는다는 내용을 덧붙인 것도 도마뱀과 뱀의 유사한 성질을 가리킨 것이다.
본문 제11장 ‘뱀’과 비교해서 읽는 것이 좋다.

1 에페소 4: 22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골로사이 3: 9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렸고

2 말라기 3: 20
너희에게는 승리의 태양이 비쳐와 너희의 병을 고쳐 주리라.

3 즈가리야 6: 12
공동번역에서 “이 사람을 보라.
그 이름은 새싹이니, 이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새싹이 돋으리라”로 옮겼으나, 라틴 성서의 “ Ecce vir Oriens nomen eius et subter eum orietur”를 바로 옮기면 “보라, 그의 이름은 떠오르는 사람이니, 그의 휘하에서-만물이-떠오를 것이다”라는 뜻이다.

민수기 24: 17
공동번역에서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는 라틴 성서의 “Orietur stella ex Iacob,” 즉 “야곱에게서 한 별이 떠오를 것이다”를 옮긴 것이다.

루가 1: 78
공동번역에서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로 옮겼으나, 라틴 성서의 “ Visitavit nos Oriens ex alto illuminare”는 “우리의 떠오르시는 분이 높은 곳에서 빛을 뿌리는 것을 보았다”라고 옮길 수 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떠오른다’라는 뜻으로 풀이한 것은 ‘Oriens’를 옮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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