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병연수육자결去病延壽六字訣이란 무엇입니까?

 

 

 

음강陰康에 의해 창안된 여섯 글자씩으로 된 호흡법이다.

 

첫째, 눈을 감고 마음을 고요히 한 다음, 주먹을 굳게 쥐고 정좌靜坐하여 이齒를 서른여섯 번 딱딱 마주친다. 아울러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머리의 뒤를 가운데 손가락으로 무수히 튀긴다. 그런 연후에 숨 쉬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도록 심호흡을 한다.

 

둘째, 손바닥으로 두 귀를 막고 집게손가락을 가운뎃손가락 위에 얹어서 후두부를 두드린다. 연속동작으로 머리를 흔들고 두 손으로 양쪽 어깨를 두드린다. 또한, 혀로 입천장을 문질러서 침을 내어 세 번에 나누어 삼키고, 다시 심호흡을 하여 천천히 침을 뱉는다.

 

셋째, 두 손으로 허리를 무수히 문질러서 열이 나게 한 뒤, 두 손으로 허리를 힘주어 잡고 심호흡을 하면서 한참 동안 숨을 죽이면 심화心火(답답한 기운)가 단전丹田으로 내려간다. 계속해서 머리를 구부리고 두 어깨를 무수히 흔들면 심화가 다시 단전에서 뇌로 올라간다. 이때 다시 심호흡하면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손을 깍지 끼어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여 굴신을 세 번에서 아홉 번까지 한다.

 

넷째, 머리를 굽히며 발바닥을 열두 번 끌어당겼다 폈다 한 뒤, 발을 모아 단좌端坐(단정히 앉음)하고 잇몸을 서른여섯 번 혀로 마찰하여 생긴 침을 세 번에 나누어 삼키는 동작을 아홉 번 계속한다. 이때 침은 체내에 흘러내려가 모든 맥을 고르게 한다. 또한, 어깨를 자주 젖혀 몸을 바로잡고 양 허리를 스물네 번 마찰하면 전신이 뜨겁게 느껴질 것이다.

 

도인법을 실시할 때는 항상 단전에 심화가 내려갔다가 척추를 통하여 위로 올라온다는 상념을 가지되, 숨을 멈추고 행해야 한다. 도인법을 실시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잠이 잘 오며 추위와 더위를 타지 않고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 등의 효과를 얻는다. 자시子時(오후 11시-오전 1시)에서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에 이르는 동안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모든 일이 순조롭고, 팔괘의 이치를 따라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게 된다.

도인법의 실시는 갑자일 밤중인 자시에 일어나서 시작하는데, 먼저 입안의 기가 나가지 않도록 코로 조용히 숨을 쉬면서 행한다. 아울러 도인법은 자시 이후부터 오시 전에 한 번씩 행하거나 혹은 밤과 낮 각각 세 번씩 행하는데, 오래 계속하면 질병이 없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인법은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꾸준히 실행하면 곧 선도仙道에 이를 수 있다.

도인법은 위에서 기술한 방법 외에 인체의 각 조직이나 기관을 튼튼하게 양생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먼저 오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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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그룹 페가소스를 칭찬하다

 

 

 

어제는 지인들과 홍대 앞, 그러니까 산울림 극장에서 연세대학 쪽으로 조금 가다가 왼쪽 지하 술집 서니에 갔습니다.

자주 가는 편에 속하는 술집입니다.

어제의 라이브 쇼는 다채로웠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온 여자 하나에 남자 셋의 페가소스Pegasos의 연주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페가소스Pegasos는 영어로 페가수스Pegasus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말의 이름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화석이 되어 버린다는 무서운 괴물 메두사의 목을 영웅 페르세우스가 베어 죽였습니다.

그때 메두사에게서 피가 흘러나왔는데, 피에서 페가소스가 생겨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신女神 아테나가 이 페가소스를 예술의 여신 무사Musa들에게 주었답니다.

무사들이 헬리콘 산에서 노래시합을 벌일 때, 페가소스가 대지를 걷어차자 그곳에서 샘이 솟아나와 히포크레네(말의 샘)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웅 벨레로폰이 괴물 키마이라를 퇴치한다는 약속을 했을 때 예언자의 권고로 페가소스를 찾아 자기의 말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암튼 범상치 않은 페가소스라는 이름으로 네 일본인 젊은이들은 혼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여자의 전자 바이올린 소리와 남자의 베이스 기타의 하모니가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네 사람 모두 호흡이 맞아 좋은 음악이 생성되었습니다.

페가소스 앞뒤로 한국인들의 연주가 있었지만, 페가소스에 비하면 무성의한 음악이었습니다.

내가 함께 간 지인들에게 한국인 연주자들을 이렇게 비평했습니다.

“연주자가 먼저 음악에 빠져야 청중도 함께 빠지지 연주자는 빠지지 않고 청중만 빠지라고 하면 청중은 눈치만 보고 절대 빠지지 않는다.”

실력으로 말하면 한국인 연주자들이 인본인 연주자들에 비해 못하지 않지만, 음악의 경우 연주자가 접신이라도 하듯 무아의 경지에서 연주를 하게 되면 청중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그 음악을 즐기게 됩니다.

어제 페가소스에게는 그런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에는 마음을 다하는 진심盡心이 있었으므로 감동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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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訓子五說(요통설曜通說)

 

 

 

훈자오설訓子五說이란 자식을 훈계한 다섯 가지 이야기로 도자설盜子說(도둑의 아들), 담사설膽巳說(뱀을 잡아먹음), 등산설登山說(높은 산에 오름), 삼치설三雉說(꿩을 잡는 이야기), 요통설曜通說(오줌통의 이야기)을 말한다.

요통설曜通說

시장 통의 후미진 곳에다 관가에서 오줌통을 설치해 두고는 시장 사람들이 급할 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는데, 선비로서 몰래 그곳에다 오줌을 누는 자는 볼결죄不潔罪를 받는다. 시장 근방에 사는 어떤 양반집에 변변치 못한 아들이 있었는데 몰래 그곳에 가서 오줌을 누었다. 그의 아버지가 알고 호되게 야단쳤으나 아들은 듣지 않고 늘 상 그곳에다 오줌을 누었다. 오줌통을 관리하는 자가 금지시키고자 했으나 그 아비의 위세에 눌려서 감히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온 시장 사람들이 모두 그르게 여기는데도 아들은 오히려 무슨 수나 난 것처럼 여겼다. 행신을 조심하느라 그곳에다 오줌을 누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도리어 그를 비웃으면서, “겁쟁이 같으니라구. 뭐가 겁난단 말인가. 나는 날마다 누어도 탈이 없는데, 뭐가 겁난 단 말인가” 하였다.

아버지가 그 행실을 듣고 아들을 꾸짖기를,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너는 양반집 자식으로 백주 대낮에 그곳에 오줌을 누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남들이 천하게 보고 싫어할 뿐만 아니라 화가 따를 지도 모르는데, 뭐 좋을 것이 있다고 그런 짓을 하느냐”고 하였다. 아들은, “저도 처음에는 그곳에다 오줌을 누는 선비를 보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했는데, 하루는 오줌이 몹시 마려워 그곳에다 오줌을 누어 보니 몹시 편하였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곳에다 오줌을 누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제가 그곳에다 오줌을 누는 것을 보고는 모두 비웃더니 차차 비웃는 자가 줄어들고 말리는 자도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여럿이 곁에서 보더라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곳에 오줌을 눈다 해서 체면이 깎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큰일이다. 네가 이미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말았구나. 처음에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던 것은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겨 네가 행실을 고치기를 바라서였던 것이다. 중간에 차츰 드물어지긴 했어도 그때까진 그래도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긴 것이다. 지금 곁에서 보고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너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아 라. 개나 돼지가 길바닥에 오줌을 싸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더냐. 못된 짓을 하는데 도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 것은 너를 개돼지로 보기 때문이다.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니냐”라고 하자, 아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고 아버님만 그르다고 하시는데, 대체로 소원疏遠한 자는 공정하고 친한 자는 사정을 두는 법입니다. 어째서 남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데 아버님께서는 오히려 저를 나무라신단 말입니까?”라고 하니, 아버지가, “공정하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 취급을 안 해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미가 너무도 참혹하지 않느냐. 사사로운 정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행여나 뉘우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롭지 않느냐. 네가 한번 생각해보라. 세상에 부모 없는 자에게는 훈계해주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아들이 나가서 남들에게 말하기를, “노인네가 잘 알지도 못하고 나만 나무란다”고 했는데, 얼마 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예전에 오줌 누던 곳에 가서 오줌을 누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바람이 일더니 누군가가 그의 이마를 후려쳤다. 한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후려친 자를 잡고 따지기를, “어떤 죽일 놈이 감히 이런 짓을 하느냐. 내가 여기에다 오줌 눈 지 10년이나 되었는데도 온 시장사람들이 아무소리 안했는데, 어떤 죽일 놈이 감히 이러느냐?”고 하니, 후려친 자가, “온 시장 사람들이 참고 있다가 이제 분풀이를 하는 것인데, 네놈이 아직도 주둥아리를 놀리는가” 하고는, 꽁꽁 묶어서 시장 한복판에 놓고는 돌을 마구 던졌다. 그 집에서 떠메고 돌아왔는데, 한 달이 넘도록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아들은 그 제서야 아버지의 훈계를 생각하고는 슬피 울면서 자신을 책하기를, “아버님 말씀이 꼭 맞았구나. 웃음 속에 칼날이 숨겨져 있고 성냄 속에 사랑이 담겼다 더니, 이제 와서 아무리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자 해도 들을 길이 없구나” 하면서, 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전의 못된 행실을 고치기로로 마음먹고 마침내 착한 선비 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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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법導引法이란 무엇입니까?

 

도가道家의 장생양생법長生養生法

 

 

 

당나라 때 왕빙王氷이 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의서醫書인『소문素問』(24권)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석침石鍼은 동방으로부터, 약물은 서방으로부터, 뜸은 북방으로부터, 침은 남방으로부터 각각 들어온 것이요, 도인은 중앙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문素問』은 황제黃帝와 명의名醫 기백岐伯의 문답 형식으로 음양오행, 침구鍼灸, 맥脈 따위에 관하여 쓴 책이다.

도안導引은 신선한 공기를 체내로 이끌어 넣는다는 뜻인데, 정좌正坐·마찰摩擦·호흡呼吸 등으로 행한다. 도인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국시대(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에는 이미 상당히 널리 행하여졌던 것 같다.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회남자淮南子』(21권)에는 “호흡에 의해서 오래된 기를 토해내고 새로운 기를 들이마시면서, 곰처럼 걷고, 새처럼 몸을 펴고, 오리처럼 목욕하고, 원숭이처럼 빨리 걷고, 올빼미처럼 응시하고, 호랑이처럼 뒤돌아본다”고 신체를 움직이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안이 빈객과 방술가方術家 수천을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 원래 내외편內外編과 잡록雜錄이 있었으나 내편 21권만이 전한다. 처음에 원도편原道編이라는 형이상학이 있으며, 그 뒤 천문·지리·시령時令 등 자연과학에 가까운 것도 포함하고, 일반 정치학에서 병학兵學, 개인의 처세훈處世訓까지 열기하고, 끝으로 요략要略으로 총 정리한 1편을 붙여서 복잡한 내용의 통일을 기하였다.

사상적 성격은 노장도가老莊道家와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유가·법가 등의 혼합으로 매우 복잡하며, 그 인식론은 정신·물질의 이원론二元論에서 관념적 도道의 일원론에 귀착한다는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중세의 재이미신災異迷信 사상의 계보에 이어져 있다. 또 그 정치론은 봉건통치를 위해 법을 절대화하고 군주를 통치권의 최고 독재자로 하는 극도의 중앙집권체제를 반영하고 있다.

1973년 말에는 호남성 장사시의 마왕퇴 3호 한묘에서 도인의 구체적인 연법을 44형 이상 도해한 백서가 출토되어, 진대부터 한대 초의 도인의 실재가 확실해졌다. 후한시대(25~220) 말경 의사로서 이름 높은 화타華陀(145~208)는 당시 성행하던 도인을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의 다섯 종의 형태로 정리해서 오금희五禽戱라 하였다. 이후, 오금희는 다양한 변화가 가해지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수당시대隋唐詩代까지의 도인법 중에는 팽조도인법彭租導引法, 노자도인법老子導引法, 천축안마법天竺按摩法, 바라문도인십이법婆羅門導引十二法, 화타오금지희華佗五禽之戱, 소씨도인법巢氏導引法 등이 의술가의 금과옥조로 전수되었다.

 

팽조도인법은 호흡법에 중점을 두고 여기에 안마법과 지체肢體 운동이 곁들여져 있다. 안마 및 운동으로서는 얼굴과 수족의 안마, 상지上肢의 굴신, 안면근顔面筋의 운동, 이를 두드리는 것, 침을 삼키는 것, 귀와 머리칼을 당기는 것 등을 들고 있다.

 

노자도인법은 42종류의 동작으로 되어 있다. 목 부분을 전후좌우로 돌리며 팔의 굴신屈伸, 옆으로 벌려 휘두르기, 몸을 옆으로 구부리기, 좌우로 비틀기, 전후로 구부리기, 몸과 다리 두드리기, 손가락이나 다리 안마 등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천축안마법은 상지上肢의 안마, 하지의 안마, 상지 운동, 구간軀幹 운동, 하지下肢 운동으로 구성된다.

 

화타오금지희는 호세虎勢•웅세熊勢•녹세鹿勢•원세猿勢•조세鳥勢 등 다섯 종류의 운동이 모두 호흡과 함께 하며, 상지의 수축, 좌우의 다리 두들기기, 가슴 운동, 몸 비틀기, 도약 운동, 상하지 운동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소씨도인법은 호흡법•안마법•운동의 3부로 되어 있다. 운동적인 요소는 적고 순전한 의료 체조로서 구성되어 있어 개개의 질병에 대한 도인적 처방을 밝히고 있다.

이들 도인법은 후대의 대륙제가大陸諸家의 의서나 양생서養生書에 수록되고 또는 보정되어 발전했다. 근세에는 유학儒學의 학리學理에 따라 팔단금좌공법八段錦坐功法, 진희이이십사기도인좌공법陳希夷二十四氣導引坐功法 등 새로운 도인법으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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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의 세 권위자와 서방세계의 세 가지 혼란

 

 

 

 

사이드 쿠틉이 쓴 책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진리를 향한 이정표』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여기서 그는 “병든 서방세계” 가 민주정치와 함께 와해되는 까닭을 진단했다. 서양은 “역사가 귀환” 하여 세계를 장악할 가상의 이슬람 세력으로 대체되어 무슬림의 영광이 도래할 거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상은 무슬림 문헌에서 대부분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쿠틉에 따르면 “서방세계에서… 인류는 분명히 벼랑 끝에 있다. 이미 그렇듯이, 민주정치가 붕괴된 이후… 서양인의 통치는 곧 와해될 전망이다. … 주요 가치관과 대안이 있는 것은 이슬람교뿐이며… 긴장이 극에 달한 시기인 바로 지금 이슬람교와 무슬림 공동체가 세상을 장악하게 될 것” 이라고 한다 이것이 알카라다위도 역설하는 이슬람교식 해결책이다.
이슬람주의의 창시자 중, 쿠틉에 버금가며 역량이 그와 동일한 인물인 인도계 무슬림 아부 알랄라 알마우두디는 훨씬 더 강력한 어조로 민주정치를 규탄했다. 무슬림 형제들에게 솔직히 말하건대, 민주정치는… 여러분이 종교와 교리로 포용하고 있는 이슬람교와는 대립되며, 여러분이 믿고,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규정해준 이슬람교는 이런 가증스런 제도[민주정치]와는 크게 다르다. … 민주정치 제도가 장악한 곳에는 이슬람교가 없고,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동시에 민주정치 제도가 양립하는 곳은 없다. 1966년, 쿠틉이 공개 처형되자, 그로부터 10년 후에 알마우두디가 세상을 떠났다. 쿠틉의 계승자로 널리 알려졌고 현존하는 이슬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인물로는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꼽을 수 있다. 알자지라 방송이 입지를 넓힌 결과, 그는 “세계적인 무프티” 로 불리기도 한다. 알카라다위는 1967년 6일전쟁에서 아랍이 참패한 이후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의 저작은 종교와 무관한 정권을 두고 법적인 권위가 실추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저서 『이슬람교식 해결책과 도입된 해결책al-Hall al-Islami wa al-hulul al-mustawradah』은 이슬람교의 가치관을 위해 서방세계의 가치관을 배격하는 삼부작 중 첫 번째다. 알카라다위는 판결(파트와)을 모두 공포하는데, 이는 영향력이 상당했다. (파트와란 바른 행위를 위한 가르침과 지침을 포함한 법적 판결을 일컫는다. 살만 루슈디에 사건 이후, 서방세계는 파트와를 사형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알카라다위는 민주정치를 비롯하여, 차용된 문화를 모두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 이라며 배격하고 조롱했다. 그의 판결 중 하나를 살펴보면, “진보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유럽에 기원을 두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 진보 민주주의 사상은 식민지를 통해 무슬림의 생활에 유입되었다. … 이 사상의 배후에는 종교가 정치 그리고 국가와 분리된다는 사악한 식민지적 개념이 어렴풋이 보인다” 고 한다. 그 이면에는 낯설지 않은 악역도 있다. “식민주의를 표방하는 십자군과 전 세계의 유대인은 이슬람교 안에서 혼돈 상태fitna(피트나)를 선동한 장본인이다.” 12 피트나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문자 그대로는 성적인 위험을 뜻하나, 무슬림은 비무슬림이 일으켜 무슬림이 휘말리게 된 격렬한 싸움(피트나 전쟁)을 가리킬 때도 피트나라 한다.
알카라다위에 따르면, 이슬람교는 “차용된 해결책의 대안으로 샤리아를 내놓았다” 고 한다. 이슬람식 샤리아국가는 “이슬람세계에서 실패한 진보 민주주의” 를 대체해야 하는데, 그 까닭은 민주정치가 “외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이슬람교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이 다 그렇듯, 알카라다위 또한 유럽에서 서양인과 대면할 때에는 그런 주장을 삼간다. 현지에서는 민주정치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니 서방세계가 이슬람주의를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정치적 이슬람교에서 명망 있는 세 권위자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추후의 논의도 필요 없이 이슬람주의가 민주정치와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왜4 장을 쓰고 있는 걸까? 증거는 분명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수의 서양 학자들은 민주정치— 서방세계가 듣기 좋은 대로 재단된— 를 두고 이슬람주의자들이 밝힌 엇갈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탓에, 결론도 천차만별이다. 이 같은 혼동의 주요 원인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간과한 데서 비롯된다. 종교적 윤리 체계이자 신앙의 원천인 이슬람교는 종교개혁의 의지가 결합된다면 얼마든지 민주정치와 양립할 수 있다. 코란에 기록된 “슈라shura” 는 아랍어로 “협의” 라는 뜻이다. 비록 민주정치란 뜻은 아니지만 오늘날, 근대화된 문화14라는 걸림돌을 해결하고, 민주정치를 이슬람교에 도입할 생각이라면 슈라는 민주정치 윤리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서방세계가 혼동하게 된 두 번째 요인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화의 보편성을 배격한 데 있다. 여기서 이슬람주의는 “다른 근대화” 의 일종으로, 민주주의와의 관계는 서방세계의 기대와는 다를 것이라는 입장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이슬람교가 권좌에 오르기 위해 투표함을 사용했다가 목적이 성취되면 즉시 민주정치의 원리를 헌신짝처럼 버리듯, 임시 변통에 불과한 것이다. 이슬람주의 조직체가 호소력을 얻고 그 이데올로기가 국민의 선택 사안으로 승격된다면 민주정치의 구색— 껍데기뿐인—을 이용해먹는 작태는 심심치 않게 벌어질 공산이 크다. 오늘날, 중동국가의 민주정치는 독재주의 정권이 아닌 이상 이슬람주의를 배제할 여건이 못된다. 그러나 이슬람주의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까닭에 민주주의 제도에 참여하는 이슬람주의는 딜레마를 일으키고 있다.
끝으로 이슬람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중동을 민주화하려는 미국 정책 입안자도 혼동의 원인이 된다. 그들은 역사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1980년대에 침략한 소련을 상대하던 아프간 이슬람주의 단체 무자히딘을 미국이 지원한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그것이 결국에는 탈레반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9・11테러 사태가 터지자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의 일환으로 탈레반 소탕작전을 펼쳐 지하드 테러를 지원한 혐의가 있는 무슬림을 모두 와해시켰으나 지하드운동을 막지는 못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을 권좌에 앉히게 된, “민주화 정책” 이란 허울 아래 국민을 홀린 광기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조만간 이집트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정권교체” 도 해보았지만 민주정치가 확립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서양의 정책입안자들이 이슬람교와 이슬람문명에 대해 무지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색다른 화해정책을 펼치긴 했으나, 그 역시 아랍세계의 민주정치와 민주화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주의를 충분히 분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슬람주의자와 서양의 지지자들로 이루어진 이슬람주의 당이 서유럽의 기독교 민주당에 견줄 수 있다고 하나, 이는 틀린 발상이다. 그들과는 달리, 이슬람주의 당은 종교와 관계가 깊은 데다— 그래서 세속화의 탈피를 현안으로 상정한다— 민주화의 의지는 투표함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난잡한 세상에서 이슬람주의를 둘러싼 진실을 운운하는 건 헛된 수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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