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이해하는 일곱 가지 방법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하나, 예언자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는 오랫동안 금식하며 명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사역 목적과 방법을 발견하였다.
요한이 처형당하자 그는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와 여느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에 회당에 갔는데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광야에서 돌아온 그에게서 전과 다른 모습을 보았으므로 예배 때 그의 설교를 기대했다.
예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찾아 봉독했고 봉독이 끝나자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언자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들으려고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런데 예수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선언했다.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누가복음서 4:21)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예수가 마치 예언자라도 되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예언자가 아니고서야 감히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포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 사람이 나서서 기껏해야 목수 요셉의 아들일 뿐인 예수가 감히 예언자 행세를 한다고 화를 내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사람들은 예수가 거짓 예언자임에 틀림없으니 신성모독죄로 처형해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모세의 법에 의하면 거짓 예언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고 가 산벼랑에서 아래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다.
제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험악한 상황에서 빠져나온 예수는 고향을 등지고 가버나움으로 가 새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누가가 전한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예수가 고향에서 거짓 예언자로 비난받았으며 예수가 자신을 예언자로 시사했음을 본다.
예언자란 한마디로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예언자가 되는 데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예언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예언자 직을 계승하는 경우,
둘째 예언자의 문하에서 공부한 후 스승으로부터 예언자 직을 물려받는 경우,
셋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아 스스로 예언자임을 선언하는 경우이다.
예수는 세 번째 경우에 속한다.
각 시대마다 흔히 예언자들이 출현하였으며 예수 당시에도 예언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 예언자 엘리야가 부활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요한이 엘리야에 비견될 만큼 훌륭한 예언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활약했고 예언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승천한 인물이다.
엘리야가 승천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재림할 것이라고 믿었으며 광야에서 활약하는 요한의 사역이 엘리야의 활동과 유사한 데가 있어 요한을 엘리야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광야에서 활약하던 비주류 종교지도자들을 사람들은 예언자라고 불렀으므로 예수도 아마 예언자로 불렸을 것이다.
예언자란 하나님의 심부름꾼(messenger)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동의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그들과 달리 예수의 태도는 적극적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또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에 해석을 첨가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자신의 말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한 행위는 사실 예언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가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선포한 예는 다음과 같다.
“‘간음하지 말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마태복음서 5:27-30】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는 사람은 그에게 이혼 증서를 써주어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서 5:31-32】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가 또한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발을 놓으시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서 5:33-35】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을 학문적으로 가르쳤는데 요세푸스는 그들을 철학파라고 했다.
한편 예수는 혼자 공부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산동네 나사렛에서 성장한 그에게 학문의 기회가 있었을 리 없다.
그는 회당에서 성서에 대한 지식을 스스로 익혔다.
스스로 깨우친 지식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으며 확신을 가지고 하는 설교는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서 권위를 느끼면서 그를 예언자라고 불렀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에 온 도시가 들떠서 “이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사람들은 그가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나신 예언자, 예수라고 말하였다. 【마태복음서 21:10-11】
사역 초기에 예수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선포한 것은,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광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직접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는 예언자 가운데 으뜸가는 예언자,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으뜸가는 예언자와 하나님의 아들이 동격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예수를 일반적인 예언자로 이해하게 되면 기독교를 부인하는 결과가 된다.
초대교회는 예언자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나님이 몸소 예수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왔으므로 더 이상 예언자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예수가 부활한 후에는 성령이 직접 예언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