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키비츠의 <미학사>

 

타타르키비츠는 폴란드의 미학자이자 미술사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저서인 『미학사』는 오랫동안 수많은 미학도들의 필독서가 되어왔다. 미학사와 관련해서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으나 타타르키비츠의 『미학사』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700년대까지에 이르는 유럽 미학의 전개를 아주 포괄적으로 다룬 연구서인 이 책은 원래 1962-67년에 폴란드어로 처음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저서로 인정받았다. 1970-74년에 나온 영어판 번역은 보기 드문 걸작이다.
『타타르키비츠 미학사』는 전 3권(고대 미학․중세 미학․근대 미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미학의 기본 개념사』의 역자가 먼저 ‘Ⅰ. 고대 미학’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유럽 미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전개되어왔고 지금도 계속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기나 정지, 후퇴나 전환점 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격렬한 전환점의 하나는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에 일어났고, 또 하나는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났다. 유럽 문화사 전체의 전환점이기도 한 이 두 전환점들로 인해 미학사는 세 시기로 나뉘게 되었다.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가 그것이다. 이것이 오랜 시간의 시련을 견뎌내고 가장 잘 정립된 연대기적 구분이다.
타타르키비츠는 고대․중세․근대라는 세 시기의 미학을 모두를 아우르면서 미와 예술에 대해 시대를 넘나드는 귀중한 에세이들을 쓴 다음, 각 시대의 원전들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써 그것을 예증한다. 그의 에세이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천해온 여러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해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한 예로 ‘카타르시스’ 라는 용어에 대해 그가 내린 정의를 살펴보자.

“…논쟁의 주된 요점은 ꡒ카타르시스ꡓ가 감정들의 정화인지 아니면 그런 감정들로부터 마음을 정화하는 것인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승화를 뜻한 것인가 아니면 감정들로부터 놓여나는 것을 뜻한 것인가? 감정들을 개선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감정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인가? 첫 번째 해석이 오랫동안 인정받아왔지만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시학』에서 의도한 바는 ꡒ카타르시스ꡓ의 두 번째 의미라는 데 동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관객의 감정을 고상하게 하고 완벽하게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들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한 것이다. 비극을 통해 관객은 자신을 괴롭히는 그런 감정의 과잉을 덜어내고 내적 평화를 얻는다. 이런 해석만이 역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본문 p. 258-59에서)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각 용어의 정착과 변형과정을 살피며 역사 속에서 미학이 어떻게 성립되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가 인용하는 저자들에는 호메로스, 데모크리토스, 플라톤, 성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 오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베이컨, 셰익스피어, 루벤스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연구는 체계적이며 상당히 폭 넓어서, 고졸기, 고전기, 헬레니즘 시대 미학/ 동방의 미학, 서방의 미학/ 르네상스, 16세기의 시각 예술 및 시와 음악, 16세기의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미학, 바로크 미학, 17세기의 회화 및 건축 이론까지를 포괄한다.


저자 소개
타타르키비츠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이며 미술사가. 1910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19~26년을 재외하고는 1915~61년 바르샤바 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했다. 1923~61년 계간지 철학리뷰의 편집인, 1960~63년 연간지 미학의 편집인을 역임했다. 그외 여러 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고, 약 15개국의 다수 대학에서 강의를 담당한 바 있다.
저서로는 본 역서외에 미학의 기본개념사, 행복론, 철학사,집중과 환상, 17․18세기 폴란드 예술 등이 있고, 논문도 많이 남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디지털 원주민은 자주 직장을 바꾸는 데 반해

『아이브레인 iBrain』(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35-50세 사이의 중년층의 뇌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 신경과학자들은 이 시기가 삶의 오랜 경험을 통해 정보를 가장 능률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때라고 말한다. 중년기의 뇌신경을 민첩하게 하는 건 뇌세포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 신경교세포neuroglia cell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경교세포는 중추 신경계의 조직을 지지하는 세포로 뇌와 척수의 내부에서 신경세포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고 신경세포의 활동에 적합한 화학적 환경을 조성하는 기능을 하는 세포를 일컫는다. 신경세포가 신경조직의 본질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면, 신경교세포는 혈관과 신경세포 사이에 위치하여 신경세포의 지지, 영양 공급, 노폐물 제거, 식세포 작용 등을 담당한다. 축색돌기의 표면을 싸고 있는 백질로서의 신경교세포는 세포들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중년기에도 계속해서 생성된다. UCLA 대학의 조지 바트조키스George Bartzokis 박사와 연구팀에 의하면 이 백질의 양이 45-50세 사이에 절정에 도달하는데, 이것은 이 나이대의 사고력이 최상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중년기에 이 백질이 가장 효율적이 되고 축색돌기는 정보신호를 가속화하여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십대, 이십대까지는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가 각각 독립적으로 기능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두 영역의 기능과 역할이 통합된다. 그러다가 중년에 이르러 뇌의 두 영역이 함께 원활하고 통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듀크 대학의 로버트 카베자Robert Cabeza 박사와 그 팀은 정신적으로 성숙한 성인은 여러 가지 인지적 작업을 수행할 때 좌반구와 우반구를 함께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카베자 박사는 나이가 들어 퇴화하는 뇌 기능을 보상하기 위해 양쪽 뇌가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무거운 것을 들 때 한 손보다는 두 손으로 드는 것이 유리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원주민은 자주 직장을 바꾸는 데 반해 디지털 이주민은 일을 시작하면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경향이 있다. 대다수의 디지털 이주민은 좀 더 뛰어난 사회성 기술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여전히 두각을 나타낸다. 이렇게 사회성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최소한의 신기술을 다룰 수 있다면, 직장에서 관리자와 지도자로 거듭 날 수 있다. 새로운 기술로 손쉽게 작업하면서도 인간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뇌 격차를 줄이려면 디지털 원주민이 사회성 기술을 배우고 연마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디지털 이주민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 사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뇌신경망의 구성과 발달, 뇌의 진화는 우리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신약성경 저자들 9명을 중심으로

베드로
바울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작자미상
야고보
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복음(gospel)은 기쁜 소식(the good news, 그리스어로 to evangelion)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이 문자로 기록되기 전에는 구두로 전래되었다.
마가는 문자로 복음을 선언했다.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사람들이 많지만 신약성경에는 아홉 명의 저서만 수록되었다.
이것들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예수의 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그들의 응답이다.
저서들 가운데 베드로(2권), 바울(13권), 마태(1권), 마가(1권), 누가(2권), 요한(5권) 여섯 명이 24권을 썼다.
나머지 세 명은 예수의 두 남동생 야고보와 유다, 그리고 작자미상의 히브리서 저자이다.
이들 아홉 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대체로 각자의 저술에 대한 근거를 확보했다.


역사적인 예수의 생애에 관해 저술한 사람은 네 명인데 이들의 저서를 복음서라 부른다.
이들 외의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저서들은 외경으로 취급되는데 내용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누구의 저서가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이냐 하는 문제로 수세기 동안 논쟁을 거듭해 왔다.


구약성경과의 관련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켜서 해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유대인과 반목할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을 교인들에게 가르쳤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린도전서 10:2-4)


바울은 새 언약(그리스어 diatheke는 계약이라는 뜻이기도 하다)과 옛 언약을 구별했는데 옛 언약은 율법으로 사람을 죽이지만 새 언약은 성령으로 생명을 준다고 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린도후서 3:6-14)


마태는 예수가 모세보다 위대한 분이며 율법이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예수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했다.
구약성경을 주로 인용하면서 마태는 구약성경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이며 그분에 의해 완성된 예언이라고 주장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복음서 저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의 활약을 기록한 책은 네 복음서뿐이다.
따라서 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주요 모델이 된다. 복음서가 쓰인 연대에 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마가가 먼저 50년대 후반에 썼고, 누가가 61년경에, 마태가 70년경 전후에, 요한이 90년경 썼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어거스틴은 마가가 마태를 전적으로 따랐으며 마가의 복음서는 마태의 것을 약분한 것이라고 했다.
근래 일부 신학자들이 어거스틴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대부분 신학자들은 마태보다 마가가 먼저 복음서를 썼으므로 마태가 오히려 마가의 저서를 참고했다고 말한다.


마가복음서를 당시 사람들은 베드로복음서라고 불렀는데 베드로가 기억한 내용을 마가가 기록했다고 믿은 때문이다.
베드로로부터 아람어로 들은 예수의 생애를 마가가 그리스어로 기록했다.
그가 50년대 후반에 복음서를 먼저 쓴 것이 사실이라면 베드로 생전에 쓰였으므로 베드로도 그 내용을 읽었을 줄 안다.
그는 예수의 활동을 시기적으로 제대로 배열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복음서에는 반복되는 구절이 많으며, 문장이 대칭적으로 구성되었고, 지성적이지 못한 점이 특징이다.
마가는 예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 모두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마가복음서는 누가와 마태의 저술에 참고가 되었다.
두 사람이 마가복음서를 주로 인용했음을 본다.
마태는 무려 90%나 인용했으며 누가는 절반이 넘는 53%가량 인용했다.


1830년대 이후에는 50년대 말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서가 가장 먼저라는 학설이 유력하였다.
근래에 제기된 학설이 이 같은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마태복음서가 마가복음서보다 십 년가량 먼저 쓰였다는 것이다.
독일 신학자 카르스텐 티데(Carsten Thiede)는 옥스포드의 막달렌 대학이 소장한 근래 발견된 마태복음서의 파피루스 세 조각을 분석한 결과 파피루스 잎사귀가 50년 또는 그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가 오히려 마태복음서를 대부분 인용해 간결하게 요약했다고 해야 할 것이며 누가 또한 마태복음서를 인용했다고 추론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마태와 누가가 마가로부터 받은 영향에다 구전되어 온 예수의 가르침을 보태 썼다는 기존의 학설을 따르며 마태와 누가가 마가로부터 받은 영향에 관해 언급하였다.


누가 먼저 썼느냐 하는 문제와 더불어 복음서 저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마가·마태·누가복음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약 150년 전이었다.
그리스바하(J. J. Griesbach)가 1776년에 세 사람이 같은 견해를 가지고 복음서를 썼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세 복음서를 가리켜서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라고 불렀다.
공관이란 함께 본다는 뜻이다.
네 복음서 저자 가운데 요한을 제외한 마태, 마가, 누가는 많은 점에서 같은 관점을 가지고 기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공통으로 기록한 내용이 무려 330절이나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장 늦게 기록한 요한은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요한은 세 사람과 ‘함께 보는 seeing together’ 견해를 피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기록하였다.
가장 늦게 기록한 요한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신학의 견해를 피력하는 데 치중했다.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주요 모델이 되었다


요한이 유대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네 사람 모두 유다의 배반, 예수의 체포, 빌라도의 재판, 십자가처형, 부활을 기록함으로써 이 같은 사건들의 중요함에 동감을 표명했다.
특기할 점은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하늘나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다룬 데 반해 요한은 한 번밖에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요한복음 3:5).
그리고 공관복음서에서 같은 견해를 발견하더라도 세 사람의 저술의도와 신학은 상이한 데 이 점을 본문에서 언급했다.


요한이 복음서를 쓸 때는 공관복음서가 익히 크리스천들에게 알려졌으므로 그가 공관복음서를 참고했겠지만 예수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그들과는 달리 관념적인 방법으로 저술했다.
니고데모에 관한 내용과 다시 소생한 나사로에 관한 내용, 산상수훈 등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요한에게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그는 복음의 의미를 진리라 했으며 진리가 자유를 얻게 한다고 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전통악기로 ‘신세계 교향곡’(New World Symphony)을 연주했다면 요한은 새로운 악기를 사용하여 독주했다고 할 수 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 모두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일을 기록한 데(마가복음 1:13, 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비해 요한이 기록하지 않은 것도 특이한 점이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가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구체적으로 기록했다(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두 사람의 사건 기록방법은 비교할 만한데 마태는 대중적인 대화체로 기록했지만 문장력이 탁월한 누가는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기술하면서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는 말로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사건이 널리 알려졌음을 시사했다(누가복음 4:14).
간결한 문체가 특징인 마가는 예수가 시험받은 사건을 두 줄로 간략하게 적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마가복음 1:12-13)


이처럼 복음서 저자들의 개인적 관심과 기술 방법에 따라서 내용의 질과 양이 결정되었음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마가는 15장 가운데 마지막 다섯 장을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까지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며칠 동안의 일을 기록하면서 그는 구약성경을 57번 인용했으며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은 무려 160번이나 된다.


복음서를 통해서 역사적인 예수를 고스란히 발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수의 생애는 역사적인 사건들과 신학적 해석이 한데 어우러져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아홉 명 저자들 모두의 저술의도와 저서의 주요 내용을 알아봄으로써 신학의 생성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