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의 축복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마침내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축복했다. (49:2-27)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 지어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내 힘, 내 정력의 첫 열매라. 너무 우쭐하고 세차구나)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끝내 맏아들 구실을 하지 못하리라)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렵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제 아비의 침상에 기어들어 그 소실마저 범한 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칼만 잡으면 사나워져)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 지어다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어 들 생각도 없고)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 지어다
(그들이 모이는 자리에 섞일 마음도 없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홧김에 사람을 쳐죽이고 닥치는 대로 소를 박살 하는 놈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저주받으리라 화가 나면 모질게 굴고, 분이 나면 잔인해지는 것들!)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내가 그들을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분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흩뜨리리라)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 지라
(네 형제들의 찬양을 받으리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 사자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너야말로 짐승을 뜯어먹고는 배를 깔고 엎드린 수사자라 할까?)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지휘봉이 손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포도나무에 나귀를 예사로 매어놓고)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고급 포도나무에 새끼 나귀를 예사로 매어두리라)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로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제 고장 아름다움만 알다가)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어깨를 디밀고 억지로 짐이나 지는 일꾼이 되었구나)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제 백성을 다스리리라)

단은 길의 뱀이요
(길가에 숨어 있는 뱀)

첩경의 독사리로다
(오솔길에서 기다리고 있는 독사라)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적군의 침입을 당하겠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먹을 것이 넉넉하여)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왕에게 진상하리라)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아양떠는 소리 요란하구나)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약탈하는 늑대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이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이다.
야곱은 이렇게 그들 하나하나에게 알맞는 축복을 한 뒤 당부했다. (49:29-32)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은 이 부탁을 남기고 곧게 누워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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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순간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추었다.
요셉은 시의에게 향 재료를 사용하여 아버지의 시신을 썩지 않도록 만들게 했다.
시신을 썩지 않게 만드는 데는 40일이나 걸렸다.
이집트 사람들은 야곱을 생각하며 70일 동안 곡을 했다고 한다.


곡하는 기간이 지난 후 요셉은 바로의 궁전에 전갈을 보냈다. (50: 4-5)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그러자 바로가 말했다. (50:6)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바로의 허가가 내려지자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하기 위해서 가나안 땅으로 갔다.
바로의 모든 신하와 궁전에 있는 장로들과 이집트 전국에 널려 있는 모든 장로들과 요셉 온 집안사람들과 형제들이 요셉과 함께 가나안으로 갔으며 오로지 형제들에게 딸린 아이들과 양과 소들만을 고센 땅에 남겨 두었다.


요셉을 모시고 가는 병거와 기병 행렬의 길이가 대단히 길었다.
그들은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아닷(Atad)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 크게 호곡하며 성대하고 장중하게 장례식을 올렸다.
특히 요셉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7일 동안 곡했다.
그 지방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아닷의 타작마당에서 그들이 곡하는 것을 보고는 “이집트인들이 중대한 상사를 당했나보다”라고 생각하여 그곳을 아벨미스라임(Abelmizraim)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행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모셔다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으로부터 사서 묘지로 삼은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에 안장했다.
요셉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형제와 모든 호상군들과 함께 이집트로 다시 돌아왔다.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걱정했기에 요셉에게 가서 빌었다. (50:16-17)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요셉은 형들의 말을 듣고 울었다.
형들도 따라 울며 요셉 앞에 조아렸다. (50:18-21)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내가 하나님대신 벌이라도 내릴 듯 싶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요셉은 오히려 형들을 위로했다. 요셉의 말을 듣자 형들의 가슴은 감격에 겨워 터지는 듯했다.


요셉이 형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돌보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요셉의 나이가 110세가 되었다.
그는 에브라임의 후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이 낳은 아들들도 자기 무릎에 받아 아들 항렬에 포함시켰다.
죽음을 앞둔 요셉이 일가사람들에게 유언했다. (50:24-25)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요셉이 죽자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썩지 않게 만들어 관에 넣고 이집트에서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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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체가 중독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브레인 iBrain』(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인터넷 중독자들은 단순히 컴퓨터를 켜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쁨을 만끽한다. 쇼핑 중독자가 세일광고를 훑어보고 막 쇼핑을 시작하려고 할 때 느끼는 흥분과 비슷하다. 이런 느낌은 실제 중독 행동이 일어나기 전이라도 중독을 야기하는 뇌의 화학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런 반응을 관장하는 뇌신경망 시스템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관련이 있다. 도파민은 보상, 처벌, 탐색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조정하는 뇌의 메신저이다.

도파민은 각성제 사용이나 알코올, 인터넷 도박 등 중독 상태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주요인이다. 중독은 일종의 조건반사로서 인터넷을 하지 않을 때나 마약을 끊은 상태라도 강박적으로 행복감을 갈구하고, 재생산하려고 한다. 도파민이 정신적으로 주는 보상 자극은 중독자가 아닌 사람도 느낄 만큼 강력하다. 게임 중독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섭식과 성행위가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킨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성적인 주제의 인터랙티브 게임은 도파민 분비의 강도를 높인다.

인터넷 중독이 되면 뇌의 집행부 역할을 하는 전측 대상회anterior cingulate라는 뇌 영역이 약화된다. 이 영역은 뇌의 앞부분에 있으며, 주로 의사결정과 판단을 관할한다. 중독을 하려면 도파민 시스템을 통제하고 전측 대상회의 신경회로를 강화해야 한다.

십대들이 운전 중에 주고받는 문자메시지가 미국 내 수천 건의 치명적인 자동차사고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문자메시지는 단순히 휴대폰 통화보다 훨씬 더 정신을 산만하게 하여 교통사고의 위험을 증가시킴에도 불구하고 2007년까지 몇몇 주만이 우전 중 문자메시지 사용을 위법으로 처리했다.

회사의 고위 관리직들이 스마트폰인 블랙베리Black Berry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기기에 내장되어 있는 벽돌깨기 게임 때문이다. 이 게임은 게이머가 화면 아래의 바bar를 좌우로 움직여 공을 튀게 하여 화면에 있는 벽돌을 모두 깨는 것인데, 검사, 은행가, 펀드 매니저, 마케팅이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고위 관리직들이 이 게임의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채팅방에서 게임 전략을 교환하고, 자기의 최고 기록도 자랑하며, 백만 점 이상을 딴 게임의 달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전화회의 중이나 스포츠 이벤트 중에도 이 게임을 한다고 고백했으며, 일부는 벽돌깨기에 너무나 빠져서 게임을 삭제해야만 했다. 근무 중에도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컴퓨터 사용자의 14%가 인터넷에 빠져 학교, 직장, 식사, 수면을 등한시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대학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도구로 인터넷을 이용한다. 이들은 사회생활의 어려움에 직접 부딪히기보다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이메일, 메신저, 채팅방으로 도피한다. 18% 이상의 대학생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정도는 병적 수준으로, 이들 중 58% 정도가 그로 인해 학업과 출석이 불성실하고 성적도 평균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자체가 중독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특정 어플리케이션을 중독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문제이다. 인터넷 도박, 증권 거래, 게임, 메신저뿐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검색, 온라인 데이트, 인터넷 쇼핑, 포르노 사이트, 심지어는 이메일 확인도 중독의 성격이 있다.

컴퓨터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명령함으로써 사람들은 통제감을 갖는다. 컴퓨터는 우리가 원하면 대기상태로 둘 수 있고, 끄거나 재부팅할 수도 있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중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은 중독에 취약한 개인에게 잘못된 통제감을 갖게 할 수 있다. 강박적인 인터넷 사용자들은 익명적인 특성을 지닌 온라인에서 해방감을 맛본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 생활에서는 드러내지 않을 사생활을 인터넷에 올린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다른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인터넷에서 활동함으로써 스릴을 느끼기도 한다.

블로깅이든 인터넷 쇼핑이든 중독적 행동은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중독은 하룻밤 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습관적 행동 패턴이 만들어진다. 인터넷에 대한 심리적 의존성이 점점 커지면서 인터넷 접속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인터넷을 장시간 사용하는 데 적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온라인상에 더 오래 머물게 되고 좀 더 자극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10% 정도가 중독이라고 말한다. 이는 도박이나 쇼핑 중독과 비슷한 수치이다. 인터넷 중독은 약물, 알코올, 담배, 음식물에 중독되는 물질 중독과는 다르게 ‘과정’ 자체에 중독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물질 중독자는 철저한 절제가 필요한 반면 인터넷 중독자들은 참여를 차츰 경감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인터넷 중독자들은 주기적으로 무감정, 우울증, 조바심, 불안, 자증, 피로, 멍한 상태를 겪는다. 그들은 또한 신체적 부작용도 겪는다. 인터넷을 너무 오래하다 보면 근육 경련, 눈의 피로, 두통과 같은 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 마우스를 계속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손과 팔에 근육염과 근육경련을 겪을 수도 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2시간 이상 컴퓨터를 사용하는 청소년의 경우 목, 가슴, 호리에 통증이 있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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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 풍상 70년 - 월전 회고록
장우성 지음 / 미술문화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장우성은 저서 『화단 풍상 70년』에서



장우성은 저서 『화단 풍상 70년』(미술문화)에 그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6·25동란이 발발하기 두 달 전 하루는 이른 식전에 그가 장우성의 집을 찾았다.
밀집 모자를 푹 눌러쓰고 조그만 손가방을 든 채 면도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방에 들어서서는 대뜸 세수할 물을 달라고 청했다.
오랜만이어서 장우성이 행적을 물으니 어름어름 대답을 피하면서 가방을 열고 화첩을 꺼낸 후 거기에 그림을 한 폭 그려달라고 청했다.
이른 시간이라서 아침상을 차려내고 화첩을 두고 가면 곧 그림을 그려놓을 테니 나중에 가지고 가라고 했더니 시간이 없다며 당장 그려달라고 졸랐다.
즉석에서 그려주니 황급히 일어서서는 휭하니 사라졌다.
그 후 소식이 끊겼고 6·25동란이 발발하여 불안과 초조의 나날을 보내던 중 장우성이 들은 소식은 인민군이 덕수궁미술관에 있는 미술품들을 북으로 가져가기 위해 나무상자에 짐을 구리는 현장에 이석호가 참여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청계 정종여(1914~84)는 경상남도 거창 태생으로 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34년경 서울로 와서 향토적 수묵화가로 명성이 높은 이상범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935년 제14회 협전에 처음 입선했다.
협전은 1935년 10월 23일부터 30일까지 휘문고보 강당에서 열렸다.
동양화부 입선자는 정종여 외에 김진우, 조동욱, 오일영, 김기창, 장우성, 심인섭, 이석호, 진세빈, 이용우, 장운봉, 조용승, 박승무, 고희동, 최우석, 김중현, 노수현, 백윤문, 이상범, 지성채, 정운면 등이었다.
서양화부 입선자는 도상봉, 박광진, 이제창, 김중현, 공진형, 장석표, 이승만, 장발, 윤희순, 김용준, 이동우 등이었다.
김중현은 동·서양화부 모두 입선했다.


정종여는 1936년부터 선전에 출품하면서 입선과 특선으로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40년을 전후하여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미술학교와 사설 미술연구소에서 일본화를 배웠으며 일본화 경향의 화조화와 인물화를 세밀한 채색화로 그리면서 이석호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선전에 출품했다.
해방 후 그는 좌익 성향의 조선조형예술동맹 간부위원, 조선미술동맹 간부가 되었으며, 1948년 정부 수립 전후 여운형이 암살된 후 박헌영이 이끈 좌익계 민족주의 민족전선 산하단체인 조선미술동맹이 와해되자 전향을 나타냈고, 1949년 4월에는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한 그는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강좌장, 조선미술가동맹 부위원장을 지내고 ‘인민예술가’의 명예칭호를 받았다.
현존하는 월북 이전의 작품으로 <지리산 풍경>(금성 북한 36)(1930년대, <금강산 전망> 등이 있다.


<지리산 풍경>은 소품이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큼 훌륭하다.
그는 작품에 청계라는 호를 사용했는데 20대 초 한때 기산이란 호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청계란 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1936년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경에 산촌의 초가와 기와집이 보이고 토담 옆의 감나무는 속도감 있는 단붓질로 사생하듯 묘사했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감나무에 달린 감은 석채로 처리하여 수묵 효과와는 달리 마티에르와 색채를 강조하여 생동감을 높였다.
수묵과 청색을 적절히 조화시켜 산세와 원근감을 잘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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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Giotto


조토Giotto(1267-1337)에 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화가이며 건축가인 조지오 바사리가 1550년에 가장 탁월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인생(Lives of the Most Emin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에 관한 책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1540년대 중반에 쓰기를 시작해서 1550년에 출판했는데 13세기 화가 조바니 치마부에로부터 시작해서 한창 유명해지고 있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에 이르기까지 120명의 대가들의 일대기를 기록했다.
그는 1568년에 재판하면서 자료를 더욱 보충했으며, 생존하는 예술가들을 보탰고, 예술가들의 목판화 초상화를 삽입했으며, 각장에 서문을 달고 이해하기 쉽도록 색인도 만들어 넣었다.
바사리의 저서는 오늘날 이태리의 르네상스(Renaissance)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꽃을 피고 결실을 맺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근본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Titian) 그리고 수십 명의 고명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과 교류했고 교황, 왕자, 저명한 인사들도 알고 있었으므로 저서에 나타난 내용은 생생한 증언과도 같은 것이다.


바사리는 조토가 10살 때 영리함을 나타냈고 그의 영리함은 아버지만 즐겁게 한 것이 아니라 동네와 동네 밖의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주었다고 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기록했다. 하루는 치마부Giovanni Cimabue(1240-1302)가 사업차 플로렌스로부터 베스피냐노Vespignano로 가던 중에 조토가 양으로 하여금 풀을 뜯어 먹게 하고는 끝이 약간 뾰족한 돌로 평편하고 잘 닦인 석판에 그 양을 모델로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토는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는데 스스로 자연으로부터 배워서 그리고 있었다.
치마부에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놀라운 장면을 보고는 조토에게 자기와 가서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조토는 아버지가 허락하신다면 가겠다고 대답했다.
치마부에는 본도네에게 물어 허락을 받은 뒤 조토를 데리고 플로렌스로 갔다.


바사리는 조토가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스스로 익히고 또 치마부에로부터 배워서 조야한 그리스인의 방법을 완전히 버리고 현대의 그리고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적었다.
바사리는 그리스인의 회화방법을 조야하다고 했는데 그는 이태리 회화의 우수함을 역설했으며 치마부에가 그리스인의 회화방법으로부터 독자적으로 그림을 그린 첫 예술가들 중 한 사람이라고 앞서 극찬한 적이 있었다.
조토의 자연주의 회화방법을 바시리는 처음부터 극찬하면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바사리는 1550년 현재 과거 200여 년이 넘도록 어느 화가도 조토와 같은 훌륭한 자연주의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는데 지나친 칭찬이 아니었다.


조토는 플로렌스의 포데스타(Podesta) 궁전에 있는 예배당 내부를 장식하면서 아주 가까운 친구이면서 유명한 시인 단테Dante Alighierri(1265-1321)의 초상화를 라티니Brunetto Latini의 초상화와 나란히 그렸는데 라티니는 단테의 스승이다.
두 사람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당시 시민 도나티Corso Donati이다.
단테는 다음과 같은 말로 조토를 극찬했다.

“치마부에가 회화 분야를 장악한 사고였지만 이제 조토가 유일한 목소리이다. 치마부에의 명성은 그만 어두워지고 말았다.”

단테에게 치마부에는 중세의 전통 스타일의 대가였고 조토는 현대 회화를 창조한 사람으로 이를 증거 할 만한 그림들이 플로렌스에 얼마든지 있었다.


조토가 회화에 자연주의 스타일을 회복시켰다는 것이 당시 예술가, 학자, 시인들의 한결같은 찬양이었다.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1313-75)와 페트라크Francesco Petrarch(1304-74)도 조토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페트라크는 조토를 고대 그리스의 신비적인 화가 아펠레스Apelles에 비유했다.
예술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는 조토가 타계한 지 50년이 지난 후에 그의 회화적 언어가 완전히 신선했으며 회화사에 있어 근본적으로 혁명적이었다면서 “조토가 그리스인의 미술을 라틴 사람의 것으로 만들었고 또한 현대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조토를 이태리 최고의 예술가로 꼽았다.
이 같은 말을 기베르티Ghiberti가 반복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조토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중세의 어두움을 깨뜨리고 회화에 다시 희망을 주는 빛을 나타낸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고전적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회화를 재생시킨 위대한 예술가로 받아들여졌다.
재생은 바로 르네상스의 정신인 것이다.
조토는 벌써부터 르네상스의 길을 닦았던 아방가르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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