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주제나 재료를 정해주는 편이 더 적절할 때도 있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은 아이의 발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 도구로 미술을 활용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특정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는 것이 아이의 성격 검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후 많은 심리학자들이 그림의 어떤 특징이나 요소가 아이들의 정서나 심리 상태를 말해줄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정상적인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의 그림을 표본으로 수집했다.
심리학자 하머Hammer가 그림을 통한 심리 검사를 할 때 주제와 도구를 ‘표준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한 이래 다양한 진단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우선 종이에 연필로 베껴 그리거나, 미완성 그림을 완성하도록 하는 방식을 제안한 학자들이 있었으며, 주어진 주제에 따라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방식을 고안한 이들도 있었다.
학자들이 생각해낸 주제는 다양했다.
사람의 모습, 가족, 동물, 집-나무-사람 등이 있었다.
학자들은 대개 그림의 주제뿐 아니라 사용하는 도구 또한 지정했다.
어떤 학자들은 심층적 평가를 위해 주어진 주제에 대한 그림과 더불어 자유로운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아동을 면접할 때 연필이나 크레용 이외의 다른 도구를 사용하도록 했던 학자들도 있었는데, 예컨대 나폴리Napoli는 손가락 그림을, 볼트만Woltmann은 점토를 가지고 미술작품을 만들어보도록 했다.
1983년에 에디스 크레이머Edith Kramer와 질 셰르Jill Schehr 그림 그리기, 점토 만들기 등의 다양한 활동들로 구성된 미술 검사 도구를 제안했다.
이후 1988년에 엘렌 호로비츠Ellen Horovitz도 세 가지 재료를 활용한 유사한 검사 도구를 고안했다.
엘렌 호로비츠가 고안한 방식에서 평가 대상자는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며, 조소를 만들어야 하고 주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도구와 재료를 다양하게 제공한 경우는 드물었다.
당, 자연스러운 조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미술 활동에 대해 연구하기 위한 경우는 예외였다.
외부 효과를 줄이기 위해 표준화할 필요가 있는 연구에서도 주제와 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교육하거나 치료할 때는 재료나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자신이 아동보호센터Child Guidance Center에서 일 하기 시작한 직후 미술 검사 도구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되 주제는 정해주는 방식을 적용하려고 했다고 술회했다.
자신이나 가족의 그림을 그리게 하면 더 용이하게 평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이 고안한 방식으로 몇몇 아이들을 면접해본 후, 주디스 아론 루빈은 재료나 주제를 미리 부과하는 것이 불필요하며 오히려 왜곡된 간섭 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사실을 개달았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자연스레 스스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간혹 주제나 재료를 정해주는 편이 더 적절할 때도 있다.
이를테면 가족 미술 검사나, 특정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그러하다.
하지만 아이의 전반적인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 아이가 가장 걱정하거나 신경 쓰는 점이 무엇인지, 그러한 걱정을 내부적으로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목적이라면 틀이나 규칙을 정해놓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가장 효과적이다.
주디스 아론 루빈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놀이 면접법을 권한다.
단, 놀이 면접법은 아주 어린이들에게만 적용가능하며, 미술 검사는 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 난다.
표현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사람이나 가족 그림을 통한 미술 검사를 실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십대를 대상으로는 인형이나 모래를 가지고 자유롭게 노는 행동을 통해 검사를 실시하는 놀이 면접을 실시할 수 없다.
하지만 발달 수준에 어울리는 미술 재료와 도구만 적절히 제공하면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의 심리나 정서 상태를 평가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