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청중을 놀라게 만드는 것이고 연설은 생생한 서술이다


롱기누스Longinu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 중에서

롱기누스는 말에 위엄과 장대함 그리고 긴장감을 가장 많이 부여하는 것이 상상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상상이란 어떤 원천에서든 마음속에 들어와 말을 낳는 생각이다. 연설가에게 있어 상상이란 시인에게 있어 그것과는 다르다. 시의 목표는 놀라게 만드는 것이고 연설의 목표는 생생한 서술이다. 그러나 청중을 자극하고 감동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둘 모두 같다. 롱기누스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중 하나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BC 484?-406?)의 『오레스테스 Orestes』(255-257행)를 예로 든다.




어머니, 제발 부탁이에요. 날 부추기지 마세요.

피투성이의 눈에 뱀을 닮은 이 처녀들을!

그들이 여기에 와 있어요. 그들이 내게 덤벼들고 있어요!




‘처녀들’이란 복수의 여신들Erinyes을 말한다. 그들은 결혼한 적이 없다.

에우리피데스는 복수의 여신들을 직접 보았고, 또 자신이 상상한 것을 관객이 보도록 강요하다시피 했다. 그는 광기와 사랑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비극적으로 표현하려고 최대의 노력을 경주했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장대함을 전혀 타고나지 못했지만 가끔 자신의 본성을 비극적 높이에 억지로 맞춘다고 롱기누스는 말한다. 그가 숭고에 이르게 되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20권 170행의 부상당한 사자를 묘사한 것처럼




다음 순간 고리로 양쪽 갈빗대와 옆구리를 치며

자기 자신을 싸우도록 격려한다.




소포클레스도 오이디푸스가 죽어가며 하늘에 전조가 나타나는 가운데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장면(『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586-1666행)과 헬라스인들이 출범할 때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무덤 위에 나타나는 장면(『폴뤽세네 Polyxene』)에서 탁월한 상상력을 보여준다고 롱기누스는 말한다.

롱기누스는 결론으로 시인들은 우화에 속하고 믿기 어려운 과장을 보여주는 반면 연설가들은 현실성과 진실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연설가가 시적이고 우화적이며 온갖 종류의 불가능으로 빠져든다면 그것은 기이하고 지나치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상상의 연설은 말에 활력과 감정이 듬뿍 부여하지만 사실에 입각한 논증과 결합하게 되면 청중을 설득할 뿐만 아니라 예속시킨다. 아테나이의 걸출한 웅변가 휘페레이데스Hypereides(기원전 389-322년)가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Chaironeia 전투에서 아테나이가 필립포스 2세에게 참패하자 그는 노예들을 해방시킬 것을 요구하다 불법적인 제의라는 이유로 고소되었을 때 “그것을 제안한 것은 제안자 자신이 아니라 카이로네이아요” 하고 말했다. 휘페레이데스는 사실에 입각하여 논증하는 동시에 상상을 활용했다고 롱기누스는 말한다. 그 결과 그의 생각은 단순한 설득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한다. 이럴 경우 청중의 귀는 본성적으로 더 강한 것을 듣게 되어 청중은 증명으로부터 상상의 매혹적인 효과에 끌리게 되며, 현실은 그것의 찬란한 광채에 가리게 되는데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그는 말한다. 두 물체가 하나로 결합되면 더 강한 것이 언제나 더 약한 것의 힘을 자기에게 끌어당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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