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종교적 확신에 찼을 때 가장 완벽하고 적극적으로 악을 행한다



『양복을 입은 원시인 Caveman Logic』(2010, 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행크 데이비스Hank Davis는 어렸을 적 그를 혼란스럽게 한 건 부모님들의 믿음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었다고 회상한다.

나는 항상 신이 추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령 하늘의 영혼처럼 말이에요.

당시 그가 ‘추상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그가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신이 우리가 이해할 수도 그럴 수도 없는 어떤 사상 같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저 위에 있는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에 굳이 그 형상을 상상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에게 기도를 드리는 건 괜찮지만, 그가 개인사에 개입하거나 총알을 막아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왜 다른 사람들은 그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죠? 큰 힘을 가진 나이 든 부자 삼촌을 대하듯 말에요. 그에게 잘 보이고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부탁을 드리잖아요. 그건 그다지 종교적인 것 같지 않은데요.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 어른들은 그걸 인정한다. 누구도 신화로 남기려고 애쓰지 않는다. 하지만 신의 문제에서는 좀 다르다. 아이들이 신에 대해 존경하는 혹은 믿음을 확인하는 말을 할 때 그들의 부모님은 경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교사들도 그것을 인정한다. 신부, 목사, 랍비들도 그러하다. 즉 이러한 이야기는 어른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행크 데이비스가 어머니에게 “왜 신을 묘사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인 것처럼 말하는 거죠?” 하고 물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사람들은 그런 식의 신을 더 좋아한단다” 하고 말해주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그게 신의 본질이니까” 하고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대답은 오직 사람들이 신을 그런 식으로 필요로 하고 그들이 원하는 식으로 신을 설계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린 행크 데이비스는 사람들이 신을 자신들의 삶에 위로가 되는 방식으로 그린다는 걸 알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신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방식은 상당히 다양할 것이다. 어느 면을 보든 그는 본질적으로 인간과 비슷하다. 어쩜 영화배우 찰튼 헤스턴을 닮았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대개 파악이나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한 정형성이 뭔가를 말해준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애걸하고, 거래하며, 간청한다. 이는 우리가 능숙하게 사용하는 기술이다. 심지어 이것은 진화적으로 준비된 것이기도 하다. 행크 데이비스는 규칙이 단순하다면서 첫째, 자신이 가진 권력의 한계를 파악하고, 둘째, 누가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지 알아내며, 셋째, 결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그들과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그 전략을 버릴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러한 정신적 규칙들의 유용성은 분명해진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권력을 모두 가질 수 없으며 한때 모든 권력의 원천이었던 부모님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걸 애걸해도 부모님은 우리의 건강이나 학교와 직장에서의 성공, 대인관계를 통제해줄 수 없다. 나쁜 일들은 계속해서 생긴다. 그리고 원시 논리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나는 아니지만 분명 누군가는 이러한 사건들을 통제할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바깥에 권력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제껏 알아낸 바로는 우리가 뭔가를 원할 때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우리는 애원하고 간청하여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 왜 어른이 된다고 해서 달라져야 하는가? 우주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다시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는 그와 같은 오래된 회로를 유지하고 원하는 걸 들어주는 전지전능한 부모 같은 존재를 상상하는 쪽을 택하고 그와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것은 세 가지 행동, 즉 애걸과 거래와 간청으로 나타나는데, 물론 우리는 그것을 ‘기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근본 규칙과 기대는 같다. 그런 행동에 위안을 받고 익숙함을 느끼기 때문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스스로의 행동을 점검한다 해도 이 사회에는 우리의 생각이 옳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교회에서 우리 옆에 나란히 무릎 꿇고 있는 타인이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옆의 사람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면 이제 공식적 허가를 받은 셈이다.

행크 데이비스는 진화에서 비롯된 성향과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혼합되고, 게다가 우리는 원래 종교 믿음과 의식에 잘 빠지는 종이라고 말한다.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고 평화와 형제애로 우리를 다스려주는 것이라면, 이런 종교의 불가피성은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그들의 고귀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된 종교는 평화와 형제애의 원천으로 보이지 않는다. 파스칼의 말대로 “사람은 종교적 확신에 찼을 때 가장 완벽하고 적극적으로 악을 행한다.” 점점 커져가는 테러리스트의 공격, 제노사이드, 집단 간 증오의 확산은 그 소리 없는 경고이다. 이것이 몇몇 극단주의자들이나 특정 ‘나쁜’ 종교의 탓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새로운 문제도 아니다. 원래 “내 신이 너의 신보다 낫다.” “개종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라.” 이런 식의 만트라mantra는 조직화된 종교의 근원적 부분이다. 데이비드 베러비가 저서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Us and Them』에서 주장했듯이 내 집단과 외 집단의 구성원을 규정하는 건 인간 본성이다. 이런 인간 본성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홍적세Pleistocene(지질시대 신생대 제4기의 전반의 세로 플라이스토세, 갱신세, 최신세라고도 한다.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시기를 말한다) 성향을 넘어설 때까지 문화, 종교 간의 갈등과 유혈사태를 계속하여 부추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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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은 대단한 신비로움이 아니다


우리의 감각 체계는 멋지게 설계된 기계이며 외부의 세상사에 반응한다. 감각 체계는 생존과 정상적 기능에 필수적이다. 뭔가가 외부에 있을 때 알아차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해석하며, 적절한 행동을 취하게 한다. 전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는데, 예를 들어 오른편의 뭔가를 보고는 그 이미지를 ‘애인’이라고 해석한 뒤 대상을 확인하며 애정으로 반긴다.

우리는 그 과정이 자동적으로 나오게끔 진화했다. 외부의 어떤 것이 우리 두뇌에 생생한 감각 자극을 전달하면, 우리는 그러한 광경, 소리, 냄새를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반응한다. 기술적으로 말해 우리는 외부 세계의 물질에 직접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불러일으킨 내부 반응의 해석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데, 보거나 들은 것을 잘못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외부 세계에 유발 사건이 없는 데 두뇌 자극을 등록하는 경우이다. 우리의 해석 기능은 이러한 것에 취약하고, 사실이 어찌됐든 자기 일을 한다. 『양복을 입은 원시인 Caveman Logic』(2010, 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행크 데이비스Hank Davis는 우리 두뇌의 프로그램에는 들어오는 메시지의 원천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말한. 일단 감각 자극이 등록되면 해석기가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느껴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흔히 사람들은 보거나 들은 것에 대해 강경하게 나간다. 실제로 그들이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해석이다. 해석을 내놓은 두뇌에 떠돌아다니는 감각 자극이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지각 경험을 가져오는 사건들의 연속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두뇌 활동에 대해 재고하지 않고 해석 기능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모든 지각이 외부 세계에서 왔다고 잘못 가정한 채로 말이다.

그러한 두뇌 활동의 스파이크를 이미 경험하고 해석한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는 건 대개 시간 낭비이다. 어떤 사람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몇 년 전 자신의 주방에 갑자기 찾아온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마법 같은 순간이 그 사람의 영적 세계관을 더욱 후원하는 동시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가라앉힌다.

행크 데이비스는 두뇌를 전기 화학적 시스템으로 생각한다면 활동의 주기적 혹은 일시적 스파이크는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통 외부 세계의 사건들에 의해 유발되는 신호나 진짜 활성화가 너무 많아서 이 시스템의 배경에 존재하는 잡음들은 자동적으로 무시되고 이미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쁜 해석기를 가동시키지 못하지만, ‘신호 대 잡음’의 비율이 변하면 환상을 볼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상인들이 듣는 상당수의 음성은 조용한 때에 들려온다. 이는 꽤 흔한 경험이다. “내가 주방에 혼자 있었을 때 말이야 ...” “내가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말이지 ...” 그러한 ‘환각’은 너무 흔해서 1960년대 감각 박탈 연구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정립되었을 정도이다. 이 연구는 정상적인 배경 잡음의 부재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런 때에는 내부 사건이 외부 세계에서 온 것으로 잘못 등록되고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행크 데이비스는 환상이 대단한 신비로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두뇌의 무작위적 활동에 대한 자료는 넘칠 정도로 많다. 신경과학 분야에서 이는 이해가 안 될 사건이 아니고, 오히려 그런 활동이 없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 실수가 종종 ‘신호’로 해석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해석기는 즉각 즉각 반응하는 분주한 메커니즘이다. 종종 작동 범위에서 허위 양성이 나타난다. 감각 박탈 실험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환각’으로 이름 붙이기가 더 쉬운데, 실험실이 텅 비어 있어 지각을 유발시킬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주방에 서 있을 때가 사람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꼭 이럴 때 죽은 친척의 혼령이 주방문을 통해 들어온다.

그러한 의미 없는 두뇌 신호가 개인적이고 감정적으로 격렬해진 시기에 나타나는 것도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행크 데이비스는 해석이 우리 안에 있는 경험의 샘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험이 회상되는 빈도와 그것이 주는 정서적 강도가 해석 기능이 사용할 생생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우리가 신비한 광경을 보고 소리를 듣는 것은 무턱대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위안을 찾고 적절하게 해석을 선택하는 의식적인 과정이라 오해해서도 안 된다. 전체 과정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일어난다.

캐나다 온타리오 로렌시안 대학의 심리학자 마이클 퍼싱어는 우리가 뇌의 도움을 받아 유령과 영적인 존재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퍼싱어는 초자연적 힘으로 돌리는 경험들이 사실은 측두엽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성의 문제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종교 연구는 인류학자, 신학자, 심리학자들에게서 신경학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다소 익살스럽게 ‘신경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에 자기공명영상fMRI(자기공명영상)이 많이 이용되는데, 이로써 과학자들은 다양한 유형의 종교를 경험할 때 어떤 두뇌 조직이 활성화되는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뇌의 신 담당 파트 God part of the brain’ 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되었다.

피싱어는 피실험자들에게 저주파 지자기파가 측두엽에 바로 전달되도록 설계된 헬멧을 쓰게 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신체 이탈의 경험, 빛과 얼굴의 형상, 방 안에 있는 뭔가의 존재, 기다란 터널 등을 봤다고 보고했다. 피실험자들은 이러한 감각을 유쾌한 것으로 설명했다. 종종 신을 봤다거나 최소한 그의 존재 안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계인의 존재를 보고한 사람들도 있었다. 퍼싱어는 그러한 경험이 실험실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측두엽이 민감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지자기파 활동으로 인해 성모 마리아에서 금서 외계인까지 다양한 형상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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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공양왕, 고려의 최후의 왕



오늘은 소문난 일산칼국수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공양왕릉을 찾았습니다.


고려 34대 왕이자 최후의 왕인 공양왕(1345-94)의 이름 요(瑤). 신종(神宗)의 7대손이며,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균(鈞)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비(妃)는 창성군(昌城君) 진(稹)의 딸 순비(順妃) 노씨(盧氏)였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원(元)나라에서 명(明)나라로 바뀔 때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친원파(親元派)와 친명파(親明派)의 대립이 격심했습니다.

친명파의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뒤에 창왕(昌王)을 즉위하게 하였으나, 음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창왕을 폐위시키고, 1389년에 공양왕을 즉위시켰습니다.

공양왕은 과단성이 없는 성품으로 정몽주(鄭夢周)를 중심으로 한 구세력(舊勢力)에 이어 새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에게 완전히 실권을 빼앗겼다가, 정몽주가 살해된 후 덕이 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1392년에 폐위되었습니다.

이로써 고려는 34대 475년 만에 망했습니다.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原州)에 추방되어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三陟)에서 살해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양왕릉이 두 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삼척시 근덕면(近德面) 궁촌리(宮村里)에 있는 것으로 1995년 9월 18일 강원도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곳의 묘지는 모두 4기의 무덤으로 구성되었는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의 무덤이고 2기는 왕자의 무덤, 나머지 1기는 왕의 시녀 또는 왕이 타던 말의 무덤으로 전해옵니다.

제가 간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도 공양왕릉이 있습니다.

이처럼 두 곳이 거론되는 이유는 공양왕의 재위 시기가 조선 건국과 맞물려 있어 문헌이 빈약하므로 정확한 고증이 어려운 까닭이라고 합니다.

1662년(현종 3) 삼척부사 허목(許穆)이 편찬한 《척주지(陟州誌)》와 1855년(철종 6) 김구혁(金九赫)이 쓴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에는 삼척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척 궁촌(宮村)에서는 3년마다 어룡제(漁龍祭)를 지내는데, 그에 앞서 반드시 공양왕릉 앞에서 먼저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사적 제191호인 원당동의 공양왕릉은 왕과 왕비를 쌍릉(雙陵)형식으로 합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짜 공양왕릉인지 모른다는 건 매우 웃기는 일입니다.

제가 찾은 공양왕릉이 진짜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지만, 사적 제191호입니다.

사적으로 지정되었다면, 당연히 문화재로서 보호해야 마땅합니다.

헌데 나무로 울타리만 쳤을 뿐 거의 방치된 상태입니다.


구세력을 대표하는 정몽주와 신세력을 대표하는 이성계의 틈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던 공양왕은 허수아비로 4년을 재위하다 폐위된 후에는 살해되었습니다.

공양왕에서 공양군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사후에 공양왕이란 칭호를 되찾았습니다.

고려는 이런 수모 끝에 왕건이 나라를 세운 지 475년 만에 이성계에 의해 국운이 다했습니다.

비록 역사는 그러했더라도 고려의 마지막 왕릉이 두 개 존재할 정도로 전설만 있고 문헌에 기록이 없다는 건 비극입니다.

원당동에 있는 것이 진짜 왕릉일지도 모를 터인데, 그래서 사적 제191호로 지정했다면, 묘지 주변을 가꾸어야 하고 풍상에 파헤쳐진 묘지를 바로 정비해야 마땅합니다.

왕비 손씨의 일가 무덤도 그곳에 있는데, 보기에 흉할 정도로 묘지가 파헤쳐져 있으며 풀이 없이 흙이 드러나 있습니다.

더 방치했다간 묘지가 평편해지고 말 것입니다.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이런 정도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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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꺼림칙하게도 초자연적 믿음 체계와 무비판적 사고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난다. 우선, 그들은 그냥 아이들일 뿐이다. 대학 교육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아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전히 무지와 대중문화의 또래 압력에 둘러싸여 있다. 대학생들은 조간신문의 별자리 칼럼이나 운세 칼럼에도 그다지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고사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라는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다. 교수들 중에서도 그들 세계의 우상에 대적하거나 그들이 중시하는 믿음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들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독자적 결론을 내리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기존의 사실들에 대해 더 많이 배운다.

철학 학부의 어느 교수는 ‘비판적 사고’라는 수업을 가르치면서 수업에서 “무엇에 대해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칠 것”이라는 그의 목표를 분명히 밝힌다. 이와 같은 수업은 종종 논쟁의 도약대로 논쟁거리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감정적이 되면 일관된 주장이나 비판적 사고가 어려워지는데, 그러한 순간이 바로 촉발점이다.

『타임』이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흔히 하는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일종의 미신적 행위자를 믿고 죽은 자와 대화를 한다고 믿는다고 답한다.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의 “인간의 마음은 악의적 감염에 취약하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현대는 여전히 구도자seeker들의 세상이다.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종종 밝혀지지 않지만 진실이나 의미 같은 고귀한 것인 듯하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오거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신호가 커지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소설가 줄리안 반즈는 『죽음의 고찰 Nothing to Be Frightened of』에서 “죽음은 결코 당신을 놔주지 않는다”고 했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불평을 한다.


내가 죽을 때 모든 게 다 끝날 순 없어. 내 일부가 계속 살아있다고 말해줘요. 그걸 영혼이나 영령이라 불러도 상관없어요. 그저 계속 산다고만 말해줘요.


환생은 영혼이 새로운 인간의 몸을 받아 계속 살아가는 방식이다. 흥미롭게도 구도자들은 자신들의 유전자가 자녀들에게 전해짐으로써 자신들의 바람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받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다소 시적으로 표현했는데, 즉 유전자의 관점에서 현재 우리의 신체를 “불멸의 물질을 담은 도구”라고 했다. 자연이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대다수 구도자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이기적이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의식, 믿음 체계, 가치가 현재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많은 구도자들이 갖는 또 다른 근심은 존재적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다. 구도자들은 불평한다.


내 인생의 의미가 필요해요. 짝을 찾고, 아이를 가지며, 일하러 가고,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주택 대출금을 갚으며, 나이 들어 죽는 게 전부일 순 없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가요? 왜 난 여기에 있나요?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완벽하게 성공적인 존재로 보이는데 불행히도 그들은 그쯤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양복을 입은 원시인 Caveman Logic』(2010, 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행크 데이비스Hank Davis는 지구상의 모든 종은 생존하고,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 배우자를 찾고, 번식과 생존의 영역을 표시하는 능력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운이 좋다면 앞으로 좀 더 살면서 자식이나 손자손녀를 부양할 수 있을 것이다. 행크 데이비스는 더 큰 소명이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한다. 왜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만 의문을 가지며, 종종 초자연적인 것과 관련시키느냐고 묻는다. 그는 번식, 예술, 음악, 음식, 사랑을 즐기는 데에는 어떤 위안도, 평화도 충족감도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는 인생이 너무 평범하다거나 독특한 우주의 섭리가 없다는 것이 인간이 겪는 공포를 확산시키고, 그래서 우리는 종종 무비판적으로 절실하게 의미를 찾아 헤맨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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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생활 법칙


2006년 인터넷에 ‘21세기 생활 법칙’이란 유머가 떠돌았다. 이는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실수를 되돌아보게 한다.

워크숍의 법칙: 뭐가 떨어져도 하필 접근하기 제일 힘든 구석으로 굴러간다.

차선 변경의 법칙: 차선 혹은 슈퍼마켓 줄을 바꾸면 새로 옮긴 쪽보다 이전 쪽이 더 빨라진다.

청중의 법칙: 복도 자리에서 제일 먼 사람들이 가장 나중에 나온다.

상품 변경의 법칙: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상품이 나오자마자 생산이 중단되거나 안 좋은 것으로 바뀐다.

정비의 법칙: 손이 기름범벅일 때 콧잔등이 가렵거나 오줌이 마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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