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꺼림칙하게도 초자연적 믿음 체계와 무비판적 사고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난다. 우선, 그들은 그냥 아이들일 뿐이다. 대학 교육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아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전히 무지와 대중문화의 또래 압력에 둘러싸여 있다. 대학생들은 조간신문의 별자리 칼럼이나 운세 칼럼에도 그다지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고사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라는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다. 교수들 중에서도 그들 세계의 우상에 대적하거나 그들이 중시하는 믿음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들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독자적 결론을 내리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기존의 사실들에 대해 더 많이 배운다.

철학 학부의 어느 교수는 ‘비판적 사고’라는 수업을 가르치면서 수업에서 “무엇에 대해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칠 것”이라는 그의 목표를 분명히 밝힌다. 이와 같은 수업은 종종 논쟁의 도약대로 논쟁거리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감정적이 되면 일관된 주장이나 비판적 사고가 어려워지는데, 그러한 순간이 바로 촉발점이다.

『타임』이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흔히 하는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일종의 미신적 행위자를 믿고 죽은 자와 대화를 한다고 믿는다고 답한다.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의 “인간의 마음은 악의적 감염에 취약하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현대는 여전히 구도자seeker들의 세상이다.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종종 밝혀지지 않지만 진실이나 의미 같은 고귀한 것인 듯하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오거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신호가 커지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소설가 줄리안 반즈는 『죽음의 고찰 Nothing to Be Frightened of』에서 “죽음은 결코 당신을 놔주지 않는다”고 했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불평을 한다.


내가 죽을 때 모든 게 다 끝날 순 없어. 내 일부가 계속 살아있다고 말해줘요. 그걸 영혼이나 영령이라 불러도 상관없어요. 그저 계속 산다고만 말해줘요.


환생은 영혼이 새로운 인간의 몸을 받아 계속 살아가는 방식이다. 흥미롭게도 구도자들은 자신들의 유전자가 자녀들에게 전해짐으로써 자신들의 바람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받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다소 시적으로 표현했는데, 즉 유전자의 관점에서 현재 우리의 신체를 “불멸의 물질을 담은 도구”라고 했다. 자연이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대다수 구도자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이기적이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의식, 믿음 체계, 가치가 현재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많은 구도자들이 갖는 또 다른 근심은 존재적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다. 구도자들은 불평한다.


내 인생의 의미가 필요해요. 짝을 찾고, 아이를 가지며, 일하러 가고,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주택 대출금을 갚으며, 나이 들어 죽는 게 전부일 순 없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가요? 왜 난 여기에 있나요?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완벽하게 성공적인 존재로 보이는데 불행히도 그들은 그쯤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양복을 입은 원시인 Caveman Logic』(2010, 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행크 데이비스Hank Davis는 지구상의 모든 종은 생존하고,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 배우자를 찾고, 번식과 생존의 영역을 표시하는 능력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운이 좋다면 앞으로 좀 더 살면서 자식이나 손자손녀를 부양할 수 있을 것이다. 행크 데이비스는 더 큰 소명이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한다. 왜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만 의문을 가지며, 종종 초자연적인 것과 관련시키느냐고 묻는다. 그는 번식, 예술, 음악, 음식, 사랑을 즐기는 데에는 어떤 위안도, 평화도 충족감도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는 인생이 너무 평범하다거나 독특한 우주의 섭리가 없다는 것이 인간이 겪는 공포를 확산시키고, 그래서 우리는 종종 무비판적으로 절실하게 의미를 찾아 헤맨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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