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와 브라만테의 이름이 공문서에도 자주 올랐다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490년은 드물게 이탈리아 전체가 평화로운 때였으며, 모든 공화국들이 정치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밀라노의 경우 전염병이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예술은 다시 활기를 띠었지만 도덕적으로는 부패했습니다. 마키아벨리로부터 몽테스키외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도덕주의자들은 시민들이 덧없이 행복을 누리는 이 시기가 도덕적으로는 부패했다고 적었습니다. 창고에는 곡물이 가득 찼고, 밀라노의 문화센터인 파비아와 루도비코의 고향 비제바노에는 옛 건물들이 헐리고 커다란 새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정원들이 가꾸어지고 도로가 새롭게 포장되며 건물 외관은 아름답게 장식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재능은 더욱 빛났으며, 밀라노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그와 브라만테의 이름이 공문서에도 자주 올랐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파비아의 낡은 성당 산타 마리아 알라 페르티카를 새로 디자인했습니다.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는 프란체스코 마르티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보다 열세 살 많은 그는 회화와 조각을 수학한 후 공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하수도와 우물에 관한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변속장치, 기어, 대포탄환 조속기, 대포, 추진력 있는 바퀴가 달린 자동 프로펠러 수송수단, 배수펌프, 시계, 노 젓는 배, 물속에서 공격할 수 있는 잠수복 등을 고안했고, 건축에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원래 공학가라는 직업은 고대로부터 군사용 공격 혹은 방어무기를 제작한 데서 비롯한 말입니다. 로마의 시저 시대에 기록을 남긴 비트루비우스의 글을 보면 공학가들은 산업용 기계들, 제방, 물 조절기, 펌프, 우물, 운하, 수문, 물시계 등을 건립하거나 분쇄하는 기계는 물론 제분기, 교량, 사원, 굴착기, 기중기, 승강기, 공성망치battering ram, 투석기, 그리고 그 외의 공격용 무기들을 제작했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기계 machine’와 ‘빌딩 building’이란 말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고 공학-건축가engineer-architect란 말은 자연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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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잡아당기는 장치와 소용돌이 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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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도랑을 청소하는 기구>


레오나르도는 공작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소규모 기계들을 많이 제작했으며, 그것들 중에는 회전하는 분수, 커튼을 올리고 내리는 기계도 포함됩니다. 그 후 올리브를 짜는 장치, 문을 자동으로 닫히게 하는 장치, 가지촛대, 아주 밝은 빛을 내는 탁상램프, 접는 가구, 대형 상자를 위한 자물쇠, 거울(특히 팔각형 거울로 그 안에 서면 수없이 많은 이미지들이 반사된다),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팔걸이의자, 목욕탕과 세탁소, 도랑을 청소하는 기구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이런 디자인들은 독창적이었으며, 매우 훌륭한 것들로 인정을 받아 그는 궁정에서 벌어지는 만찬에 종종 초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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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우주는 초현실적인 곳이다


영국의 천문학자 존 미셸John Michell이 1783년에 최초로 블랙홀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워낙 기상천외한 것이라, 최근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관측의 증거들이 최근에 하나둘씩 나타나면서 천문학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깜짝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의 대기가 엑스선 복사에 대해 불투명하기 때문에 천체들이 엑스선을 방출하는지 조사하려면 엑스선 망원경을 대기 바깥으로 쏘아 올려야 합니다. 최초에 올린 엑스선 천문대는 멋진 국제 협력의 성과물이었습니다. 케냐의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인도양에 이탈리아가 설치한 인공위성 발사대가 있습니다. 미국이 이 발사대를 이용하여 자국의 로켓으로 엑스선 관측 위성을 지구 궤도에 진입시켰습니다. 스와힐리Swahili어로 ‘자유’를 뜻하는 우후루Uhuru라는 이름의 이 위성은 최초의 엑스선 위성 천문대였습니다. 이 위성은 1971년에 백조자리에서 초당 1000번씩 깜빡거리는 밝은 엑스선 원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 엑스선 원은 그 후 ‘백조자리 X-1'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천체의 엑스선 밝기가 변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언제 빛을 밝히고 언제 빛을 끄느냐 하는 정보가 백조자리 X-1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속도는 결코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km를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백조자리 X-1의 크기도 기껏 켜 봐야 300km(30만km 나누기 1000번)를 넘을 수 없음은 뻔한 사실입니다. 크기로만 보면 겨우 소행성 규모의 천체가, 성간 공간을 통과한 다음에도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세기의 엑스선을 방출한다니, 도대체 이 천체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백조자리 X-1의 위치는 가시광선으로 관측했을 때 고온의 청색 초거성이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직접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천문학자들은 이 청색 초거성에 근접 동반성이 있음을 스펙트럼선의 주기적 이동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 별은 혼자가 아니라 동반성과 함께 쌍성계를 이루는 별이었습니다. 쌍성계에서는 두 별이 서로 맞물려 돕니다. 그러므로 궤도 운동의 관측자에 대한 상대 속도가 주기적으로 변합니다. 이 변화가 도플러효과 때문에 흡수 스펙트럼선의 주기적 위치 변화로 나타납니다. 천문학자들은 여기에서부터 쌍성계 구성원들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는데, 백조자리 X-1의 동반성은 태양의 약 10배 정도의 질량을 갖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초거성은 여러모로 보아 결코 엑스선의 방출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숨겨진 동반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질량은 태양의 10배인데 크기는 겨우 소행성 정도라니 블랙홀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엑스선의 원천이 초거성에서 블랙홀로 빨려가면서 소용돌이치는 회전 원반에서 기체와 티끌들이 서로 스치며 지나가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마찰열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이 열이 회전 원반의 물질을 엑스선이 방출될 정도의 고온으로 가열합니다. 전갈자리 V861과 GX339-4, SS433, 컴퍼스자리 X-2 등도 블랙홀의 후보 천체들입니다. 카시오페이아자리 A는 초신성의 잔해로 알려진 전파 방출원입니다. 이 초신성에서 나온 빛이 17세기경에 지구에 도착했을 터인데, 당시 유럽에 상당수의 천문학자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초신성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슈클로프스키I.S.Shklovskii는 숨어있는 블랙홀이 폭발하는 핵을 먹어치우고 초신성의 불길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유럽 천문학자들이 초신성 폭발을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제안했습니다. 현존 편린들만으로 블랙홀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세이건은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망원경이 이런 자료의 편린들을 통해 전설적인 블랙홀의 행각을 추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면서, 카시오페이아 A의 정체 규명에도 우주 망원경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블랙홀을 공간에 패인 바닥없는 보조개에 비유했습니다. 그 보조개에 사람이 빠지면 다 빠져 들어가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이렇게 강력한 중력장에서는 기계적, 생물학적 시계가 완전히 멈춘 것으로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빠져 들어가고 있는 그 사람의 시계에서는 모든 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세이건은 중력에 따른 막강한 조석력과 강력한 복사를 그 사람이 신의 특별 배려로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검은 구멍이 자전하는 블랙홀이라면, 그 사람은 시공간의 또 다른 점으로 출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공간과 시간적으로 모처와 모시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벌레가 사과에 침입하여 과육을 갉아먹고 나방이 돼서 빠져나가면 사과에 벌레의 입구와 출구를 연결하는 터널이 뚫립니다. 벌레구멍, 즉 웜홀wormhole은 사과에 뚫려 있는 입구와 출구에 해당합니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학자들은 벌레구멍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다룹니다. 성간 공간이나 은하 간 공간에 중력이 파놓은 벌레 구멍들이 있다면, 그 구멍들을 연결하는 우주 지하철을 타고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우주의 구석구석을 보통 방법으로는 구현될 수 없는 쾌속으로 여행할 수는 없을까? 블랙홀이 우주의 아득한 과거, 또는 먼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세이건은 농담 비슷하게라도 이런 생각들이 논의된다는 사실 그 차제만으로도 우주가 얼마나 초현실적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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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ether 개념이 에너지로 가득 찬 우주 개념으로 진전되었다


MIT의 물리학자들 알란 구스Alan Guth(1947-)와 데이비드 카이저David E, Kaiser(1947-)는 우리는 다중우주multiverse[메타우주meta-universe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포함하여 우주들 전체를 의미한다.]의 일부라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 다중우주에서 우리의 우주는 무한하거나 엄청나게 많은 우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두 사람은 또한 우리의 우주에 대한 진공 여부를 결정하는 건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신 관측 가능한 우주는 가능한 모든 유형의 진공으로 구성된 다중우주 내의 하나의 작은 반점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즉 다른 많은 우주 속에는 다른 가능성들 또한 많이 있으므로, 진공이 작용할 수 있는 거의 무한한 방법 중 어느 하나가 우리 우주의 진공 상태를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경Sir Roger Penrose(1931-)의 개념, 즉 우리의 우주는 우주를 이루는 수십조의 가지 중 하나의 봉우리로 시작되었다는 개념과도 일치합니다.

구스와 카이저가 정의한 대로 인류발생론이 본질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주에는 수많은 법칙이 가능하며, 우리가 우리의 우주를 갖게 된 이유는 우리가 여기서 그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법칙이 인간이나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면, 다중우주의 다른 곳에서도 누구도 그 우주의 다른 법칙을 관측하거나 기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우주가 존재하든 않든 끈 이론은 수학 방정식을 통해 우주에는 일곱 개의 다른 차원이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다른 차원들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차원은 우리가 보고 탐지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보다 수십조나 작은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 영역은 약 10-35m 크기입니다. 끈 이론이 대단히 복잡하고 논쟁적이지만, 대부분의 다른 이론들도 이 매우 작은 스케일 10-35m에 우리 우주의 근본 성분이 있다고 제시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의 말로 유픽셀이 있는 곳에 해당합니다.

19세기의 에테르ether 개념이 21세기에는 에너지로 가득 찬 우주 개념으로 진전되었습니다. 이런 관념은 과학자들이 우리 우주의 독특한 면 중 하나가 진공 상태임을 시사하게 했습니다. 이는 결국 생명을 용인하지만 다른 일곱 차원들 그리고 상이한 진공 상태를 가진 다수의 우주들을 요구할 수 있는 쪽으로 조율됩니다. 실재에 대해 이처럼 이상하게 보이는 서술은 1800년대 이후의 두 미스터리 중 하나의 결과입니다.

19세기의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가장 근본적인 수준의 물질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물질은 입자로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합니다. 19세기의 미스터리는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모든 파장의 복사 광선을 완전히 흡수하는 가상의 무반사, 무광택의 물체인 검은 물체에서 나오는 방사]였습니다. 텅스텐 같은 물질에 충분히 열을 가하면 빛을 방사합니다. 많은 새로운 수수께끼나 역설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미스터리가 양자 이론을 이끌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과 에너지가 호환된다고 보았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자폭탄은 매우 작은 물질 조각이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전환된 것입니다. 빅뱅의 경우 모든 것이 에너지점으로 불가해하게 압축된 것이며, 그것의 팽창과 냉각으로 물질 및 여러 에너지 형태가 생겨났습니다. 물질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은 인간이 에너지의 어떤 면을 설명하는 데서 생겨난 은유입니다.

20세기에 양자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양자 이론은 물질과 에너지가 동일한 방법으로 각자의 파동과 입자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론은 전자와 광자 같은 매우 작은 입자들에는 적용되지만, 당구공처럼 보다 큰 물체에 적용할 때는 양자 효과quantum effect가 미미해집니다.

어떤 것이 어떻게 파동과 입자가 될 수 있을까? 양자 이론이 나온 지 약 80년이 되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그 설명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자 이론은 훗날 실험을 통해서야 얻게 되는 대단히 새로운 것들을 예측했습니다. 파동은 사방으로 퍼지므로 파동이 있는 하나의 지점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양자 이론은 분자 안에서 전자의 위치를 말할 수 없으며 전자는 어느 순간 어디에나 있을 수 있을 뿐입니다.

뉴욕 시립대학의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Michio Kaku(1947-)는 전자의 위치가 불확실한 것에 대한 뛰어난 한 예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전자가 어떻게 규칙적으로 비물질화되어서 다른 쪽 벽, 혹은 PC와 CD 안에서 물질화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안정된 분자 안에 두 원자를 묶어두면 전자들이 동시에 수많은 장소에서 일제히 나타나 원자를 묶는 전자 ‘구름’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분자가 안정되고 우주가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전자가 동시에 수많은 장소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가 진공 상태에 들어가면 다른 전자로 대치되지만 다른 위치에 있게 됩니다. 처음의 전자는 다른 우주에 들어가서 또 다른 우주에서 온 전자로 대치됩니다. 이는 거대한 의자 뺏기 놀이로 한 전자(혹은 빛 광자나 어떤 양자)가 계속 대치되면서 무한한 수의 평행우주를 통해 전자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대치는 막스 플랑크Max Planck(1858-1947)의 시간 스케일인 1.616×10-44초 내에서 발생합니다. 매우 근소하지만 카쿠의 이론처럼 동시에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플랑크는 양자 이론의 아버지였으며, 우주의 불변하는 특징을 산출해냈습니다. 플랑크의 시간은 이런 상수constant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플랑크의 길이Planck’s length는 약 10-35m이며, 이것이 중력과 시공간에 대한 고전물리학 이론을 무력하게 만들고 양자 효과를 부각시켰습니다. 플랑크의 시간은 광속으로 플랑크의 길이를 여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합니다.

『양자 뇌 The Quantum Brain』의 저자 제프리 새티노버Jeffrey Burke Satinover(1947-)는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Phillips Feynman(1918-88)과 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1911-2008)가 진공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이런 입자들에 대해 놀라워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우주에는 오직 하나의 전자만 있을 거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세계는 시간 속에서 전진하고 후퇴하는 다중우주 간의 접속역학을 편안하게 논할 수 있는 곳입니다. 파인먼과 휠러가 그랬듯이 우주 속의 모든 전자가 같은 것인지, 단지 시간 속에서 복합적인 고리들을 통해 다시 나타나는 것인지 진지하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레오킴은 유픽셀들의 이런 자리 뺏기 운동이 다른 우주들을 통해 하나의 유픽셀이 어떻게 입자이자 파동처럼 활동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로 소위 ‘다중세계들the many-worlds’의 변형으로 불리는 양자 이론의 가정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유픽셀이 다른 위치에서 재출현하므로 그것은 또한 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해줄 것입니다.

양자 이론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합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자 역학 없이는 레이저, 텔레비전, 컴퓨터, 마이크로파, CD와 DVD 재생기, 이동전화 그리고 현대의 많은 기기들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리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 닐스 보어Niels Bohr(1885-1962)는 말했습니다. “양자 이론에 충격 받지 않은 사람은 양자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수십 년 후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이며 존 휠러의 제자였던 리처드 파인먼은 양자의 세계는 인간이 직접 체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테크놀로지 인스티튜트 신입생들에게 양자 이론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우면서 말했습니다.

양자 이론을 이해하지 못해서 외면하려는 여러분을 설득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의 물리학 학생들도 그것을 이해 못합니다. …… 이는 나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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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대성당 재건축에 레오나르도, 브라만테, 프란체스코 마르티니가 응모하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밀라노의 가장 심장이 되는 건물은 흰색 대리석으로 건설된 밀라노 대성당으로 큰돈을 들였지만 쓸모없는 대건축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1386년에 짓기 시작해서 여러 번 보수했지만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고, 프랑스와 독일 대가들이 새로운 안을 내놓았지만 비판의 소리가 높아 이탈리아인의 손으로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혼성물이 되어버린 이 건물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외관은 아예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성당 꼭대기 위에 임시로 올려놓은 돔은 무너질 지경이었으므로 이를 부수고 좌우익부들이 만나는 곳에 우아하고 단단한 티부리오를 올려놓을 계획이었습니다.

루도비코는 알베르티의 제자 루카 판첼리를 불러 자문을 맡게 했으며, 판첼리는 대성당의 기초가 탄탄하지 못해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며 네 개의 가는 기둥들과 균형을 맞추어 지상으로부터 55m에 이르는 높이의 구조물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대성당 재건축을 위한 건축가들의 공모가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외에도 브라만테, 프란체스코 마르티니 등 이탈리아 각지로부터 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대성당 건축위원회에 제출한 초안이 현존하는데, 그는 “병든 대성당”을 위해서는 “의사 건축가”가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이 안건에서는 자신이 문제점을 완전히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의사 건축가로서 티부리오를 제작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은근히 내세웠습니다.

나의 모델에는 문제의 건물에 적절한 좌우대칭, 조화, 일치함이 있으며 … 어떤 열정으로도 여러분은 영향을 받지 않게 되고 올바른 건물의 규칙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나눠진 부분들의 수와 본질을 설명해주는 모델들 가운데서 나를 선택하든지 나보다 나은 것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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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성당 중심을 위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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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돔을 위한 스케치>


대성당 재건축에 참가한 건축가들은 1488년 혹은 1489년에 자신들의 모델을 응모했습니다. 1490년 4월 13일 최종 결정자 발표가 있었으며, 밀라노 건축가인 조반니 아마데오와 지안 돌체부오노가 뽑혔습니다. 두 사람은 5월 31일에 만나 서로의 모델에 대해 의논했지만 서로 자신의 모델을 고집하는 바람에 절충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브라만테는 두 사람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모델에서 조금 저 모델에서 조금 딴” 절충적 모델을 내놓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루도비코는 프란체스코 마르티니와 조반니 아마데오, 그리고 레오나르도를 파비아로 불러 대성당에 관한 세 사람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세 사람은 6월 27일 루도비코, 밀라노 대주교, 건축위원회 앞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했습니다. 9월 11일 대주교는 티부리오의 초석을 놓았고, 이것은 1500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이름은 건축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그가 6월 초 더 이상 응모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레오나르도가 흥미를 잃게 된 이유는 이 성당이 모든 응모자들의 장점을 취한 합성물로 추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월 27일 레오나르도는 어떤 모델이나 계획안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자문역을 담당하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 것 같았습니다. 공작으로부터 건축 책임을 맡은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는 파비아로 가는 도중 레오나르도와 최종 디자인에 관해 의논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석조 건축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치를 “두 개의 연약함으로부터 새어나오는 힘”으로 설명했는데, 석조 건축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는 아직 자신이 디자인한 건축물을 만들어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쉬지 않고 건축에 관한 책을 읽고 나름대로의 공부를 해왔습니다. 베로키오가 피렌체 대성당 꼭대기에 올려놓을 구체를 구상할 때부터 그는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스케치를 보면 브루넬레스키에 관해 연구했으며, 새로운 건축물을 직접 그리면서 어떠한 구조로 건립되었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는 대성당을 살아 있는 유기체에 비유해 잘못된 부분을 병들었다고 했는데, 이는 그만의 표현이 아니라 비트루비우스가 건물을 의인화한 이래 알베르티와 필라레테가 건물 기둥을 사람의 갈비뼈, 좌,우익부를 팔에, 앱스apse(건물 한쪽 끝이나 혹은 어떤 경우에는 양쪽 끝, 일반적으로 이곳에 예배의 대상을 위한 제단을 장식했다)를 머리에 비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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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비트루비우스적 인체 비례>, 브라운 수채, 34.4-24.5cm.


레오나르도의 첫 해부학적 드로잉이 이 시기에 시작된 것도 흥미롭습니다. 물론 그는 일찍이 해부학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현존하는 스케치들은 이 시기에 그려진 것들로 아마 건축물에 대한 연구가 인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한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세계의 모델이다”라고 했습니다.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건축에 관하여 De Architectura』에서 인체가 정사각형과 원형 위에 만들어졌다고 적었는데, 레오나르도는 ‘비트루비우스적 인체비례’로 알려진 다양한 포즈를 취한 인체 누드 남자를 원형과 사각형 안에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친구 루카 파치올리에게 보낸 편지에 ‘원형인간 De Divina Proportione’에 관해 적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인체에 대해 엄격한 비례를 생각해내고 이를 정성들여 작품에 사용하면서 특히 성스러운 신전에 이러한 비례를 적용시켰네. 그들은 여기서 어떤 프로젝트로도 할 수 없는 두 개의 원리가 만들어지는 도형을 발견했는데, 완전한 원형과 정사각형이라네.

로마의 건축가로 정식 이름이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인 비트루비우스는 기원전 1세기 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열 건에 이르는 『건축에 관하여』를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당시 알려진 그리스 전통의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건축법을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일종의 규범 지침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속에서 당시 건축가 작업실에서 얻은 실제적 처리방법을 구체화시켰습니다.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는 온갖 종류의 건물들을 바닥 평면의 반지름 주변으로 모든 부분들이 집중되는 디자인을 고안했으며 모두 “원형 인간”을 상기시키는 것들입니다. 그는 인체의 기하를 우주의 일체와 완전함에 적용했습니다. 브라만테가 몬토리오의 성 베드로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할 때 레오나르도의 이런 드로잉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점차 대지 자체가 인간의 이미지를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지는 성장하는 삶을 갖고 있는데 몸은 흙이고, 뼈는 산맥을 형성하는 바위들의 배열과 집합이며, 연골은 석회암이고, 피는 흐르는 강물이다.

레오나르도는 이와 유사하게 눈과 정신, 그리고 햇빛의 작용 사이의 관계를 정립했습니다. 기계적인 인간에 대한 그의 개념은 공학적 프로젝트에 적용되었고, 또한 공학적 프로젝트는 기계적 인간에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해부학을 지리학자의 자세로 바라보면서 식물학을 부인과 의사의 말투로 설명했습니다.

소우주에 대한 우주구조론은 열두 개의 완전한 모양들 속에서 드러나게 되며 프톨레마이오스(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수학자, 지리학자)의 우주론을 따르는 듯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가 대지를 지방으로 나눈 것처럼 수족들로 나눠야만 한다. 나는 대지의 기능들을 인체의 부분들로 설명하며 인간의 전체 형태와 실체, 그리고 모든 부분들의 운동을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인간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주께서 나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과 관습을 드러낼 수 있게 하실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이런 식의 분석은 지질학과 생리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강물이 비와 산 위의 눈이 녹아서 흐르는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잘못된 이해가 있지만, 레오나르도를 포함해 15세기의 대표적인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객관성에 주안점을 둔 자연주의를 추구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15세기의 과학적 훈련이 있었으므로 이후 예술가들은 그들의 성과에 힘입게 된 것입니다. 수학, 기하학, 광학, 기계학, 광선론, 색채론, 해부학, 생리학은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기본 도구였으며, 공간의 성격, 인체의 구조, 인체의 운동, 비례 등은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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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시작이 있었다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는 과학적 증거가 1920년대에 처음 나왔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영원한 과거부터 존재해온 靜的(정적)인 우주를 믿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에 대한 반박의 증거는 간접적이었으며,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파월 허블Edwin Powell Hubble(1889-1953)이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 근처 1904년에 건립된 윌슨 산 천문대Wilson Mount Observatory의 100인치 망원경으로 관찰한 결과를 근거로 했습니다. 허블은 1929년경 은하를 관측하던 중 그 스펙트럼의 선에 나타나는 적색편이를 시선 속도로 해석하고 후퇴하는 속도가 은하 사이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허블법칙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그 후 빅뱅 이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적색편이란 별이 멀어질 때 나오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에 의해 파장에서 빛의 중심이 긴 쪽 적색으로 약간 이동한다는 효과입니다. 도플러 효과는 파동의 파동원wave source과 관찰자의 상대 속도에 따라 진동수frequency와 파장wavelength이 바뀌는 현상으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도플러Christian Johann Doppler(1803-53)가 발견했으므로 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허블은 망원경을 통해 거의 모든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져가는 중이며, 멀리에 있는 은하일수록 더욱 빠르게 멀어져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현재 팽창하는 중이라면 우주가 과거에는 더 작았다는 뜻입니다. 까마득히 먼 과거에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아주 작은 구역에 모여 있었고, 그 구역의 온도와 밀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충분히 거슬러 올라간 과거, 우주에는 시작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것을 빅뱅이라고 부릅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주 공간 자체가 확장되는 것을 상상해야 합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Arthur Stanley Eddington(1882-1944)은 우주를 부푸는 풍선의 표면에, 모든 은하를 그 표면에 찍힌 점들에 비유했습니다. 여기서 풍선의 반지름이 한 시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면, 그 풍선의 표면에 있는 임의의 두 은하 사이의 거리도 한 시간마다 두 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두 은하 사이의 거리가 1cm였다면 팽창 후 그 거리가 2cm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두 은하가 서로 멀어져가는 속도는 시속 1cm가 됩니다. 두 은하 사이의 거리가 2cm라면, 한 시간 후 그 거리는 4cm가 될 것이며, 따라서 두 은하가 서로 멀어져가는 속도는 시속 2cm가 됩니다. 이것이 허블이 발견한 것입니다. 먼 은하일수록 우리로부터 더 빠르게 멀어져가는 것입니다.

우주가 팽창하더라도 은하, 별, 사과, 원자 등의 대상들은 크기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공간만 팽창되는 것입니다. 풍선의 표면에 동그라미를 그린다면 그 동그라미는 풍선이 팽창하더라도 팽창하지 않습니다. 은하단을 이루는 은하들은 중력에 의해 묶여 있으므로 공간이 팽창하더라도 원래의 크기와 배열을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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