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대성당 재건축에 레오나르도, 브라만테, 프란체스코 마르티니가 응모하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밀라노의 가장 심장이 되는 건물은 흰색 대리석으로 건설된 밀라노 대성당으로 큰돈을 들였지만 쓸모없는 대건축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1386년에 짓기 시작해서 여러 번 보수했지만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고, 프랑스와 독일 대가들이 새로운 안을 내놓았지만 비판의 소리가 높아 이탈리아인의 손으로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혼성물이 되어버린 이 건물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외관은 아예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성당 꼭대기 위에 임시로 올려놓은 돔은 무너질 지경이었으므로 이를 부수고 좌우익부들이 만나는 곳에 우아하고 단단한 티부리오를 올려놓을 계획이었습니다.

루도비코는 알베르티의 제자 루카 판첼리를 불러 자문을 맡게 했으며, 판첼리는 대성당의 기초가 탄탄하지 못해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며 네 개의 가는 기둥들과 균형을 맞추어 지상으로부터 55m에 이르는 높이의 구조물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대성당 재건축을 위한 건축가들의 공모가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외에도 브라만테, 프란체스코 마르티니 등 이탈리아 각지로부터 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대성당 건축위원회에 제출한 초안이 현존하는데, 그는 “병든 대성당”을 위해서는 “의사 건축가”가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이 안건에서는 자신이 문제점을 완전히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의사 건축가로서 티부리오를 제작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은근히 내세웠습니다.

나의 모델에는 문제의 건물에 적절한 좌우대칭, 조화, 일치함이 있으며 … 어떤 열정으로도 여러분은 영향을 받지 않게 되고 올바른 건물의 규칙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나눠진 부분들의 수와 본질을 설명해주는 모델들 가운데서 나를 선택하든지 나보다 나은 것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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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성당 중심을 위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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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돔을 위한 스케치>


대성당 재건축에 참가한 건축가들은 1488년 혹은 1489년에 자신들의 모델을 응모했습니다. 1490년 4월 13일 최종 결정자 발표가 있었으며, 밀라노 건축가인 조반니 아마데오와 지안 돌체부오노가 뽑혔습니다. 두 사람은 5월 31일에 만나 서로의 모델에 대해 의논했지만 서로 자신의 모델을 고집하는 바람에 절충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브라만테는 두 사람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모델에서 조금 저 모델에서 조금 딴” 절충적 모델을 내놓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루도비코는 프란체스코 마르티니와 조반니 아마데오, 그리고 레오나르도를 파비아로 불러 대성당에 관한 세 사람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세 사람은 6월 27일 루도비코, 밀라노 대주교, 건축위원회 앞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했습니다. 9월 11일 대주교는 티부리오의 초석을 놓았고, 이것은 1500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이름은 건축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그가 6월 초 더 이상 응모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레오나르도가 흥미를 잃게 된 이유는 이 성당이 모든 응모자들의 장점을 취한 합성물로 추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월 27일 레오나르도는 어떤 모델이나 계획안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자문역을 담당하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 것 같았습니다. 공작으로부터 건축 책임을 맡은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는 파비아로 가는 도중 레오나르도와 최종 디자인에 관해 의논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석조 건축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치를 “두 개의 연약함으로부터 새어나오는 힘”으로 설명했는데, 석조 건축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는 아직 자신이 디자인한 건축물을 만들어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쉬지 않고 건축에 관한 책을 읽고 나름대로의 공부를 해왔습니다. 베로키오가 피렌체 대성당 꼭대기에 올려놓을 구체를 구상할 때부터 그는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스케치를 보면 브루넬레스키에 관해 연구했으며, 새로운 건축물을 직접 그리면서 어떠한 구조로 건립되었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는 대성당을 살아 있는 유기체에 비유해 잘못된 부분을 병들었다고 했는데, 이는 그만의 표현이 아니라 비트루비우스가 건물을 의인화한 이래 알베르티와 필라레테가 건물 기둥을 사람의 갈비뼈, 좌,우익부를 팔에, 앱스apse(건물 한쪽 끝이나 혹은 어떤 경우에는 양쪽 끝, 일반적으로 이곳에 예배의 대상을 위한 제단을 장식했다)를 머리에 비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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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비트루비우스적 인체 비례>, 브라운 수채, 34.4-24.5cm.


레오나르도의 첫 해부학적 드로잉이 이 시기에 시작된 것도 흥미롭습니다. 물론 그는 일찍이 해부학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현존하는 스케치들은 이 시기에 그려진 것들로 아마 건축물에 대한 연구가 인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한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세계의 모델이다”라고 했습니다.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건축에 관하여 De Architectura』에서 인체가 정사각형과 원형 위에 만들어졌다고 적었는데, 레오나르도는 ‘비트루비우스적 인체비례’로 알려진 다양한 포즈를 취한 인체 누드 남자를 원형과 사각형 안에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친구 루카 파치올리에게 보낸 편지에 ‘원형인간 De Divina Proportione’에 관해 적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인체에 대해 엄격한 비례를 생각해내고 이를 정성들여 작품에 사용하면서 특히 성스러운 신전에 이러한 비례를 적용시켰네. 그들은 여기서 어떤 프로젝트로도 할 수 없는 두 개의 원리가 만들어지는 도형을 발견했는데, 완전한 원형과 정사각형이라네.

로마의 건축가로 정식 이름이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인 비트루비우스는 기원전 1세기 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열 건에 이르는 『건축에 관하여』를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당시 알려진 그리스 전통의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건축법을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일종의 규범 지침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속에서 당시 건축가 작업실에서 얻은 실제적 처리방법을 구체화시켰습니다.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는 온갖 종류의 건물들을 바닥 평면의 반지름 주변으로 모든 부분들이 집중되는 디자인을 고안했으며 모두 “원형 인간”을 상기시키는 것들입니다. 그는 인체의 기하를 우주의 일체와 완전함에 적용했습니다. 브라만테가 몬토리오의 성 베드로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할 때 레오나르도의 이런 드로잉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점차 대지 자체가 인간의 이미지를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지는 성장하는 삶을 갖고 있는데 몸은 흙이고, 뼈는 산맥을 형성하는 바위들의 배열과 집합이며, 연골은 석회암이고, 피는 흐르는 강물이다.

레오나르도는 이와 유사하게 눈과 정신, 그리고 햇빛의 작용 사이의 관계를 정립했습니다. 기계적인 인간에 대한 그의 개념은 공학적 프로젝트에 적용되었고, 또한 공학적 프로젝트는 기계적 인간에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해부학을 지리학자의 자세로 바라보면서 식물학을 부인과 의사의 말투로 설명했습니다.

소우주에 대한 우주구조론은 열두 개의 완전한 모양들 속에서 드러나게 되며 프톨레마이오스(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수학자, 지리학자)의 우주론을 따르는 듯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가 대지를 지방으로 나눈 것처럼 수족들로 나눠야만 한다. 나는 대지의 기능들을 인체의 부분들로 설명하며 인간의 전체 형태와 실체, 그리고 모든 부분들의 운동을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인간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주께서 나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과 관습을 드러낼 수 있게 하실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이런 식의 분석은 지질학과 생리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강물이 비와 산 위의 눈이 녹아서 흐르는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잘못된 이해가 있지만, 레오나르도를 포함해 15세기의 대표적인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객관성에 주안점을 둔 자연주의를 추구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15세기의 과학적 훈련이 있었으므로 이후 예술가들은 그들의 성과에 힘입게 된 것입니다. 수학, 기하학, 광학, 기계학, 광선론, 색채론, 해부학, 생리학은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기본 도구였으며, 공간의 성격, 인체의 구조, 인체의 운동, 비례 등은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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