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와 브라만테의 이름이 공문서에도 자주 올랐다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490년은 드물게 이탈리아 전체가 평화로운 때였으며, 모든 공화국들이 정치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밀라노의 경우 전염병이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예술은 다시 활기를 띠었지만 도덕적으로는 부패했습니다. 마키아벨리로부터 몽테스키외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도덕주의자들은 시민들이 덧없이 행복을 누리는 이 시기가 도덕적으로는 부패했다고 적었습니다. 창고에는 곡물이 가득 찼고, 밀라노의 문화센터인 파비아와 루도비코의 고향 비제바노에는 옛 건물들이 헐리고 커다란 새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정원들이 가꾸어지고 도로가 새롭게 포장되며 건물 외관은 아름답게 장식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재능은 더욱 빛났으며, 밀라노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그와 브라만테의 이름이 공문서에도 자주 올랐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파비아의 낡은 성당 산타 마리아 알라 페르티카를 새로 디자인했습니다.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는 프란체스코 마르티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보다 열세 살 많은 그는 회화와 조각을 수학한 후 공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하수도와 우물에 관한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변속장치, 기어, 대포탄환 조속기, 대포, 추진력 있는 바퀴가 달린 자동 프로펠러 수송수단, 배수펌프, 시계, 노 젓는 배, 물속에서 공격할 수 있는 잠수복 등을 고안했고, 건축에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원래 공학가라는 직업은 고대로부터 군사용 공격 혹은 방어무기를 제작한 데서 비롯한 말입니다. 로마의 시저 시대에 기록을 남긴 비트루비우스의 글을 보면 공학가들은 산업용 기계들, 제방, 물 조절기, 펌프, 우물, 운하, 수문, 물시계 등을 건립하거나 분쇄하는 기계는 물론 제분기, 교량, 사원, 굴착기, 기중기, 승강기, 공성망치battering ram, 투석기, 그리고 그 외의 공격용 무기들을 제작했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기계 machine’와 ‘빌딩 building’이란 말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고 공학-건축가engineer-architect란 말은 자연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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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잡아당기는 장치와 소용돌이 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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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도랑을 청소하는 기구>
레오나르도는 공작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소규모 기계들을 많이 제작했으며, 그것들 중에는 회전하는 분수, 커튼을 올리고 내리는 기계도 포함됩니다. 그 후 올리브를 짜는 장치, 문을 자동으로 닫히게 하는 장치, 가지촛대, 아주 밝은 빛을 내는 탁상램프, 접는 가구, 대형 상자를 위한 자물쇠, 거울(특히 팔각형 거울로 그 안에 서면 수없이 많은 이미지들이 반사된다),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팔걸이의자, 목욕탕과 세탁소, 도랑을 청소하는 기구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이런 디자인들은 독창적이었으며, 매우 훌륭한 것들로 인정을 받아 그는 궁정에서 벌어지는 만찬에 종종 초대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