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문하에 들어간 미켈란젤로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카프레세의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집


미켈란젤로 부오나르로티Michelangelo Buonarroti는 1475년 3월 6일 월요일 해뜨기 네 시간 전 토스카니 사람들의 마을 카프레세Caprese로 불리운 아레조Arezzo 근처 작은 언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레조에서 북쪽으로 48km 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아레조의 현재 공식 명칭은 카프레세 미켈란젤로입니다. 미켈란젤로를 기리기 위해 마을 명칭 뒤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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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치아카의 <여행자들의 숙박소>, 1530년경, 패널에 유채, 85-71.5cm.

당시 피렌체의 거리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 로도비코Ludovico di Leonardo Buonarroti Simoni는 피렌체의 공무원으로 작은 도시 카프레세의 시장podesta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심이 깊고 선량하지만 구식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로도비코는 6개월의 시장 직을 마친 후 가족을 데리고 피렌체로 돌아와서 시가 내려다보이는 산타 크로체 근처 작은 마을 세티냐노에서 중소 규모의 농장을 경영했습니다. 부오나로니 가는 부유했으므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와 시외에 위치한 두 저택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 프란체스카Francesca Neri di Miniato del Sera는 아들 셋을 더 낳고, 미켈란젤로가 여섯 살 때인 1481년에 타계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둘째 아들이었고, 첫째 아들 레오나르도는 도미니크회 수사가 되었는데, 가족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것 같았습니다. 세째 아들은 부오나르로토Buonarroto로 불과 두 달 동안이었지만 시의원이 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피렌체로 돌아온 후 아무 일도 안 하다가 미켈란젤로가 열 살 때인 1485년에 재혼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어려서부터 돌 깍기를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그가 조각가가 되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예술가란 직업은 부유층에서 볼 때 미천하게 취급되었으며, 아버지는 그가 피렌체의 은행가이면서 상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조각에 집념을 갖고 있음을 알고는 피렌체의 유명한 프레스코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1449-94)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해주는 것이 아들의 장래를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미켈란젤로가 열세 살 때 그로부터 수학하게 했습니다. 로도비코는 미켈란젤로가 기를란다요 문하에서 3년 동안 수학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488년 4월 1일부터 그가 말한 "기본 미술 the prime art"인 조각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기를란다요는 크고 매우 훌륭한 작업장을 갖고 있었고, 미켈란젤로는 그로부터 드로잉과 템페라 그리고 프레스코를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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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 피나의 장례식>의 부분, 1473-75, 프레스코도메니코 기를란다요는 발도비네티와 베로키오로부터 수학했습니다. 어려서 금 세공가 아버지로부터 금 세공을 배웠으며, 그의 이름은 금과 은으로 화관을 만든 데서 유래했습니다. 바사리에 의하면 “기를란다요는 상점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언뜻 보고서도 그를 아주 닮게 그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산타 피나 예배당에 <성 피나의 장례식>을 그렸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네 살이었으며, 1480년 피렌체 오냐상티 성당과 수도원 식당에 네 점의 프레스코를 그린 후 대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기를란다요의 양식은 딱딱하며 단조롭습니다. 그와 동시대 화가 보티첼리에 비해 유행에 뒤진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장인적 기교에 뛰어나고 사업에 능통해 피렌체에 훌륭한 작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동생들인 베네데토와 다비드가 조수로 그를 도왔습니다.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가서 시스티나 예배당에 <물고기를 잡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는 그리스도>를 그리면서 배경의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고대의 도시 로마에 머무른 동안에는 오래된 아크, 목용탕, 기둥, 수도교aqueduct, 원형경기장 등을 드로잉하는 훈련을 했으며, 언뜻 보고도 재현할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그는 자와 컴퍼스가 없이도 대상을 정확한 비례로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장을 모든 예술가에게 열어놓고 누구든지 와서 일하게 했으며, 크고 작은 작업을 가리지 않고 주문을 받아 조수들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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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그리스도의 세례 Baptism of Christ>>, 1486-90, 프레스코, 산타 마리아 노벨라 토르나부오니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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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모의 알현 Presentation of the Virgin>, 1486-90, 프레스코, 산타 마리아 노벨라 토르나부오니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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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모의 알현 Presentation of the Virgin> 가운데 미켈란젤로가 그린 부분


당시 화가의 문하에 들어간다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받은 작업에 참여하여 부분적 일을 맡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켈란젤로가 기를란다요의 작업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두 점을 꼽을 수 있는데, 1486~90년에 프레스코화로 제작된 <그리스도의 세례 Baptism of Christ>에서 세례자 요한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과 <성모의 알현 Presentation of the Virgin>에서의 누드로 앉아 있는 남자와 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으로 추정됩니다.기를란다요의 작품에는 과도한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는 회화적 이야기를 가볍게 여겼는데,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성가대석에 그린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생애의 경우 그림은 이야기적이더라도 성서를 모르는 사람은 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는 묘사하는 화가였지 이야기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상 자체가 관람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바랐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얼굴의 표정으로 그림이 생기 있게 했습니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매우 열렬하게 입체감과 해부, 색채기술, 대기의 원근법 등을 탐구했지만, 그는 일반적 수준 그 이상이 못되었습니다. 그는 회화에서 실험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시대의 평균적 특성을 갖춘 그는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기념비적인 효과를 창출하려고 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세부적 관찰이 섬세하고 전체를 파악하는 점에서 위대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도안가이자 위대한 화가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훗날 아는 체 하기를 좋아하는 기를란다요로부터 배운 것이 별로 없었다고 투덜거렸지만, 그의 작품 <도니 톤도 Doni Tondo>(1504)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에서 기를란다요의 영향이 두드러져 그가 스승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초기 드로잉을 보면 그가 과거 피렌체 대가들 조토Giotto(1266년경~1337)와 마사초Masaccio(1401~28)의 작품을 연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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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의 <사도 요한의 승천>, 1335년경, 프레스코, 산타 크로체 페루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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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조토 양식으로 그린 두 인물>, 1490년경, 32-1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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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마사초의 ‘사그리 델 카르미네’ 모사>, 1490년경, 31-18.5cm.

그가 1490년경 14살 혹은 그 이전에 그린 드로잉 두 남자의 모습은 조토가 1335년경에 그린 <사도 요한의 승천 Ascension of John Evangelist>의 왼쪽 두 사람을 모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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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시한 이마누엘 칸트


 
권리가 공리에 좌우되지 않는다면, 권리의 도덕적 근거는 무엇일까?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개인이 타인의 행복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답으로 제시합니다. 자기소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나의 삶, 나의 노동, 나라는 인간은 나에게,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며, 사회가 그것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소유라는 개념에는 자유지상주의자만이 찬성할 수 있는 것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낙오자를 보호할 안전장치가 없는 자유시장,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동선을 장려할 거의 모든 수단을 배제하는 최소국가, 합의를 완벽한 행위로 칭송하여 합의한 식인행위나 노예 매매처럼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마저 인정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소유권과 제한된 정부를 지지한 존 로크John Locke(1632-1704)도 무한정 자기소유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우리 삶과 자유는 우리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는 로크의 이론은 하느님을 끌어들이는 탓에, 종교적 단정에서 벗어나 권리의 도덕적 근거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문제가 됩니다.

의무와 권리에 대한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의 주장은 우리가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생각에 기초합니다. 칸트는 1724년에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80여 년 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마구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부모님 모두 개신교 경건주의자들이어서, 종교적 내면의 수행과 선행을 강조했습니다.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열여섯 살 때 입학했으며, 성적도 우수했습니다. 한때 가정교사를 하다가 서른한 살에 처음 강단에 섰습니다. 기본급 없이 수강 신청한 학생 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강사였습니다. 그는 인기가 좋은 데다 부지런해서 일주일에 강의를 스무 개나 소화했는데,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법학, 지리학, 인류학 등 주제도 다양했습니다.

그의 나이 57세 때인 1781년에 첫 번째 주요 저서 『순수이성 비판』이 출간되었다. 데이비드 흄과 존 로크의 경험론에 도전한 책입니다. 그리고 그는 4년 뒤에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출간했는데, 도덕철학에 관한 여러 저서들 가운데 첫 번째 책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1748-1832)의 『도덕과 입법의 원리』(1780)가 출간된 지 5년 뒤에 나온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칸트는 공리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도덕이란 행복 극대화를 비롯한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는 미국 독립혁명(1776) 직후에, 그리고 프랑스 혁명(1789) 직전에 나왔습니다. 두 혁명의 정신적, 도덕적 파장과 더불어 이 책은 18세가 혁명가들이 인권이라 부른 것과 오늘날 우리가 보편 인권이라 부르는 개념에 막강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는 중대한 질문을 다룹니다.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칸트의 답은 이후 도덕정치철학에 줄곧 나타났습니다. 그의 철학은 도덕과 정치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현대의 보편 인권 개념을 예고한 것입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도입부에서 그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해 소개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공리주의 시각으로, 이에 따르면 정의의 개념을 규정하고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결정하려면 사회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정의를 자유와 연관시키는 시각으로,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관련 예시를 제시합니다. 이들은 소득과 부의 공정한 분배란 규제 없는 시장에서 재화와 용역의 자유로운 교환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다르면, 시장을 규제하는 행위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기에 부당합니다. 세 번째는 정의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것, 즉 재화를 분배해 미덕을 포상하고 장려하는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미덕을 기초로 삼는 사람은 정의를 좋은 삶에 관한 고찰과 연관 짓습니다.

칸트는 첫 번째 시작, 즉 행복의 극대화와 세 번째 시각, 즉 미덕의 장려를 거부합니다. 둘 중 어느 것도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정의와 도덕을 자유와 연관시키는 두 번째 시각을 열렬히 옹호했습니다. 칸트는 우리가 흔히 시장의 자유나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자유에는 애초에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공리주의를 거부했습니다. 공리주의는 권리를 따질 때에도 최대행복에 기여하는지 두드려보는 탓에 권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연히 생기는 욕구에서 도덕 원칙을 끌어내려 함으로써 도덕을 생각하는 방식부터 그르친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쾌락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수가 특정 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법을 정당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도덕은 사람들이 특정한 시기에 드러내는 흥미, 바람, 욕구, 기호 같은 경험적 요소에만 좌우될 수 없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이런 요소들은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라서 보편 인권 같은 보편적 도덕 원칙이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도덕 원칙을 기호나 욕구를 바탕으로, 심지어 행복을 바라는 욕구를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도덕의 진실을 오해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공리주의가 말하는 행복 원칙은 “도덕성 확립에 어떤 식으로든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그를 선하게 만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일이며, 이익 추구에 신중하거나 약삭빠르게 만드는 것은 덕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샌델은 도덕을 사람들의 흥미와 기호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도덕의 위엄이 땅에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고, “계산에만 밝은 사람이 되게 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의 바람과 욕구가 자격미달이라면, 무엇이 도덕의 기초가 될까?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순수 실천 이성’을 연습해 도덕의 최고원칙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성으로 어떻게 도덕법에 도달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칸트는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우리가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율적 존재이며,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이성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능력이 있고, 이는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칸트는 이성적 능력이 우리 능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우리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능력도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성적 동물일 뿐 아니라 지각력 있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지각력’이란 감각과 느낌에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벤담도 옳지만 절반만 옳을 뿐입니다. 그러나 쾌락과 고통이 “우리의 통치권자”라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칸트는 이성이야말로, 적어도 때로는,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성이 우리의 의지를 통치할 때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에 내몰리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두 가지 능력이 합쳐져 우리는 특별한 존재,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가 된다. 이 능력으로 우리는 단지 식욕만을 느끼는 동물에서 벗어난다.

칸트의 도덕철학을 이해하려면 그가 말하는 자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칸트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에게 자유는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개념이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다른 동물처럼 쾌락이나 고통 회피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식욕과 욕구의 노예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샌델은 우리가 어떤 맛으로 주문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듯하지만, 이는 어떤 맛이 내 기호에 가장 잘 맞는지 파악하는 행위이며, 여기서 내 기호는 애초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칸트는 기호를 충족하는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때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미 결정된 내용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어떤 맛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욕구일 뿐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에 걸맞은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만이 할 수 있고 대부분의 동물이 할 수 없는 선택인 것입니다.

타율적으로 행동하는 건 우리 밖에 주어진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우리는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도구가 됩니다. 칸트가 말하는 자율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자율적으로, 즉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행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덕에 인간의 삶은 특별한 존엄성을 지닙니다. 칸트의 생각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을 목적으로 취급한다는 뜻입니다. 공리주의처럼 인간을 전체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동기이며, 그것은 특정한 종류라야 합니다. 중요한 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됩니다. “선한 의지가 선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효과나 결과를 낳아서가 아니다”라고 칸트는 말합니다. “비록 ... 이 의지가 원래 의도를 널리 퍼뜨릴 힘이 매우 부족하다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해도 ...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덕법 그 자체에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인데,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칸트에게 동정심에서 나온 선행은 “아무리 옳고, 아무리 다정해도” 도덕적 가치가 떨어집니다. 칸트는 동정심에서 우러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타인을 도울 때, 쾌락을 느끼는 선행 동기와 의무 동기를 구별합니다. 그리고 의무 동기만이 그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타주의자의 동정은 “칭찬과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존중받을 수는 없다.” 그는 선행의 동기가 그 행동이 옳기 때문이라야지 쾌락을 주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도덕이 의무감에서 행동하는 것이라면, 의무의 필수조건을 밝히는 일이 남았습니다. 칸트에게 이를 파악하는 것은 곧 도덕의 최고원칙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칸트가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추구한 목표도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샌델은 칸트가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인 도덕, 자유, 이성을 어떻게 연관 짓는지 살펴본다면, 그의 대답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칸트는 이 개념들을 대조 혹은 이원론으로 설명합니다. 즉 의무 대 끌림, 자율 대 타율, 정언定言명령 대 가언假言명령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나의 의지가 자율적으로 결정될 때만이, 그러니까 나의 의지가 내가 내게 부여한 법칙에 지배될 대만이 나는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유를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내 욕구를 방해받지 않고 추구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이런 생각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애초에 그런 욕구를 직접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욕구를 추구한다고 해서 어떻게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칸트는 자율과 타율을 대조하면서 이 문제를 제기합니다.

나의 의지가 타율적으로 결정된다는 말은 내 외부에서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이때 어려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자유가 내 욕구와 끌림을 따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외부 영향으로 결정되는 욕구나 끌림에서 나오지 않던가? 샌델은 그 답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칸트가 관찰하기로는 “자연의 모든 것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는 모든 행동이 특정 법칙에 지배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이성입니다. 우리는 감각이 전달하는 쾌락과 고통에 지배되는 감각적 존재일 뿐 아니라, 이성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성이 우리의 의지를 결정한다면, 그 의지는 자연이나 끌림의 명령에 구애받지 않는 선택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이성이 항상 의지를 지배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면, 이성이 나의 의지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인간에게 이성적 능력이 있다고 말한 철학자는 칸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자유와 도덕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까다롭습니다. 공리주의자를 포함한 경험론자에게 이성은 전적으로 도구의 개념입니다. 이성은 특정한 목적, 즉 이성이 제공하지 않는 목적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게 해줍니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1588-1679)는 이성을 “욕구를 찾는 정찰병”이라고 불렀으며,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1711-76)은 “열정의 노예”라고 불렀습니다.

샌델은 공리주의자들이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았지만, 이때의 이성은 도구로서의 이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이성의 역할을 어떤 목적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생긴 욕구를 충족하여 공리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칸트에게 이성은 한낱 열정의 노예가 아닙니다. 칸트는 모든 이성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본능에 따를 때 더 잘 살 거라고 말합니다. 그는 도덕과 관련된 실천 이성을 도구로 여기지 않고 “어떤 경험적 목적에도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 이성”으로 여겼습니다.

이성이 어떻게 이를 해낼 수 있을까? 칸트는 이성이 의지에 명령하는 두 가지 방법을 구별합니다. 하나는 잘 알려진 가언명령입니다. 가언假言명령은 이성을 도구로 활용합니다. ‘X를 원하면 Y를 하라’는 식인데, 말하자면 ‘사업가로서 좋은 명성을 얻고 싶다면 고객을 정직하게 대하라’는 명령입니다.

칸트는 언제나 조건이 따라붙는 가언명령을 조건 없는 명령인 정언定言명령과 대조합니다. “어떤 행동이 다른 것의 수단으로만 바람직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가언명령이다.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따라서 이성에 부합하는 의지에 꼭 필요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정언명령이다.” 칸트가 말하는 정언은 조건이 없다는 뜻입니다. 정언의무나 정언권리는 특정한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의무나 권리를 뜻한다.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은 다른 어떤 목적에도 기대지 않고, 말 그대로 정언적으로 명령합니다. “그 명령은 행동이나 예상되는 결과와 무관하며, 명령의 형태 그리고 명령이 도출된 원칙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행동에서 본질적으로 선한 부분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애초의 정신 자세에 달렸다.” 칸트는 오직 정언명령만이 도덕적인 명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무엇이 정언명령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할까? 칸트는 “그 자체로 절대적이며 다른 어떤 동기도 포함하지 않은 채 명령을 내리는 실천 법칙”을 이해하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보편적 법칙의 첫 번째 공식은, “행동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이는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준칙이라야 한다.” 그가 말하는 ‘행동준칙’은 내 행동에 근거가 되는 규칙이나 원칙을 뜻합니다. 내 행동준칙이 보편화할 수 있는 준칙인지 판단하고 앞으로도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가능한 결과를 예측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행동준칙이 정언명령에 맞는지 판단해본다는 뜻입니다. 보편화하는 것은 강도 높은 도덕적 요구에 초점을 맞춰, 내가 하려는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처지보다 내 이익과 처지를 앞세우지 않는지 점검하게 합니다.

정언명령의 도덕적 효력은 칸트의 두 번째 공식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공식입니다. 그는 그 어떤 이익이나 목적도 도덕법의 기초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도덕법은 사람, 즉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에게만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존재만으로도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안에는, 그리고 오로지 그것 안에만 정언명령의 토대가 존재할 것이다.

무엇이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존재만으로도 절대적 가치를 지닐까? 센델은 칸트의 답이 인간이라고 말합니니다. “인간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는, 이런저런 의지에 따라 임의로 사용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한다.” 칸트는 인간과 물건의 근본 차이가 바로 이 점이라고 일깨웁니다. 사람은 이성적 존재입니다. 사람은 상대적 가치를 지닐 수도 있지만,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즉 이성적 존재에는 존엄성이 있습니다. 칸트는 이 추론으로 정언명령의 두 번째 공식을 내놓습니다.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인간은 목적이라는 공식입니다.

칸트에게 자살은 타살과 마찬가지로 정언명령을 위반합니다. 고통스런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면, 나를 고통 완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듯이 인간은 “단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물건”이 아닙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처분할 권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 내게도 없습니다. 칸트 생각에, 자살이 잘못인 이유는 타살이 잘못인 이유와 같습니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면서 그 자체를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칸트에게 자기 존중과 타인 존중은 같은 원칙에서 나옵니다. 존중 의무는 이성을 지닌 존재, 인간성을 지닌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의무입니다. 이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존중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애착과는 다릅니다. 사랑, 공감, 연대감, 동료의식은 타인 중에서도 특정한 타인에게 더 끌리는 도덕 감정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감정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칸트의 존중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며, 우리 모두에게 비차별적으로 존재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도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용납되지 않습니다.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도덕법을 생각해, 의무감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도덕법은 정언명령인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여겨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뤄집니다. 정언명령에 다른 행동만이 자유로운 행동입니다. 가언명령에 따른 행동은 외부에 주어진 이익이나 목적을 의식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칸트에게 자유롭게 행동하기, 즉 자율적으로 행동하기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즉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하기와 같은 하나의 개념입니다.

칸트는 도덕과 자유에 대한 이런 사고방식으로 공리주의를 철저히 비난합니다. 특정한 이익이나 욕구, 말하자면 행복이나 공리 따위를 도덕의 기초로 삼으려는 노력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결코 의무가 아니며, 특정한 이익을 위해 행동할 필요성이기 때문이다.” 이익을 기초로 한 원칙은 “언제나 조건적이며, 도덕법이 될 수 없다.

정언명령이 의지의 산물이라면, 사람마다 정언명령이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같은 도덕법을 선택하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는 물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칸트에 의하면, 순수 실천 이성을 발휘할 때만이 우리가 특정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순수 실천 이성을 발휘한다면 누구나 같은 결론에, 유일한 그리고 보편적인 정언명령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의지와 도덕법에 다른 의지는 똑같은 하나이다.

우리가 인간의 행위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바라볼 때 취할 수 있는 관점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성적 존재는 ...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 지배하는 법칙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관점을 갖는다. 첫째, 감각적 세계에 속해 있는 한, 자신이 자연법칙(타율)에 지배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둘째, 지적 세계에 속해 있는 한, 자연법칙과는 독립되어 경험이 아닌 오직 이성을 토대로 한 법에 지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칸트는 지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나를 자유로운 인간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감각 세계의 여러 원인이 초래한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가 바로 자유로운 상태(이성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적 존재라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 나의 의지는 항상 어떤 이익이나 욕구에 구애받습니다. 선택은 하나같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타율적 선택에 그칠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이런저런 충동이나 끌림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칸트의 도덕철학을 탐구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가 몇 가지 구체적 질문에 도덕철학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성도덕에 관한 그의 견해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입니다. 그는 부부 사이의 성관계를 제외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성적 행위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을 소유할 수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동의한 경우라도 자유로운 성관계(혼외정사)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두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둘을 대상화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성관계가 두 사람에게 만족을 준다 해도 “두 사람은 상대의 인간성을 욕보인다. 이들은 인간성을 욕정과 끌림의 충족하는 도구로 이용한다.” 자유지상주의의 자기소유 개념과는 정반대로, 칸트는 우리는 자신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에게 사람을 단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 보니, 우리 몸과 우리 자신을 다루는 방식이 제한됩니다. “인간은 자신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인간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다.

칸트는 거짓말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거짓말을 부도덕한 행위의 으뜸으로 꼽습니다. 친구가 당신 집에 숨어 있고, 살인자가 문 앞에 와서 그 친구를 찾는다고 가정할 경우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옳은 행위가 아니겠는가? 칸트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는 결과에 상관없이 항상 유효합니다.

칸트와 동시대 사람인 프랑스 철학자 뱅자맹 콩스탕Benjamin Constant(1767-1830)은 이 비타협적인 입장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는 진실을 알 자격이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며, 살인자 같은 사람은 당연히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칸트가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잘못인 이유는 진실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살인자를 도와 사악한 짓을 저지르게 한다면 그것은 꽤나 무거운 불이익입니다. 그러나 칸트에게 도덕은 결과가 아닌 원칙의 문제입니다. 거짓은 종류를 막론하고 “진실이라는 원천을 오염시킨다. ... 따라서 진실하기(정직하기)는 신성하고 조건 없이 적용되는 이성의 법칙이며, 그 어떤 편의상의 예외도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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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찌그러진 가슴을 펴자

 


(이 글은 저도 몸 담고 있는 몸살림연신내동호회(Daum 카페) 서주원 사범의 글입니다. 몸살림운동에 관해 알기를 원하시는 분은 Daum 카페에서 검색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샤워를 할 때 제 가슴을 보고 의아해했습니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왼쪽 젖꼭지는 튀어나와 있는데, 오른쪽 젖꼭지는 안으로 말려

들어가간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비누칠을 하거나 물을 뿌리며 손으로 가슴을 닦으면서 맨 밑에 있는 갈비뼈

좌와 우를 만져보면 느낌이 달랐습니다.

왼쪽은 갈비뼈가 위로 솟아 있고 오른쪽은 반대로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명치뼈와 갈비뼈 사이의 공간은 왼쪽은 넓은데, 오른쪽은 아주 좁았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의아해했지만,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의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어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몰랐습니다.

 

몸살림운동을 하게 되고 나름대로 사람들의 몸을 보고 비교도 해 보면서 드디어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몸을 펴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완전히 좌우 대칭인 몸을 만들지는 못했

지만, 상당히 비슷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 얻은 것이 건강이었습니다.

 

몸이 정확하게 대칭이 돼야 정말로 건강해진다는 것을 그 동안 운동을 하고 제 몸을

관찰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저의 경우 좌우 비대칭이 된 것은 왼쪽 가슴은 정상에 가까운데 오른쪽 가슴이 찌그러들어

있었기 때문이고, 이제 상당히 비슷하게 된 것은 운동을 해서 찌그러든 가슴이 펴졌기 때문입니다.

몸이 대칭 상태를 회복할수록 몸의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현재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 특별반이나 청소년 특별반, 일반 성인반 수련을 할 때 2번 방석운동을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합니다.

먼저 좌와 우의 빗장뼈(쇄골) 바로 밑의 동일한 지점을 엄지손가락으로 동일한 강도로 눌러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아프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10명 중 2~3명은 오른쪽이 더 아프다고 하고, 나머지 7~8명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예민하게 느끼는 몇몇 분은 더 아픈 지점을 정확히 느끼지만, 나머지는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드물게는 왼쪽이 더 아프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왼쪽이 더 아프다고 하는 경우에는 혹시 왼손잡이가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왼손잡이인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왼손잡이는 대개가 왼쪽이 아픕니다.

그러나 왼손잡이가 아닌데도 왼쪽이 더 아프다고 하는 경우에는 왼쪽 어깨가 앞으로 틀어져

잘못돼 있기 때문입니다.

빗장뼈 바로 밑뿐만 아니라 더 내려와 흉골(가슴뼈. 가슴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좌우의

늑골과 연결되어 흉부의 앞 벽을 이룬다)을 중심으로 해서 좌와 우를 눌러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아프냐고 물어봅니다.

답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10명 중 2~3명은 오른쪽이 더 아프다고 하고, 나머지 7~8명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맨 밑의 갈비뼈를 눌러 보라고 하고, 어느 쪽이 더 올라와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이때에는 반이 넘는 사람이 왼쪽이 더 올라와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제가 질문을 합니다.

“오른쪽이 정상일까요, 왼쪽이 정상일까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모르니까 대답을 못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때 제가 질문 받은 것을 얘기해 드립니다.

왼쪽 맨 밑의 갈비뼈가 툭 튀어나와 있는데,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하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아 보았습니다.

이에 대한 제 답변은 왼쪽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다고

 말합니다.

튀어나와 있는 것이 정상이고 죽어 있는 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가슴과 왼쪽 가슴 윗부분을 손으로 만져 보라고 하고, 어느 쪽이 더 크냐고

물어봅니다.

반 정도는 왼쪽이 크다고 하고, 나머지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명치와 갈비뼈 사이의 공간 오른쪽과 왼쪽을 눌러 보라고 하고, 어느 쪽이 더 크냐고

 물어봅니다.

이때에는 반이 넘는 사람이 왼쪽이 더 크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나머지는 모르겠다는 표정이고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른손잡이는 대개 오른쪽 가슴이 찌그러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왼손잡이는 반대로 왼쪽 가슴이 찌그러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 손을 사용합니다.

손으로 잡아당기거나 밀면서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합니다.

오른손잡이는 주로 오른손을 쓰고 왼손잡이는 주로 왼손을 씁니다.

이때 위팔뼈가 빗장뼈에 압박을 가하게 되고, 빗장뼈에 가해진 압박은 다시 갈비뼈로 전달됩니다.

이렇게 해서 가슴이 찌그러들게 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찌그러들면 흉강(胸腔: 심장, 폐 따위가 들어 있는 가슴 안쪽의 빈 부분)이 원래의 크기보다

 줄어듭니다.

심장이 빨리 뛰거나 늦게 뛰는 부정맥 현상은 이 좁아진 공간 때문에 우심방이 눌려 충분히 운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눌려 충분히 운동하지 못하니까 이를 보충해 주기 위해 빨리 뛰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피곤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날에는 심장이 심하게 빨리 뛰었습니다.

때로는 불안감까지 엄습해 왔습니다.

피곤할 때에는 사람이 축 쳐지게 돼 가슴 공간(흉강)이 좁아지기 때문에 심장이 빨리 뛰는 것입니다.

술을 마실 때에는 알코올 기운 때문에 몸을 바르게 가누지 못합니다.

사람한테 가장 자세가 나쁜 때는 술 마실 때입니다.

자고 일어난 그 다음날에는 술 마실 때의 나쁜 자세로 인해 몸이 굽고 틀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장이 빨리 뛰는 것입니다.




가슴을 펴면 이런 현상(부정맥 증상)은 사라집니다.

제 경우에는 2번 방석운동을 3주 정도 하니까 이런 증세가 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대개 한 달 정도 2번 운동을 하면 이런 증세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베개를 이용해 공명틔우기를 하는 것입니다.

어깨가 앞으로 많이 굽어 있는 사람은 2번 운동 정도로는 어깨가 잘 펴지지 않고, 어깨가 펴지지

않으면 가슴도 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툼한 메밀 베개에 방석을 한 장 접어서 올려놓고 그 위에 허리를 대고 누워 봅니다.

이때 방석에 닿는 지점이 견갑골 바로 아래, 흉추 7번 바로 아래에 오면 공명틔우기 자세가 된 것입니다.

견갑골보다 위로 가면 등이 뒤로 꺾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그럴 때에는 접은 방석을 펴서 올려놓고 해 보고, 그래도 흉추 7번보다 위로 닿으면 아예 방석을

빼 버리고 베개만 가지고 하면 됩니다.

또 방석 한 장 가지고 해서는 흉추 7번 밑보다는 흉추와 요추가 만나는 지점, 즉 허리에서 가장 쏙

들어가 있는 지점에 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방석을 한 장 더 접어서 올려놓으면 닿는 지점이 흉추 7번 바로 밑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어깨가 많이 아픈 사람이 이 운동을 하면 어깨가 너무 아파 몇 분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베개만 가지고 베개가 흉추와 요추가 만나는 지점에 오도록 하고 10분간 누워 있어도

 됩니다.

이렇게만 해도 가슴이 많이 펴집니다.

그런데 이것도 안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방석 두 개를 접어 쌓아 놓고 접힌 부분을 허리에 받치고 10분간 누워 있으면 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엉덩이 전체가 바닥에 닿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아파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2번 방석운동을 하시면 됩니다.

방석을 한 장 접어 접힌 부분이 견갑골보다 밑으로 오게 하고 누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해도 대개는 한 달 정도면 가슴이 펴집니다.

가슴을 펴면 흉강 안에 들어 있는 장기의 문제는 풀립니다.

심장과 폐뿐만 아니라 내분비와 면역계통도 살아납니다.

내분비계통이 살아나면 피부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컨대 빠진 머리가 다시 납니다.

면역계통이 살아나면 면역력이 높아집니다.

예컨대 병균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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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의 상체관련 질환: 어깨 근육풀기


 

(이 글은 저도 몸 담고 있는 몸살림연신내동호회(Daum 카페) 서주원 사범의 글입니다. 몸살림운

동에 관해 알기를 원하시는 분은 Daum 카페에서 검색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1. 어깨 근육


 

어깨 근육은 팔, 목, 등과 연결되어 있어서 상체 근육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근육이다. 여기에서는 근육 자체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어깨근육으로 통칭하여 표현 하겠다. 어깨는 어깨 자체뿐만 아니라 등과 가슴,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목, 팔, 심지어는 얼굴의 근육과 신경의 상태를 결정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 어깨 근육과 관련된 질병

어깨 근육이 굳으면 직접적으로는 오십견과 같은 어깨 통증을 유발하고 목을 둘러싼 근육에 영향을 주어 목 디스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어깨 근육이 굳으면 고혈압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기에 쉽게 걸리고 비염이나 두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목이 아픈 사람은 목만 아프다고 느끼는데, 목이 좋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어깨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목만 풀리고 어깨가 안 풀리면 당장은 목이 시원하다고 느끼지만, 목은 조만간 다시 아프게 된다. 이는 목 근육 중에서 가장 큰 등 세모근僧帽筋이 어깨가 풀리지 않으면 다시 굳어 목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등세모근은 어깨뼈를 감싸고 있는데, 어깨뼈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등세모근이 다시 굳게 되는 것이다.

등이 조이고 당긴다고 느끼는 사람 역시 어깨에 이상이 있다. 등을 풀어 주면 당장은 등이 시원해지는 것 같아도, 조만간 등은 다시 조이고 당기게 된다. 등이 조이고 당기는 것 역시 어깨가 앞으로 우그러들고 몸이 굽어 어깨뼈가 좌와 우로 밖으로 벌어지고 위로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팔이 시리고 저리거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어깨가 풀려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손목을 아래로 꺾는 것은 잘 되는데 위로 젖히는 것이 잘 안 되는 사람도 어깨뼈가 틀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증세가 있는 사람의 어깨를 만져 보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일단 어깨뼈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당장 증세가 많이 풀린다.

어깨에서 팔까지 저리고 아파서 팔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견비통肩臂痛이라는 질환 역시 어깨뼈가 틀어져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어깨관절을 잡아 주고 어깨뼈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이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손이 떨리는 증상인 수전증手顫症 역시 어깨뼈가 틀어진 것이 원인이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날이나 피곤할 때 손이 떨리는 증세가 더 심해지는데, 몸이 더 굽어 어깨뼈가 더 많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팔꿈치가 아픈 엘보라는 증세도 어깨뼈가 제자리를 잡아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엘보가 심하지 않은 사람은 보통 접질린 손가락을 바로잡아 주고 나서 삐거나 접질린 손목을 바로잡고, 팔꿈치 바로 위를 받쳐 주고 몇 번 털어 주면 어렵지 않게 그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엘보가 심한 사람은 이런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루에서 3일 사이에 다시 통증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결국 어깨뼈가 바로잡혀야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어깨 근육 풀기 방법

 

1) 방석 대고 누워 있기

오십견과 같이 어깨뼈기 틀어져서 통증을 심하게 느끼는 경우에는 상체펴기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나 오십견 증세가 있는 사람은 상체펴기를 하면 어깨가 너무 아파 이 운동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 이 운동을 하면 어깨가 완전히 뒤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때 가해지는 힘 때문에 어깨가 심하게 아픈 것이다. 아파도 참고 이 운동을 하면 효과가 좋겠지만,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운동은 너무 큰 부담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선 기본운동 중에서 방석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우선은 방석을 높게 하지 말고 한 장만 접어서 접힌 부분이 견갑골 아래에 걸치도록 하고 누워있는 것이 좋다. 그 다음에는 두 장을 접어서 올려놓고 하면 된다. 이렇게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어깨가 뒤로 넘어가면서 통증이 조금씩 풀린다. 이렇게 한 연후에 어느 정도 풀린 다음에 어깨를 쳐 준다든지, 상체펴기를 본격적으로 하면 된다.



 

2) 어깨 쳐 주기

어깨가 아플 때 팔이 뒤로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은 어깨가 앞으로 넘어와 딱딱하게 굳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반대편의 말아 쥔 주먹으로 여러 번 어깨를 때려 주면 근육이 많이 풀린다. 물론 이것만으로 통증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는 양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게 하고 양 팔이 귀를 스치도록 세게 팔을 돌려 주는 것을 반복하면 통증이 많이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뒤로 돌리는 것도 근육에 힘을 가하는 한 방식이다.



 

3) 상체펴기

어깨가 아픈 사람도 근본적으로 어깨뼈가 제자리를 잡아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어깨뼈가 완벽하게 제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깨뼈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온몸이 완벽하게 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통증에서 벗어날 정도로 자리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본운동 중 상체펴기는 어깨가 제자리를 잡게 하는 데 아주 유용한 운동법이다.



 

4) 목 뒤로 졎히기

상체펴기는 방에 눕고, 베개와 같은 도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무실이나, 밖에 서 있는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점이 문제다. 이 때 유용한 방법이 온몸펴기인데 목을 완전히 뒤로 젖히고 온몸펴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목으로부터 시작해서 어깨에 이르기까지 근육이 풀려 어깨뼈가 제자리 잡는데 도움이 된다.



 

 

5) 공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하기

심하게 근육이 뭉치거나 굳어있는 경우에 위의 방법으로 잘 안풀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야구공과 같은 단단한 공을 어깨 뒤쪽에 대고 방바닥에 누워 체중을 실어 누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심하게 아픈데 아픈 것을 참고 계속 하면 심하게 굳어있는 어깨 근육이 풀려 틀어진 어깨뼈가 제자리잡고 근육도 부드러워지게 된다. 이 때 공이 아닌 나무방망이와 같은 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



 

6) 도움주기

아픈 사람의 어깨를 꽉 잡아주면 된다. 안마하는 것처럼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꽉 잡아주어야 한다. 세게 잡으면 처음에는 통증이 심하지만 몇 초만 지나면 근육이 풀리면서 견딜 만하게 된다. 그러면 꽉 잡은 손에서 근육이 풀리면서 빠져나간다. 이것을 반복하면 점차 근육이 풀리게 된다.





 

3. 어깨 근육 풀기의 효과

어깨근육이 풀리면 목을 둘러싼 근육이 풀려 두통현상도 해소될 수 있다. 그리고 등 근육이 풀려 고혈압도 현저하게 좋아질 수 있다. 또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며, 뿐만 아니라 각종 면역력이 강화되어 감기, 몸살 등도 쉽게 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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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어떤 글도 드로잉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어떤 글도 드로잉보다 정확할 수 없다면서 하나의 이미지는 한 권의 책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드로잉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으며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카메라처럼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망막과 종이가 일체인 것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대상을 재현해냈습니다. 그는 눈이 마음보다 실수를 덜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회화와 음악을 비교해서 “음악은 회화의 누이동생”이라면서, 소리는 오래 가지 못하므로 음악은 표현하는 순간 죽게 되고 반복을 통해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회화와 조각을 비교해서는 그 어떤 그림도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뜬 조각보다 오래 갈 수 없고, 조각은 회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경이로운 것’으로 좀 더 지성적이며, “빛·어둠·색·부피·모양·위치·거리·근접·운동·조화”라는 열 가지 원리들에 기초하므로 어떤 것도 재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회화를 과학이라고까지 본 그는 회화를 시각 세계의 딸로 묘사하면서 “자연의 손녀이자 신과도 관련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가 말한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아닌 자연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개념으로서 자연의 조화 속에 내재하는 신을 의미합니다. 그는 예술을 가족관계에 비유해서 음악은 회화의 누이동생이라 묘사했고, 화염은 쇠의 어머니,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눈을 ‘영혼의 창문’으로 보고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눈에서 발하는 미립자들에 의해 영상이 생긴다고 이해했지만, 레오나르도는 눈이 발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광선을 받아들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해부학적으로 눈을 관찰한 그는 렌즈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눈이 이미지를 거꾸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입체 영상의 원리, 즉 3차원 입체의 지각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한 순간에 빛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된다고 믿었지만, 레오나르도는 빛이 지나간다고 보고 빛의 속도에까지 관심을 기울였으며 빛이 어떻게 발산하는가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진동을 떨림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수학자 페르마보다 한 세기 이전에 이런 근본적인 법칙을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해 “모든 자연적 현상은 가장 짧은 가능한 수단에 의해 나타난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실험이 훗날 럼포드의 광도계를 예고했습니다.

그가 “달을 확대해서 보기 위해 유리로 만들었다”고 적은 것으로 보아 그가 갈릴레오보다 한 세기 앞서 망원의 원리를 안 듯합니다. 그는 렌즈를 연결했으나 그것들로 망원경의 효시가 될 만한 기구를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고안한 것은 ‘혁명적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레오나르도가 과학에서 거둔 결실은 매우 컸습니다. 그는 과거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했으며,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그의 독학 태도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과도 같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재능으로 무엇을 했느냐 혹은 하지 않았느냐로 칭찬 혹은 책망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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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햇빛 속의 잡목 숲>, 19.4-15.3cm.


019

레오나르도의 <아레조와 발 디 치아나 평지가 있는 지형적 경관>, 10.4-12.4cm.


자연은 그에게 실험실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눈을 뜨고 바라볼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퇴적작용으로 생긴 산에서 조개껍질과 해초 화석을 발견하고는 바다가 한때 대지를 덮은 적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넙적한 유리그릇에 물을 넣어 한 점으로 집중하는 렌즈로 사용했으며, 작은 구멍을 낸 종이를 벽에 대고 광선의 경로를 시위했고, 어둠 속에서 횃불을 빠르게 움직여 불의 선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류트의 줄이 진동할 때는 이중으로 보이는 것이나 탁상에 칼을 꽂아놓고 탁상에 진동이 생기게 하여 칼이 두 개로 보이는 환영을 보여주면서 눈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함을 지적했습니다. 눈이 시각적 인상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함을 지적함으로써 눈이 거울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능을 할 뿐이며 빛이 빠른 속력으로 투사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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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파도의 운동과 흐름>


또한 레오나르도는 물의 운동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돌 두 개를 한꺼번에 연못에 던질 경우 잔잔한 물 위에 생기는 두 개의 동심원은 서로 닿더라도 모두 부서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이지만 레오나르도는 이를 관찰하여 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을 발견해냈습니다. 그는 두 개의 동심원이 부딪쳐서 부서지지 않는 이유를 “물은 미분자들로 구성된 동질이고 진동이 물 자체를 움직이지 않고서도 미분자들을 전파시키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런 원리를 파도에 적용시켜 소리와 빛은 동일한 방법으로 공중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도착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한 노트북를 보면 주로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파비아 대학의 학식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 자신도 학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기계적인 문제에 대한 발견이 그로 하여금 방법론적으로 운동, 요소 등을 분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모든 것에 도전하며 과거 과학의 오류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아주 많은 것들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채 있었고 수세기 동안 잘못 해석되어 왔음을 알고 과학적 발견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견해를 검증·실험하면서 반증을 찾아내어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자신의 의견에 허점이 없도록 동일한 실험을 반복하여 비판의 여지를 없앴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닥치는 대로 의문이 생길 때마다 관찰하고, 관련 서적을 읽고, 학식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가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가운데 세계가 그에게 속했습니다. 1490년경 서른예닐곱 살이었던 그는 노트북에 외래어 사전처럼 보일 정도로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쓰고 또 썼는데, 한 권의 노트북에는 9천 자의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대부분 학문적 어휘거나 외래어 혹은 새로운 어휘들이므로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네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는 단어들이 알파벳순으로 아주 간략하게 정의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역법: 의심스러운 화법 syllogism: suspect way of talking

궤 변: 혼란스러운 화법 sophism: confused way of speaking

분 립: 분열 schism: division

봉 급: 군인의 급료 stipendio: soldiers’ pay


그의 어휘 연결은 논리나 설명이 없는 자유로운 연결로서 일부 작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단어와 서술어도 많이 적었는데, 그가 쓴 단어들은 일부 학자들에게 그의 잠재의식을 탐구하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1490년대에 그는 독서를 많이 했으며, 자신이 읽은 책을 노트북에 다양하게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1497년과 1505년 두 차례에 걸쳐서 자신이 읽은 책 제목들을 적어놓았는데, 170권 이상 독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가 소장한 책은 당시 학자들이 소장한 것들보다 많았습니다. 고대 과학논문들은 필사본으로 전래되었으므로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라틴어로 번역된 아르키메데스의 『이동하는 물체들에 관한 연구 Treatise on Floating Bodies』의 경우 레오나르도가 이 책을 구하는 데 수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고대 문헌은 라틴어로 번역조차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대 문헌들을 읽기 위해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81

레오나르도의 <공격용 장비>


그는 책을 읽다가 흥미를 끄는 단어들을 적었고 매우 진지한 태도로 독서하면서 자신이 상상하는 이미지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로베르토 발투리오가 1472년에 출간한 군사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무기들의 기술적 명칭들을 노트북에 적었으며 목판화의 도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로잉했습니다. 그가 책에서 보고 모사한 무기들은 책에 기술된 것보다 개량되었거나 그 자신이 개조한 것들입니다. 그는 독서를 바탕으로 좀 더 새로운 유형의 디자인을 하고 이것을 밀라노 무기제조업자에게 팔았는데, 이런 일은 당시 예사였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비행접시처럼 생긴 놀라운 <공격용 장비>는 바퀴 네 개가 달렸으며 크랭크축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이는 이전 과학자들, 특히 가이 데 비제바노가 디자인한 바람개비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용 탈 것을 고안해서 3차원으로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기술적인 면에서 천재였습니다. 직물 짜는 기계를 발명했는데 이것은 회전하고, 직물을 짜며, 대마를 꼬고, 펠트를 다듬으며, 바늘을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계는 산업혁명을 예고했습니다. 그는 선구자들이 유용하고 즐거움을 주는 발명품들을 제작했다면서 자신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계를 제작하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기록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운동이 모든 삶의 원리”라고 말한 그는 모든 물리적 현상들은 네 가지 힘인 운동, 중량, 추진력, 충격에 의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종교에 복종하지 않는다면서 “과학적 지식을 기독교 신앙보다 우위적으로 간주한다”고 적었으며, 그의 지나친 자신감을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1490년대 후반에는 새가 공중을 날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듯 사람이 나는 것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자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반역으로 보았습니다.


284

레오나르도의 <기병대가 있는 곳을 강타하는 폭풍>, 수채, 26.6-40.9cm.


263

레오나르도의 <남자 옆모습의 얼굴 비례: 군인과 말에 대한 습작>, 28-22.4cm.


과학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구는 여러 분야에서 조명되어야 하는데, 음향, 물과 관련된 도구와 설치, 운동, 격발장치, 힘, 무게 등에 관해서도 연구했으며 지질학, 식물학, 음성학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위상을 정확하게 정하는 일은 과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놓아야 할 것입니다.

화가로서의 레오나르도의 입장은 다음의 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화가는 모든 개별적인 것과 모든 것들의 마스터이다.” 화가는 사랑과 더불어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만약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괴상한 형상이나 웃게 만드는 코믹한 것, 혹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들을 보기 원한다면 그런 것들도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화가에게는 목가적 풍경, 거대한 산, 격노한 대양뿐 아니라 자연에는 없는 신비스러운 형상들조차 창조해내는 힘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회화의 신성한 성격은 화가의 정신이 신의 정신적 이미지로 변형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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