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어떤 글도 드로잉보다 정확할 수는 없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어떤 글도 드로잉보다 정확할 수 없다면서 하나의 이미지는 한 권의 책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드로잉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으며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카메라처럼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망막과 종이가 일체인 것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대상을 재현해냈습니다. 그는 눈이 마음보다 실수를 덜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회화와 음악을 비교해서 “음악은 회화의 누이동생”이라면서, 소리는 오래 가지 못하므로 음악은 표현하는 순간 죽게 되고 반복을 통해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회화와 조각을 비교해서는 그 어떤 그림도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뜬 조각보다 오래 갈 수 없고, 조각은 회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경이로운 것’으로 좀 더 지성적이며, “빛·어둠·색·부피·모양·위치·거리·근접·운동·조화”라는 열 가지 원리들에 기초하므로 어떤 것도 재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회화를 과학이라고까지 본 그는 회화를 시각 세계의 딸로 묘사하면서 “자연의 손녀이자 신과도 관련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가 말한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아닌 자연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개념으로서 자연의 조화 속에 내재하는 신을 의미합니다. 그는 예술을 가족관계에 비유해서 음악은 회화의 누이동생이라 묘사했고, 화염은 쇠의 어머니,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눈을 ‘영혼의 창문’으로 보고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눈에서 발하는 미립자들에 의해 영상이 생긴다고 이해했지만, 레오나르도는 눈이 발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광선을 받아들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해부학적으로 눈을 관찰한 그는 렌즈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눈이 이미지를 거꾸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입체 영상의 원리, 즉 3차원 입체의 지각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한 순간에 빛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된다고 믿었지만, 레오나르도는 빛이 지나간다고 보고 빛의 속도에까지 관심을 기울였으며 빛이 어떻게 발산하는가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진동을 떨림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수학자 페르마보다 한 세기 이전에 이런 근본적인 법칙을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해 “모든 자연적 현상은 가장 짧은 가능한 수단에 의해 나타난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실험이 훗날 럼포드의 광도계를 예고했습니다.

그가 “달을 확대해서 보기 위해 유리로 만들었다”고 적은 것으로 보아 그가 갈릴레오보다 한 세기 앞서 망원의 원리를 안 듯합니다. 그는 렌즈를 연결했으나 그것들로 망원경의 효시가 될 만한 기구를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고안한 것은 ‘혁명적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레오나르도가 과학에서 거둔 결실은 매우 컸습니다. 그는 과거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했으며,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그의 독학 태도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과도 같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재능으로 무엇을 했느냐 혹은 하지 않았느냐로 칭찬 혹은 책망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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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햇빛 속의 잡목 숲>, 19.4-1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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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아레조와 발 디 치아나 평지가 있는 지형적 경관>, 10.4-12.4cm.


자연은 그에게 실험실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눈을 뜨고 바라볼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퇴적작용으로 생긴 산에서 조개껍질과 해초 화석을 발견하고는 바다가 한때 대지를 덮은 적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넙적한 유리그릇에 물을 넣어 한 점으로 집중하는 렌즈로 사용했으며, 작은 구멍을 낸 종이를 벽에 대고 광선의 경로를 시위했고, 어둠 속에서 횃불을 빠르게 움직여 불의 선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류트의 줄이 진동할 때는 이중으로 보이는 것이나 탁상에 칼을 꽂아놓고 탁상에 진동이 생기게 하여 칼이 두 개로 보이는 환영을 보여주면서 눈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함을 지적했습니다. 눈이 시각적 인상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함을 지적함으로써 눈이 거울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능을 할 뿐이며 빛이 빠른 속력으로 투사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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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파도의 운동과 흐름>


또한 레오나르도는 물의 운동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돌 두 개를 한꺼번에 연못에 던질 경우 잔잔한 물 위에 생기는 두 개의 동심원은 서로 닿더라도 모두 부서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이지만 레오나르도는 이를 관찰하여 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을 발견해냈습니다. 그는 두 개의 동심원이 부딪쳐서 부서지지 않는 이유를 “물은 미분자들로 구성된 동질이고 진동이 물 자체를 움직이지 않고서도 미분자들을 전파시키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런 원리를 파도에 적용시켜 소리와 빛은 동일한 방법으로 공중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도착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한 노트북를 보면 주로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파비아 대학의 학식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 자신도 학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기계적인 문제에 대한 발견이 그로 하여금 방법론적으로 운동, 요소 등을 분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모든 것에 도전하며 과거 과학의 오류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아주 많은 것들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채 있었고 수세기 동안 잘못 해석되어 왔음을 알고 과학적 발견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견해를 검증·실험하면서 반증을 찾아내어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자신의 의견에 허점이 없도록 동일한 실험을 반복하여 비판의 여지를 없앴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닥치는 대로 의문이 생길 때마다 관찰하고, 관련 서적을 읽고, 학식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가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가운데 세계가 그에게 속했습니다. 1490년경 서른예닐곱 살이었던 그는 노트북에 외래어 사전처럼 보일 정도로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쓰고 또 썼는데, 한 권의 노트북에는 9천 자의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대부분 학문적 어휘거나 외래어 혹은 새로운 어휘들이므로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네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는 단어들이 알파벳순으로 아주 간략하게 정의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역법: 의심스러운 화법 syllogism: suspect way of talking

궤 변: 혼란스러운 화법 sophism: confused way of speaking

분 립: 분열 schism: division

봉 급: 군인의 급료 stipendio: soldiers’ pay


그의 어휘 연결은 논리나 설명이 없는 자유로운 연결로서 일부 작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단어와 서술어도 많이 적었는데, 그가 쓴 단어들은 일부 학자들에게 그의 잠재의식을 탐구하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1490년대에 그는 독서를 많이 했으며, 자신이 읽은 책을 노트북에 다양하게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1497년과 1505년 두 차례에 걸쳐서 자신이 읽은 책 제목들을 적어놓았는데, 170권 이상 독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가 소장한 책은 당시 학자들이 소장한 것들보다 많았습니다. 고대 과학논문들은 필사본으로 전래되었으므로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라틴어로 번역된 아르키메데스의 『이동하는 물체들에 관한 연구 Treatise on Floating Bodies』의 경우 레오나르도가 이 책을 구하는 데 수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고대 문헌은 라틴어로 번역조차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대 문헌들을 읽기 위해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81

레오나르도의 <공격용 장비>


그는 책을 읽다가 흥미를 끄는 단어들을 적었고 매우 진지한 태도로 독서하면서 자신이 상상하는 이미지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로베르토 발투리오가 1472년에 출간한 군사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무기들의 기술적 명칭들을 노트북에 적었으며 목판화의 도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로잉했습니다. 그가 책에서 보고 모사한 무기들은 책에 기술된 것보다 개량되었거나 그 자신이 개조한 것들입니다. 그는 독서를 바탕으로 좀 더 새로운 유형의 디자인을 하고 이것을 밀라노 무기제조업자에게 팔았는데, 이런 일은 당시 예사였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비행접시처럼 생긴 놀라운 <공격용 장비>는 바퀴 네 개가 달렸으며 크랭크축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이는 이전 과학자들, 특히 가이 데 비제바노가 디자인한 바람개비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용 탈 것을 고안해서 3차원으로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기술적인 면에서 천재였습니다. 직물 짜는 기계를 발명했는데 이것은 회전하고, 직물을 짜며, 대마를 꼬고, 펠트를 다듬으며, 바늘을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계는 산업혁명을 예고했습니다. 그는 선구자들이 유용하고 즐거움을 주는 발명품들을 제작했다면서 자신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계를 제작하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기록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운동이 모든 삶의 원리”라고 말한 그는 모든 물리적 현상들은 네 가지 힘인 운동, 중량, 추진력, 충격에 의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종교에 복종하지 않는다면서 “과학적 지식을 기독교 신앙보다 우위적으로 간주한다”고 적었으며, 그의 지나친 자신감을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1490년대 후반에는 새가 공중을 날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듯 사람이 나는 것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자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반역으로 보았습니다.


284

레오나르도의 <기병대가 있는 곳을 강타하는 폭풍>, 수채, 26.6-40.9cm.


263

레오나르도의 <남자 옆모습의 얼굴 비례: 군인과 말에 대한 습작>, 28-22.4cm.


과학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구는 여러 분야에서 조명되어야 하는데, 음향, 물과 관련된 도구와 설치, 운동, 격발장치, 힘, 무게 등에 관해서도 연구했으며 지질학, 식물학, 음성학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위상을 정확하게 정하는 일은 과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놓아야 할 것입니다.

화가로서의 레오나르도의 입장은 다음의 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화가는 모든 개별적인 것과 모든 것들의 마스터이다.” 화가는 사랑과 더불어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만약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괴상한 형상이나 웃게 만드는 코믹한 것, 혹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들을 보기 원한다면 그런 것들도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화가에게는 목가적 풍경, 거대한 산, 격노한 대양뿐 아니라 자연에는 없는 신비스러운 형상들조차 창조해내는 힘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회화의 신성한 성격은 화가의 정신이 신의 정신적 이미지로 변형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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