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란 파악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할 자는 없습니다. 자아란 파악하기 어려운 주제이며, 특히나 이 주제는 스스로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저자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자아 관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상황에 따라 변하며, 전적으로 우리 뇌 속의 물질적 기질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생각, 느낌, 인상, 기타 등등은 신경망의 구조와 활동에 의해 표현되는 정보의 패턴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가현자아apparent self의 다양한 측면들과 은밀하고도 강렬한 경험인 ‘자아 되기being a self’ 역시 마음과 뇌의 패턴으로 존재한다. 문제는 그 패턴이 어디에 존재하는가가 아닙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 또한 통합된 존재이며, 끊임없이 이뤄지는 경험의 주체요, 행동의 주인인 ‘나’를 대표하는 이러한 패턴이 과연 진정으로 존재하는가? 또는 자아라는 것 자체가 유니콘처럼 생긴 모습은 알려져 있으되 실제로는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자서전적 자아는 사섹적 자아와 정서적 자아의 일부를 통합시켜 사람마다 고유의 과거와 미래를 갖는 ‘나’라는 관념을 제공합니다. 핵심자아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것돠는 거의 관련이 없으며 내재적이고 말로 표현되기 어려운 ‘나’를 형성합니다. 자서전적 자아 형성에 필요한 대부분의 신경적 토대를 제공하는 전전두피질이 손상을 입으면 핵심자아가 남게 되는데, 과거나 미래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습니다. 반면 피질 하부나 뇌간 등 핵심자아를 형성하는 조직이 손상을 입으면 핵심자아와 자서전적 자아 모두가 소실됩니다. 이는 핵심자아가 자서전적 자아의 신경적, 정신적 지반임을 말해줍니다. 우리 마음이 평온할 때 자서전적 자아는 활동이 둔화되는데, 이는 신경적 토대가 상대적으로 비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집중 수련과 같은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므로 이러한 비활성화 과정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됩니다.

대상으로서의 자아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의식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생겨납니다. ‘나’에 대한 표현들은 순간순간의 사진 낱장들이 모여 영화가 되는 것처럼, 매 순간의 자아 개념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속된 개념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서술적 자아는 중앙 피질 구조에 기반할 뿐 아니라 측두엽과 두정엽의 연결 부위, 그리고 측두엽의 후부 말단 부분에 기초합니다. 이들 영역은 그 밖의 무수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이 영역은 특별히 자아 고나념과만 연관된 것은 아닙니다. 자아는 이러한 영역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개울물 위에서 온갖 잔가지와 나뭇잎들이 뒤섞이는 것처럼 온갖 정신적 내용물을 끌어들이고 뒤섞어 버리며, 여기에 특별한 신경학적 상태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더욱 근본적으로, 주관으로서의 자아는 경험의 주체로서의 경험자의 근본적 감각에 해당합니다. 의식은 본래 특정한 관점에서의 위치 파악이라는 생래적 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치 파악은 몸이 외부 세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뇌는 무수한 경험 속에서 공통점을 지닌 것에 꼬리표를 붙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의 몸입니다. 그 결과, 주관성은 이 몸과 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구분 때문에 생겨납니다. 넓은 의미로 보자면 주관성이란 뇌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외부 세계가 가지는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고 뇌는 유아기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발달 기간에 걸쳐 주관성의 순간들을 통해 분명한 주체라는 것을 형성하는데, 이는 뇌가 성숙함에 따라 전전두피질의 여러 영역에 의해 만들어지고 쌓아올려집니다. 그러나 사실 주관성에는 그 어떤 생래적 주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급 명상 수련 과정에서는 주체에 대한 의식이 거의 사라져버립니다. 의식은 주관성을 요구하지만, 주체를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요약하면 신경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 느끼는 통합적인 자아란, 완전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뚜렷하게 일관성 있고 확고한 ‘나’라는 개념은 사실 발달 과정을 거쳐 여러 하부 및 하부-하부 체계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여기에는 어떤 뚜렷한 중추도 없으며 ‘나’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희미하고 산만한 주관성의 경험을 통해 날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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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의 막을 내린 클로드 모네



 



 

 

 

는 미지의 실체와 깊이 관련된 현상을 가능한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런 일체화된 현상과 같은 경지에 있는 한 우리는 실체에서, 아니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붓으로 증명해 보이려고 했을 따름입니다.

 

1926년 모네가 클레망소에게 한 말입니다. 그해 여름 모네는 그림보다는 정원을 둘러보는 일에 더 시간을 보냈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평생 즐겨온 담배를 피우면 이제는 연기가 목에 걸려 기침을 했습니다. 모네가 사랑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고, 자신만 홀로 남은 느낌이었습니다. 알리스가 1911년에, 장남 장이 1914년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베르테가 1895년에 사망했고, 말라르메가 1898년, 피사로가 1903년, 미르보와 드가는 1917년에 사망했습니다. 1919년 르누아르가 세상을 떠나던 해 모네는 자신이 “마지막 생존자”라고 말했습니다. 뒤랑-뤼엘은 192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26년 12월 5일 블랑슈와 클레망소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실에 있던 님페아 시리즈는 약속대로 오랑제리 뮤지엄으로 운반되었고, 오랑제리 뮤지엄은 1927년 5월 17일에 개관되었습니다.



 

 



오랑제리 뮤자엄의 전시장 II

 

<나무들의 투영 Reflets d'Arbres>이 보입니다. 이것들은 아내의 병으로 베네치아 여행을 중단한 1910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제3 혹은 최후의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작들은 길이에 있어서는 달랐지만, 세로는 늘 일정했는데, 2m 전후였습니다. 모네가 타계한 후 클레망소는 1927년 5월 16일 모네와 가까웠던 친구들을 모아 오랑제리의 대작들이 정부에 의해 영구소장하게 된 것을 축하했으며, 이튿날 일반인에게 공개했습니다.



 

 



오랑제리 뮤지엄 입구



 

평론가 르네 장은 모네를 가리켜 “물의 라파엘로”라고 불렀습니다. 클레망소는 1928년에 모네에 관한 책을 출간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모네의 작품에는 어떤 종류의 시라든가 이론이라는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이 본 것들에 진실이 있으리라고 믿었으며 지칠 줄 모르게 그것들을 재현했다. 그 이상은 없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네의 타계는 인상주의의 막이 내렸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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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의 우주Gödel’s Universe


 

 

 

 

수학논리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1906~78)은 1949년에 우주전체가 회전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어 이상한 해를 구했는데, 그가 얻은 시공간은 반 스토쿰의 해와 같이 당밀처럼 휘말려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주에서 로켓을 타고 계속 가다보면 원래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괴델의 우주에서는 시간과 공간상으로 떨어져 있는 임의의 두 지점 사이를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먼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괴델의 우주는 중력에 의해 수축되는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가 붕괴되지 않으려면 회전에 의한 원심력이 중력과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즉 우주의 회전속도가 어느 임계값 이상으로 빨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주가 클수록 중력에 의한 수축력이 강해지므로 회전속도도 그만큼 빨라져야 합니다.

괴델의 계산에 따르면 우주는 700억 년을 주기로 회전하고 있으며 시간여행을 위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반지름은 약 160억 광년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가려면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여야 합니다. 괴델과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이자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의 동료이기도 했던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으로부터 시간여행이 가능한 해가 도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쿠르트 괴델의 해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시간개념을 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일반상대성이론을 개발하던 와중에 이미 직면했던 문제입니다. 물론 그때는 이론이 완성되기 전이었으므로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 범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굳이 과거와 미래를 구별할 필요가 없지만, 괴델이 제기한 역설은 분명 과학의 상식에 위배됩니다. ... 그러나 이것이 물리학의 법칙에 위배되는지를 따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시간여행의 물리적 타당성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과제가 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타당성을 언급하면서 괴델의 해가 현실성이 없음을 완곡하게 표현했는데,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 우주는 회전하는 우주가 아니라 팽창하는 우주였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타임머신이나 시간여행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블랙홀로 접어드는 것은 곧 자살을 의미하고, 우주는 회전하지 않으며, 무한히 긴 원기둥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시간여행은 현학적인 사고와 공상과학물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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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프랑스 정부에 작품기증



 



 

 

 

모네는 1923년 4월 12일 예술부장관 레옹이 가져온 기증서에 서명했습니다. 기증서에는 오랑제리 뮤자엄에서 모네의 작품 외에 어떤 작품이나 조각품도 전시될 수 없으며, 작품이 전시실에 걸리게 되면 영원히 소장되어야 한다는 조항과 작품은 뮤지엄이 완전히 꾸며진 후에 기증하되 2년 내에 전시실이 완공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클레망소는 수련화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세 그루의 버드나무>가 기증품에 포함되자 매우 기뻐했습니다.

 

모네는 오랑제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도록 패널화를 그리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1922년 9월 뒤랑-뤼엘에게 “시력이 나빠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클레망소는 수술을 권했습니다. 모네는 파리로 가서 의사 쿠텔라를 만나고 파리에 간 김에 오랑제리 작업현장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건축하기 전이었습니다.

 

모네는 1923년 1월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우선 한쪽 눈만 수술했으나 같은 눈을 여름에 다시 수술해야 했습니다. 쿠텔라는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장담했으며, 모네의 시력이 회복되어 그의 장담은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림을 그리려니 어떤 때는 모든 것이 파랗게 보였으며, 어떤 때는 노랗게 보였습니다. 가까이서 볼 때는 선명하게 보였지만, 먼 곳을 바라볼 때는 색이 전보다 불투명했습니다. 쿠텔라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쿠텔라는 안경을 사용하도록 처방했지만, 모네는 어떤 때는 시력이 나은 것 같다가 어떤 때는 오히려 나빠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작가 마크 엘더가 지베르니로 모네를 방문하고 돌아와 그의 그림이 전체적으로 하얗더라면서 모네의 시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클레망소는 모네에게 흥분하지 말고 늘 차분해지도록 노력해야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모네는 그에게 보낸 회신에서 이 지경으로 괴로움을 당하느니 차라리 장님이 되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했습니다.

 

1923년 9월에는 시력이 조금 회복되어 가까이에서는 색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쿠텔라가 색을 분별할 수 있도록 색이 있는 안경을 제작하겠다고 하자 모네는 “자연이 모두 검정색과 흰색으로만 되었다면 모든 것이 온전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모네에게 안경을 실험한 쿠텔라는 “그는 정상인의 시력보다 더 훌륭한 시력을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네는 이제 과거처럼 이젤을 손에 들고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붓을 사용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붓질을 한 후 몇 걸음 물러나서 그림을 바라볼 때는 시력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모네의 <님페아, 아이리스 Nympheas, Les Iris>, 1916-23, 유화, 200-600cm.



 

 



모네의 <님페아, 아이리스 Nympheas, Les Iris>, 1916-23, 유화, 200-600cm.



 

 



모네의 <님페아, 아이리스 Nympheas, Les Iris>, 1916-23, 유화, 200-600cm.



 

 



모네의 <님페아, 아이리스 Nympheas, Les Iris>, 1916-23, 유화, 200-600cm.



 

 



모네의 <님페아, 아이리스 Nympheas, Les Iris>, 1916-23, 유화, 200-600cm.



 

 



모네의 <님페아, 아이리스 Nympheas, Les Iris>, 1916-23, 유화, 200-600cm.



 

 



사진: 1922년 시카고 오페라 컴퍼니에서 마그리트 나마라Marguerite Namara를 보내 모네의 화실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 직전, 오랑제리 뮤지엄이 부활절 때쯤 완공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클레망소는 모네에게 기증할 그림을 서둘러 완성하라고 독려했습니다. 모네는 이듬해 3월까지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고 여름내 작업에 전념했습니다. 클레망소는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수치스러운 일이 될 테니 속히 완성하라고 모네에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1925년 1월 모네는 그림을 완성하기에 시간이 넉넉하지 않자 수련화들 대신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그것들 중에는 폴 세잔의 작품도 포함되었습니다. 클레망소는 몹시 화냈지만 모네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7월에 모네는 클레망소에게 보낸 편지에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한 눈으로 볼 때 더 잘 보인다면서 백 살까지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앙드레 바르비에에게 보낸 편지에도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저는 전과 달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으며, 하는 일에 만족하오. 더 나은 안경이 나온다면 백 살까지 살게 해달라고 간구할 것이오.”(1925. 7. 17)

 

여름내 그림을 그린 모네는 그해 겨울부터 그림을 그리지 못했는데, 그의 나이 85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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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자유주의 윤리는 무연고적 자아의 약속과 실패


 

 

 

 

정치철학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지만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행과 제도들은 이론의 구현입니다. 따라서 정치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론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비전은 정의와 공정성, 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요시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결코 특정한 목적을 강요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각자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는 선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전제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선에 우선하며 선과는 별개의 도덕적 범주인 ‘옳음’이란 개념을 따릅니다.

자유주의는, 정의로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것이 추구하는 텔로스telos, 즉 목표나 목적이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갖가지 목표들과 목적들 가운데서 미리 정해놓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올바른 법률 체계 안에서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자신들의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틀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의 이상은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주장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이를 두 가지로 정리하여 옳음을 우선시한다는 건 첫째, 공리주의와는 달리 개인의 권리가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없다는 뜻이고, 둘째, 목적론적 관점과는 달리 이러한 권리를 서술하는 정의 원칙들이 결코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전재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현대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에 상당 부분 녹아있는 자유주의로서, 존 롤스에 의해 가장 완벽하게 다듬어졌고, 칸트에 의해 철학적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샌델은 자유주의 비전이 아닌 그와 관련된 세 가지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것들은 첫째, 그것이 강력하고 깊은 철학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 옳음이 선에 우선한다는 주장이 이러한 철학적 힘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실패한다는 점이며, 셋째, 자유주의 비전은 철학적으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천하는 비전이란 사실입니다.

샌델은 자유주의 비전이 철학으로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정치 상황을 진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전이 강력하고 깊은 철학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 힘이고, 옳음이 선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철학적 실패이며, 비전이 철학적으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천하는 비전이란 사실은 비전이 세상에 불안정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샌델은 세 가지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그 세 가지를 연결해주는 한 가지 중심 테마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것은 특정 인간관, 즉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주의 이론은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윤리의 중심에 그것을 독려하는 동시에 혼란스럽게 만드는 인간관이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샌델은 이 윤리를 그토록 흡인력 있게 만드는 그러나 결국에는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무연고적 자아의 약속과 실패라고 주장합니다.

자유주의 윤리는 권리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특정한 선 관념을 배제하는 도덕 원칙들을 모색합니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도덕률의 우월성이며 “정의는 사회제도 제일의 미덕”이라는 롤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자유주의의 정의는 많은 가치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의는 서로 앞을 다투는 가치 및 목적들의 경쟁을 규제하는 틀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정의는 그러한 목적들과는 별개의 구속력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속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공동체인 폴리스를 평가하는 기준이 그 폴리스가 지향하는 선이라고 말했으며, 19세기에 “정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모든 도덕을 통틀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존 스튜아트 밀조차도 정의를 목적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칸트의 윤리는 이러한 해법을 거부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권리는 “전적으로 인간들의 외적 관계와 연관된 자유의 개념에서 파생되는 것으로서, 모든 인간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목적 혹은 이 목적을 달성해주는 수단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권리는 그 자체로 모든 목적에 우선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특정 목적을 전재로 삼지 않는 통치를 받을 때에만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자유를 갖고 자신의 목적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인간 본성의 특별한 조건들”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든 목적에 우선하는 근거, 즉 도덕법의 토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칸트는 도덕법의 근거를 실천이성의 객체가 아닌 주체, 즉 자율 의지를 가진 주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험적 목적이 아니라 “목적의 주체, 즉 그 자체로 이성적인 존재가 모든 행동 원리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칸트가 말한 “가능한 모든 목적의 주체”만이 권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이 주체만이 자율 의지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주체만이 “인간을 감각적 존재보다 더 높은 존재로 격상시키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독립적이고 이상적인 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이처럼 철저한 독립성만이 상황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초연함을 부여합니다.

샌델은 이러한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도덕률이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과 상황 그리고 단순한 경험들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우리는 특정한 인간, 나와 나, 우리 개개인이 아니라 칸트가 말하는 순수실천이성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선험적 주체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순수실천이성을 실천할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무엇이 보장하는가? 샌델은 그러한 보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선험적 주체는 단지 가능성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스스로를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로 생각하기 위해선 그런 가능성을 전제해야 합니다. 내가 전적으로 경험적인 존재라면 모든 의지가 특정 목적에 대한 욕구에 좌우되므로 나는 자유를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선택은 특정한 목적이 지배하는 타율의 선택이 됩니다. 내 의지는 결코 일차적인 원인 될 수 없으며, 그에 우선하는 어떤 원인의 결과, 즉 어떤 충동이나 끌림의 도구로 전락합니다. 칸트는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들을 이성적 세계의 일원으로 바꾸고 자율 의지를 인정한다.

샌델은 바로 그렇게 될 때 칸트의 윤리가 요구하는, 경험에 우선하며 경험과는 독립적인 주체의 개념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롤스는 권리가 최우선이라는 논리를 모호한 선험적 주체의 개념으로부터 구출하고자 합니다. 칸트의 관념론적 형이상학은 도덕적, 정치적 이점을 갖고 있지만, 지나치게 선험적인 것에 치중하며 인간적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정의의 우월성에 도달합니다. “칸트 철학의 토대로 실용적인 정의의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칸트가 주장한 원칙이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배경에서 분리해야” 하며, “적당한 경험주의를 가미해” 개조해야 한다고 롤스는 주장합니다. 샌델은 롤스의 프로젝트가 독일적인 모호성을 앵글로아메리칸들의 기질에 맞는 원리로 바꿈으로써 칸트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초적 입장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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