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자유주의 윤리는 무연고적 자아의 약속과 실패
정치철학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지만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행과 제도들은 이론의 구현입니다. 따라서 정치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론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비전은 정의와 공정성, 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요시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결코 특정한 목적을 강요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각자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는 선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전제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선에 우선하며 선과는 별개의 도덕적 범주인 ‘옳음’이란 개념을 따릅니다.
자유주의는, 정의로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것이 추구하는 텔로스telos, 즉 목표나 목적이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갖가지 목표들과 목적들 가운데서 미리 정해놓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올바른 법률 체계 안에서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자신들의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틀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의 이상은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주장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이를 두 가지로 정리하여 옳음을 우선시한다는 건 첫째, 공리주의와는 달리 개인의 권리가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없다는 뜻이고, 둘째, 목적론적 관점과는 달리 이러한 권리를 서술하는 정의 원칙들이 결코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전재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현대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에 상당 부분 녹아있는 자유주의로서, 존 롤스에 의해 가장 완벽하게 다듬어졌고, 칸트에 의해 철학적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샌델은 자유주의 비전이 아닌 그와 관련된 세 가지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것들은 첫째, 그것이 강력하고 깊은 철학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 옳음이 선에 우선한다는 주장이 이러한 철학적 힘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실패한다는 점이며, 셋째, 자유주의 비전은 철학적으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천하는 비전이란 사실입니다.
샌델은 자유주의 비전이 철학으로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정치 상황을 진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전이 강력하고 깊은 철학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 힘이고, 옳음이 선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철학적 실패이며, 비전이 철학적으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천하는 비전이란 사실은 비전이 세상에 불안정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샌델은 세 가지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그 세 가지를 연결해주는 한 가지 중심 테마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것은 특정 인간관, 즉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주의 이론은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윤리의 중심에 그것을 독려하는 동시에 혼란스럽게 만드는 인간관이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샌델은 이 윤리를 그토록 흡인력 있게 만드는 그러나 결국에는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무연고적 자아의 약속과 실패라고 주장합니다.
자유주의 윤리는 권리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특정한 선 관념을 배제하는 도덕 원칙들을 모색합니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도덕률의 우월성이며 “정의는 사회제도 제일의 미덕”이라는 롤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자유주의의 정의는 많은 가치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의는 서로 앞을 다투는 가치 및 목적들의 경쟁을 규제하는 틀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정의는 그러한 목적들과는 별개의 구속력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속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공동체인 폴리스를 평가하는 기준이 그 폴리스가 지향하는 선이라고 말했으며, 19세기에 “정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모든 도덕을 통틀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존 스튜아트 밀조차도 정의를 목적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칸트의 윤리는 이러한 해법을 거부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권리는 “전적으로 인간들의 외적 관계와 연관된 자유의 개념에서 파생되는 것으로서, 모든 인간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목적 혹은 이 목적을 달성해주는 수단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권리는 그 자체로 모든 목적에 우선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특정 목적을 전재로 삼지 않는 통치를 받을 때에만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자유를 갖고 자신의 목적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인간 본성의 특별한 조건들”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든 목적에 우선하는 근거, 즉 도덕법의 토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칸트는 도덕법의 근거를 실천이성의 객체가 아닌 주체, 즉 자율 의지를 가진 주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험적 목적이 아니라 “목적의 주체, 즉 그 자체로 이성적인 존재가 모든 행동 원리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칸트가 말한 “가능한 모든 목적의 주체”만이 권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이 주체만이 자율 의지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주체만이 “인간을 감각적 존재보다 더 높은 존재로 격상시키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독립적이고 이상적인 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이처럼 철저한 독립성만이 상황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초연함을 부여합니다.
샌델은 이러한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도덕률이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과 상황 그리고 단순한 경험들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우리는 특정한 인간, 나와 나, 우리 개개인이 아니라 칸트가 말하는 순수실천이성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선험적 주체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순수실천이성을 실천할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무엇이 보장하는가? 샌델은 그러한 보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선험적 주체는 단지 가능성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스스로를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로 생각하기 위해선 그런 가능성을 전제해야 합니다. 내가 전적으로 경험적인 존재라면 모든 의지가 특정 목적에 대한 욕구에 좌우되므로 나는 자유를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선택은 특정한 목적이 지배하는 타율의 선택이 됩니다. 내 의지는 결코 일차적인 원인 될 수 없으며, 그에 우선하는 어떤 원인의 결과, 즉 어떤 충동이나 끌림의 도구로 전락합니다. 칸트는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들을 이성적 세계의 일원으로 바꾸고 자율 의지를 인정한다.”
샌델은 바로 그렇게 될 때 칸트의 윤리가 요구하는, 경험에 우선하며 경험과는 독립적인 주체의 개념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롤스는 권리가 최우선이라는 논리를 모호한 선험적 주체의 개념으로부터 구출하고자 합니다. 칸트의 관념론적 형이상학은 도덕적, 정치적 이점을 갖고 있지만, 지나치게 선험적인 것에 치중하며 인간적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정의의 우월성에 도달합니다. “칸트 철학의 토대로 실용적인 정의의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칸트가 주장한 원칙이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배경에서 분리해야” 하며, “적당한 경험주의를 가미해” 개조해야 한다고 롤스는 주장합니다. 샌델은 롤스의 프로젝트가 독일적인 모호성을 앵글로아메리칸들의 기질에 맞는 원리로 바꿈으로써 칸트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초적 입장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