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의 막을 내린 클로드 모네

“저는 미지의 실체와 깊이 관련된 현상을 가능한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런 일체화된 현상과 같은 경지에 있는 한 우리는 실체에서, 아니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붓으로 증명해 보이려고 했을 따름입니다.”
1926년 모네가 클레망소에게 한 말입니다. 그해 여름 모네는 그림보다는 정원을 둘러보는 일에 더 시간을 보냈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평생 즐겨온 담배를 피우면 이제는 연기가 목에 걸려 기침을 했습니다. 모네가 사랑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고, 자신만 홀로 남은 느낌이었습니다. 알리스가 1911년에, 장남 장이 1914년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베르테가 1895년에 사망했고, 말라르메가 1898년, 피사로가 1903년, 미르보와 드가는 1917년에 사망했습니다. 1919년 르누아르가 세상을 떠나던 해 모네는 자신이 “마지막 생존자”라고 말했습니다. 뒤랑-뤼엘은 192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26년 12월 5일 블랑슈와 클레망소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실에 있던 님페아 시리즈는 약속대로 오랑제리 뮤지엄으로 운반되었고, 오랑제리 뮤지엄은 1927년 5월 17일에 개관되었습니다.

오랑제리 뮤자엄의 전시장 II
<나무들의 투영 Reflets d'Arbres>이 보입니다. 이것들은 아내의 병으로 베네치아 여행을 중단한 1910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제3 혹은 최후의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작들은 길이에 있어서는 달랐지만, 세로는 늘 일정했는데, 2m 전후였습니다. 모네가 타계한 후 클레망소는 1927년 5월 16일 모네와 가까웠던 친구들을 모아 오랑제리의 대작들이 정부에 의해 영구소장하게 된 것을 축하했으며, 이튿날 일반인에게 공개했습니다.

오랑제리 뮤지엄 입구
평론가 르네 장은 모네를 가리켜 “물의 라파엘로”라고 불렀습니다. 클레망소는 1928년에 모네에 관한 책을 출간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모네의 작품에는 어떤 종류의 시라든가 이론이라는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이 본 것들에 진실이 있으리라고 믿었으며 지칠 줄 모르게 그것들을 재현했다. 그 이상은 없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네의 타계는 인상주의의 막이 내렸음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