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3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


 

 

 

 

미국의 풍자작가 멩켄H.L.Mencjen은 부유함이란 “同壻(동서)의 연간 수입보다 최소한 100달러가 더 많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절대적 지위보다는 상대적 지위에 더 신경을 씁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질투심이 많아 다른 사람이 가진 걸 원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잘사는지 평가할 때 자신들이 버는 돈이나 소비하는 제품이 얼마나 많은가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신들이 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많이 벌고 소비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Connected』(2010)의 저자는 멩켄의 경구에 한 가지 진실이 숨어 있다면서 우리가 3단계 거리에 있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고 말합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더 낫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이 현상을 연구한 한 고전적 실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3만5천 달러를 받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3만8천 달러를 받는 회사보다는 자신은 3만3천 달러를 받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이 3만 달러를 받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첫 번째 회사보다는 두 번째 회사에서 근무하는 걸 더 행복하게 여긴 것입니다. 갈수록 성형수술을 자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바로 이런 논리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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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최후에 만개한 꽃 로코코



 



 

 

 

미술에서는 궁정화가들의 영향이 컸다. 예를 들면 프랑수아 부셰의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15은 당시 보편적인 미적 취향이 되었으며 화가지망생들에게 규범이 되었다. 부셰의 작품은 로코코풍으로 이 양식의 특징은 쾌락, 환상, 즐거움, 도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로코코는 바로크의 마지막을 장식한 양식이자 르네상스 최후에 만개한 꽃이라 할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이 프랑스에 소개된 것은 1700년경이었고 18세기에 유럽 전역에 성행했다. 로코코는 회화와 건축에 나타난 양식으로 그 특징은 밝고 우아하며, 우스꽝스럽거나 쾌활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로코코는 바로크(Baroque, 포르투갈어 바로코Barocco에서 온 말로 ‘불규칙한 진주나 돌’을 의미)에 반발하여 생긴 양식이지만 동시에 바로크로부터 진전된 양식이다. 로코코Rococo라는 말은 바로코Barocco와 돌이란 뜻의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 작은 동굴이나 우물을 장식한 조개나 바위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18세기 중반부터 로카이유는 바로크와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불규칙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형상들을 로카이유라고 불렀다. 이처럼 로코코의 어원적 의미는 ‘비속하게 현란하거나 잘 꾸민’이란 뜻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경멸적인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18세기 말에 다비드의 제자들 사이에서 바로크와 로코코라는 말은 혼용되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로코코는 18세기 미술에 국한하여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미술을 바로크라 부르면서 약 1700년부터 프랑스 혁명까지의 로코코와 구분하기도 하고, 로코코를 단지 바로크 후기의 프랑스 미술에 국한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로코코 예술가들은 바로크의 복잡한 구성은 받아들이면서도 화면의 복잡함, 칙칙한 색, 지나친 허식 대신 밝은 핑크색, 파란색, 초록색을 사용하면서 때로는 흰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했다. 당시 사람들은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지나치게 과대한 장식에 진력을 내고 우아하면서도 편리한 점을 요구했다. 로코코는 이런 요구에 부응해서 처음에는 주로 장식적이었다. 로코코의 대표적인 화가는 와토이고 로코코의 성숙된 낙천적 정신을 잘 표현한 화가들로는 부셰와 프라고나르를 꼽을 수 있다. 로코코 회화의 전형적인 모티프는 남신과 여신의 호색적인 기질에 관해 전래된 신화와 님프, 목자가 있는 목가적 장면들이었다. 신과 목자는 도자기 인형에도 사용될 만큼 흔한 주제였으며 파스텔 핑크,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등이 주로 사용되어 화사하게 나타났다. 로코코 회화는 사람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해주었지만 정신적인 면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계몽주의 철학자와 작가들은 회화가 단지 장식적이거나 감각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디드로는 말했다.



먼저 날 동요시켜라, 날 놀라게 하라, 날 공격하고, 전율하게 하며, 울게 만들고 조바심나게 하고, 화 나게 하라. 그리고 나서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눈을 진정시켜라.



디드로의 말에서 로코코 회화가 결여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각적으로만 요란한 로코코 회화에는 관람자의 정신 혹은 영혼에 호소하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미적으로 이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던 시기에 다비드가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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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과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1885~1962)를 제외하고 양자역학과 가장 치열한 사투를 벌인 사람은 1933년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헬륨의 분산과 흡착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1911~2008)였습니다. 휠러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개발에 참여했고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물리학자였습니다.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을 완성한 천재물리학자이자 한때 휠러의 제자였던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1918~88)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거인’, 혹은 ‘괴물 같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불렀습니다.

천문관측 역사상 처음으로 1967년에 맥동성pulsar(일정 주기로 펄스형태의 전파를 방사하는 천체)이 발견되었을 때 NASA의 고더드연구소Goddard Institute for Space Studies(GISS)에서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논문을 발표하던 휠러는 검은 별을 블랙홀로 칭함으로써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존 휠러는 1911년 플로리다주의 잭슨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도서관 사서였지만 집안은 대대로 공학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세 명의 삼촌은 모두 광산공학자로서 폭발물을 주로 다뤘는데, 어린 시절의 휠러는 다이너마이트의 파괴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틈날 때마다 현장에서 발파하는 장면을 구경했습니다. 어린 시절 휠러는 미적분학을 섭렵했으며, 과학이론에 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에 관심을 보였고, 닐스 보어와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76),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1887~1961) 등 당대의 석학들이 양자적 세계의 비밀을 풀어내는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때만 해도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1838~1916)의 추종자들은 원자론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열역학thermodynamics의 아버지로 통하는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Edouard Boltzmann(1844~1906)이 1906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부분적으로 원자론을 주장하다가 많은 학자들에게 지독한 비난과 멸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1925~27년에 원자와 관련된 새로운 발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으며, 3년 동안 이런 큰 진보를 이룬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휠러는 이 황금 같은 시기에 자신도 물리학의 첨단에 서서 업적을 남기고 싶었으나 그가 보기에 미국은 물리학의 선진국이 못되었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물리학자들 중에 미국인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휠러는 오펜하이머처럼 미국을 떠나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의 지도 아래 물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에 실험물리학자들은 전자가 파동적 성질과 입자적 성질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신기한 이중성duality은 한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히다가 결국 양자역학에 의해 그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원자핵atomic nucleus의 주변에서 양자적 춤을 추고 있는 전자는 신비한 파동을 동반하는 입자였습니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1925년에 전자에 동반된 파동의 운동을 서술하는 방정식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입니다. 그리스 문자 프사이(Ψ)로 표현되는 이 파동은 전자와 원자의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함으로써 물리학의 새로운 혁명에 불을 지폈습니다. 슈뢰딩거가 제안한 파동함수 Ψ는 미시세계의 현상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Ψ의 정확한 의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독일의 브레슬라우 태생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1882~1970)이 1928년 마침내 그 의미를 알아냈습니다. 그는 1954년에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파동함수 Ψ는 주어진 장소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나타내는 함수였다. 즉 우리는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고 단지 Ψ를 통해 그곳에 있을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침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와 관련된 실험데이터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양자조리법 안내서’를 완성했습니다. 파동함수가 특정 위치에서 유난히 큰 값을 갖는다면 전자가 그 위치에서 발견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파동을 확률과 상식적인 존재 사이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내세웠습니다. “파동함수가 외부의 관찰자에 의해 관측되면 단 하나의 값으로 붕괴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관측행위가 전자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전자를 바라보는 순간 전자의 파동함수는 붕괴되고, 그 순간부터 전자는 명확한 특성(관측자가 알고자 했던 특성)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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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가장 큰 국가 프랑스

 



 

 

 

1860년에 외젠 들라크루아는 말했다.



다비드는 회화와 조각에 있어서 모던 학파의 아버지였다. 그는 건축에서도 개혁을 꾀했으며 일상용 가구에서조차 개혁을 해냈다.



모던 학파가 다비드에게서 비롯했다는 최대의 찬사이다. 다비드의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228을 보기 위해 매년 많은 사람이 루브르 뮤지엄으로 향한다. 루브르에서 다비드의 작품보다 더 많은 사랑을 차지하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뿐이다.

열정적인 동시에 조울증적인 다비드의 기질은 그의 모든 작품에 속속들이 배어 있으며 이는 그의 고유한 양식이 되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복잡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미묘하면서도 매우 적절하게 묘사해내는 데 있어 다비드는 달인이었다. 궁정 수석화가가 되는 것이 회화에 입문한 후부터 그의 유일한 꿈이었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결국 꿈을 이루어냈지만 나폴레옹이 퇴위하자 ‘화단의 나폴레옹’으로 군림했던 그도 자의 반 타의 반 망명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비드와 나폴레옹 모두 조국을 등지고 이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태어날 무렵 프랑스는 정치적·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극에 달해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정부는 누적된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번영을 되찾을 만한 능력이 루이 15세에게는 없었다.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프랑스는 유럽의 나라들 가운데 가장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1780년 당시 프랑스 인구는 2천 5백만에 육박했고 파리 시민은 65만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참고로 주변 나라들의 인구를 보면 러시아 2천 4백만, 이탈리아 1천 7백만, 스페인 1천만, 영국 9백만, 프러시아 8백 60만, 오스트리아 790만, 아일랜드 4백만, 벨기에 220만, 포르투갈 210만, 스웨덴 2백만, 네덜란드 190만, 스위스 140만, 덴마크 80만, 노르웨이 70만이었다.

당시 빈부 격차가 극심했으며 가문, 명예, 땅의 소유가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결정지웠다. 사회계급은 삼등분되어 있었으며, 성직자가 13만, 귀족이 40만, 나머지가 평민이었고, 평민은 혹독한 법의 지배를 받았으며 죄의 심판은 그들에게 가혹했다. 정부의 무능으로 군사적 침략을 받았고 전쟁의 패배가 재정을 더욱 악화시켰으며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자 가난한 사람들은 한층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경제적으로 프랑스는 영국에 비해 매우 빈곤했다.

이 시기에 정치적·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은행가, 금융업자, 변호사, 돈 많은 상인들인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축적된 부를 이용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기존의 귀족과 연합하거나 왕가에 영향력을 행사해 정치적 지위를 차지했다. 이런 혼란과 횡포에 맞서 불평등을 고발하고 왕권과 종교적 전통에 반발한 철학자와 작가들이 있었는데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드니 디드로 세 사람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계몽주의의 파도를 타고 이들의 영향은 프랑스에서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매우 컸다. 디드로와 장 르 롱드는 1751~80년 사이 서른 다섯 권의 방대한 분량의 『대백과사전Encyclopedie』14을 출간했는데 인류의 모든 지식을 집약한 것으로 프랑스의 사회적·기술적 현대화의 청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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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부인께서 속이 다 안 좋군요

 

다음은 몸살림연신내동호회(Daum 카페) 원장 이범이 어느 분의 질문에 답한 글입니다. 건강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분은 몸살림연신내동호회에 들어가서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이범 선생님.

 

저는 40대의 직장인이며 몰살림운동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몸이 안좋아 지는 것 같아 이 까페에서 선생님 글을

읽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칼럼 열독중 온몸풀기 운동이 있어 자세히 읽고 와이프한테 시전해 봤습니다.

 

집사람은 30대후반으로 말랐으나 요가등도 해서 몸이 유연한 편입니다. 다만 트림을 자주하고 쉽게 피로해져

팔목, 팔, 등등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지요. (내시경 검사에서 별 문제점을 찾질 못했습니다)

 

온몸풀기를 해주겠다고 하고 눕혀서 손등으로 사진과 설명대로 조심스럽게 했는데 누르는데가 아픈데는 하나도 없다고 하네요.

 

다만 제가 힘을 주어 했더니 뱃속에서 별소리가 다 나면서, 속이 안좋다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고, 설사하고, 메스껍다고 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잡는다고 욕을 엄청먹었습니다. 분명 누를때 아프지 않다고 했는데... 제가 장을 잘못 건들인것인지...

 

베게운동도 저는 높은 베게에 잘 적응하는데 저보다 유연한 집사람은 5분을 넘기지 못합니다.

 

가르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답변

부인께서 속이 다 안 좋군요. 요가를 하면 몸이 유연해지는 것으로 오인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구부리는 동작을 하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몸이 구부러지게 됩니다. 부인께서 말랐다고 하셨는데, 마른 사람은 다 몸이 많이 구부러져 있는 사람입니다. 서 있는 자세에서는 잘 판별이 되지 않지만, 앉아 있는 자세에서 보면 허리가 뒤쪽으로 많이 넘어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오장육부가 다 굳어 있게 됩니다. 트림을 자주 한다는 것은 위가 많이 굳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른 사람은 온몸이 많이 굳어 있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대로 기력이 떨어지고 쉬 피로해집니다.팔목, 팔, 등 등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다면, 이는 상체의 영역이 많이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오장육부가 안 좋습니다. 온몸풀기를 할 때에는 손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해야 한다고 썼을 것입니다. 새끼 쪽으로 힘을 주어 지그시 눌러야 합니다. 특히 마른 사람은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힘을 많이 주면 뱃가죽이 척추까지 밀려 가면서 타박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을 주어 했더니 뱃속에서 별 소리가 다 났다고 하는 것은 굳어 있던 장기가 풀릴 때 나는 소리입니다. 다만 너무 급격하게 풀리면서 탈이 난 것입니다. 토하고 매스꺼운 것은 위가 많이 굳어 있을 때, 그리고 설사는 장이 많이 굳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온몸풀기를 할 때에는 손바닥으로 약하게 누르면서 천천히 위로 올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글에도 써 놓았듯이 잠시 누르면서 올리다가 아랫배가 불룩 올라오도록 숨을 깊게 쉬어 보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숨을 2~3회 정도 쉬게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속이 편안해집니다. 그러지 않고 하면 상대방은 속이 답답해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부인께서는 유연한 게 아닙니다. 몸이 많이 굳어 있기 때문에 허리펴기 2단계를 5분을 넘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리 아프다는 소리는 하시지 않더라도 허리가 많이 굳어 있어 그 부위가 아파서 5분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허리세움근을 손으로 좀 세게 잡으면많이 아파할 것입니다. 그래도 허리펴기를 계속 하시게 하면 허리뿐만 아니라 오장육부, 나아가 상체도 풀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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