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과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1885~1962)를 제외하고 양자역학과 가장 치열한 사투를 벌인 사람은 1933년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헬륨의 분산과 흡착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존 휠러John Archibald Wheeler(1911~2008)였습니다. 휠러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개발에 참여했고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물리학자였습니다.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을 완성한 천재물리학자이자 한때 휠러의 제자였던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1918~88)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거인’, 혹은 ‘괴물 같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불렀습니다.

천문관측 역사상 처음으로 1967년에 맥동성pulsar(일정 주기로 펄스형태의 전파를 방사하는 천체)이 발견되었을 때 NASA의 고더드연구소Goddard Institute for Space Studies(GISS)에서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논문을 발표하던 휠러는 검은 별을 블랙홀로 칭함으로써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존 휠러는 1911년 플로리다주의 잭슨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도서관 사서였지만 집안은 대대로 공학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세 명의 삼촌은 모두 광산공학자로서 폭발물을 주로 다뤘는데, 어린 시절의 휠러는 다이너마이트의 파괴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틈날 때마다 현장에서 발파하는 장면을 구경했습니다. 어린 시절 휠러는 미적분학을 섭렵했으며, 과학이론에 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에 관심을 보였고, 닐스 보어와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76),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1887~1961) 등 당대의 석학들이 양자적 세계의 비밀을 풀어내는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때만 해도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1838~1916)의 추종자들은 원자론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열역학thermodynamics의 아버지로 통하는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Edouard Boltzmann(1844~1906)이 1906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부분적으로 원자론을 주장하다가 많은 학자들에게 지독한 비난과 멸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1925~27년에 원자와 관련된 새로운 발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으며, 3년 동안 이런 큰 진보를 이룬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휠러는 이 황금 같은 시기에 자신도 물리학의 첨단에 서서 업적을 남기고 싶었으나 그가 보기에 미국은 물리학의 선진국이 못되었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물리학자들 중에 미국인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휠러는 오펜하이머처럼 미국을 떠나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의 지도 아래 물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에 실험물리학자들은 전자가 파동적 성질과 입자적 성질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신기한 이중성duality은 한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히다가 결국 양자역학에 의해 그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원자핵atomic nucleus의 주변에서 양자적 춤을 추고 있는 전자는 신비한 파동을 동반하는 입자였습니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1925년에 전자에 동반된 파동의 운동을 서술하는 방정식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입니다. 그리스 문자 프사이(Ψ)로 표현되는 이 파동은 전자와 원자의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함으로써 물리학의 새로운 혁명에 불을 지폈습니다. 슈뢰딩거가 제안한 파동함수 Ψ는 미시세계의 현상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Ψ의 정확한 의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독일의 브레슬라우 태생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1882~1970)이 1928년 마침내 그 의미를 알아냈습니다. 그는 1954년에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파동함수 Ψ는 주어진 장소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나타내는 함수였다. 즉 우리는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고 단지 Ψ를 통해 그곳에 있을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침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와 관련된 실험데이터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양자조리법 안내서’를 완성했습니다. 파동함수가 특정 위치에서 유난히 큰 값을 갖는다면 전자가 그 위치에서 발견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파동을 확률과 상식적인 존재 사이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내세웠습니다. “파동함수가 외부의 관찰자에 의해 관측되면 단 하나의 값으로 붕괴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관측행위가 전자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전자를 바라보는 순간 전자의 파동함수는 붕괴되고, 그 순간부터 전자는 명확한 특성(관측자가 알고자 했던 특성)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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