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는 고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다비드가 로마에서 그린 첫 유화는 가로로 긴 캔버스에 그린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52이다. 『일리아드』에서 주제를 구한 작품으로 로마 시의 모습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아 그의 초기 양식(신고전주의 이전의 로코코풍)을 고수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는 이 작품을 평가받기 위해 1779년 4월 파리의 아카데미로 보냈다. 심사위원들은 다비드의 명암효과는 구성을 명료하게 하는 데 적절한 방법이지만 명암을 좀 더 정교하게 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공간적인 모호함을 지적하면서 심오한 관망에 대한 공부가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평가가 있었지만 이 작품에서 다비드의 재능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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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비드는 17세기 대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강렬한 힘을 느끼게 하는 카라바조의 구성과 푸생의 정확한 관망과 이성적 내용을 보고 자신의 화법에 변화가 필요함을 깨달았다.53, 54 남자누드55, 56를 그리면서 명암에 의한 인물의 중량과 밀도의 변화를 알게 되자 자연히 모델을 면밀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는 윤곽이 가장자리의 선인 동시에 부피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런 깨달음은 아카데미에 함께 기숙하던 조각가 장 밥티스트 지로로부터 얻은 것이다. 지로는 다비드에게 고대 미술품이 아카데미 드로잉 매너리즘의 근본임을 가르쳐주었고 라마리는 외곽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57

 

다비드가 새로운 양식으로 보여준 드로잉 기교는 1778~80년 고대 그리스의 프리즈57 형식을 취한 이야기 전개식 파노라마 드로잉 <영웅의 장례식>58에서 잘 나타났다. 그는 로마 석관의 릴리프 형식으로 드로잉했는데 석관은 로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브제였다. 그는 석관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의 정교한 제스처와 파토스 그리고 강렬한 감정의 표현에 역점을 두었다. 드로잉 형식이나 기법, 그리고 길이가 동일한 것으로 봐서 한 작품으로 그리려 했던 것 같다.

 

1779년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나폴리를 여행한 다비드는 고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여행 전이나 이후 그의 작품에 현저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비엥은 1779년 8월 파리에 있는 당지비에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 “다비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최선을 다해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그의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프랑스로 돌아가라고 권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시기에 다비드에게는 여자와의 스캔들이 있었고 비엥 부인의 하녀와의 추문도 무성했다. 그러나 여자 문제는 곧 극복되었고 9월 말 건강을 회복한 그는 유학을 한 해 더 연장해줄 것을 청한 후 로마에 남기로 했다.

 

비엥은 다비드에게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있는 라자렛 예배당의 제단화를 그릴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었다. 제단화의 주제는 <역병을 물리쳐달라고 성모에게 간청하는 성 로츠>59였다. 1720년 마르세유에 역병이 퍼졌을 때 14세기 역병으로 세상을 떠난 성 로츠가 나타나 성모에게 역병을 물리쳐줄 것을 간구했다는 전설에서 구한 주제였다. 다비드는 제단화를 완성할 때까지 아틀리에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61

 

다비드는 전통 종교화의 구성을 따르면서 상단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를, 하단에는 역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천국과 지상 사이에 중재자 성 로츠가 있도록 구성했다. 몇몇 화가들의 종교화를 참조하면서 특히 푸생의 <성 야고보에게 나타난 성모>61를 참고했다.

 

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로마에 거주하던 이탈리아의 노화가 폼페오 바토니가 다비드에게 말했다.

 



내가 이 도시에 거주한 지 50년이 넘었고 각 나라에서 온 화가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의 작품을 봐서 알고 있지만 어느 한 점도 너의 것만큼 훌륭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다비드는 이 작품을 2년 동안이나 소장하다 마르세유로 보냈는데 당지비에는 이 작품이 파리의 로열 콜렉션이 되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마르세유 시는 작품에 대단히 만족하면서 다비드에게 계약금 외에 350리브라를 더 주었다. 제단화에 대한 칭찬으로 다비드는 유명해졌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다. 폴란드의 귀족 스타니슬라스 포톡키 백작이 소문을 듣고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다비드는 그의 초상화를 로마에서 그리기 시작했지만 파리로 돌아와서 완성시켰다.62 다비드는 바로크의 유명한 초상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의 <말을 탄 사보이의 왕자 토마스>63를 참조해 거의 같은 스케일로 그리면서 밝고 생기 있는 색을 사용했다. 이런 요소들은 과거 작품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들로 그의 양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과거에 그린 초상화들에서는 가장 밝은 부분이 흩어진 데 비해 이 작품에서는 대각선 명암의 효과로 포톡키의 왼쪽이 밝게 드러났으며 말 다리의 어두운 부분은 극적인 장면으로 보여진다. 폴란드의 고귀한 귀족 출신의 백작 포톡키는 아내가 가져온 신부지참금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미술품을 수집하게 되었고 이탈리아로 여행도 했으며 다비드에게 많은 돈을 주고 초상화를 의뢰할 수 있었다. 학자이기도 한 그는 빙켈만의 저서를 번역했으며 그의 별명은 ‘폴란드의 빙켈만’이었다. 포톡키의 모습이 너무 온화하고 덤덤하게 보여 그의 아주머니 코사코우스카는 좀더 포톡키를 닮게 그리라고 요구했지만 다비드는 원화를 보존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제작년대를 하단 왼쪽 가장자리 달마티안 개의 목걸이에 적어넣었다. 그림값으로 포톡키로부터 받은 돈은 3,500~5,000리브라 사이였다.

 

로마에서 다비드의 양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무엇보다도 로코코 양식을 완전히 버리고 좀더 극적이면서 사실주의적인 묘사에 충실한 데 있으며, 대가들의 구성과 기교를 두루 관찰하면서 전통을 따르려고 한 것도 요인이었다. 그는 고대 작품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차분하고 조화로운 고대와 르네상스의 전통을 비판 없이 따르기보다는, 17세기의 수사적 양식의 범위 안에서 선호했다. 그가 고대 세계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는 활력 있고 힘이 솟아나는 다이나미즘이었다. 그는 훗날 1808년 라파엘로의 작품을 보고 매우 감동했으며 그의 작품을 통해 고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술회하면서 3백여 년 전의 대가 라파엘로의 제자라도 된 듯한 태도로 그로부터 배움을 구하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그의 작품에서 라파엘로의 영향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성 로츠>59와 포톡키의 초상화가 성공을 거두자 서른두 살의 다비드는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로마에 한 해 더 체류할 수 있는 선택을 마다하고 파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엥과 궁정 책임자 당지비에 백작이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파리 화단에서의 입지를 마련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파리로 돌아가면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궁정 화가로서 의뢰를 받아 작업하는 꿈이 속히 실현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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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모방은 의식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퍼져가는 건 병균뿐만이 아닙니다. 행동도 전염됩니다. 그러한 행동 중에 우리의 건강에 큰 효과를 미치는 것도 많습니다. 청소년의 식습관에 친구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소녀들의 체중감량에 영향을 크게 미칩니다. 모르는 사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 옆자리에 사람들을 무작위로 배치했을 때 옆 사람이 음식을 많이 먹으면 그 사람도 따라서 많이 먹게 됩니다. 이 효과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무의식적 과식’이라고 부릅니다.

항만 노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에릭 호퍼Eric Hoffer는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사람들은 대개 서로를 모방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조깅을 시작하면, 친구도 여러분을 따라 조깅을 시작할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이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친구도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행동의 모방은 의식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Connected』(2010)의 저자는 전염성이 있는 하품이나 웃음의 경우 모방 뒤에 또 다른 생리학적 과정이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방은 지각적일 수 있으며, 생리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공감이나 심지어 도덕성을 느끼는 우리의 생물학적 능력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사회적 종으로 진화한 우리의 기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Connected』(2010)의 저자는 비만이 퍼져나가는 방법에 모방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이러한 생각이 우리의 식사량이나 운동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고 체중이 불어나고 있다면, 허용할 수 있는 체중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체중이 불어나고 있다면, 과체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할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되는 건 사회과학자들이 규범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규범은 무엇이 적절한지에 대한 사람들의 공유하는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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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시티multiplexity


 

 

 

 

우리는 적절한 짝을 찾느라 직장 동료, 페이스북 친구, 가족, 이웃 등 다양한 종류의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을 멀티플렉시티multiplexity 혹은 다중성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성sex 네트워크는 우리가 짝을 찾아 기웃거리는 더 큰 소셜 네트워크의 부분집합입니다. 어떤 면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잠재적 네트워크이고 성 네트워크는 현실화된 네트워크입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Connected』(2010)의 저자는 네트워크는 여러 층으로 이뤄졌다면서 각 층에서 자신의 위치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연결될지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는 많지만 섹스 파트너가 거의 없는 사람의 경우 친구들의 네트워크에서는 성적 접촉 네트워크에서보다 더 중앙에 위치한다고 말합니다. 이 두 네트워크는 더 복잡한 소셜 네트워크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므로 이 사람은 성관계를 통해 성병보다는 친구들을 통해 뒷담화를 얻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합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Connected』(2010)의 저자는 성 네트워크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주 의도적이며 식별 가능한 종류의 사회적 유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성 네트워크는 의학에서 죽음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어떤 네트워크에서 어떤 사람이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에게 친구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을 신뢰하는지 물어보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묻는 것보다 해석의 여지가 큽니다. 그렇지만 누구와 섹스를 했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소셜 네트워크를 아주 명확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섹스 상대자를 찾는 방법과 소셜 네트워크가 우리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방식을 조사하면, 단순히 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한 더 많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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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가 고전의 세계 로마로 향한 건 1775년 10월이었다



 



 

 

 

다비드가 고전의 세계 로마로 향한 건 1775년 10월이었다. 약 170cm 정도 키에 강렬한 눈을 가진 그의 피부는 검었고 머리카락은 약간 곱슬이며 반듯한 용모가 사람들에게 차분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비엥을 선두로 한 그룹에 끼어서 로마로 향했는데 비엥은 로마의 코르소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책임자로 부임하기 위해 제자들을 인솔하고 갔다. 일행이 로마에 도착한 것은 파리를 떠난 지 한 달 남짓 후였는데 볼로냐와 피렌체에 잠시 체류하면서 주요 대가들의 작품을 습작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반부터 로마는 다시금 유럽 예술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다. 1738년 고고학자들이 헤르쿨라네움을 발굴했고 십 년 후에는 폼페이를 발굴했으므로 고대 유적과 유물을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이탈리아로 대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은 고대 번영의 수도 로마에 오래 머물면서 이탈리아 각지를 두루 여행했다. 헤르쿨라네움(현재 이탈리아 명칭으로 에르콜라노Ercolano)은 나폴리 동남쪽 베수비우스Vesuvius 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로서 기원전 79년 8월 24일 베수비우스 산 분화 때 폼페이와 함께 매몰되었지만 폼페이와 달리 용암이 응회암으로 변했으므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매몰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독일의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의 고대 그리스 미술에 대한 찬양으로 로마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1755년 5월에 출간한 『회화와 조각에서 그리스 작품의 모방에 관하여』에서 빙켈만은 “이상적 예술에 도달하는 지름길은 고대의 모방”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으며 유럽인의 애독서가 되었다. 신고전주의 이론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빙켈만은 이 책을 출간한 후 이탈리아로 가서 1759~64년에 걸쳐 『헤르쿨라네움 발굴에 관한 비안코니 서한』(사후 간행), 『헤르쿨라네움 발굴에 관한 브륄 서한』(1762년에 간행), 『최근의 헤르쿨라네움 발굴에 관한 퓌슬리 보고』(1764년 간행) 등 세 편의 보고서를 집필했다. 빙켈만은 아테네의 황금기였던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인의 조각을 찬양하는 가운데 제스처와 표정의 특징으로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Edle Einfalt und stille Gr슙e”를 꼽았다. 이 말은 날개를 달고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고대 그리스인의 미를 규정짓는 말이 되었다.

 

<라오콘>을 고대의 걸작으로 꼽은 빙켈만은 이 작품을 찬양해마지 않았다.

 



그리스 걸작들의 일반적이며 탁월한 특징은 결국 자세와 표현에서의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이다. 바다의 수면이 사납게 날뛰어도 그 심해는 늘 평온한 것처럼 그리스 조상들은 휘몰아치는 격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위대한 영혼을 나타냈다. 이 영혼은 격렬한 고통 속에 있는 <라오콘>35 군상의 얼굴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 고통은 얼굴뿐 아니라 육체의 모든 근육과 힘줄에도 나타나 있어서, 우리는 얼굴이나 육체의 다른 부분을 보지 않고 고통으로 움츠러든 하복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이나 전체 자세에서는 전혀 고통에 찬 격정이 드러나 있지 않다.

그의 고통은 우리의 영혼에까지 스며들어 온다. 그러나 우리가 이 위대한 이처럼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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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로마에는 각 나라에서 온 예술가들로 붐볐다. 영국인 해밀턴36과 독일인 멩스37는 이탈리아에 오래 체재하면서 고전의 아름다움을 탐닉했고 두 사람을 통해 독일과 영국에서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유럽인들의 대여행은 이탈리아에 큰 수입을 안겨주었는데 마차에 짐을 가득 싣고 온 관광객들 가운데는 미술품 콜렉터와 딜러들도 많았으며 그들은 로마 외에도 주요 고대 도시들에 오래 머물렀다. 관광객들은 현지 화가들을 고용해 고대 유적을 배경으로 자신의 초상을 그리기 보통이었고 귀국할 때는 고대 유물을 몇 점 가지고 가기 예사였다.38 당시만 해도 유물들이 유적지에 널려 있었다. 여행자들 다수의 관심은 고대 그리스 문화가 서양문명 전반에 미친 영향에 있었다.

 

로마로 떠나기 전 파리에서 다비드는 친구들에게 자신은 생기 없는 고대 미술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1780년까지 5년 동안 로마에 체류하면서 그의 작품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1779년 7월과 8월 나폴리를 방문한 후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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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엥은 학생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는데, 여름에는 5시에 기상시키고 6시부터 8시까지 실제 모델을 그리게 했으며 겨울에는 저녁에 조명을 사용해 모델을 그리게 했다. 바티칸 뮤지엄, 교회, 궁정에 있는 작품들을 모사하게 했으며 의무적으로 파리로 발송해야 하는 부과물에 대해서는 학생들 자율에 맡겼다. 그러나 그는 학생들의 활동에 제약을 두었는데 외출했을 경우, 겨울에는 오후 10시, 여름에는 11시까지 아카데미로 돌아와야 했다. 심지어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유니폼을 입게 했는데 그의 말을 거스르면 파리로 보내졌다. 다비드는 비엥의 지침을 따랐고 로마의 의상과 유적들을 드로잉하면서 고전의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했다.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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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는 풍부한 정보원이자 조언자이다


 

 

 

 

현대의 연구는 결혼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확인해줍니다. 그렇지만 그 혜택은 남녀 간에 차이가 있는데, 통계에 다르면 결혼한 남성 1만 명과 여성 1만 명을 부작위로 선택해 그들의 사망 시점을 추적한 결과, 남성의 수명은 7년 는 반면, 여성의 수명은 2년 정도 늘었습니다.

1968년부터 1988년까지 결혼 관계를 시작했다가 끝낸 1만1천 명의 남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하고, 결혼하기 전부터 시작해 사망이나 이혼으로 결혼 관계가 끝난 뒤까지 그리고 심지어 재혼한 경우에 그 뒤까지도 추적한 결과 배우자가 제공하는 정서적 지원이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많은 혜택을 준다는 것 발견했습니다. 배우자뿐 아니라 친척이라도 친근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심박동수 감소, 면역 기능 향상, 우울증 감소를 비롯해 다양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배우자는 서로에게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며, 친구와 이웃, 친척으로 이뤄진 더 넓은 소셜 네트워크에 서로를 연결시켜줍니다. 실질적 지원이란 측면에서 볼 때 남편과 아내가 가장 명백하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은 동거를 통한 규모의 경제입니다. 각자 따로 사는 것보다 함께 살면 생활비가 적게 들 뿐 아니라 배우자가 있다는 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온갖 종류의 일을 다 도와줄 수 있는 만능 조수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자는 풍부한 정보원이자 조언자이며, 그러한 방식으로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부부는 서로의 이익을 최대한 배려해주는 지지자가 있기 때문에 배우자를 잃은 사람이나 미혼자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병원 치료를 받으며, 또 치료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할 가능성도 더 낮습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Connected』(2010)의 저자는 성별에 따른 메커니즘의 차이와 교환되는 것의 차이는 남녀가 결혼하면서 건강상의 혜택이 생기는 시기에도 반영된다고 말합니다. 남성은 결혼하면 어리석은 미혼남의 기행이 즉각 사라지면서 사망 위험이 크게 감소합니다. 반면 여성은 건강상의 혜택이 즉각 생기지는 않습니다. 여성에게는 건강상의 혜택이 나타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사망 위험 또한 서서히 감소합니다. 게다가 사망 위험이 감소되는 정도도 남성에 비해 작습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의 사망 위험은 갑자기 크게 높아집니다. 그래서 아내를 잃은 남성은 1년 안에 사망할 위험이 30-100% 더 높아집니다. 이는 모든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나면 그 남성의 사망 위험은 거기서 크게 낮아집니다.

과거 연구 결과 여성에게는 배우자 상실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배우자 상실 효과를 경험하며, 그 정도도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배우자 상실 효과의 다른 측면들에서 성별 차이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배우자 상실의 충격에서 더 빨리 회복됩니다. 여성이 죽으면 남성은 정서적 지원,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가정의 안정 등이 사라지게 됩니다. 아내를 잃은 남성은 종종 사교계에서 단절되고,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남성의 식사는 불규칙해지고 집안도 엉망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 결과 배우자의 나이와 인종도 그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젊은 여성과 결혼하는 건 남성에게 좋지만, 젊은 남성과 결혼하는 건 여성에게 좋지 않습니다. 남편과 어린 아내의 나이차가 클수록 결혼이 건강에 주는 혜택이 더 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물론 평균적인 효과입니다.

연구 결과 남성의 인종과는 상관없이 흑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배우자 상실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반면, 백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배우자 상실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돈이 많고 건강한 배우자와 결혼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자신의 건강에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배우자가 제공해주는 것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건강하거나 교육 수준이 높거나 부자인 배우자는 유익한 정보와 사회적 지원, 물질적 부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과 애정의 흐름도 중요합니다. 8년 동안 1049쌍의 부부를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잘못된 결혼은 나이가 들면서 건강 악화를 부추긴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부 원인은 배우자와의 부정적 상호작용 때문인데, 이는 심혈관계와 면역계에 스트레스를 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피해가 누적됩니다. 그 결과 자신을 사랑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은 배우자나 자신이 사랑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은 배우자가 사망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배우자가 죽었을 때만큼 그 사람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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