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원11th Dimension


 

 

 

 

1994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프린스턴 대학의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1951~)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폴 타운센드Paul Townsend가 10차원 끈이론이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신비한 11차원 끈이론의 근사적인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와 더불어서 위튼은 11차원 막이론에서 하나의 차원을 작은 영역 속에 말아 넣으면 10차원의 IIa형 끈이론type IIa string theory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개의 끈이론들은 위튼이 발견했던 신비한 11차원이론의 각기 다른 근사적 이론이었음이 밝혀졌다. 11차원에는 여러 종류의 막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위튼은 새로운 이론을 M-이론이라 불렀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M-이론은 다섯 개의 끈이론뿐만 아니라 초중력이론까지 설명하는 그야말로 만능의 이론이었다.



11차원 초중력이론super gravity theory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자graviton와 그 초대칭짝인 초중력자gravitino, 이렇게 두 개의 입자만을 포함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M-이론에는 질량이 제각기 다른 입자들이 무한정으로 등장하며(각 질량은 11차원 막에 주름을 형성하는 고유한 진동에 대응된다), 11차원 초중력이론까지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11차원 막이론에서 하나의 차원을 작은 영역 속에 감아 넣으면 막이 끈으로 전환되면서 전체적인 이론은 II형 끈이론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11차원의 구球에서 하나의 차원을 제거하면 원래의 형태가 붕괴되면서 적도에 해당하는 부분이 닫힌 끈으로 남을 것이다. 이와 같이 11차원 막이론에서 열한 번째 차원을 작은 영역에 숨기면 그 결과는 10차원 끈이론과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10차원의 모든 끈이론과 11차원 이론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통일이론을 갖게 된 셈이다. M-이론은 막의 개념을 이용해 기존의 끈이론을 11차원에서 재구성한 신비의 이론으로 무한대문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M-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끈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의 막membrane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점입자point particle가 0-브레인zero-brane에 해당된다. 점은 기하학적으로 아무런 차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를 갖고 있는 1차원 끈은 1-브레인(막)이며, 농구공의 표면처럼 길이와 폭으로 정의되는 물체는 2-브레인(막)에 해당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길이와 폭 그리고 너비를 갖고 있는 일종의 3-브레인(막)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면 p차원의 공간은 p-브레인(막)이 되는데(p는 정수), 발음상으로 pea-brane(완두콩 표면)이 되어 원래의 뜻에 자동으로 부합된다.



막의 차원을 줄여 끈으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열한 번째 차원을 작게 말아서 없앨 수도 있지만 11차원 막의 적도부분을 얇게 썰어서 원형리본을 얻어낸 후 리본의 폭을 0으로 가져가면 10차원 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페트르 호라바Petr Horava와 에드워드 위튼은 이 방법을 이용하여 M-이론으로부터 이형끈이론heterotic string theory이 유추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11차원 M-이론을 10차원 이론으로 줄이는 데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방법으로 얻어진 이론들은 이미 알려져 있는 다섯 개의 10차원 초끈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로써 M-이론은 끈이론은 왜 다섯 개나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M-이론은 이론물리학 역사상 가장 큰 대칭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중성duality이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도구를 이용해 다섯 개의 끈이론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I형 끈이론과 이형 SO(32) 끈이론의 경우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공통점이 없다. I형 끈이론은 열린 끈과 닫힌 끈 모두 허용하며, 모든 끈은 끊어지거나 합쳐지는 등 다섯 가지의 경로를 통해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형 SO(32) 끈이론에서는 오직 닫힌 끈만 허용되고, 상호작용도 세포분열을 닮은 단 한 가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I형 끈이론은 10차원 공간에서 정의된 이론인 반면 이형 SO(32) 끈이론은 26차원에서 정의된 이론이다. 그러나 맥스웰방정식Maxwell's equations(전기장과 자기장의 발생과 상호관계를 기술하는 네 개의 방정식으로 19세기의 스코틀랜드 이론물리학자, 수리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1831~79)은 실험법칙을 표현하는 이들 네 개의 식을 사용해 전자기파를 기술했다)의 경우처럼 이들 사이에는 마술과도 같은 이중성이 존재한다. 끈들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작용의 세기를 증가시키면 I형 끈이론은 이형 SO(32) 끈이론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두 개의 물리이론이 수학적으로 동등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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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끈이론


 

 

 

 

1984년에 시작된 끈이론 열풍은 한동안 전 세계의 이론물리학계를 휩쓸면서 물리학 최대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 즈음, 끈이론 추종자들의 열정은 이미 많이 식어 있었다. 끈이론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끈을 서술하는 방정식이 무려 수십억 개나 된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차원을 줄이는 방법에 따라 끈이론의 해는 4차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얻어질 수 있으며, 각각의 해는 나름대로 타당한 우주를 서술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저에너지 세계에서는 초대칭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초끈이론을 현실세계에 적용하려면 초대칭을 붕괴시켜야 한다. 초대칭이 붕괴되지 않았다면 각 입자는 자신의 초대칭짝과 동일한 질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초대칭이 이미 붕괴되어 초대칭짝들의 질량이 현재의 입자가속기로는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졌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초대칭이 어떤 과정을 통해 붕괴되었는지는 아직 미지로 남아있다.



베네치아노의 초창기 이론에 입각한 초끈이론은 I형type I 초끈이론이라 한다. I형 초끈이론은 열린 끈open string(두 개의 끝을 갖는 끈)과 닫힌 끈closed string(원형으로 감긴 끈)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1970년대의 물리학자들은 I형 끈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미치오 카쿠와 케이지 키카와는 끈의 장이론을 이용해 I형 끈의 상호작용이 모두 다섯 종류로 분류될 수 있음을 입증했는데, 그중 네 개는 열린 끈에 적용되고 닫힌 끈의 상호작용은 한 가지뿐이다. 두 사람은 닫힌 끈만으로도 자체모순이 없는 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이론은 현재 II형type II 끈이론으로 알려져 있고, 닫힌 끈들은 세포분열 과정과 비슷하게 두 개의 작은 닫힌 끈으로 분열하면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가장 현실적인 끈이론으로는 프린스턴의 연구팀으로 원자핵 내의 강력과 쿼크의 작용을 밝혀낸 공로로 2004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그로스David J. Gross(1941~),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1984년에 코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에밀 마티넥Emil Martinec(1958~), 라이언 롬Ryan Rohm, 시카고 대학의 교수 제프리 하비Jeffrey A. Harvey가 구축한 이형끈이론heterotic string theory을 들 수 있다. 닫힌 끈만을 허용하는 이형끈이론은 E(8)×E(8), 혹은 O(32)대칭군을 채용하고 있는데, 대칭의 규모가 매우 커서 GUT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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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의 <테니스 코트의 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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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8월 26일 의회가 ‘인권 선언문’을 공표했다. 선언문 제1조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적혀 있다. 다비드는 선언문을 찬양하는 뜻에서 기념비적으로 아름답게 장식했다98. 그에게도 혁명의 기운이 발하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다비드는 사회적 명성을 누리며 왕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기 원했고 또 받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진보주의 사고를 가진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혁명이 개혁과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혁명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조금 늦은 1792년 4월부터였다. 그는 기존 체제에 반감이 많았고 퍽 개인적인 이유에서였지만 아카데미에 대한 반감은 몹시 컸다.

그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언행에 분노했으며 비민주적인 처사와 협량하고 반복적인 가르침을 못마땅해 했다. 루브르에 있는 그의 아파트는 아카데미에 반감을 가진 회원과 반항적인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회합을 갖는 장소가 되었다. 다비드와 동료들은 아카데미에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파리 코뮌, 의회, 그리고 과격한 쟈코뱅 클럽의 정치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과격한 성향을 지닌 쟈코뱅 클럽 멤버들은 과거 도미니카 소속의 성 야고보 수도원에서 회합을 가졌는데 야고보James는 라틴어로 쟈코부스Jacobus이고 쟈코뱅은 이 말에서 비롯되었다. 쟈코뱅 클럽의 정치가들과 교류하면서 다비드는 더욱 과격해졌고 개혁을 위해 아카데미가 완전히 폐쇄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도 갖게 되었으며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지도자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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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9월 27일 새로운 민주적 아트 코뮌이 발족되었는데 3백 명으로 구성된 코뮌의 지도자에 다비드가 선출되었다. 아카데미는 다비드를 회유하기 위해 1792년 7월 그를 부교수에 임명했다. 그러나 1793년 4월 그가 수업에서 모델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지적당하자 교수에 대한 아카데미의 강압적 태도에 반발하는 편지를 썼다. 결국 다비드는 아카데미 무용론을 주장하게 되었고 국민공회는 그해 8월 12일 모든 아카데미를 폐쇄하고 아카데미의 기물을 압류했다. 다비드에 의해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이런 결과를 초래한 데 대해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들 가운데 그가 포함되었다. 1789년부터 1791년까지 그는 혁명을 지지했으며 예술에 관해서 만큼은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비드는 1790년 9월 쟈코뱅 당원이 되었다. 파리 쟈코뱅 당으로부터 혁명을 주제로 한 그림을 의뢰받고 1791년 <테니스 코트의 선서>97, 99~103를 드로잉했는데 1789년에 있었던 사건을 기념하고 기리기 위해서였다. 6백 명의 대의원이 일체가 된 그날의 사건은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준 매우 뜻 깊은 사건이었다. 그는 새로운 프랑스를 탄생하게 한 그날의 사건을 기념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커다란 크기(세로 7m 가로 10m)로 그려 의회 안에 걸 생각이었다. 그는 그날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목격자들의 말을 듣고 그렸다.

이것은 쟈코뱅의 시각에서 본 혁명사회였다. 정치적 이상뿐 아니라 남자들 간의 이상적인 관계를 특유의 기교로 유감없이 그려내었다. 화면 오른편에 양손을 가슴에 대고 억제할 수 없는 감격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오른쪽 끝에 선서하기를 거부하는 마르탱 도흐의 모습이 보이는데 의자에 앉은 채 머리를 숙이고 양팔을 가슴 위에 어긋나게 포개고 움츠린 모습이다. 왼쪽 끝 병석에서 부축을 받고 나와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참석한 모페티 드 라 마이엔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오른편에 신부 두 사람 티볼트와 리벨의 포옹하는 모습이 보인다. 양쪽 창문과 왼쪽 입구에는 역사적 사건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몸을 높여 실내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보여주는 부모도 보이고 오른쪽 첫 번째 창문에 있는 두 소년은 다비드의 두 아들 샤를과 외젠이다. 작은 발코니에 사람들의 무리가 보이며 그들 가운데 칼을 들고 있는 궁정근위병 뒤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장 폴 마라로 보이는 사람이 열심히 현장 기사를 적고 있다.

하지만 다비드는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드로잉만 남겼는데 작품을 완성하기 전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의원들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올랐으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강한 바람이 열기를 식혀주었다. 전제정치에 대한 프랑스 시민의 반발은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거세었으므로 혁명은 필연적이었다. 1791년 7월 파리 시장 직을 사임한 베일리가 1793년 11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대의원 중에는 변심하여 군주제를 지지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비드는 1791년의 살롱에 이 드로잉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호라티우스의 맹세>8, <소크라테스의 죽음>10, 그리고 <브루투스의 아들들>88도 함께 소개했는데 그가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정치적 선전의 목적으로 사용했음을 알게 해준다.

 

 



107

 

이렇듯 정치에 큰 관심을 나타내면서 다비드는 동시에 상류층 귀족들의 의뢰를 받아 초상화를 그렸다. 초상화는 그의 주요 수입의 원천이었다.

1791~92년에 마담 아델라이드 파스토르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전에 그린 것에 비하면 사뭇 달랐다.107 이는 당시 사회의 일상이 반영된 것으로 상류층 여인의 초상을 그리더라도 아이를 돌보고 가사에 전념하는 여인의 미덕을 찬양하는 작품이 무난했기 때문이다. 배경을 단순하게 한 것으로 미뤄 그가 그림을 속히 완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바느질하는 마담의 손에는 바늘이 들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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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시작, 바스티유 감옥 습격



 



 

 

 

프랑스는 1778~83년 사이에 미국 독립전쟁(1775~83)에 참여한 후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 결과 프랑스는 정치적·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새로 부상한 중산계급과 귀족계급과의 마찰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중산계급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했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지만 귀족들이 이를 허용할 리 없었다. 가장 큰 정치적·사회적 변수로 등장한 것은 가난에 허덕이는 다수 시민들의 분노였다. 시민들은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혹사당하는 삶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귀족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당시 귀족과 성직자의 수는 50만 명 미만이었고 보통 시민의 수는 2천 5백만 명이었으므로 시민의 분노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했다. 1788년 흉년이 들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는데 빵값의 앙등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한층 많아졌다. 민주주의 정체에 대한 이론과 신념 그리고 시민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는 계몽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민들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성적으로 매우 당연했다. 이런 취지의 글이 여기저기에서 발표되어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면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자연히 혁명의 기운이 퍼져나가게 되었다.

사회적 동요가 심화되자 루이 16세는 1789년 5월 5일 삼부회(Estates General, 프랑스 구제도 하에서의 신분제 의회로 성직자, 귀족, 제3신분이라는 세 신분의 대표로 구성된다. 후에 국민의회로 정형화된다)를 소집했다. 삼부회는 1614년 이후 175년 만에 처음 열렸는데 왕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다란 벨벳 가운을 걸친 성직자 308명, 자두빛 모자를 쓴 귀족 285명과 더불어 시민을 대표하는 제3신분으로서 베르사이유로 간 사람들은 사회적 권력과 부를 누리던 변호사, 공무원, 은행가, 상인, 생산업자들로 가난한 농부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95



루이 16세는 국가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음을 고백하면서 국고를 마련할 새로운 방법을 고안할 때라고 역설했고, 참석자들은 정의와 자유의 기치 아래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 가운데 제3신분 의원들이 6월17일 국민의회(1789. 6.17~1791. 9. 30)라는 명칭 하에 영국식 국회를 건설할 것을 결의·발표했다. 이들은 6월 20일 궁정단지 바로 밖에 위치한 궁정 테니스 코트에서 회합을 갖고 헌법을 만들 때까지 해산하지 않기로 선서했고, 성직자 대다수와 귀족 50명이 합세했다(테니스 코트의 선서). 이들의 선서가 혁명의 촉매작용을 했다. 다비드는 이 장면을 그렸다.95 의회는 7월 7일 헌법위원회를 창설하고 7월 9일 국민제헌의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96



파리와 지방에서 집회가 잦아지자 왕은 군대를 이용해 물리적으로 해산시켰고 이런 과정에서 시민과 군대가 충돌했다. 가장 큰 충돌은 1789년 7월 14일에 발생했는데 8~9백 명의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무기와 화약을 탈취하기 위해 군대와 충돌했다.96 소위 말하는 7월 혁명으로 프랑스의 대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혼란한 사회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명의 취지와 진행에 대한 견해 차이로 혁명에 가담한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진 피비린내 나는 암투 그리고 왕정을 여전히 옹호하던 집단의 물리적인 반발로 많은 인명의 피해가 속출하게 된다.

1789년 8월 4일 의회는 봉건제·영주제 폐지를 결의하고 9월 26일 ‘인권선언문’을 채택하여 행정·사법의 개혁에 착수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를 수립하게 된다. 의회는 헌법을 완성하여 1791년 9월 30일 입법의회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해산했다.

1792년 8월 10일 파리 시민들이 봉기하여 베르사이유로 몰려갔고, 9월 20일 입법의회에 이은 헌법제정의회로서 국민공회(1792. 9.21 ~1795. 10. 26)가 첫 회합을 가졌다. 국민공회는 이튿날 왕정의 폐지를 선언하고 다음날 9월 22일 공화정 제1년이 시작되었음을 공고했는데 이것이 프랑스 제1공화정이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부터 이날까지를 프랑스 대혁명의 제1단계라고 한다. 공화정 체제에서 국민공회는 3년의 회기동안 다음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1. 폐위시킨 루이 16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2. 외국 군대의 침략으로부터 프랑스는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3.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반란과 폭동을 어떻게 진압할 것인가.

4. 공화제의 헌법을 어떤 내용으로 제정할 것인가.

5. 국민공회의 전신인 국민제헌의회가 1789~91년까지 제정한 경제·사회적 개혁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



헌법 제정을 위해 정당과 정파가 형성되었고 진보주의 진영이 정계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의원 749명 가운데 상공업 부르주아가 중심이 된 지롱드당이 약 160명, 파리의 자코뱅 의원을 중심으로 한 산악파가 약 200명, 평원파로 불리운 중간파가 약 400명이었다. 제1공화정 선언 직후부터 국민공회 내에서 주도권을 놓고 우익 지롱드당과 좌익 산악당의 대립이 격화되었으며, 각각 국민공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기에 따라 지롱드파 국민공회·산악당 국민공회·테르미도르당 국민공회로 구분된다. 지롱드당은 주로 지방의 지지를 받았고 쟈코뱅당은 도시, 특히 파리의 하층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두 당파 사이의 암투는 파리 시민의 6월 폭동(1793년 5월 31일~6월 2일)으로 해결되었다. 9월 학살(1792년 9월 첫째 주에 일부 파리 시민이 1000명도 더 되는 죄수를 재판 없이 처형한 사건)의 책임을 따지면서 일어난 이 폭동으로 지롱드당이 몰락했다. 지롱드당은 지방에서 반란을 기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쟈코뱅당은 새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자체 세력을 강화했다. 쟈코뱅당은 1793년 여름까지 정권을 장악했지만 프랑스는 대내외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군의 사기는 헤이해졌고 행정은 문란했다. 대프랑스 동맹군이 동부에서 진격해 들어왔고 왕당파와 지롱드당의 반란이 서부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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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칭Super Symmetry


 

 

 

 

끈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과학적 대상들 중에서 가장 높은 대칭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세 가지 종류의 쿼크quark(6종種 3류類로 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6종의 쿼크는 up, down, strange, charm, bottom, top이며, 3류는 색color으로 각각 부르며 소립자elementary particle, 중양자deuteron(혹은 중양성자, 중수소deuterium의 원자핵), 중성자neutron(수소를 제외한 모든 원자핵을 이루는 구성입자)의 구성요소가 쿼크이다)는 SU(3)대칭으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고, 다섯 종류의 쿼크와 렙톤lepton(경입자, 스핀이 1/2로 페르미온fermion이면서 강한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입자)이 등장하는 대통일이론GUT(Grand Unified Theory)는 SU(5)대칭으로 표현된다. 끈이론에서 대칭은 남아있는 무한대와 비정상성을 상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칭성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도구이므로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은 아마도 가장 우아하고 강력한 대칭성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입자들을 자기들끼리 바꿔치기해도 형태가 변하지 않는 그런 방정식이다. 이런 대칭을 초대칭super symmetry이라 하며, 초대칭을 갖고 있는 끈을 초끈super string이라 한다. 초대칭은 물리학에 등장하는 모든 입자를 맞바꾸는 유일한 대칭으로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나열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는 스핀값에 따라 페르미온fermion과 보존boson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빛의 입자인 광자와 약력을 매개하는 W-보존 그리고 강력을 매개하는 글루온gluon(쿼크들을 엮어놓는 힘인 강한 상호작용을 전달하는 소립자)의 스핀은 모두 1이며,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의 스핀은 2이다. 이상과 같이 스핀이 정수인 입자들을 보존이라고 한다. 또한 물질을 구성하는 모든 입자는 1/2, 3/2, 5/2 등 반정수半整數의 스핀을 갖고 있는데, 이들을 페르미온이라 한다. 중성미자netrino, 전자electron, 양성자proton, 중성자neutron, 중간자meson 등이 여기에 속한다. 초대칭은 보존과 페르미온을 연결하는 대칭이므로 힘(매개입자)과 물질(물질입자)을 연결시켜주는 대칭이라 할 수 있다.



초대칭이론에 따르면 모든 입자는 파트너를 갖고 있다. 각각의 페르미온들은 특정한 보존과 초대칭짝을 이룬다. 초대칭짝에 해당하는 입자는 아직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지만 물리학자들은 이 가상의 파트너 입자들에게 이미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예를 들면 전자의 초대칭짝은 셀렉트론selectron이며, 스핀은 0이다. 초대칭짝 입자의 이름은 대개 s로 시작한다. 또한 약력에 관여하는 렙톤의 초대칭짝은 슬렙톤alepton이고 쿼크는 스핀=0인 스쿼크aquark를 초대칭짝으로 갖고 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입자들인 쿼크, 렙톤, 중력자, 광자 등의 초대칭짝을 통칭해 초대칭입자super particle(혹은 sparticle)란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입자가속기에서 이런 입자들이 발견된 사례가 아직 없다. 가속기의 출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끈의 위상을 이용하여 무한대를 제거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무한대는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페르미온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무한대와 보존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무한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종류의 무한대는 항상 크기가 같고 부호는 반대이기 때문에 서로 정확하게 상쇄된다. 즉 페르미온과 보존에 의한 공헌도가 항상 반대부호로 나타나서 이론에 남아있는 무한대가 말끔하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끈이론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를 하나의 대칭으로 통합시킬 뿐만 아니라 끈이론에 나타나는 무한대문제까지 깨끗하게 해결해주는 이상적인 이론이다.



우리는 중력을 제외한 세 종류의 힘의 세기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낮은 에너지에서 강력은 약력보다 30배쯤 강하고 전자기력보다는 100배나 강하다. 그러나 이런 대소 관계가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빅뱅이 일어나던 무렵에 모든 힘은 같은 크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리학자들은 빅뱅이 일어나던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 세 힘의 크기를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표준모형에 의거한 계산에 의하면 우주 초창기에 전자기력과 약력 그리고 강력의 크기는 거의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초대칭을 도입하면 세 힘의 크기가 완전히 같아지면서 모든 물리학자의 희망봉인 통일장이론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물론 이것은 초대칭이론의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없지만 지금가지 알려진 물리학과 초대칭 사이에 어떤 모순이 유발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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