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어려운 시기의 일체감, 삶을 재정립하기, 내 인생에서 일체감이 지니는 의미

 

 

 

어려운 시기의 일체감

일체감은 내가 경험했듯이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 되어준다. 가장 힘든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사랑과 에너지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선물과도 같은 깨달음을 다른 이들과 나누도록 북돋워주었다.

우리 모두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살아가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묻곤 한다. 인생은 순수한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불행도 안겨준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내 삶도 비극의 연속이었다. 사실 최근에 겪은 버질의 죽음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최악의 비극이기도 했다.

결혼 생활 27년 만에 남편을 잃은 뒤, 나는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고 영혼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아픔을 겪었다. 대체 왜 버질이 내 곁을 떠나야 했는지 하루도 묻지 않는 날이 없었다.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서 내 가슴은 조금도 아물지 못한 상태였다. 그제야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상처받은 심장이 저절로 치유되고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 주변에서 사랑의 힘을 힘껏 끌어당기지 않는 한 고통은 내 영혼과 육신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전에도 종종 그랬듯이 치유의 일환으로 일체감에 눈을 돌렸다. 원래의 일체감 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달라고 나는 신과 수호천사에게 간절히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려 할 때마다 목구멍에 차오르는 슬픔을 삼키며 나에게서 힘을 빼앗아가고 나를 더 큰 슬픔에 빠뜨리는 생각이 번지지 않도록 애썼다. 또한 기도를 시작하여 영령들과의 신성한 연결고리를 좀 더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는 휴식과 심호흡, 운동과 자연 속에서의 산책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온몸으로 따뜻한 햇살을 받고 길가에 핀 꽃들에 감탄하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이 세계의 위대함을 깨닫고 나 자신의 개인적 딜레마에서 벗어나 힘이 되는 일체감의 세계 속으로 잠시나마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나는 떠오르는 대로 좌절과 슬픔, 분노 등의 느낌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적어 내려가는 동안 이 모든 감정이 내 몸을 지나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훈련을 통해 남편이 죽은 이유를 알게 되었고, 개인적 비극 뒤에 숨은 위대한 목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를 되찾기 위해 신이 보여준 것들을 순순히 보고 느꼈다. 평화를 흡수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편에게 매일같이 접속해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은 꿈속에서 침대 발치에 앉아 나를 안아주려 했다. 그럴 때면 절대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남편은 자신의 존재를 암시하는 방법(이를테면 한낮에 전등이 반복해서 깜빡인다거나)으로 자신의 기운을 내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죽은 남편의 존재를 강하게 느끼곤 했다. 남편은 종종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나를 혼자 내버려두기 싫어서라고 말하곤 했다. 그 기억이 나를 더욱더 슬프게 했지만, 한편 내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남편과 앞으로 만나지 못하며 두 번 다시 그를 보지도 듣지도 못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체감과 믿음 그리고 시간의 힘을 빌려 나는 천천히 깊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속담에서 말한 대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간혹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도 있지만, 그동안 살면서 겪어온 경험 덕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속 깊이 잘 알고 있다. 즉 일체감이 구현된 상태로 돌아가 이 우주와 신 그리고 타인을 이어주는 신성한 치유의 힘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결속감은 항상 용기와 믿음을 가져다주고, 상실과 변화의 바다를 건너는 나를 물 위로 띄워준다. 살면서 여러 번 그랬듯이 이제 낡은 것들과 안녕을 고하고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디딜 때다. 그럴 때면 기도하거나 다른 이들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힘을 얻곤 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인생이라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밀쳐낼 수 있었고, 일체감에 닿게 되었다.

 

 

삶을 재정립하기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뒤로 얻게 된 특별한 직관력 덕에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집단의식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직관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보’를 볼 수 있다(모든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나는 영혼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신성한 연결고리를 깨닫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버질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우주에 현존하는 신이 주신 사랑과 에너지를 끌어 모았다. 또한 지금 비록 육신은 없지만 남편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사람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친구들과 다른 가족들에게도 나 자신을 열었다. 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연민과 자비를 베푸는 이들에게서 도움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필요한 순간에 꼭 알맞은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람들을 거듭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신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치유와 기쁨,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아무리 삶이 어두울지라도 현생에서 내게 준비된 인연들 덕분에 사랑과 행복이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건강과 웰빙을 위해 마음과 몸 그리고 정신을 추슬러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또한 나는 직관의 힘으로 사람들의 육신을 둘러싸고 있는,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어두운 에너지의 존재를 관찰할 수 있었다(나중에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하겠다). 또한 어두운 에너지가 몸속 음습한 곳에 자리를 잡고 불균형이나 종양 혹은 질병을 키우는 것도 지켜보았다. 나 역시 깊은 슬픔이 몸속에서 차갑고 어두운 에너지로 변하여 병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마음과 몸 그리고 영적 연결고리를 통해 각자가 고통을 선택할 수도, 치유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원기를 북돋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영혼을 고양시키려는 이 모든 노력이 질병과 고통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는 인생이란 그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생각을 거두고, 대신 신과 우주,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 영령들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들과 관계를 맺다 보면 나 자신도 저절로 치유될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절망과 슬픔에 사로잡히려 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일체감을 이루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신성한 창조주의 사랑과 기운 그리고 용기를 실천하는 자로서 얻게 되는 평화와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 말이다.

긍정적인 태도를 지키는 데는 정신적 훈련이 정말로 필요하다. 기쁜 일이 생길 때는 항상 그에 버금가는 슬픔이 따르며, 그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진실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산다. 유럽을 떠나 다른 나라에 와서 결혼을 했던 과거의 상황을 종종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내가 알고 있던 삶을 포기해야 했다. 이렇듯 얻는 것과 잃는 것은 서로 이렇듯 연결되어 있다. 또한 아무리 내가 좋아해서 새 삶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가수로서의 명성이 절대로 과거와 같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기보다 취업을 해서 보석을 만드는 일과 음악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심리 상담사로 일하며 친구들과 동료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 일로 나중에 책을 쓰게 되고 텔레비전에 출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처음에는 상담해주고 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온 첫 번째 고객이자 영화배우 캔디스 버건을 기억한다.

그녀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나는 그녀의 딸이 몸에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외과 수술을 받고 나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캔디스는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예언으로 마음이 놓인 것 같았다(내가 한 말은 나중에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캔디스가 상담비로 얼마를 내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20달러?” 이렇게 해서 내 여행의 다음 단계는 나의 영적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문가로서 도움을 주는 것이 되었다. 영적 직관으로 사람들의 문제를 짚어낼 수는 있었지만, 심오하고도 강력한 치유의 방법은 인지 치료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비로소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신이 내게 주신 능력과 이후에 배운 지식을 활용해 고객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왔다(영적 도움을 찾는 상당히

많은 이들이 정신적, 육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것이 영적인 지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영적 능력과 결합된 심리학적 분석 능력으로 삶의 모든 면에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현대 심리학도 고대의 가르침과 초심리학을 함께 수용함으로써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일체감이 지니는 의미

종종 나는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혼란과 두려움, 방향성 상실이라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신(사람, 자연, 별, 해, 우연 등의 수많은 도구를 가지고 사랑과 치유의 힘을 드러내는 존재)과의 신성한 연결고리를 볼 수 있는 내 능력 덕분에 나는 보다 쉽게 낡은 것과 안녕을 고하고 새것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일체감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삶에 주어진 모든 선물과 내게 용기를 주고 더 나은 기회를 부여해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만 있으면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랑을 깨달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걱정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행동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작은 노력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된다.

나는 신을 믿고 내 앞에 놓인 길을 가려 한다. 좋든 나쁘든 내가 과거에 남겨두고 온 것들은 미래에 다시 나타나리라고 믿는다. 슬픔이나 두려움 혹은 억울한 상황을 불러오는 업(카르마karma)을 나 자신이 의식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성장으로, 새로운 기회로 그리고 신성한 힘이 우리 모두를 보살펴준다는 깊은 믿음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얻음잃음 사이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신과의 소통을 늘 유지해왔다. 어린 시절의 종교(정통 가톨릭)를 버리지 않고 계속 지켜왔지만, 종교가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측면이 더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반대로 영성은 인간을 화합시킨다. 나는 일체감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에너지, 치유와 완전무결함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은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임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제는 과학자들조차 우리와 우주를 연결하는 숨겨진 연결고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쪼개어보아라, 내가 그 안에 있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이렇듯 신성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어디에나 있다. 모두를 품에 안고 사랑의 힘으로 돌본다.

삶의 거친 풍랑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도 당신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끝없는 사랑과 도움이 넘치는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들의 감추어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다가갈 때 그 사실을 더 생생하게 느낀다. 나는 보이지 않는 신성한 관계를 굳게 믿는다. 이 험한 세상이 그것을 너무 쉽게 부정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어둠이 찾아오면 평화와 희망을 주는 합일의 기운에 몸을 맡긴다. 내 삶과 더 큰 세상을 위해 일체감의 상태를 만들려 애쓴다. 나는 내 믿음을 밑거름으로 삼아 그저 단순히 음악을 창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음성으로 노래를 불러 다른 이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기로 했다. 그 믿음은 내게 합치된 영혼을 상징하는 보석 제품들을 창조할 수 있는 영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내가 만든 보석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보석을 보거나 만지기만 해도 신성한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일체감은 또한 사고의 폭을 넓혀, 나로 하여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기술과 기법을 익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몇 년 전 나는 최면술과 심리학의 또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임상심리학자가 되었다.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성공하더라도 그건 다른 사람들

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분명 육체의 감각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언가를 거울에 더 가까이 비춰주기 위해서다. 그것은 자유와 일체감 그리고 웰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영적 세계다.

나는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일체감을 구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잘 알고 있다. 인류는 갈등과 불화의 요소를 품은 거대한 가족이나 다름없지만, 두려움과 불안감을 떨쳐내면 그 속에서 특별한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죽은 남편의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재결합한 기분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원탁에 함께 앉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내 마음속에

살아 있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끝없이 원탁에 합류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커다란 가족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가 빵을 나누고 사랑의 말을 주고받는 바로 이 식탁에서부터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 온 누리에 일체감을 전달한다. 함께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같이 일하고 살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한다. 또한 사랑과 창조, 조화를 향한 우리의 무한한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다 함께 기쁜 마음으로 진화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가족의 일원이 되어 내가 배운 일체감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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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사 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일체감이란 무엇인가

 

 

일체감Wholeliness (명)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며 신과 더불어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치유되는 조건, 상태, 특징을 말함. ‘건강, 무사함, 총체성’을 의미하는 옛 영어 hal에서 유래(또한 hal은 ‘신성한, 신적인 혹은 정신적으로 순수한’이란 의미의 holy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이 개별성이라는 환상을 창조해낼 때 우리는 우주 자체의 본성이 일체감임을 망각한다. 일체감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고통의 해독제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이 몸

을 빌려서 존재하는 한 아주 잠깐씩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본래의 의식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일체감이라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 지구와 우주,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간의 신성한 연결고리를 자각하고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일체감을 경험할 수 있다. 개별성이라는 환상을 깨닫고 마음이 만들어낸 헛것을 끊어낼 때, 우리는 진정한 본성을 기억해내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또한 우리는 그 자체로 전체이고 완전하며 이 우주는 조화로운 상태라는 사실을, 일체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둠도 빛과 함께 존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의 본성은 건강함을 즐기고 완벽한 조화를 경험하며 우주의 기운에 흠뻑 빠지고 싶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신성한 힘의 개별적이면서도 멋진 발현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우리에게는 일체감을 구현하여 다른 이들도 편안함과 기쁨 그리고 신성한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러자면 이 지구상에서 건강과 조화 그리고 협력을 실천해야만 한다. 일체감의 힘을 믿고 가능한 한 그것을 자주 구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신은 조화와 균형을 잃어버린 이 세계를 치유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일체감에 대한 인간의 능력을 믿는다면, 아무리 힘들고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이 닥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 존재의 신비로움과 복잡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긍정적 태도와 창의성 그리고 희망은 개별성이라는 환상을 물리치고 일체감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의 의식이 진화해가는 시점에서 일체감이야말로 우리 세계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치료제나 다름없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눈을 감으면 내 눈앞에는 넓고 기름진 시골 할머니 집 정원이 떠오른다. 정원 한쪽에서는 여름의 토마토가 토실하게 익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허리를 굽혀 굵고 잘 익은 토마토를 따시고, 그 옆에서 닭 몇 마리가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집 안에서는 여동생이 식탁에 앉아 방금 캔 감자의 껍질을 칼로 벗기고 있다. ‘몇 시간 후면 가족들이 돌아올 거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러고는 가족들의 저녁 식사 준비로 분주한 할머니를 돕기 위해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잠시 후 우리 가족은 나무 식탁에 둘러앉아, 수백 년 동안 무수한 가족들과 친구들

그래왔듯이 단출한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마음껏 웃고 떠들며 신선하게 요리한 음식을 먹었다. 또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앞으로 험한 인생의 파고 속에서도 언제나 함께하리라 확인받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였다. 우리는 떠들썩한 가운데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고 서로 농담을 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소란스러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작은 집에 살았지만, 아무도 그 흔한 텔레비전 하나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가혹한 사회주의 정권 시절이라 물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슈퍼마켓에 가면 텅 빈 금속 진열대에 자신의 얼굴만 비쳤지만, 그래도 누구 하나 불

평하지 않았다. 그저 잔을 높이 들어 올려 크고 작은 목소리로 “가족을 위해!”

라고 축배를 들면서 소박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분위기에 젖어 행복할 따름이었다.

물질적 부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정말로 가난했다. 집에 수도도 없었고, 나와 여동생은 몇 되지도 않은 인형을 애지중지했다. 모자라는 장난감은 숲속에서 찾으며 무한한 상상력으로 채웠다. 가난했지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풍족하게 느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 알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훌륭한 가수가 되어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천식에 걸려 일 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나는 노래경연 대회에 나가 힘 있는 목소리로 번번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0대에 들어서면서 노래로 명성을 얻었다.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앨범을 12장이나 낸 가수가 되었고, 온 나라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나는 가수 생활 덕에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가족들이 언제나 나를 든든히 받쳐주었듯이, 나 또한 경제적 부담을 기쁘게 어깨에 지고 나갔다.

루마니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가기로 했을 때, 나는 언제 다시 가족들을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울었다. 서구 세계로 가기 위해 모국을 등지기로 했으니, 나중에 돌아간다 해도 고국이 날 환영해줄 리 없었다. 철의 장막이 나와 가족들을 막고 서 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곧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더욱 운이 좋았던 것은 남편 또한 식구가 많은 데다 그들 모두가 정이 넘쳤다는 사실이다. 가족들은 서로가 필요로 할 때 항상 함께했고, 특별한 날을 같이 축하해주었으며, 어려울 때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고국에 남기고 온 내 가족들과 똑같았다.

남편과 나 또한 곧 가정을 꾸리고 세 딸을 낳아 길렀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부모님뿐 아니라 남편까지 여의게 되었다. 남편 버질이 최근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가족이 하나였을 때 내가 얼마나 큰 힘을 얻었던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도 다투기야 했지만 물질적 풍요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리라고는 믿지 않았고, 언제나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과 회복의 근원이 되었다. 슬프거나 두려울 때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을 북돋아주었으며, 삶의 아름다움 속으로, 기쁨과 긍정 속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부드럽게 이끌어주었다.

내 어릴 적 나무 식탁에 놓여 있던 맛있는 음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었지만 활력과 희망을 준 것은 바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우아한 장식과 값비싼 고급 도자기로 가득 찬 식당이 딸린 저택에 살며 수 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제품과 온갖 진귀한 먹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중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이웃들, 수많은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들은 종종 홀로 고민을 끌어 안고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너무 바빠 자신의 고민 따위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침묵하며 살아간다. 여럿이 원탁에 둘러앉음으로써 우리는 에너지를 되찾는다. 땅에서 난 과일뿐만 아니라 웃음과 사랑, 대화와 기억으로 자신을 살찌운다. 주의 깊게 살핀다면, 우리가 오기 전에 앉아 있었던 사람뿐 아니라 뒤에 오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독자들처럼 원탁에 모여 있었지만 만나지 못한 이들까지도)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인류라는 커다란 가족의 일원이다. 결코 혼자가 아니며 언제나 존중과 사랑과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평화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길이 험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조차 내일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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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저자 : 카르멘 하라

저자 카르멘 하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역자 : 이덕임

역자 이덕임은 동아대학교 철학과, 인도 뿌나 대학에서 인도철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독일어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인문학과 철학 분야의 책들을 주로 번역하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고 있다. 번역서로는 『자발적 가난』, 『선택의 논리학』, 『하늘을 흔드는 사람』,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 외 다수.

목차

일체감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머리말

1부 치유의 시간
1장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의 탄생
2장 두려움에서 가능성으로
3장 움켜쥔 자아 풀어주기

2부 신성한 연결고리
4장 일체감과 눈에 보이는 세계
5장 일체감과 보이지 않는 세계
6장 일체감과 업
7장 일체감과 몸, 마음 그리고 정신

3부 새로운 시각
8장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시대
9장 종교와 과학, 영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

4부 이 세상에 일체감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들
10장 일체감과 열린 사고
11장 일체감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후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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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사 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치료사 카르멘 하라가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마음에 행복을 전하는 책이다. 하라는 자신과 타인, 지구와 우주, 과거와 미래가 신성한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인간

의 마음은 ‘개별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지만 실은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일체감’의 힘을 믿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 책에서는 일체감에 대한 정의, 일상에서 일체감을 구현하는 방법, 일체감을 이뤘

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행복을 느끼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일체감 속에서 느끼는 행복 -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의 유명한 심리치료사인 카르멘 하라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워야 한다는 믿음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개별성’이라는 잘못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라는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그리고 과거와 미래 같은 시간 개념조차도 신성한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 신성한 연결고리를 깨닫게 되면 인간은 커다란 전체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속한 전체와의 조화를 위해 서로 돕고 협동하게 된다. 이것이 ‘일체감wholeliness’이다. 일체감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어떤 좌

절과 혼란 속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도움과 용기를 주고 새로운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렇듯 일체감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우쳐 줌으로써 어떤 고난이나 시련 속에서도 긍정적인 희망, 그리고 행복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일체감을 구현하는 세 가지 방법 - 관찰, 기도, 행동

일상에서 일체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일체감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아는 종종 일체감의 경험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견고해 보이는 자아를 내려놓고 삶 속에서 일체감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음의 세 단계를 제시한다.

 

관찰

지금 당신은 매우 불안정하고 겁에 질려 있을 수도 있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시간을 들여 관찰해본다면 자신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자아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엄청난 힘으로 저항하려고 한다. 이제 나는 현재의 상황을 관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방법을 보여주려 한다.

 

기도

기도는 힘세고 변덕스러운 하나님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당신도 한 부분에 속하는 무한하고 신성한 기원과 연결되는 것이며, 도움을 청하고 어떤 형태로든 전해지는 도움에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 ……기도를 하다 보면 당신이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가 보다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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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 자유론 』

 

 

내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당신의 얼굴 근처에서 멈춘다. 이것이 밀의 『자유론』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오직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해를 입힌다는 사실에 근거해서만,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나의 의지에 반하여 나에게 무언가를 행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나의 사적 생활은 나의 권한에 속하며, 내가 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실제로 다른 어떤 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국가나 사회는 간섭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 분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그 어떤 간섭 없이 자기식의 행복한 삶을 추구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 설령 내가 내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해친다 할지라도, 이것이 국가가 간섭할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는 신체건강에 태만하기로, 그리하여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며 삶을 허송하기로 결정할 수 있으며, 마땅히 자유롭게 이럴 수 있어야 한다. 가부장적 간섭주의, 즉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보다 당신이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하는 일 오직 어린이 또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스스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나 정당화된다. 이보다 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서 밀은 또한 가부장적 간섭주의는 그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할 수 없는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당화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들에게는 마땅히 행동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전반적인 행복수준을 높이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관하여 authorship

비록 『자유론』은 언제나 존 스튜어트 밀의 저작으로 언급되지만, 이 책의 서문과 자신의 자서전에서 밀은 이 책이 사실은 그의 아내 헤리엇 테일러와의 공동 집필임을 강조한다. 그의 아내는 이 책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다. 철학 사가들은 그의 아내가 완성된 책의 내용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만, 분명한 것은 밀 자신이 아내를 공동 집필자로 여겼다는 사실이다(비록 책의 표지에 그녀의 이름을 포함시킬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상해 원리 the Harm Principle

밀은 자서전에서 『자유론』을 ‘공통의 진리에 관한 일종의 철학교본’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공통의 진리란 보통 상해 원리the Harm Principle 또는 자유 원리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위에서 개략적으로 설명한 사상, 즉 타인들에게 입힐 잠재적 상해만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지 못하게 금지시킬 유일한 수용 가능한 근거라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무제한의 자유를 옹호하는 논변과는 아주 다르다. 자유에 ‘몇 가지’ 제약을 가함이 없이 사회적 삶은 불가능하리라고 밀은 생각했다. 그가 주목한 문제는 허용되어야 할 것과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 사이의 선을 어디에 긋느냐 하는 것이었다.

상해 원리는 밀이 공리주의에 가담함으로써 더욱 든든한 기초를 갖게 된다. 밀의 공리주의란 그 어떤 상황에서든 옳은 행위는 그 결과들을 평가함으로써 계산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최대 행복을 낳을 확률이 큰 것은 무엇이든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라는 것이다(물론 밀의 계산에서 모든 형태의 행복이 똑같은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니다). 밀은 만일 개인들에게 저마다 원하는 것을 추구할 여지를 준다면, 이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논증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삶이 나에게 최선인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안다. 설령 내가 이것에 대해 잘못 판단할지라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좋은 삶에 대한 다른 사람의 ‘정형화된’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개인들이 온갖 종류의 상이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도록 허용된 상황이, 한 형태의 사회적 일치에로 강요되는 상황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밀의 믿음이다. 밀은 경험주의자이며, 그런 만큼 실험의 방법이 대부분의 문제들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곤경을 해결할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봄으로써만 사회는 번성할 것이다. 이 길만이 사회개량으로 나아간다. 밀은 이른바 ‘삶의 실험’을 인정했다. 반대로, 생각 없는 일치는 침체와 선택의 마비를 낳을 뿐이며 그 결과는 비참함과 인간 잠재성의 억누름이다. 여기서 밀이 ‘우리 모두는 자유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그는 자연권 사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믿는다. 우리는 편의를 위해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밀에게 이것은 행복을 증진할 가능성이 높은 행위들에 대한 일반화로 번역되어져야 한다. 자연권이 아니라 공리주의가 『자유론』에서 제안한 정책들을 뒷받침한다.

『자유론』은 부분적으로 어른들에게 사적인 행위를 제한하는 법을 부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법은 최근에 영화검열과 동성애 같은 문제들에 대한 법 개정에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책은 또한 밀이 ‘다수의 횡포’라고 부르는 것, 즉 다수의 견해가 만들어낸 사회적 압력이 (비록 이것을 금하는 법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의 삶의 실험을 수행하지 못하게 막는 수단을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만일 나의 이웃들이 내가 선택한 괴상한 삶의 방식에 의해 모욕감을 느낀다면, 비록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나의 삶을 용납 못할 삶으로 규정하고 결국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선택한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일치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은 자유를 붕괴시키고 모든 사람을 생각 없는 평균인으로 가치 하락시키며 이는 결국에 가서는 모든 사람에게 더 해롭다고 밀은 믿는다.

이런 견해는 밀의 상해 원리를 자기 편의에 따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즐겨 무시하는 한 가지 요점을 분명하게 잘 드러내 준다. 즉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해치는 행위는 그들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만일 내가 관습을 벗어난 방식으로 몇 명의 동성애자들이나 나체주의자, 아니면 복장 도착자와 생활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당신이 이것으로 마음의 충격을 받는다면, 이런 사실은 나에 대해 법 또는 사회적 압력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강제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만일 밀의 원리가 감정의 해침을 상해로 인정한다면 이 원리는 정말로 그럴 법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에 대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 둘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밀에게 ‘상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가 늘 분명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많은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밀이 타인의 감정을 해치는 행위가 상해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밀이 옹호하는 이런 종류의 관용이, 당신은 다른 사람의 괴상한 삶의 선택을 승인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그들이 보다 나은 선택을 하도록 교육시킬 수 있으며, 국가는 어린이들이 어른들보다 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추구하게 해주는 교육체계를 어린이들에게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성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당신의 혐오감은,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방식을 바꾸도록 강요하는 그 어느 형태의 간섭도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문명사회의 표식은 그 사회가 다양성에 너그러울 수 있다는 데 있다.

밀의 원리는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 철학적 이상을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다. 밀은 세상을 좀 더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기를 원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그는 이 원리의 응용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응용 가운데 중요한 것들로서 사상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밀의 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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