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 자유론 』
내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당신의 얼굴 근처에서 멈춘다. 이것이 밀의 『자유론』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오직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해를 입힌다는 사실에 근거해서만,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나의 의지에 반하여 나에게 무언가를 행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나의 사적 생활은 나의 권한에 속하며, 내가 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실제로 다른 어떤 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국가나 사회는 간섭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 분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그 어떤 간섭 없이 자기식의 행복한 삶을 추구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 설령 내가 내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해친다 할지라도, 이것이 국가가 간섭할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는 신체건강에 태만하기로, 그리하여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며 삶을 허송하기로 결정할 수 있으며, 마땅히 자유롭게 이럴 수 있어야 한다. 가부장적 간섭주의, 즉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보다 당신이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하는 일 오직 어린이 또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스스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나 정당화된다. 이보다 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서 밀은 또한 가부장적 간섭주의는 그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할 수 없는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당화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들에게는 마땅히 행동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전반적인 행복수준을 높이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관하여 authorship
비록 『자유론』은 언제나 존 스튜어트 밀의 저작으로 언급되지만, 이 책의 서문과 자신의 자서전에서 밀은 이 책이 사실은 그의 아내 헤리엇 테일러와의 공동 집필임을 강조한다. 그의 아내는 이 책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다. 철학 사가들은 그의 아내가 완성된 책의 내용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만, 분명한 것은 밀 자신이 아내를 공동 집필자로 여겼다는 사실이다(비록 책의 표지에 그녀의 이름을 포함시킬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상해 원리 the Harm Principle
밀은 자서전에서 『자유론』을 ‘공통의 진리에 관한 일종의 철학교본’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공통의 진리란 보통 상해 원리the Harm Principle 또는 자유 원리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위에서 개략적으로 설명한 사상, 즉 타인들에게 입힐 잠재적 상해만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지 못하게 금지시킬 유일한 수용 가능한 근거라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무제한의 자유를 옹호하는 논변과는 아주 다르다. 자유에 ‘몇 가지’ 제약을 가함이 없이 사회적 삶은 불가능하리라고 밀은 생각했다. 그가 주목한 문제는 허용되어야 할 것과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 사이의 선을 어디에 긋느냐 하는 것이었다.
상해 원리는 밀이 공리주의에 가담함으로써 더욱 든든한 기초를 갖게 된다. 밀의 공리주의란 그 어떤 상황에서든 옳은 행위는 그 결과들을 평가함으로써 계산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최대 행복을 낳을 확률이 큰 것은 무엇이든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라는 것이다(물론 밀의 계산에서 모든 형태의 행복이 똑같은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니다). 밀은 만일 개인들에게 저마다 원하는 것을 추구할 여지를 준다면, 이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논증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삶이 나에게 최선인지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안다. 설령 내가 이것에 대해 잘못 판단할지라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좋은 삶에 대한 다른 사람의 ‘정형화된’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개인들이 온갖 종류의 상이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도록 허용된 상황이, 한 형태의 사회적 일치에로 강요되는 상황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밀의 믿음이다. 밀은 경험주의자이며, 그런 만큼 실험의 방법이 대부분의 문제들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곤경을 해결할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봄으로써만 사회는 번성할 것이다. 이 길만이 사회개량으로 나아간다. 밀은 이른바 ‘삶의 실험’을 인정했다. 반대로, 생각 없는 일치는 침체와 선택의 마비를 낳을 뿐이며 그 결과는 비참함과 인간 잠재성의 억누름이다. 여기서 밀이 ‘우리 모두는 자유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그는 자연권 사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믿는다. 우리는 편의를 위해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밀에게 이것은 행복을 증진할 가능성이 높은 행위들에 대한 일반화로 번역되어져야 한다. 자연권이 아니라 공리주의가 『자유론』에서 제안한 정책들을 뒷받침한다.
『자유론』은 부분적으로 어른들에게 사적인 행위를 제한하는 법을 부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법은 최근에 영화검열과 동성애 같은 문제들에 대한 법 개정에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책은 또한 밀이 ‘다수의 횡포’라고 부르는 것, 즉 다수의 견해가 만들어낸 사회적 압력이 (비록 이것을 금하는 법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의 삶의 실험을 수행하지 못하게 막는 수단을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만일 나의 이웃들이 내가 선택한 괴상한 삶의 방식에 의해 모욕감을 느낀다면, 비록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나의 삶을 용납 못할 삶으로 규정하고 결국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선택한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일치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은 자유를 붕괴시키고 모든 사람을 생각 없는 평균인으로 가치 하락시키며 이는 결국에 가서는 모든 사람에게 더 해롭다고 밀은 믿는다.
이런 견해는 밀의 상해 원리를 자기 편의에 따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즐겨 무시하는 한 가지 요점을 분명하게 잘 드러내 준다. 즉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해치는 행위는 그들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만일 내가 관습을 벗어난 방식으로 몇 명의 동성애자들이나 나체주의자, 아니면 복장 도착자와 생활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당신이 이것으로 마음의 충격을 받는다면, 이런 사실은 나에 대해 법 또는 사회적 압력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강제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만일 밀의 원리가 감정의 해침을 상해로 인정한다면 이 원리는 정말로 그럴 법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에 대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 둘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밀에게 ‘상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가 늘 분명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많은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밀이 타인의 감정을 해치는 행위가 상해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밀이 옹호하는 이런 종류의 관용이, 당신은 다른 사람의 괴상한 삶의 선택을 승인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그들이 보다 나은 선택을 하도록 교육시킬 수 있으며, 국가는 어린이들이 어른들보다 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추구하게 해주는 교육체계를 어린이들에게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성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당신의 혐오감은,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방식을 바꾸도록 강요하는 그 어느 형태의 간섭도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문명사회의 표식은 그 사회가 다양성에 너그러울 수 있다는 데 있다.
밀의 원리는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 철학적 이상을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다. 밀은 세상을 좀 더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기를 원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그는 이 원리의 응용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응용 가운데 중요한 것들로서 사상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밀의 논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