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사 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일체감이란 무엇인가
일체감Wholeliness (명)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며 신과 더불어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치유되는 조건, 상태, 특징을 말함. ‘건강, 무사함, 총체성’을 의미하는 옛 영어 hal에서 유래(또한 hal은 ‘신성한, 신적인 혹은 정신적으로 순수한’이란 의미의 holy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이 개별성이라는 환상을 창조해낼 때 우리는 우주 자체의 본성이 일체감임을 망각한다. 일체감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고통의 해독제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이 몸
을 빌려서 존재하는 한 아주 잠깐씩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본래의 의식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일체감이라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 지구와 우주,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간의 신성한 연결고리를 자각하고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일체감을 경험할 수 있다. 개별성이라는 환상을 깨닫고 마음이 만들어낸 헛것을 끊어낼 때, 우리는 진정한 본성을 기억해내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또한 우리는 그 자체로 전체이고 완전하며 이 우주는 조화로운 상태라는 사실을, 일체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둠도 빛과 함께 존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의 본성은 건강함을 즐기고 완벽한 조화를 경험하며 우주의 기운에 흠뻑 빠지고 싶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신성한 힘의 개별적이면서도 멋진 발현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우리에게는 일체감을 구현하여 다른 이들도 편안함과 기쁨 그리고 신성한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러자면 이 지구상에서 건강과 조화 그리고 협력을 실천해야만 한다. 일체감의 힘을 믿고 가능한 한 그것을 자주 구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신은 조화와 균형을 잃어버린 이 세계를 치유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일체감에 대한 인간의 능력을 믿는다면, 아무리 힘들고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이 닥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 존재의 신비로움과 복잡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긍정적 태도와 창의성 그리고 희망은 개별성이라는 환상을 물리치고 일체감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의 의식이 진화해가는 시점에서 일체감이야말로 우리 세계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치료제나 다름없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눈을 감으면 내 눈앞에는 넓고 기름진 시골 할머니 집 정원이 떠오른다. 정원 한쪽에서는 여름의 토마토가 토실하게 익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허리를 굽혀 굵고 잘 익은 토마토를 따시고, 그 옆에서 닭 몇 마리가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집 안에서는 여동생이 식탁에 앉아 방금 캔 감자의 껍질을 칼로 벗기고 있다. ‘몇 시간 후면 가족들이 돌아올 거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러고는 가족들의 저녁 식사 준비로 분주한 할머니를 돕기 위해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잠시 후 우리 가족은 나무 식탁에 둘러앉아, 수백 년 동안 무수한 가족들과 친구들
그래왔듯이 단출한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마음껏 웃고 떠들며 신선하게 요리한 음식을 먹었다. 또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앞으로 험한 인생의 파고 속에서도 언제나 함께하리라 확인받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였다. 우리는 떠들썩한 가운데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고 서로 농담을 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소란스러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작은 집에 살았지만, 아무도 그 흔한 텔레비전 하나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가혹한 사회주의 정권 시절이라 물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슈퍼마켓에 가면 텅 빈 금속 진열대에 자신의 얼굴만 비쳤지만, 그래도 누구 하나 불
평하지 않았다. 그저 잔을 높이 들어 올려 크고 작은 목소리로 “가족을 위해!”
라고 축배를 들면서 소박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분위기에 젖어 행복할 따름이었다.
물질적 부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정말로 가난했다. 집에 수도도 없었고, 나와 여동생은 몇 되지도 않은 인형을 애지중지했다. 모자라는 장난감은 숲속에서 찾으며 무한한 상상력으로 채웠다. 가난했지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풍족하게 느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 알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훌륭한 가수가 되어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천식에 걸려 일 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나는 노래경연 대회에 나가 힘 있는 목소리로 번번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0대에 들어서면서 노래로 명성을 얻었다.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앨범을 12장이나 낸 가수가 되었고, 온 나라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나는 가수 생활 덕에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가족들이 언제나 나를 든든히 받쳐주었듯이, 나 또한 경제적 부담을 기쁘게 어깨에 지고 나갔다.
루마니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가기로 했을 때, 나는 언제 다시 가족들을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울었다. 서구 세계로 가기 위해 모국을 등지기로 했으니, 나중에 돌아간다 해도 고국이 날 환영해줄 리 없었다. 철의 장막이 나와 가족들을 막고 서 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곧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더욱 운이 좋았던 것은 남편 또한 식구가 많은 데다 그들 모두가 정이 넘쳤다는 사실이다. 가족들은 서로가 필요로 할 때 항상 함께했고, 특별한 날을 같이 축하해주었으며, 어려울 때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고국에 남기고 온 내 가족들과 똑같았다.
남편과 나 또한 곧 가정을 꾸리고 세 딸을 낳아 길렀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부모님뿐 아니라 남편까지 여의게 되었다. 남편 버질이 최근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가족이 하나였을 때 내가 얼마나 큰 힘을 얻었던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다른 가족들처럼 우리도 다투기야 했지만 물질적 풍요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리라고는 믿지 않았고, 언제나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과 회복의 근원이 되었다. 슬프거나 두려울 때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을 북돋아주었으며, 삶의 아름다움 속으로, 기쁨과 긍정 속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부드럽게 이끌어주었다.
내 어릴 적 나무 식탁에 놓여 있던 맛있는 음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었지만 활력과 희망을 준 것은 바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우아한 장식과 값비싼 고급 도자기로 가득 찬 식당이 딸린 저택에 살며 수 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제품과 온갖 진귀한 먹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중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이웃들, 수많은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들은 종종 홀로 고민을 끌어 안고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너무 바빠 자신의 고민 따위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침묵하며 살아간다. 여럿이 원탁에 둘러앉음으로써 우리는 에너지를 되찾는다. 땅에서 난 과일뿐만 아니라 웃음과 사랑, 대화와 기억으로 자신을 살찌운다. 주의 깊게 살핀다면, 우리가 오기 전에 앉아 있었던 사람뿐 아니라 뒤에 오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독자들처럼 원탁에 모여 있었지만 만나지 못한 이들까지도)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인류라는 커다란 가족의 일원이다. 결코 혼자가 아니며 언제나 존중과 사랑과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평화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길이 험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조차 내일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