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카르멘 하라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의 탄생’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스스로를 바꿀 수밖에 없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날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린다. 하

지만 지금까지 역사에 등장했던 예언들은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을 파괴가 아

니라 변화의 길로 이끌고자 했다. 터무니없는 상상력이 고개를 들 때 우리는

인류에 대한 경고를 그저 지구의 종말이 가깝다는 암시로 잘못 해석하는 경

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재앙이 바로 문앞에 닥친 것처럼 불안하게 살

필요는 없다. 또한 ‘세상 누구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테니 내 몸은 내가 돌봐

야지’라는 식으로 무장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가능해진다. 즉 살아남기 위해 경

쟁하며 싸워야 한다는 인류의 오랜 믿음이 서로 도우며 협동해야 한다는 믿

음으로 바뀔 것이다. 따라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는 신성한 연결고리

가 축복을 내리면 인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힘을 바라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갈망하지만, 실상은 둘 모두를 놓칠까 봐 두

려워한다. 또한 자신의 주변 환경을 바꾸고 오랫동안 인류가 앓아왔던 고통

을 제거하기에는 우리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신이 우

리 인간에게 내린 사명은 고통을 참는 것이며 나쁜 사람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없는 완벽한 세계가 아니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까지 한다.

우리가 믿는 평화의 힘은 구름이 몰려오는 순간 흩어져버린다. 왜냐하면

고요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얻기 위해서는 이것을 위협하는 세력과 언제든지

싸워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투쟁을 일삼는 동물로

변해버렸고, 우리에게 내재된 평안과 협동심을 잃어버렸다. 즉 다른 개가 다

가오는 순간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며 똑같이 으르렁거리는 개와 다를 바 없

어진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

우리가 자신 안의 온전함(일체감wholeliness)을 믿고 받아들이고 구현한다면,

강인한 힘과 긍정적인 자신감을 경험하고 이제까지 잘못 생각해왔던 것들도

눈 녹듯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인류는 고대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진화

할 수 있다. 지혜로운 마야인들이 예언한 대로 인간은 2만 6천 년의 주기를

마치고 새로운 경험의 시대로 진입할 것이다.

 

인류의 재탄생

지구상에서 인류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겪게 될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라 조금은 겁이 날 수

도 있다. 우리는 삶과 주변 세계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변화하는 안정

된 삶을 추구한다. 그래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더

많은 변화와 격동 그리고 불확실함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이다.

살면서 겪는 여러 사건들과 일들로 말미암아 스트레스와 불안이 생기더

라도, 이를 조절할 수 있으면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수도 있다. 또한 다

른 이들과 함께해 나갈 때 변화가 불러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 잠재울 수

있다. 이 거대한 변화와 불확실함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

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며 불안을 증폭할 뿐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일체감을 알아 나갈 것이고, 그 결과 삶에서 작동하는 일체감의 힘

을 점점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은 다른 존재와 하나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전체의 한 부분이자, 스스로를 치유할

수도 있고 만나는 이들에게 치유 에너지를 줄 수도 있는 신성한 개인이다. 자

신을 치유하라. 그러면 세상이 더 완벽해진다.

일체감이란 물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인류 역사의 현 시점에 아무리 시

간을 들인다 하더라도 완전하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힘을 믿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해야 할 성질

의 것이다. 정의와 사랑, 아름다움과 자비로움을 원하듯이 일체감이 자신의

영혼에 보내는 놀라운 힘과 평화의 에너지를 받아들여라. 그러면 그 뒤에는

당신 스스로 세상에서 일체감을 구현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내

면의 건강이 회복되고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은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과 상황에 투영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워지려고 한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두렵고 혼란스러

운 것은 당연하다. 그런 강렬한 경험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엄청난 변화의 시기에 서 있다는 점은 부정

할 수 없다. 아이를 낳아본 여성이라면 한순간도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

화를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유명인에 대한 소문, 경제 전

문가의 낙관적인 경제 전망, 정치가들의 약속 따위가 아무리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한다 해도, 그것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변화와 그로 인한 불편함

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로써 우리는 중요한 상

황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어디에서 도움을 얻어야 할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

했다. 도움을 주고 안내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새로

운 인생이 시작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헤쳐 나갈 힘과 용기를 발견할 수 있을

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확실히 ‘그렇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애정 어린

응원과 창의성이며, 우리를 지탱해주고 우리에게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는 힘

이다. 이러한 힘은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다.

이러한 힘을 느끼려면 우선 일체감에 관한 세 가지 진실을 알아야 한다.

 

•변화는 내면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순간 가속도가 붙는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신의 도움이 찾아온다.

 

이 세 가지 진실을 거부하거나 모르는 척할수록 당신은 괴로워질 뿐이다.

인류가 이미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말이다. 하지만 일체감의 세 가지 이치를

받아들이게 되면, 당신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고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해서 어려움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괜히 산고産苦란 말이 나왔겠는가? 예를 들면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 위기가 당신의 일, 사업, 저축이나 다른 주변 상황 등에 어

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불안해하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또 이렇게

양극화된 세상에서 인간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새로운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기술에는 부정적인 면이 확실히 있지만,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

자폭탄은 좋든 나쁘든 인류에게 앞으로 원자력을 이용할 가능성을 일깨웠다.

이처럼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고통도 우리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인류가 핵무기로 세상을 파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듯이, 인간

은 자신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기술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은 오히려

우리가 모두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인식시켜주는 수단이 될 것

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쁨이나 치유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방식으로 발견할 것이다.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동요와 혼란과 괴로움은 곧 더욱 훌륭한 무엇인가로 대

체될 것이라고 확신해도 좋다. 경쟁이 아닌 협력이 주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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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피안』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날카롭게 통찰한 인물이었다. 그의 깊이 있는 자기인식은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걸작으로 남아있는 여러 저작에서 엿볼 수 있다. 니체의 저작은 무척 독특하다. 일관성이 없고 단편적이며, 충격과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아울러 손쉬운 분석을 허락하지 않고, 섣부른 요약으로는 그 다채롭고 풍부한 내용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책 대부분에는 반드시 신경쇠약이 의심되는 광인의 절규나 다름없는 구절이 등장한다. 반유대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이 일부 내용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했고, 때문에 니체의 저작 전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일부 나치주의자들이 심취한 개념은 대부분 니체의 철학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해석한 탓이다.

『선악의 피안』에는 니체의 채 무르익지 않은 생각과 상당히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견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은 괴벽스런 천재의 손에서 탄생한 흠결 있는 걸작이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이 담겨있지만, 국민성과 종교에 관한 이상야릇한 일반화와 여성혐오적인 조롱도 함께 등장한다. 니체는 확실히 19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견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장-폴 사르트르, 미셸 푸코 같은 20세기의 여러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특히 토마스 만이나 밀란 쿤데라 같은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훗날의 빛나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당대에는 그가 쌓은 업적의 중요성과 의미를 이해한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다.

『선악의 피안』의 요약문만 읽어보면 아마 이 책에서 니체가 체계적 논증을 거친 일련의 일관성 있는 명제들을 통해 진리, 도덕, 심리 등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이 책은 매우 단편적이고 대부분의 내용이 부연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상세한 논증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있는 것에 가깝다. 온통 핵심을 찌르는 경구警句로만 가득한 절이 있는가 하면, 다른 절은 한 편의 시로 되어있다. 철학적인 느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절은 느슨하게 연결된 여러 편의 에세이로 이뤄져 있는데, 분량은 짧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절은 장광설이나 다름없고, 또 다른 절은 공책에서 몇 페이지를 찢어 편집 없이 인쇄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민한 독자라면 『선악의 피안』 곳곳에서 드러나는 니체의 탁월한 재기才氣를 알아보고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니체의 사상은 무척 광범위하지만 핵심 주제는 대부분 각 절의 제목을 통해 드러난다. 제목 중 일부는 다음 장인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On the Genealogy of Morality』’에서 논의된 개념들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체적으로 『선악의 피안』에서 니체는 먼저 근대성의 결점을 진단한 뒤 인간을 진보로 이끌 사고방식을 약술한다. 그의 목표는 스스로 ‘자유정신free spirit’이라 부르는 것으로 나아가는 길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철학적 전통의 측면에서 그는 진리와 현상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니체는 그때까지 철학자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고 믿는다. 그가 보기에 철학자들은 현상을 초월한 객관적 실재, 즉 절대적 가치의 세계가 있다는 플라톤의 견해에 매몰되어 있다. 반면 니체는 진리는 필연적으로 한 가지 관점에서만 진리이라고 단언했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 대신에 그는 주변 사람들이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확신한 모든 실체의 어두운 심리적 기원을 폭로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대체적으로 그는 자신이 속한 문화의 가치를 점검하는 인류학자의 입장에 서있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을 따르는 인류학자이기 보다는 시인이자 예언자에 가깝다.

제목 the title

이 책의 제목에는 니체의 의중이 드러나 있다. 그는 진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과 악의 도덕적 흑백논리를 뛰어넘어 도덕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덕은 삶의 근본적인 동력, 즉 권력의지의 표현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연민이나 보편적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권력의지의 뿌리는 타인을 능가하려는 욕구와 잔인성이다. 니체는 미래의 철학자들은 이 점을 깨달을 것이고, 모든 가치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력에의 의지 the will of power

권력에의 의지는 우리 모두를 이끄는 기본적인 동력이다. 니체가 보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존재에 관한 진리를 부정한다. 이러한 부정은 우리 삶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들은 착취와 억압을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 두 가지는 자연의 근본적인 요소이다. 니체는 강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을 삶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본다. 권력에의 의지는 우리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의 원천이다. 선이나 자비 같은 소중한 가치의 출발점이 바로 권력에의 의지이다. 지금 우리는 이 거북한 진실을 숨기고 있지만, 미래의 자유정신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철학자들의 편견에 관하여 on the prejudices of philosophers

『선악의 피안』의 서두부터 니체는 철학자들을 겨냥한다. 그는 철학자들을 결론으로 이끌어주는 이성의 힘에 대한 맹신을 공격한다. 또 그 점을 깨닫지 못한 채 편견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한 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즉 철학자들은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를 둘러댈 뿐이다. 흔히 말하는 공평무사한 사고의 부산물이라는 것도, 사실 무의식적 고백이자 우발적 자서전일 뿐이다. 예를 들어 칸트의 도덕철학은 그의 마음속에 담긴 욕망이 추상화된 것에 불과하다. 또 스피노자의 윤리철학에 등장한 유사 기하학적 ‘입증’에는 그가 마치 중립적 논리의 결론인 양 제시하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 요소가 숨어있다. 이렇게 선배 철학자들을 차례로 공격하면서 니체는 숨김없는 자신의 철학 서술방식을 은근히 정당화한다. 니체의 목소리는 좀처럼 중립적이지도 명쾌하지도 않다. 그의 철학을 객관적이고 극도로 합리적인 지성인의 작품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니체는 마치 과학의 발전과정에서의 점성술처럼 철학이 극복해야 할 단계에 있다고 바라본다. 책 서문에서 엿보이는 그의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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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 9시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요즘 KBS 9시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무기들이 등장하고 군인들이 국토를 방어하는 모습이 종종 방영되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때로는 북한과의 무력을 비교하기도 하여 은근히 국민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매우 나쁜 의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말 막강한 힘을 가졌다면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숨기는 것이 보통이고 지혜일 것입니다. 정말 상대방을 단번에 해치울 만한 힘을 가졌다면 그 힘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제압할 힘이 정말로 있다면 그런 힘을 자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헌데 힘을 자랑한다면 이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겁 많은 개가 짖듯이 새로운 무기들을 가졌다고 공개하는 건 개가 짖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쟁은 파멸입니다.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입니다. 권투에서는 승자가 있지만, 그 승자도 한참 얻어터진 후에 승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매우 짧은 시간에 KO승을 거두었다고 자랑할 것이 못되는 게 챔피언도 다음에는 도전을 받아 링 위에서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영원한 승자라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대에도 전쟁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강태공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태공망은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이 용병의 원리에 대해 묻자 “용병의 원리는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란 철학적 개념으로 도道에 가깝습니다. 『노자老子』42장에서는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고 했으며, 『회남자淮南子』 「전언훈詮言訓」에는 “하나란 만물의 뿌리이고 무적의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천지자연의 통일적인 원리이면서, 동시에 인간사회의 중심원리로써 활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태공망은 “성군들은 군대를 흉한 도구라고 불렀으며 마지못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사용했습니다”라고 했는데, 전쟁이란 결국 마지막에 사용하는 통치수단이며 결과적으로 적과 아군이 모두 다치게 되는 행위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자』 31장에는 “무기란 도무지 상서롭지 못한 도구일 뿐이며 군자의 도구가 아니다. 다만 어쩔 수 없어서 쓸 뿐이니 언제나 담담하고 초연한 것이 가장 좋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노자는 전쟁에 반대했고, 태공망은 전쟁을 “마지못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요즘 KBS 9시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무기들이 등장하고 군인들이 국토를 방어하는 모습이 종종 방영되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무조건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전쟁을 “마지못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사용”하라는 태공망의 말처럼 전쟁이 최후의 통치수단이라면 흉기인 군대의 활약상을 9시 뉴스에 자주 보도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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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 1부

 

 

우리는 우리 시대 경제의 산물로서 지금 이렇게 존재한다. 특히 물질 생산수단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삶과 사고를 형성한다. 초시간적 불변적 인간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역사적 시기의 산물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1부의 핵심, 즉 역사 유물론의 핵심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즉 청년 헤겔주의자로 불리는 헤겔 철학 해석가들의 저작을 거의 한 줄 한 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많은 곳에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를 논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게오르그 헤겔과 더불어 마르크스의 지적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저술가다.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대부분 이 책의 1부에서 제시된 건설적 이론들에 집중한다. 이 이론들을 제시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과녁으로 삼은 저작을 세밀히 비판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 책 전체를 놓고 이사야 벌린은 이 책의 매우 지루한 면들을 인정하면서도, 고전으로서의 지위를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한다.

이 장황하고 ‘체계 잡히지 않은’ 육중한 저작은 죽은 지 오래되어 막 잊혀진 저자들과 이들의 견해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긴 서문에서는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을 아주 일관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인상 깊게 해명하고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을 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창하는 급진적 접근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접근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저술 당시에 마르크스가 별도로 저술했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여러 논제Thesen üer Feuerbach』의 마지막 논제에서 보이는 접근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그것은 다음과 같이 압축되어 표현된다: “철학자들은 지금껏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많은 사람들을 무의미한 노동생활과 메마른 가정생활 속에 가두어 놓는다는 사실을 그저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필요한 것은 혁명이다. 현 상태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목적을 달성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논의된 많은 저술가들과는 달리, 이들 두 사람은 단지 학문계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저작은 거의 기적에 가까울 만큼 혁명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었으며 이것의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다.

역사 유물론 historical materialism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 유물론, 또는 이들이 더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 ‘유물론적 역사관’은 당신의 물질적 여건들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유물론materialism’은 철학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심리철학에서 유물론은 마음은 순전히 물리적 용어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용하는 의미의 유물론이 아니다. 이들에게 ‘유물론’은 생산도구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주목한다. 아주 기본적으로 이러한 관계는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 및 부양가족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해야 하는 노동과 매한가지이다. 더 복잡한 사회에서 그 관계는 우리의 또는 우리 것이 아닌 재산, 그리고 부를 생산하는 수단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물론은 실제 인간 삶의 본모습을 잊고, 추상적 일반화의 공허한 영역에 떠있는 그런 종류의 철학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이 철학은 대부분의 인간 삶이 처해 있는 거친 현실에 집중하며, 아마도 이런 점이 이 철학이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된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다. 이 유물론은 물질적 상황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의 영향은 사회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며, 따라서 그 사회를 이루는 개인들도 바꾸어 놓는다. 가령 노예제도의 폐지는 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해 가능해졌다. 기계가 수백 명의 노예들보다 더 열심히, 오래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 분업 division of labour

인간들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기 시작하자마자 그들은 스스로를 동물들과 구별 짓는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의 구체적 물음이 그들의 삶을 규정하게 되었다.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성공적 생산에 필수적인 사회적 관계들도 더욱더 복잡해져갔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노동 분업은 더 많이 일어났다.

노동 분업은 간단히 말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일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주 단순한 사회에서는 개인들 각자가 농사를 짓고 사냥도 하고 집도 짓는다. 좀 더 개발된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특징인 극단적 노동 분업이 인간 삶에 강력하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노동 분업은 소외를 일으킨다. 즉 개인들의 노동을 그들의 삶에서 분리시킨다. 노동 분업은 개인들을, 이들을 노예화하고 이들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체제의 무력한 희생물로 전락시킨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서로 분리될 때, 노동 분업은 특히 큰 피해를 준다. 그런 분업은 오로지 거칠고 지루한 육체노동만 하는 사람들이 보람된 삶을 이룰 기회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의 분업이 공통의 이익에 배치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전망하는 미래세계는 사적 소유가 이미 소멸된, 개인들이 일정한 근무 일수 내에서 여러 가지 일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그런 세계이다. 그들이 말하듯이, 그런 사회에서 나는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하고, 아침에는 사냥하고, 낮에는 고기를 잡고, 늦은 오후에는 가축을 몰고, 저녁식사 뒤에는 비평을 하는, 꼭 사냥꾼이나 어부, 목동, 비평가가 되지 않고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자유로이 선택된 자기실현적인 활동으로서 노동의 이상적 모습이다. 강요된 단조롭고 고된 일로서, 이것 아니면 굶주림만이 있는 그런 노동이 아니고 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언제나 불행만을 느끼게 하는 일에 갇혀있는 얼굴 없는 경제체제의 희생물일 뿐인 노동자 계급에 동정심을 느꼈다.

이데올로기 ideology

우리 삶의 모든 면이 그렇듯이 종교적·도덕적·형이상학적 신념도 모두 우리의 물질적 관계의 산물이다. 전통적으로 계급적 이익에서 독립해 있다고 여겨졌던 ‘한 시대를 주도하는 정신’이란 사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허황되고 합리화된 관념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란 특정 경제 및 사회체제의 부산물에 불과한 이런 관념들을 지칭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데올로기에 속박된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자신들의 의식을 순수 사유의 결과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한마디로 잘못 알고 있다. 이들의 관념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역사적 사회적 여건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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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카르멘 하라의 영적 존재와 서로 간의 연결

 

일체감을 경험하기에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할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음을 단련하고 사고방식을 전환해 자신의 심장과 영혼이 신성한 사랑과 에너지, 지혜의 방향으로 열리도록 해야 한다. 개별성이라는 환상 대신 일체감을 선택하려면 헌신이 필요하다. 물질 세계의 환상이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적 혼란과 부정적 사고, 육신의 질병과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경쟁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기 쉽다. 처음에는 이런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습성으로 돌아가려는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일상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쉽게 일체감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일체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상처도 저절로 아무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혼란은 조화로, 투쟁은 포용과 평화로 바뀔 것이다.

일체감이라는 삶의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른 식습관을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당신이 저질 가공식품만 먹어왔다고 가정해보자. 과일과 신선한 야채로 구성된 식단으로 바꾸고 나면 처음에는 과거에 당신이 가장 즐겨 먹던 것들이 계속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곧 사라진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체중이 줄어들고 힘과 에너지를 되찾으며 건강이 좋아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곧 정크 푸드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이와 같이 당신의 삶에 일체감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처음에는 조절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물결을 겪고 나면, 다시는 해로운 옛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어떻게 그리 다르게 살 수 있었는지 놀라워할 것이다!

냉소와 비관 그리고 탐욕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또한 세상에는 당신을 해치는 사람, 당신에게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일 수도 있다. 일체감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밀고나가다 보면 불신은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서로 연결되었다는 아름다운 느낌을 경험할 때마다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도록 힘쓰고,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느끼기 바란다. 일체감과의 연결을 즐기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 바란다. 당신은 그것을 느낄 자격이 있다! 일체감의 힘을 믿으라, 그러다 보면 일체감이 희망을 줄 뿐 아니라 실제로 멋진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최악의 날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관찰하고 기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두자. 매일 밤 오늘 일체감을 받아들이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일기에 적고, 몇 분의 시간을 내어 상상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라. 당신 자신과 타인의 삶을 위한 일체감을 확장하기 위해 내일 해야 할 일을 계획해보라. 가능성은 무한하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책임지고 꼼꼼하게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을 단련시킬 것이다. 또한 주변에 두려움 대신 일체감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뢰도 커진다(내 페이스북 페이지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영적 존재와 서로 간의 연결

 

일체감은 지금 시대 같은 커다란 위기에서 우리를 살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상대하기 힘든 태도와 행동 방식을 지닌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려면 상처를 받거나 상실을 경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 지구적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욕구, 즉 의식주를 해결하고 안전하게 살면서 자유와 행복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를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의무 말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말을 따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베풀 수 있는 도움까지 놓치고 만다. 이는 특히 서구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나는 먹을거리가 귀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와는 관점이 다르다. 그곳에서는 자신과 가족만 챙기는 사람이 아주 이상하게 여겨졌다. 의식주가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으므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일단 불가능했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구대륙’에서 자란 나 자신의 경험이 서로를 도와주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이해를 제공해주었다(나중에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를 독자들에게 설명할 예정이다.)

일체감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다 보면, 영적 존재와의 신성하고 우주적인 연결고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당신에게도 신성한 존재의 개입이 필요하며, 그 일을 일어나게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의 문제점들을 생각하다 보면 두려움(붕괴되는 제도나 시스템 혹은 전 지구적 사건)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좀먹는 괴로움을 치유하고자 열망하는 사람이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위안을 얻을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치유하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며 삶에서 일체감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다 보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당신뿐인 것은 아니다.

인간성이 더 높은 의식을 향해 깨어나고 있으며, 더 많은 성인 남녀와 아이들이 서로를 도우며 나아가고 있다. 커다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지구의 한쪽에서도 “이제 변할 때가 왔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이들은 가슴과 마음을 열고 신성한 지혜를 재발견하고 있다.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이 거대한 변화에 당신도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것 자체가 당신이 스스로의 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증거다. 새로운 생각에 자신을 열고 마음과 영혼으로 교감함으로써 스스로를 돕기로 결심했기에 이 책에 이끌린 것일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이 더할 나위 없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하지만 당신이 이 제한된 목적을 넘어서서 더 나아가다 보면 모든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체감을 인류에게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이 당신(70여억 인구가 사는 이 거대한 세계의 한 사람인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희망과 용기는 이제 막 불타올랐다. 일체감이라는 이 놀라운 선물을 함께 배우고 받아들이기 위해 기꺼이 동참해줄 것을 당신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플로리다 주 할리우드에서

카르멘 하라Carmen Harra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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