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피안』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날카롭게 통찰한 인물이었다. 그의 깊이 있는 자기인식은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걸작으로 남아있는 여러 저작에서 엿볼 수 있다. 니체의 저작은 무척 독특하다. 일관성이 없고 단편적이며, 충격과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아울러 손쉬운 분석을 허락하지 않고, 섣부른 요약으로는 그 다채롭고 풍부한 내용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책 대부분에는 반드시 신경쇠약이 의심되는 광인의 절규나 다름없는 구절이 등장한다. 반유대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이 일부 내용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했고, 때문에 니체의 저작 전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일부 나치주의자들이 심취한 개념은 대부분 니체의 철학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해석한 탓이다.
『선악의 피안』에는 니체의 채 무르익지 않은 생각과 상당히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견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은 괴벽스런 천재의 손에서 탄생한 흠결 있는 걸작이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이 담겨있지만, 국민성과 종교에 관한 이상야릇한 일반화와 여성혐오적인 조롱도 함께 등장한다. 니체는 확실히 19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견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장-폴 사르트르, 미셸 푸코 같은 20세기의 여러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특히 토마스 만이나 밀란 쿤데라 같은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훗날의 빛나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당대에는 그가 쌓은 업적의 중요성과 의미를 이해한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다.
『선악의 피안』의 요약문만 읽어보면 아마 이 책에서 니체가 체계적 논증을 거친 일련의 일관성 있는 명제들을 통해 진리, 도덕, 심리 등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이 책은 매우 단편적이고 대부분의 내용이 부연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상세한 논증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있는 것에 가깝다. 온통 핵심을 찌르는 경구警句로만 가득한 절이 있는가 하면, 다른 절은 한 편의 시로 되어있다. 철학적인 느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절은 느슨하게 연결된 여러 편의 에세이로 이뤄져 있는데, 분량은 짧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절은 장광설이나 다름없고, 또 다른 절은 공책에서 몇 페이지를 찢어 편집 없이 인쇄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민한 독자라면 『선악의 피안』 곳곳에서 드러나는 니체의 탁월한 재기才氣를 알아보고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니체의 사상은 무척 광범위하지만 핵심 주제는 대부분 각 절의 제목을 통해 드러난다. 제목 중 일부는 다음 장인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On the Genealogy of Morality』’에서 논의된 개념들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체적으로 『선악의 피안』에서 니체는 먼저 근대성의 결점을 진단한 뒤 인간을 진보로 이끌 사고방식을 약술한다. 그의 목표는 스스로 ‘자유정신free spirit’이라 부르는 것으로 나아가는 길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철학적 전통의 측면에서 그는 진리와 현상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니체는 그때까지 철학자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고 믿는다. 그가 보기에 철학자들은 현상을 초월한 객관적 실재, 즉 절대적 가치의 세계가 있다는 플라톤의 견해에 매몰되어 있다. 반면 니체는 진리는 필연적으로 한 가지 관점에서만 진리이라고 단언했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 대신에 그는 주변 사람들이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확신한 모든 실체의 어두운 심리적 기원을 폭로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대체적으로 그는 자신이 속한 문화의 가치를 점검하는 인류학자의 입장에 서있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을 따르는 인류학자이기 보다는 시인이자 예언자에 가깝다.
제목 the title
이 책의 제목에는 니체의 의중이 드러나 있다. 그는 진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과 악의 도덕적 흑백논리를 뛰어넘어 도덕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덕은 삶의 근본적인 동력, 즉 권력의지의 표현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연민이나 보편적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권력의지의 뿌리는 타인을 능가하려는 욕구와 잔인성이다. 니체는 미래의 철학자들은 이 점을 깨달을 것이고, 모든 가치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력에의 의지 the will of power
권력에의 의지는 우리 모두를 이끄는 기본적인 동력이다. 니체가 보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존재에 관한 진리를 부정한다. 이러한 부정은 우리 삶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들은 착취와 억압을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 두 가지는 자연의 근본적인 요소이다. 니체는 강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을 삶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본다. 권력에의 의지는 우리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의 원천이다. 선이나 자비 같은 소중한 가치의 출발점이 바로 권력에의 의지이다. 지금 우리는 이 거북한 진실을 숨기고 있지만, 미래의 자유정신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철학자들의 편견에 관하여 on the prejudices of philosophers
『선악의 피안』의 서두부터 니체는 철학자들을 겨냥한다. 그는 철학자들을 결론으로 이끌어주는 이성의 힘에 대한 맹신을 공격한다. 또 그 점을 깨닫지 못한 채 편견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한 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즉 철학자들은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를 둘러댈 뿐이다. 흔히 말하는 공평무사한 사고의 부산물이라는 것도, 사실 무의식적 고백이자 우발적 자서전일 뿐이다. 예를 들어 칸트의 도덕철학은 그의 마음속에 담긴 욕망이 추상화된 것에 불과하다. 또 스피노자의 윤리철학에 등장한 유사 기하학적 ‘입증’에는 그가 마치 중립적 논리의 결론인 양 제시하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 요소가 숨어있다. 이렇게 선배 철학자들을 차례로 공격하면서 니체는 숨김없는 자신의 철학 서술방식을 은근히 정당화한다. 니체의 목소리는 좀처럼 중립적이지도 명쾌하지도 않다. 그의 철학을 객관적이고 극도로 합리적인 지성인의 작품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니체는 마치 과학의 발전과정에서의 점성술처럼 철학이 극복해야 할 단계에 있다고 바라본다. 책 서문에서 엿보이는 그의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