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일체감이 주는 행복』: 영혼의 그림자와 집단의 자아
영혼의 그림자
우리의 정신 깊은 곳, 깨어 있는 의식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자아의 두려움을 살찌우고 자아가 과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믿음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아 속에 불편한 진실과 믿음을 감추고 있는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고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이야기했다. 그런 생각이나 느낌은 스스로가 야기하는 고통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신의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있다. 우리는 자신이 부족하거나 멍청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에 대한 깊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때 자아는 그러한 느낌을 점검하고, 과연 어디서 그런 느낌이 왔으며 그것이 진정한 느낌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자아는 오히려 공포에 쫓기다 못해 그림자 속에 숨고 만다. 그리고 의식이 깨닫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서 잘못된 믿음은 두려움과 분노를 더욱 키운다. 이런 파괴적인 생각을 우리는 치유해야 한다.
당신의 무의식을 샅샅이 뒤져 사랑과 깨달음의 빛을 어두운 구석에 비추면, 고통을 불러온 요인을 없앨 수 있다. 대체로 고통은 잘못된 믿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혹여 그 믿음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당신의 의식 깊은 곳에는 자신을 주위 사람들과 비교해 스스로가 바보스럽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달음의 빛은 그런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밝혀준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관습적인 의미에서 영리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영리하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학자가 될 만큼 지성이 충만하지는 않지만, 학자가 되려다 좌절한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즐거움을 줄 재능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재능이 한 가지뿐이라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며, 숨겨진 자신의 내면을 부드럽게 살피다 보면 우리의 내면은 비판이 아닌 연민으로 가득 찰 것이다. 당신의 믿음이 무엇이든 그림자 속에 가두려 하지 말라. 믿음을 표면 위로 드러내어 그것을 탐색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림자 속에 빛을 비추다 보면, 스스로 부족하고 열등하다는 의식으로 스스로를 부끄럽게 혹은 무가치하고 두렵게 만들던 거짓이 어느덧 사라져버린다. 동시에 당신만의 ‘골방’에 잊힌 채 처박혀 있던 멋진 품성이 광채 속에 드러날 것이다. 아름다움이나 높은 가치, 고유한 힘처럼 자신에게는 없다고 믿었던 당신의 장점들 말이다.
일체감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림자 속에 있는 것들을 의식적 깨달음과 결부한다는 뜻이다. 숨겨진 보석을 찾고 낡아 부서진 마음속 가구(감정)에 빛을 드리우기 위해 어두운 구석에 조명등을 들이대보라. 버려야 할 것이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일 수도 있지만, 찾아낸 이상 쓰레기통으로 곧바로 보내버려야 한다. 마음속 골방을 청소하다 보면, 필요 없는 것들을 없앨 수 있고 잊었거나 깨닫지 못한 자신의 멋진 품성을 다시금 찾아낼 수 있다. 잃어버렸던 자신에게 돌아오면서 일체감과 치유의 감각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보석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림자와 비밀은 자아의 두려움을 살찌우는 내면의 야수이므로 이들을 길들여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처럼 미로로 들어가 내면에 깃든 끔찍한 야수인 미노타우로스를 만나 죽여야 한다. 어둠 속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 한, 괴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둠을 뚫고 들어가 괴물을 없앨 수 있을까? 연민과 이해가 있으면 가능하다. 연민과 이해가 마치 동화에서처럼 미노타우로스를 왕자나 영웅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통제하기 어려운, 야수 같은 당신의 자아는 두려움에 맞설 내면적 힘과 어두운 내면에 빛을 비출 용기에 힘입어 길들여질 것이다. 지금까지 억눌러온 머릿속 문제와 직면했을 때, 미노타우로스는 더 이상 물리치기 힘든 강적이 아닐 것이다.
집단의 자아
앞에서 설명했듯이, 우리의 자아는 위험에 처하면 도망치거나 싸우라고 종용한다. 또한 자기를 보호하는 방편 중 하나로 여럿이 모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이러한 정신적 태도는 초기에 인류가 살아남는데 크게 기여했다. 집단을 찾는다는 것은 개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집단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당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분리해서 인식한다는 것은 개인의 자아와 집단의 자아를 동일시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이 중요시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뿐이다(당신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집단에 필요한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임은 가족일 수도 있고, 회사 내의 부서일 수도 있으며, 자신이 속한 인종이나 종교일 수도 있다. 어떤 집단이든 그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을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수상한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차이점만 집중적으로 보려 하고, 차이에서 느끼는 두려움 탓에 곧바로 ‘이방인’과 어울리는 일에 피곤을 느낀다. 불행히도 그러다 보면 이러한 ‘외계인들aliens’(우리가 외국 이민자나 외국인을 지칭할 때도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의 존재를 의미하는 외계인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을 경계하게 되고, 당신이 이들을 적대시하듯이 그들도 당신의 집단을 똑같이 대할 것이라는 믿음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일체감의 범위 안에서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신을 좀 더 신중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정체성을 느끼기는 하지만,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훌륭하거나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집단이 더 우월하다는 의식 없이 집단의 정체성을 자각할 수 있다. 일체감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으면 어떤 방식으로 분류되었든 상관없이 자신과 다른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볼 수 있게 된다.
집단의 자아는 본능적이다. 단체 모임에 나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내가 너무 화려하거나 촌스러운 옷을 입은 건 아닐까?), 또 자신이 그곳에 어울리는지(사람들이 모두 술을 마시고 있나? 정치에 대해 얘기해볼까?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중계를 볼까?) 살피게 된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없는지 곧장 둘러보게 된다. 만약 아는 사람이 없으면, 접근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혹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관심사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찾게 된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산다.
하지만 이러한 자아 표현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불안하거나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 파괴적으로 변하거나 자아도취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그 집단의 일원임을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다. 이러한 행동의 근저에는 두려움이라든지 자신보다 더 힘센 집단에 속해 살아남고자 하는 갈망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속한 ‘부족’이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하고 부족의 힘이 강해지기를 바란다.
현실 세계에서 집단의 자아는 차별적인 성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너희보다 나으니까 나 또한 당신보다 나아’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집단 학살이나 전쟁은 이러한 정신적 태도의 극단적인 표출이지만, 우리는 실제 삶에서도 이러한 일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가령 자신보다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웃과 관계 맺기를 꺼리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속한 집단의 자아에 의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학교에서 당신의 자녀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행동으로 악업을 쌓기 전에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의 밑바탕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볼 때 당신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아는 자신이 강하고 중요하고 우월하다고 느끼기 위해 그 두려움을 독선적인 분노와 판단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럼으로써 그 감정을 위장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타인에게 독선적인 태도나 적대감을 드러낼 때는 그것이 두려움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자신의 못난 행동을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모두는 가끔씩 자아의 손아귀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자신을 열등하게 볼까 두려워 우리는 부정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이런 두려움은 우리가 사랑으로 정복해야 할 야수와도 같은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