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카르멘 하라의 희생자적 태도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사회: 균형

 

 

희생자적 태도

집단의 자아가 너무 강하면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지나치게 집단의 문제와 동일시하고 ‘희생자적 태도’를 키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즉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힘(단지 태도를 선택하는 힘에 불과하더라도)을 지닌 자신을 대견해하기보다 자신의 무력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경향은 분열적이고 파괴적인데, 불행히도 요즘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의사소통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집단에 쉽게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를 더 자주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살다 보니, 그것이 자아를 더 촉발했다.

집단의 자아에 사로잡히면,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문제를 파악하기보다 외부 요인으로 책임을 돌리기 바쁘다. 예를 들어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과 대화를 하면서 가끔 이런 사실을 지적하면, 상대는 그 사실을 수긍하는 대신 대체로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 에너지 소비국을 들먹이며 이렇게 비난하곤 한다. 지구의 자원을 보존하려면 저쪽 집단이 먼저 행동을 시작해야 해!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런 비판이 사실일까?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집단이 잘할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비판을 모면하려 한다. 인생은 누가 더 많이 오해받고 잘못 받아들여지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지 겨루는 장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은 결국 자신을 진부한 틀에 묶어둘 뿐이다.

일체감은 진정제와 같아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공포와 불안을 누그러뜨린다. 일체감은 개인이 지닌 여러 정체성, 즉 개인이며 여러 집단의 일원 그리고 피조물의 일부분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에 균형을 잡아준다. 일체감은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조차 (그들도 일체감을 믿기 때문에) 당신을 지켜준다는 사실뿐 아니라, 우리도 그들을 지킬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준다.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상처 입을 각오로 손을 내밀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결속을 느끼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멋진 상황을 겪으며 우리는 내부에서부터 변화시킬 수 있고, 더 쉽게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렇게 개인의 자아와 집단의 자아를 조절하여 비이성적인 감정이 의식을 지배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대에 끊임없이 부응하고 다른 집단과 경쟁하는 것에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봐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살 필요는 없다. 다른 집단을 비하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집단을 사랑하고 자신의 집단이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다른 종교와 인종, 의견과 생각을 존중한다면, 지구상에 일체감을 실현하는 일을 도울 수 있다.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사회: 균형

모든 사회에는 집단의 자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개인의 욕구와 집단의 욕구, 작은 집단의 욕구와 더 큰 집단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분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는 두 가지 형태, 즉 개인적 사회와 집단적 사회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은 개인적 사회에 속하며, 아시아나 남아메리카는 집단적 사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사회는 독창적인 사람, 스스로 노력하여 자수성가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이 셋 모두 멋진 장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은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다. 사람들은 부모나 공동체, 스승이나 경찰 혹은 정부와 주위 환경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슬픈 일이지만, 이렇듯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더 큰 집단에 속해 있다는 축복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쉽다.

그에 반해 집단적 문화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단체로 일하고 협동하여 전체의 발전을 중시한다. 집단에 순종하는 대가로 보호를 받다 보니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개인이 자기표현을 할 때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배신한다거나 전체에게 피해를 준다는 부담을 느끼기 십상이다. 서구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유에는 책임과 차이에 대한 관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순응하는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개인적 문화의 다양함을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급격한 변화에 자신을 열어놓지 못

하면, 집단의 자아가 개인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물론 두 시스템 모두 당연히 장점과 단점이 뒤따른다. 루마니아에서 살던 20대 때 나를 포함해 모든 친구와 그 가족들에게 집과 차 그리고 직업이 있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압도할 만큼 물질적 부나 재산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모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극단적인 부나 가난은 없었지만, 사회적 신분의 사다리를 타고 상승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없었다. 두 사회에서 다 살아본 나로서는 이제야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정부가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는가를 뛰어넘는 개인의 자아와

집단의 자아 사이의 균형에 관한 문제였다. 사람들이 일체감을 받아들인다면 불화와 경쟁 그리고 자기중심주의 대신 조화가 생겨나고, 그리하여 사회의 약점과 단점은 극복될 수 있다.

일체감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우리를 눈뜨게 해준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것들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간 의식에 길을 내줄지 모른다. 신성한 율법과 더 나은 통합된 세상이 이루어지면 그것들이 무용지물처럼 여겨질 날이 올지 모른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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