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기독교의 박애와 유학의 인애
기독교 신학의 박애와 유학의 인애는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사회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군자와 소인 심지어 적의 구분조차 허물어버리는 뛰어난 관용정신을 드러낸다. 적대자는 예수가 지상에 있을 때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박애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골로새서」 3:14).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골로새서」 3:13).
“천하의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될 것이다”라는 유학사상은 기독교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복음」 12:50)라는 예수의 말씀과도 일치한다. 크리스천은 서로 형제자매라고 부르며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고 누구나 올바른 도를 지켜 노력하면 그만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죄에서 돌아서 선을 좇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갈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유학의 인애는 자신을 억제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다. 하루라도 자신을 이겨서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논어』「안연」). 극기가 현실에서 인애를 실천할 단계로 확장되면 신과는 큰 관련이 없어진다. 유학에서는 “인간의 귀鬼(영혼)나 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는” 태도를 보인다. 인간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을 멀리하고 냉대한다. 각자 노력하면 보편적 인애를 실행하는 대동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유학은 곳곳에서 인애, 조화로움, 안녕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대동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은 자신의 역할과 본분을 지키고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아야 하며, 사회의 윤리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효제의 원칙이 관철되어야 한다.
효성과 공경함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논어』 「안연」).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한 사람 중 윗사람을 해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 해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논어』 「학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공손한 효제원칙은 사회와 국가로 확대되어야 한다. 정치가가 스스로 효성스러움과 자비로움을 실천하면 백성이 충직해져서 사회와 정치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안정된 체제에서 인애는 위에서 아래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아래에서 위로는 엄격한 존경과 복종을 요구한다.
기독교에서 박애를 실천하는 일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사랑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사람은 언행 하나하나에 하느님의 뜻을 담아 은혜의 선물인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하느님은 지극히 선하고 완벽하며 한계가 없고 전능하다. 하느님 앞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신분의 한계는 충분히 뛰어넘고 무시할 수 있다. 실로 사람과 사람 간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원수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3:35).
유학에서는 성선설에 기초하여 남을 사랑하라고 주장한다. 성선설은 사람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군자라야 선을 실천할 수 있다.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은 없다(『논어』 「양화」).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논어』「양화」).
군자의 덕은 바람이어서 소인에게 인애를 감화시키지만 소인의 덕은 바람에 고개를 숙이는 풀이다. 이처럼 인애를 실천하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다.
기독교의 박애는 사람의 가치와 존엄을 긍정하고 중요하게 여길 때 시작된다. 하느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하느님과 같은 형상이어서 어떤 피조물보다 가치 있고 존엄하다. 이러한 가치와 존엄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므로 무조건적이다. 이를 긍정하고 중시하는 순간 사랑을 보편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유학의 인애는 일정한 사회규범 속에서 실천되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의가 있어야 하고, 어머니는 자애로워야 하며, 형은 우애로 아우는 공경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의 가정준칙은 군신유의, 붕우유신의 사회준칙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회는 전체적으로 화목하고 질서정연한 조화로운 인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는 신앙의 힘으로 사랑을 보편적으로 실천한다. 신앙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크리스천은 아무 조건 없이 신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반면 유학은 이성적인 사회정치의 이론이자 윤리체계다. 극기는 자발적인 마음을 일으키기 위한 이성의 요구다. 그래서 마음에서 스스로 인정하는 기준인 이성의 원칙에 따라서 인을 실천한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선악을 떠나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