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눈 오는 날
설중한매雪中寒梅(눈 속의 차가운 매화)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설일雪日(눈 오는 날)
雪日常多晴日或 前山旣白後山亦설일상다청일혹 전산기백후산역; 늘 눈이 내리더니 어쩌다 개어 앞산이 희어지고 뒷산도 희구나.
推窓四面琉璃壁 分咐寺童故掃莫추창사면유리벽 분부사동고소막; 창문을 밀쳐 보니 사면이 유리벽이라 아이에게 시켜서 쓸지 말라고 하네.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하자 중이 거절했다. 김삿갓이 절을 나가려 하자 혹시 김삿갓이 아닌가 생각하고 시를 짓게 했다. 혹或, 역亦, 벽壁, 막莫 같은 어려운 운을 불러 괴롭혔지만 이 시를 짓고 잠을 자게 되었다.
설雪(눈)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조蚤(벼룩)
貌似棗仁勇絶倫 半風爲友蝎爲隣모사조인용절륜 반풍위우갈위린; 모습은 대추씨 같지만 용기가 뛰어나 이와는 친구 삼고 전갈과는 이웃일세.
朝從席隙藏身密 暮向衾中犯脚親조종석극장신밀 모향금중범각친; 아침에는 자리 틈에 몸을 숨겨 찾을 수 없고 저녁에는 이불 속에 다리 물려고 가까이 오네.
尖嘴嚼時心動索 赤身躍處夢驚頻첨취작시심동색 적신약처몽경빈; 뾰족한 주둥이에 물릴 때마다 찾아볼 마음이 생기고 알몸으로 튈 때마다 단꿈이 자주 깨네.
平明點檢肌膚上 剩得桃花萬片春평명점검기부상 잉득도화만편춘; 밝은 아침에 일어나 살갗을 살펴보면 복사꽃 만발한 봄날 경치를 보는 것 같네.
벼룩의 모양과 습성을 묘사하고 벼룩에 물린 사람의 피부를 복숭아꽃이 만발한 봄 경치에 비유하였다.
묘猫(고양이)
乘夜橫行路北南 中於狐狸傑爲三승야횡행로북남 중어호리걸위삼; 밤에는 남북 길을 제멋대로 다니며 여우와 삵괭이 사이에 끼어 삼걸이 되었네.
毛分黑白渾成繡 目狹靑黃半染藍모분흑백혼성수 자협청황반염람; 털은 흑백이 뒤섞여 수를 놓고 눈은 청황색에다 남색까지 물들었네.
貴客床前偸美饌 老人懷裡傍溫衫귀객상전투미찬 노인회리방온삼; 귀한 손님 밥상에선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고 늙은이 품속에서 따뜻한 옷에 덮여 자니
那邊雀鼠能驕慢 出獵雄聲若大膽나변작서능교만 출렵웅성약대담; 쥐가 어디에 있나 찾아 나설 땐 교만 떨다가 야옹소리 크게 지를 땐 간담이 크기도 해라.
예민한 관찰과 기발한 착상으로 고양이의 생김새와 습성을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