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꾹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딸꾹질에 대한 행법

 

1. 손바닥의 한복판을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누른다.

 

딸꾹질은 위 운동의 한 형태이다. 위의 변조를 조정하기 위한 작용이다. 위가 나쁜 사람이 2-3일 정도 단식하면 계속해서 딸꾹질이 나온다. 이때에는 멎을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손바닥의 한 복판을 다른 손 엄지로 힘껏 눌러준다. 몇 번이고 누르는 동안 딸꾹질은 사라진다.

이것은 손바닥 위로 통하는 경락이 있어 그곳을 누르면 위의 변조가 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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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눈 오는 날

 

설중한매雪中寒梅(눈 속의 차가운 매화)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설일雪日(눈 오는 날)

 

雪日常多晴日或 前山旣白後山亦설일상다청일혹 전산기백후산역; 늘 눈이 내리더니 어쩌다 개어 앞산이 희어지고 뒷산도 희구나.

推窓四面琉璃壁 分咐寺童故掃莫추창사면유리벽 분부사동고소막; 창문을 밀쳐 보니 사면이 유리벽이라 아이에게 시켜서 쓸지 말라고 하네.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하자 중이 거절했다. 김삿갓이 절을 나가려 하자 혹시 김삿갓이 아닌가 생각하고 시를 짓게 했다. , , , 같은 어려운 운을 불러 괴롭혔지만 이 시를 짓고 잠을 자게 되었다.

 

()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明日若使陽來弔 家家前淚滴滴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벼룩)

 

貌似棗仁勇絶倫 半風爲友蝎爲隣모사조인용절륜 반풍위우갈위린; 모습은 대추씨 같지만 용기가 뛰어나 이와는 친구 삼고 전갈과는 이웃일세.

朝從席隙藏身密 暮向衾中犯脚親조종석극장신밀 모향금중범각친; 아침에는 자리 틈에 몸을 숨겨 찾을 수 없고 저녁에는 이불 속에 다리 물려고 가까이 오네.

尖嘴嚼時心動索 赤身躍處夢驚頻첨취작시심동색 적신약처몽경빈; 뾰족한 주둥이에 물릴 때마다 찾아볼 마음이 생기고 알몸으로 튈 때마다 단꿈이 자주 깨네.

平明點檢肌膚上 剩得桃花萬片春평명점검기부상 잉득도화만편춘; 밝은 아침에 일어나 살갗을 살펴보면 복사꽃 만발한 봄날 경치를 보는 것 같네.

 

벼룩의 모양과 습성을 묘사하고 벼룩에 물린 사람의 피부를 복숭아꽃이 만발한 봄 경치에 비유하였다.

 

(고양이)

 

乘夜橫行路北南 中於狐狸傑爲三승야횡행로북남 중어호리걸위삼; 밤에는 남북 길을 제멋대로 다니며 여우와 삵괭이 사이에 끼어 삼걸이 되었네.

毛分黑白渾成繡 目狹靑黃半染藍모분흑백혼성수 자협청황반염람; 털은 흑백이 뒤섞여 수를 놓고 눈은 청황색에다 남색까지 물들었네.

貴客床前偸美饌 老人懷裡傍溫衫귀객상전투미찬 노인회리방온삼; 귀한 손님 밥상에선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고 늙은이 품속에서 따뜻한 옷에 덮여 자니

那邊雀鼠能驕慢 出獵雄聲若大膽나변작서능교만 출렵웅성약대담; 쥐가 어디에 있나 찾아 나설 땐 교만 떨다가 야옹소리 크게 지를 땐 간담이 크기도 해라.

 

예민한 관찰과 기발한 착상으로 고양이의 생김새와 습성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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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대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대하기 시작했다. 융에게도 프로이트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지만 그런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 차가 그들을 갈라놨고 둘 사이에는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들은 대부분 서신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들은 7년 동안 방대한 양의 서신을 왕래하며 과학적 의견, 부모, 동료, 정신의학 운동의 어려움, 개인사,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친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융은 자신의 사후 30년까지는 그 서신들이 출판되지 않기를 바랐다. 여든세 살이 된 융은 프로이트와의 서신을 “나의 청춘의 나날을 가득 채웠던 놀라운 어리석음을 상기시키는 불행하면서 지울 수 없는 추억”이라고 했다. 융의 서신은 많은 수가 보존되지 않았지만 남아 있는 것들 가운데 프로이트와 주고받은 서신들은 그의 성격과 성장기의 여러 측면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융은 어린 시절 그의 가족과 가깝게 지내던 한 중년 남성에게 받은 상처가 프로이트와의 관계의 감정적 측면에 영향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교수님의 지난 편지 두 통에서는 제가 글을 쓰는 데 게으르다는 점이 언급되었습니다 … 사실 저는 교수님께 어렵게 털어놓을 일이 있습니다 … 제가 교수님께 느끼는 경외감은“ 종교적인” 몰입과 같습니다. 그 감정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 표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성적인 함의가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여전히 역겹고 우습게 여겨집니다. 이 혐오스러운 감정은 제가 소년이었을 때 제가 숭배하던 한 남자가 저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 지금도 떨쳐 버릴 수 없는 이 감정이 저에게 큰 방해가 되는군요.

 

 


프로이트 교수님께,
편지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의 편지는 저에게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불가피한 것에 우아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유머를 칭송하시다니 절대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은 저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물론 억압된 감정이 저를 압도할 때는 그 원칙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매우 드뭅니다.

 

두 사람은 어떤 비밀도 없이 서로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었고 발견에 대한 흥분과 즐거움을 함께 나눴다. 융은 정신분석을 신랄히 비판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노하며 프로이트의 편을 들기도 했다.

 

프로이트 교수님께,
쇠틀란더의 대담함이 놀랍군요. 그 끈적끈적한 녀석은 당연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그 녀석을 혹독하게 굽고 삶고 질리게 해서 그가 정신분석의 효용을 오래도록 맛보게 하셨길 바랍니다. 저는 교수님의 최종 판단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야수들의 본성은 그러합니다. 저는 그의 얼굴에서 그의 내면이 추잡하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목을 졸라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닭처럼 머리가 나쁜 그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수님이 쉬운 표현으로 진실을 설명해주셨길 바랍니다. 제가 교수님이었다면 스위스 식으로 그를 흠씬 패서 그의 부랑아 콤플렉스를 잠재워 놓았을 것입니다.

 

융의 외아들 프란츠의 출생을 목전에 둔 1908년 말의 편지들은 융 일가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다정한 안부 편지와 함께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친구에게,
아닐세.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네. 밤이 길 테니 우리의 작은 등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하네 … 그 사이에 운명은 자네를 다시 아버지로 만들었군 … 소식을 들려주게. 그때까지 나는 용감한 산모가 건강하길 빌겠네. 남편에게는 어떤 자식들보다 아내가 더 소중하다는 걸 명심하게. 과정이 가져다주는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가치 있듯이.

 

프로이트 교수님께,
축하 전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얼마나 기쁜지 상상할 수 있으시겠지요. 출산은 순조로웠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네 살짜리 아가틀리[딸 아가테의 애칭]도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프란츠가 태어나던 날 저녁에 딸에게 황새가 남동생을 데려오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기를 죽일 거야.” 아이는 부끄러운 듯 은밀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지만 이유를 정확하게 말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날 밤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침 일찍 딸을 아내의 침대 곁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는 긴장했고 기운 없어 보이는 엄마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요. 아이는 어떤 기쁨도 드러내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날 아침 엄마가 혼자 있을 때 어린 딸은 갑자기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의 목에 팔을 두르고 초조해하면서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마침내 나의 조언으로 아내는 아가틀리에게 (나무의 꽃처럼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자란다고) 가르쳐주었지요. 다음날 나는 독감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딸이 수줍지만 놀란 표정으로 침대까지는 오지 않은 채 나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도 배에 나무가 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안 아이는 걱정 없이 즐겁게 뛰어나갔습니다. 마법처럼 매력적인 아이지요! 최근에서야 아가틀리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남동생이 예쁘다고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엉덩이가 얼마나 예쁜지 보세요!” 우리 아가틀리는 즐거운 발견을 계속했고 그 발견을 참신하고 기발하게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즐거워하면서 이제 탄생이라는 걸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했지요. 아이는 인형을 치마 아래의 다리 사이에 놓고 인형 머리만 보이게 한 후 외쳤습니다“. 보세요. 아이가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천천히 인형을 빼면서“ 이제 다 나왔어요”라고 말했지요. 물론 탄생에서 아빠의 역할은 여전히 모호한 상상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지만요. 우리는 그냥 들어주기만 하고 가능한 한 간섭은 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큰 외침을 들었습니다“. 엄마, 엄마 방에 갈래. 아빠는 뭐 하는 거예요?” 하지만 아이 엄마는 딸을 방으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 나중에 우리가 일어났을 때 아가틀리가 침대로 뛰어들어서 엄마의 배 위로 누워서 말처럼 다리를 위로 찼습니다.“ 아빠가 이렇게 하는 거지? 아빠가 이렇게 하는 거지?”… 동료들은『 연Jahrbuch』[융이 편집장으로 참여한 정신분석학 잡지]에 이 일을 기고하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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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발미키가 『라마야나』를 집필했다

 

 

 

 

 

 

고대 그리스와 인도에 구전되던 신화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었다. 두 사회의 이야기꾼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얻은 경험에 맞게 공유한 신화를 각색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발을 붙인 땅이 다르니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라마야나』의 중반부는 아유타야Ayudhaya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리아드』의 내용처럼 미케네 왕이 실제로 연합군을 조직하여 그리스 함대를 트로이까지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리아드』에서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리더십은 신들의 갈등에 가려 그 빛을 발할 기회가 없다. 『일리아드』에서 미의 여신 자리를 놓고 다투다 등을 돌린 여신들과 이에 가세한 신들이 옥신각신하며 편을 가른다. 어떤 신은 트로이 편을 들고 어떤 신은 그리스 편을 드는 식이다. 물론 『일리아드』에서 인간이 일으킨 전쟁의 원인은 다름 아닌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최고의 미녀 헬레네이다.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야반도주를 한 탓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태풍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이 제멋대로인 여인도 왕비이기 이전에 여신이었다. 전지전능한 최고신 제우스의 딸인 헬레네는 알에서 부화한 나무의 여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는 유괴범과 그녀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는 구조대원들을 추종자로 거느리고 있었다.
『라마야나』와 『일리아드』의 대표적인 공통점은 바로 이 유괴된 여인들, 헬레네와 시타의 신성이다. 『라마야나』에서 라마는 랑카 섬에 있는 마왕 라바나의 근거지를 악전고투 끝에 함락한 후에야 아내 시타와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난 아내 헬레네 왕비를 기꺼이 용서한 스파르타 왕 메넬라우스와 달리 라마는 외간남자에게 사로잡혀 있던 아내를 다시 맞아들인다는 것이 영 꺼림칙했다. 고민 끝에 라마는 시타를 내쳤고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던 시타는 자신의 정결함을 증명하기 위해 대지에 안겨 대지의 균열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라마는 강으로 몸을 숨겨 그녀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물은 비슈누의 여덟 번째 요소로, 비슈누의 여덟 번째 분신인 라마 자신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 라마는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크리슈나보다 더 신성한 존재로 받들어진다. 『라마야나』에는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가 환생한 이유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절규하는 자’란 뜻의 이름을 지닌 마왕 라바나를 무찌르기 위해서이다. 고행과 헌신을 보여 창조신 브라마의 환심을 산 라바나는 신들은 물론 악마들마저 대적할 수 없는 불사신이 되어버렸다. 만물을 수호하는 신 비슈누의 개입이 절실해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극단적인 금욕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사상은 상당히 보기 드문 생각이다. 인더스 문명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신들마저 무릎 꿇릴 수 있는 성선聖仙이나 보유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라바나의 마음속에서 라마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은 욕망이 자라났다. 정기적으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세상의 악을 정화하고 떠나는 비슈누의 권능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모한 결심이 아닐 수 없었다. 성선의 막강한 힘은 인드라 신이 모욕당한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드라는 성선 고타마의 아내를 유혹했다. 불장난에 대한 대가는 컸다. 분노한 고타마가 인드라의 고환을 잘라버린 것이다. 신들이 후에 인드라에게 숫양의 고환을 대신 달아주긴 했지만, 이는 두고두고 인드라의 굴욕의 상징으로 남았다. 인도-유럽어족의 신들 가운데서 이런 가혹한 처사를 견뎌야 했던 건 인드라가 유일무이했다.
시인 발미키가 그전부터 존재해왔던 구전자료를 바탕으로 『라마야나』를 집필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애초부터 종교적 관점에서 이 대서사시를 집필하려 했던 것 같다. 이 서사시는 비슈누의 환생에 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환생을 통해 비슈누가 전지전능한 힘을 얻으려는 악마들의 시도를 저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시바와 달리 비슈누에게서는 불길하거나 위험한 어떤 결점도 찾아볼 수 없다. 구세주가 되어야 마땅한 완벽한 자질을 지닌 신인 것이다. 비슈누는 매우 다양한 화신으로 환생한다. 심지어는 불교의 신 붓다로 환생하여 속세에 강림하기도 한다. “다양한 변설로 악마들을 꼬여내어 악마와 악인을 파멸시켰던” 신묘
한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 붓다로 말이다. 힌두교신앙에 반불교적인 태도가 스며 있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비슈누를 섬기던 이들에게 붓다의 비폭력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비슈누를 섬기는 힌두교도들은 이 ‘악인의 파괴자’ 붓다를 비슈누의 화신으로 차용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지고신 비슈누가 동물을 제물로 삼는 것을 금한 연유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가축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살생을 금하는 사상은 상당히 색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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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세계와 신프롤레타리아

 

 

 

 

 

 

지하드와 지하드운동을 진솔하게 분석할 때 무슬림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런 감수성을 이용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추종세력을 동원하여 논객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이슬람혐오증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교황에게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요컨대, 서양의 이슬람혐오증을 둘러싼 불만은 이슬람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자 이념 전쟁의 기초였다. 지하디스트들은 이슬람주의에 테러리즘을 결부시키는 것을 “이슬람교와의 전쟁” 으로 치부하는데, 이를 주장하는— 이슬람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무슬림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지하드운동은 이슬람주의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태동했다. 무슬림 형제단을 조직한 하산 알반나가 지하드운동의 주요 특색을 모두 설계했다. 역사의 귀환과 정치의 종교화, 종교의 정치화, 이슬람교의 비전인 “세계의 재창조”를 재현하기 위한 초기 이슬람 정복 전쟁27의 집단기억, 그리고 이슬람주의 독트린이 진정한 지하드를 대변한다는 주장은 모두 알반나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1930년에 발간한 『지하드 선집』은 지하디스트・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토대를 마련했다. 알반나는 자신이 설파한 사상을 몸소 실천했다. 오늘날, 무슬림 형제단 중에는 지하디스트들이 벌이는 전쟁을 포기하고 좀 더 유망한 이념의 전쟁에 합류하는 분파도 있다. 폭력보다는 성공률이 더 높다고 입증된 이런 모험으로 지하드운동과 제도적 이슬람주의의 차이가 모호해졌다.
지금껏 논의한 쟁점들 가운데, 서방세계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이슬람주의에 대한 적절한 정책이 부재하다는 방증이다. 이는 하루속히 달라져야 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종교로 승화되었으나 유럽인은 이를 부인하거나 간과했다. 피터 뉴만은 지하드와 지하드운동의 관계가 유럽에서 신흥세력으로 부상하는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서술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유럽의 이슬람교 소수집단에 추종세력을 확보해두었다. 서양 정치인들은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보수주의자들이 벌인 실책을 피하고 무슬림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서방세계가 이슬람교와 신도를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지하디스트들의 의혹을 인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대테러 전략에 성공하려면 무슬림과 서방세계가 공조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이 방면에서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그룹들 가운데 하나가 좌파였다. 지하드운동이 혁명을 주도하는 종교적 우파의 이데올로기라면 왜 좌파가 이를 지지하겠는가?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선구자들이 마르크스나 레닌의 사상을 습득했을 것이라는 점은 입증할 수 없으나 이슬람주의자들이 쓴 문건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주의자가 마르크스・레닌의 용어를 썼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세속적, 국제주의적 어휘와 일치한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슬람주의식 국제
주의는 종교색을 띠는 데다 전통 이슬람교의 보편주의가 정치화된 데서 비롯되긴 했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레닌의 세계 혁명 사상을 끄집어내어 이를 지하드에 적용한 사이드 쿠틉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은 그가 쓴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슬람교는 온전하고도 포괄적인 혁명을 추구한다. … 지하드는 알라 신의 통치(하키미야트 알라)를 실현할 혁명을 이행해야 할 무슬림의 의무다. … 따라서 지하드는 세계 혁명thawrah alamiyya(타우라 알라미야) 사상이다. … 이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슬람교는 공정한 질서의 확립과 더불어 세계의 재창조를 위한 영원한 지하드이다.29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혁명의 수단은 프롤레타리아인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레닌은 프롤레타리아를 혁명당조직으로 대체했다. 알반나와 쿠틉 또한 이슬람주의 목표를 실현할 영원한 혁명을 거론한다. 미래지향적인 마르크스의 유토피아, 즉 계층이 없는 자유사회와는 달리, 이슬람주의의 유토피아는 과거지향적이다. 즉 “이슬람국가” 의 비전을 건설하고 이슬람의 역사를 다시 읽는 과정에서 이를 과거에 투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비추어보면, 첫 이슬람국가는 622년
메디나에 세운 것으로 전해졌으나 하디트에서 무함마드는 “국가(다울라)” 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슬람국가” 의 회복(몇몇 서양 학자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칼리프의 회복을 이야기했다고는 하나 이는 사실무근이다)은 이슬람교의 영화를 되찾을 혁명으로 실현될 것이다. 이 같은 비전은 집단기억과 정체성 정치에서 조성되며, 이를 반영하는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는 세속 마르크스식 국제주의를 종교적 버전으로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무슬림이 이슬람교 이전의 무지(자힐리야)에 빠진 데다 정치적 의식도 부족하여 포위되고 억압받는 무슬림 공동체를 위해 활약할 대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하디스트 혁명가를 두고 하는 말인데, 그들은 휴면상태인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할 레닌주의 당과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자신이 “진정한 신도” 라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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