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대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대하기 시작했다. 융에게도 프로이트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지만 그런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 차가 그들을 갈라놨고 둘 사이에는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들은 대부분 서신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들은 7년 동안 방대한 양의 서신을 왕래하며 과학적 의견, 부모, 동료, 정신의학 운동의 어려움, 개인사,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친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융은 자신의 사후 30년까지는 그 서신들이 출판되지 않기를 바랐다. 여든세 살이 된 융은 프로이트와의 서신을 “나의 청춘의 나날을 가득 채웠던 놀라운 어리석음을 상기시키는 불행하면서 지울 수 없는 추억”이라고 했다. 융의 서신은 많은 수가 보존되지 않았지만 남아 있는 것들 가운데 프로이트와 주고받은 서신들은 그의 성격과 성장기의 여러 측면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융은 어린 시절 그의 가족과 가깝게 지내던 한 중년 남성에게 받은 상처가 프로이트와의 관계의 감정적 측면에 영향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교수님의 지난 편지 두 통에서는 제가 글을 쓰는 데 게으르다는 점이 언급되었습니다 … 사실 저는 교수님께 어렵게 털어놓을 일이 있습니다 … 제가 교수님께 느끼는 경외감은“ 종교적인” 몰입과 같습니다. 그 감정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 표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성적인 함의가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여전히 역겹고 우습게 여겨집니다. 이 혐오스러운 감정은 제가 소년이었을 때 제가 숭배하던 한 남자가 저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 지금도 떨쳐 버릴 수 없는 이 감정이 저에게 큰 방해가 되는군요.
프로이트 교수님께,
편지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의 편지는 저에게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불가피한 것에 우아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유머를 칭송하시다니 절대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은 저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물론 억압된 감정이 저를 압도할 때는 그 원칙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매우 드뭅니다.
두 사람은 어떤 비밀도 없이 서로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었고 발견에 대한 흥분과 즐거움을 함께 나눴다. 융은 정신분석을 신랄히 비판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노하며 프로이트의 편을 들기도 했다.
프로이트 교수님께,
쇠틀란더의 대담함이 놀랍군요. 그 끈적끈적한 녀석은 당연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그 녀석을 혹독하게 굽고 삶고 질리게 해서 그가 정신분석의 효용을 오래도록 맛보게 하셨길 바랍니다. 저는 교수님의 최종 판단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야수들의 본성은 그러합니다. 저는 그의 얼굴에서 그의 내면이 추잡하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목을 졸라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닭처럼 머리가 나쁜 그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수님이 쉬운 표현으로 진실을 설명해주셨길 바랍니다. 제가 교수님이었다면 스위스 식으로 그를 흠씬 패서 그의 부랑아 콤플렉스를 잠재워 놓았을 것입니다.
융의 외아들 프란츠의 출생을 목전에 둔 1908년 말의 편지들은 융 일가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다정한 안부 편지와 함께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친구에게,
아닐세.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네. 밤이 길 테니 우리의 작은 등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하네 … 그 사이에 운명은 자네를 다시 아버지로 만들었군 … 소식을 들려주게. 그때까지 나는 용감한 산모가 건강하길 빌겠네. 남편에게는 어떤 자식들보다 아내가 더 소중하다는 걸 명심하게. 과정이 가져다주는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가치 있듯이.
프로이트 교수님께,
축하 전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얼마나 기쁜지 상상할 수 있으시겠지요. 출산은 순조로웠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네 살짜리 아가틀리[딸 아가테의 애칭]도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프란츠가 태어나던 날 저녁에 딸에게 황새가 남동생을 데려오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기를 죽일 거야.” 아이는 부끄러운 듯 은밀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지만 이유를 정확하게 말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날 밤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침 일찍 딸을 아내의 침대 곁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는 긴장했고 기운 없어 보이는 엄마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요. 아이는 어떤 기쁨도 드러내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날 아침 엄마가 혼자 있을 때 어린 딸은 갑자기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의 목에 팔을 두르고 초조해하면서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마침내 나의 조언으로 아내는 아가틀리에게 (나무의 꽃처럼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자란다고) 가르쳐주었지요. 다음날 나는 독감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딸이 수줍지만 놀란 표정으로 침대까지는 오지 않은 채 나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도 배에 나무가 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안 아이는 걱정 없이 즐겁게 뛰어나갔습니다. 마법처럼 매력적인 아이지요! 최근에서야 아가틀리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남동생이 예쁘다고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엉덩이가 얼마나 예쁜지 보세요!” 우리 아가틀리는 즐거운 발견을 계속했고 그 발견을 참신하고 기발하게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즐거워하면서 이제 탄생이라는 걸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했지요. 아이는 인형을 치마 아래의 다리 사이에 놓고 인형 머리만 보이게 한 후 외쳤습니다“. 보세요. 아이가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천천히 인형을 빼면서“ 이제 다 나왔어요”라고 말했지요. 물론 탄생에서 아빠의 역할은 여전히 모호한 상상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지만요. 우리는 그냥 들어주기만 하고 가능한 한 간섭은 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큰 외침을 들었습니다“. 엄마, 엄마 방에 갈래. 아빠는 뭐 하는 거예요?” 하지만 아이 엄마는 딸을 방으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 나중에 우리가 일어났을 때 아가틀리가 침대로 뛰어들어서 엄마의 배 위로 누워서 말처럼 다리를 위로 찼습니다.“ 아빠가 이렇게 하는 거지? 아빠가 이렇게 하는 거지?”… 동료들은『 연Jahrbuch』[융이 편집장으로 참여한 정신분석학 잡지]에 이 일을 기고하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