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세계와 신프롤레타리아

지하드와 지하드운동을 진솔하게 분석할 때 무슬림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런 감수성을 이용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추종세력을 동원하여 논객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이슬람혐오증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교황에게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요컨대, 서양의 이슬람혐오증을 둘러싼 불만은 이슬람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자 이념 전쟁의 기초였다. 지하디스트들은 이슬람주의에 테러리즘을 결부시키는 것을 “이슬람교와의 전쟁” 으로 치부하는데, 이를 주장하는— 이슬람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무슬림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지하드운동은 이슬람주의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태동했다. 무슬림 형제단을 조직한 하산 알반나가 지하드운동의 주요 특색을 모두 설계했다. 역사의 귀환과 정치의 종교화, 종교의 정치화, 이슬람교의 비전인 “세계의 재창조”를 재현하기 위한 초기 이슬람 정복 전쟁27의 집단기억, 그리고 이슬람주의 독트린이 진정한 지하드를 대변한다는 주장은 모두 알반나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1930년에 발간한 『지하드 선집』은 지하디스트・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토대를 마련했다. 알반나는 자신이 설파한 사상을 몸소 실천했다. 오늘날, 무슬림 형제단 중에는 지하디스트들이 벌이는 전쟁을 포기하고 좀 더 유망한 이념의 전쟁에 합류하는 분파도 있다. 폭력보다는 성공률이 더 높다고 입증된 이런 모험으로 지하드운동과 제도적 이슬람주의의 차이가 모호해졌다.
지금껏 논의한 쟁점들 가운데, 서방세계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이슬람주의에 대한 적절한 정책이 부재하다는 방증이다. 이는 하루속히 달라져야 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종교로 승화되었으나 유럽인은 이를 부인하거나 간과했다. 피터 뉴만은 지하드와 지하드운동의 관계가 유럽에서 신흥세력으로 부상하는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서술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유럽의 이슬람교 소수집단에 추종세력을 확보해두었다. 서양 정치인들은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보수주의자들이 벌인 실책을 피하고 무슬림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서방세계가 이슬람교와 신도를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지하디스트들의 의혹을 인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대테러 전략에 성공하려면 무슬림과 서방세계가 공조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이 방면에서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그룹들 가운데 하나가 좌파였다. 지하드운동이 혁명을 주도하는 종교적 우파의 이데올로기라면 왜 좌파가 이를 지지하겠는가?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선구자들이 마르크스나 레닌의 사상을 습득했을 것이라는 점은 입증할 수 없으나 이슬람주의자들이 쓴 문건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주의자가 마르크스・레닌의 용어를 썼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세속적, 국제주의적 어휘와 일치한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슬람주의식 국제
주의는 종교색을 띠는 데다 전통 이슬람교의 보편주의가 정치화된 데서 비롯되긴 했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레닌의 세계 혁명 사상을 끄집어내어 이를 지하드에 적용한 사이드 쿠틉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은 그가 쓴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슬람교는 온전하고도 포괄적인 혁명을 추구한다. … 지하드는 알라 신의 통치(하키미야트 알라)를 실현할 혁명을 이행해야 할 무슬림의 의무다. … 따라서 지하드는 세계 혁명thawrah alamiyya(타우라 알라미야) 사상이다. … 이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슬람교는 공정한 질서의 확립과 더불어 세계의 재창조를 위한 영원한 지하드이다.29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혁명의 수단은 프롤레타리아인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레닌은 프롤레타리아를 혁명당조직으로 대체했다. 알반나와 쿠틉 또한 이슬람주의 목표를 실현할 영원한 혁명을 거론한다. 미래지향적인 마르크스의 유토피아, 즉 계층이 없는 자유사회와는 달리, 이슬람주의의 유토피아는 과거지향적이다. 즉 “이슬람국가” 의 비전을 건설하고 이슬람의 역사를 다시 읽는 과정에서 이를 과거에 투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비추어보면, 첫 이슬람국가는 622년
메디나에 세운 것으로 전해졌으나 하디트에서 무함마드는 “국가(다울라)” 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슬람국가” 의 회복(몇몇 서양 학자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칼리프의 회복을 이야기했다고는 하나 이는 사실무근이다)은 이슬람교의 영화를 되찾을 혁명으로 실현될 것이다. 이 같은 비전은 집단기억과 정체성 정치에서 조성되며, 이를 반영하는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는 세속 마르크스식 국제주의를 종교적 버전으로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무슬림이 이슬람교 이전의 무지(자힐리야)에 빠진 데다 정치적 의식도 부족하여 포위되고 억압받는 무슬림 공동체를 위해 활약할 대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하디스트 혁명가를 두고 하는 말인데, 그들은 휴면상태인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할 레닌주의 당과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자신이 “진정한 신도” 라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