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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타임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학생운동
클레어 솔로몬 지음, 인윤희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9월
평점 :
영국의 학생운동: 스프링 타임

(다음은 런던대학 학생회 회장 클레어 솔로몬Clare Solomon이 2010년 늦게 벌어진 학생운동을 회상한 글입니다. 그는 시위 중에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고 진술했습니다.)
2010년이 저물 무렵, 느닷없이 영국의 학생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9년 초 가자지구와 연대해 폭발했던 35건의 점령 시위가 억압받는 사람들과의 연대, 그리고 일부 학생들의 직접행동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2010년 철학과 폐지를 저지하기 위한 미들섹스Middlesex대학 장기 점령, 교육예산 삭감에 맞선 서식스Sussex대학 점령 등 몇몇 대학에서 일어난 강한 항의와 점령 시위는 학생운동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주었다.
2010년 11월에 등장한 학생운동은 연장교육기관Further Education College[16
세 이상의 영국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사회교육 기관]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을 포
함해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였다. 우리가 겪은 모든 일에 관해 일일이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제부터 읽을 이야기들은 전반적인 교육 체계 안에서 정치적 부활의 모습을 담은 스냅사진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증언, 그리고 분석이 담겨 있으며, 이들 대다수는 정치적 직접행동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이다.
2010년 11월 10일, 전국학생연합NUS(National Union of Students)은 대학연합
UCU(University and College Union) 교수들의 후원 아래 ‘S타파 2010’S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수년 동안 좌파 학생 출신의 운동가들은 노동당Labor Party이 이끄는 전국학생연합이 고등교육을 지키기 위해 전국적인 시위를 열 것을 설득해왔다. 하지만 그 사이,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은 대학 등록금 법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블레어가 이끈 신노동당New Labour이 집권해 있는 동안
전국학생연합 지도부는 신노동당을 견제할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신노동당에 대항하지 않은 건 재앙이었다. 전국학생연합이 신노동당에 저항했더라면 2010년, 우리가 토리당Tories과 자유민주당Lib Dems에 대항할 때 훨씬 확고한 지위에 있었을 것이다. 4월에 열린 전국회의에서 곧 시행할 것을 염두에 둔 고등교육 지원금에 대한 브라운 리뷰의 보고서Browne Review[신노동당이 설립한 위원회로 영국의 고등교육예산 방향을 논의하며 등록금 인상 필요성을 제안]가 발표되었고, 그 논의는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 결의안이
채택되었으며 전국적인 시위의 후원과 행정을 맡아 줄 대학연합과 공공서
비스노조UNISON의 즉각적인 지지를 받았다. 관료정치의 목적은 전국학생연합의 공식적인 정치 체제(오늘날 영국 정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삼자합의를 차용하는 것)를 안전하게 지키면서 예산 삭감 및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점잖은 캠페인을 펼치는 것이다.
5월 토리당과 자유민주당 연합정부의 등장은 신노동당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들에 대한 진지한 세력 과시였다. 이번만큼은 전국학생연합의 중요한 자원들을 시위에 총동원하여 현장 운동가들에 견줄 만한 성과를 거뒀다. 암암리에 친노동당 성향을 드러내는 전국학생연합 지도부는 런던 중심가를 즐겁게 거닐며 안전한 행렬을 하다가, 해산하기 전에 편지 쓰기 캠페인 같은 수동적인 행사를 기대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현장의 운동가들은 조만간 더 큰일이 일어날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연좌시위나 예고성 파격 시위 행진이 벌어지기를 은밀히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경찰과 정부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예측했다. 런던 경찰청의 홍보 담당자는 시위 전날 기자들에게 ‘기껏
해야 만 명’정도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학생들 사이에서 자유민주당이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적절한 시기에 자유민주당 본부를 지키기 위한 전담반을 한두 조 파견했다. 하지만 시위 경로에 자리한, 토리당 본부가 있는 밀뱅크 타워는 무방비 상태였다.
11월 10일,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에서 온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오전 8시에 런던대학에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정오에는 런던의 각 대학에서 온 만여 명의 강력한 학생 군단이 정치에 무관심하기로 악명 높은 대학을 규탄하면서 런던대학을 떠나 시위에 돌입했다. 5만여 명의 학생들이 오후 2시까지 행진했으며, 트라팔가 광장에서 밀뱅크 구역까지 가득 몰려들었다. 전국학생연합의 내실을 다진 신노동당의 전통에 비추어볼 때 학생들의 무관심은 지극히 당연했다. 학생들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교육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몇 세대 만에 가장 큰 규모의 학생 시위가 여기에서 열렸다. 수천 명의 대학입시준비과정 학생들과 연장교육기관 학생들이 교육유지수당EMA:Education Maintenance Allowance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매주 30파운드까지 지원하는 제도) 폐지에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당초 계획하지 않았던 대규모 점령이 밀뱅크 타워에서 벌어졌다. 토리당 본부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많은 학생들이 로비에 걸어 들어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 뒤의 시위자들도 흡사 파도가 밀려들 듯 건물 앞마당으로 진입했다. 5천여 명의 학생들이 전국학생연합 대표자들의 제지를 무시하고 건물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행동은 대중에게 활기를 준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것이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갖은 비난을 쏟아냈지만 대중의 의견은 대부분 우리 편이었다.
약 50명의 학생들이 7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갔으며, 휠체어를 타고 있던 한 시위자도 자신의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옥상에 도착한 그들은 현수막을 걸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지상에서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합쳐져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이는 ‘급진적’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50여 명의 경찰들이 도착했지만 학생들의 분노만 가중시켰을 뿐이다. 경찰들과 건물 안에 있던 토리당 당직자들의 적대적인 행동은 시위자들을 자극했고, 우리가 학생운동의 부활을 자축하는 동안 미처 알아챌 새도 없이 유리창이 박살나고 불이 타올라 열기를 내뿜었다. 다른 건물의 로비에서는 커다란 TV 화면으로 이 상황이 뉴스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언론은 어떻게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만 잘 골라서 보여주는가. 우리는 춤추는 모습을 보았지만 언론은 타오르는 불길을 내보냈다. 우리는 분노에 찬 구호를 외치며 춤을 추었지만 언론은 시위가 난장판이 된 것처럼 보이는 장면 한두 개만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자유로워진 것을 느꼈다. 열기가 고조되었을 때 시위에 처음 참가한 한 젊은이가 옥상에서 소화기를 집어던졌고, 그는 본보기로 32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우리는 그를 구제하기 위해 연대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일로 70여 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군중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시위를 자축하기 위해 런던정치경제대학으로 향했다. 기세는 충만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그날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그 뒤 전국학생연합 회장인 아론 포터Aaron Porter가 이번 시위를 ‘T소수의 과격한 학생들’U이 벌인 ‘T비열한’행위라고 비난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런던정치경제대학과 전국의 각 대학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우리가 분노한 원인을 설명하지 않고 어리석고 단발적인 사건을 강조하면서 조직 일원을 비난하는 아론 포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호전적 성향을 가진 제러미 팩스맨Jeremy Paxman이 진행하는 BBC 시사 프로그램 <뉴스나이트Newsnight>에 자유민주당 부총재 사이먼 휴즈Simon Hughes, 그리고 아론 포터와 함께 출연했다. 토론 주제는 ‘여러분은 폭력을 비난합니까, 비난하지 않습니까’였다. 물론 우리는 평화적으로 요구사항을 달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리창 몇 장이 깨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방송에 나올 수 있었을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우리를 지지했다.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폭넓은 지지를 받았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 담겨 있다. 방송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56~76%의 학생들이 우리를 지지했다. 우리는 노동조합원들에게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용기 있는 일부 교수 단체 대표들도 우리를 옹호해주었으나 ‘T폭력’U을 두둔했다는 잘못된 비난과 함께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대학생들 또한 서로 연대할 것을 주장했다. 학생들은 시위 현장을 떠나 학교로 돌아와서 다음 단계를 논의했고 점령 시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런던대학의 소아즈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학을 전문으로 하는 런던대학의 단과대학]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 끝에 우리는 점령 시위에 찬성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학생들이 어떻게,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뒤 이번 학생운동의 중요한 토대가 된 50여 건의 대학 점령 시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엘리 배드콕Elly Badcock이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시위에 관여했거나 시위 학생들을 응원했던 모든 사람들이 지금쯤 깨닫고 있듯이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현재 좌파가 이끄는 캠페인 중 하나는 ‘등록금 인상과 지원금 삭감에 반대하는 전국적 캠페인NCAFC:National Campaign Against Fees and Cuts’이다. 우리는 이번 시위가 벌어지기 이전에 11월 24일을 ‘전국 행동의 날National Day of Action’로 이미 정했으며, 이러한 결정이 11월 10일의 시위에 가속을 붙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전국학생연합과 교육 노조들은 전국 행동의 날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으며, 특히 밀뱅크 사건 이후 그런 태도를 명백히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위가 더 진전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번 시위는 전국학생연합의 공식적인 지지 없이 우리 스스로가 조직한 첫 대규모 시위였다. 11월 10일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에 대한 공격과 체포 이후, 운동가들은 단체와 대학 간의 협조와 지원을 목표로 런던학생의회LSA(London Student Assembly)를 소집했다. 우리는 런던 대학에서 의회 주 건물에 이르기까지 ‘T저항의 축제’T를 준비했으며, 역사적으로 정치 집회와 관련이 깊은 트라팔가 광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정오부터 축제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우리는 공개 무대를 만들면서 집회 연설가들이 아니라 가수 로키 엠씨Lowkey MC를 초대했다. 학생들이 연설에 참여하고 축제에 앞장서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트라팔가 광장 만남의 장소에서 온 보고에 따르면 수천 명의 연장교육기관 학생들이 이 축제에 몰려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에서 젊은 학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무리를 지어 언덕을 넘어오는 기병대 같았다. 학생들은 도착해서 동상마다 걸려 있는 상징적인 현수막과 깃발을 보고 이내 흥분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학우들이 서로 손을 잡고, 껴안고, 흥을 돋우며 춤을 추었다.
안타깝게도 경찰이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는 길목인 알드위치 입구에서 축제를 진압했다. 시위대 뒤쪽은 스트랜드에서 발이 묶였다. 그러나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길목이 막힌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화이트홀로 향했다.
경찰의 저지선이 즉각 움직였다. 그들은 우리를 케틀링했다. 우리는 얼음장 같은 추위 속에 음식과 물도 없이, 화장실에 가는 것도 금지당한채로 9시간 동안 좁은 지역에 갇혀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며 그중에는 열 살밖에 안 된 어린 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이렇게 갇히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시간이 흘렀다. 로키와 음향기기 덕분에 음악은 끊이지 않았고 축제 분위기는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단체로 호키 코키hokey cokey[율동이 있는 영어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사방의 담과 동상 주변에서 몸을 따뜻하게 덥히기 위해 춤을 췄다. 현장의 건물 공사로 생긴 구덩이에는 플래카드와 신문, 쓰레기들을 가득 채워 임시 난로로 썼다. 시위에 처음으로 참가한 한 젊은이는 벽에 ‘S혁명’U이란 단어를 스프레이로 그려 넣었는데, 사람들에게 그 단어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경찰과의 대치가 끝나갈 무렵, 경찰관들이 말을 타고 군중 속으로 돌진했다. 경찰은 그런 적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유튜브YouTube 동영상을 통해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몇몇 사람들도 비슷한 증언으로 경찰의 무자비함을 폭로했다. 맨체스터Manchester대학 학생회 복지 담당인 한나 패터슨Hannah Paterson은 학생들이 처음에 협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말을 타고 온순한 학생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들 중에는 12~13세 정도의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전국학생연합과 대학연합은 다시 한 번 시위 학생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격분했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영국 내 다른 지역에서는 이 시위에 대한 반응으로 엄청난 규모의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이어졌고 몇 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항의들이 빗발쳤다. BBC는 전국에서 13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고양이와 쥐
11월 30일 페이스북에서 또 다른 시위 요청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런던 학생의회의 일부 학생들이 다시 케틀링당할 일을 피하기 위해 시위를 취소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위의 견인력은 너무 강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들썩거렸고, 젊은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참여했다. 전국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제적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업과 학급에 불참했다. 트라팔가 광장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런던에서 우리는 다시 경찰의 케틀링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경찰이 저지선을 만들자마자 화이트홀로 향하던 군중이 방향을 돌려 반대쪽으로 뛰었다. 또 다른 경찰 저지선이 구축되면 다시 방향을 돌렸다. 눈 오는 추운 날씨 속에서 온종일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무리를 작게 쪼갠 뒤 런던 전 시가를 행진했다. 남쪽으로는 빅토리아 역과 하이드 파크 코너까지, 북쪽으로는 옥스퍼드 가를 따라서 행진했다. 다른 그룹은 세인트폴 대성당과 바비칸까지, 또 다른 그룹은 워털루와 피커딜리 광장까지 행진했다. 몇몇 사람들이 트라팔가 광장에서 모이자고 트위터를 했고, 우리 모두 이에 응했다.
소수 사람들은 케틀링당했고, 수십 명이 폭행당하는 일도 있었다. 경찰은 시위대의 ‘평화로운 해산을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150명이 넘는 시위자들을 체포하고 구금했다.
의회에서의 표결: 형광봉과 온실
12월 3일, 등록금 법안 표결이 12월 9일에 있을 예정이란 소식이 알려졌다. 그날까지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몇 주 동안 숨어 지낸 듯 보이던
전국학생연합과 전국대학연합은 하원을 상대로 점잖은 시위를 하는 한편 오후 3시에 임뱅크먼트Embankment에서 ‘형광봉 농성’을 벌일 것이라고 정중하게 발표했다. 우리는 이번에 어떻게 해서든 대규모 시위 인원을 공식 지도부보다 앞서 의회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런던학생의회는 인원수로 경찰의 봉쇄를 저지하는 행진에 동의했고, 런던대학 학생회와 대학연합 런던 지부가 실행 계획을 지원해주었다.
경찰과 벌인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결과, 의회 광장으로 진입했던 우리는 다시금 ‘공식’시위에 돌입했다. 분위기가 삼엄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따라 길게 저지선을 구축하고 진압 요원들을 대기시켜 놓았다. 짤막한 연설 후 우리는 출발했다. 3만여 학생들이 런던 중심부에 밀려들었고, 경찰관들도 계속 늘어났다. 시끌벅적하고 억제되지 않은 군중이 경찰의 예상보다 앞서 의회 광장에 도착했다. 경찰의 바람과는 달리 사람들은 광장에 머물렀다. 의회가 목표였다. 형광봉 농성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교육의 죽음이 아니라 학생운동의 탄생을 축하했다. 울타리가 허물어졌고 광장 전체가 점거되었다. 다시 음악과 춤, 구호가 이어졌다. BBC <뉴스나이트>의 폴 메이슨Paul Mason은 훗날, 이 날의 시위를 ‘덥스텝 반란Dupstep Rebell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상이 당시의 상황에 대한 나의 회고이다. 새로운 학생 반란에 관해서는 수천 가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튀니지와 이집트, 요르단에서 일어난 폭동에 대해 전해 듣고 이번 학생운동에 대해 보다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못살게 구는 정부에 맞서는 모든 사람과 연대할 것이며,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