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 달라이 라마 지혜의 씨앗 씨리즈 1
달라이 라마 지음, 앨런 제이콥스 엮음, 이문영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갈등 해결하기

 

해결이 불가능해 보일 때는 양측이 서로를 연결하는 기본이 되는 인간의 본성을 상기해야만 합니다. 양측이 모두 양보하면 적어도 더 큰 갈등이 일어날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형태의 타협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을 자주 사용하면 안 될까요? 저는 꿀벌과 같은 작은 곤충의 사례에서 감동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자연법칙에 따라 꿀벌은 생존을 위해 함께 협력합니다. 일반적으로 꿀벌 집단은 협력을 기반으로 생존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특별한 자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에 있어서는 곤충만도 못합니다. 어떤 면에서 저는 우리가 꿀벌보다 가난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 성장에 대한 과도한 강조
우리는 물질을 추구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사랑, 친절, 협력, 보살핌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등한시했습니다. 우리의 토대인 본질적인 인간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물질적인 발전만을 추구해서 어쩔 건가요?

 

비폭력과 국제 질서
비폭력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실험 중입니다만, 사랑과 이해를 토대로 비폭력을 추구하는 일은 신성합니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훨씬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이타주의의 필요성
국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연민을 불러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제적 불평등,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불평등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고통의 원천입니다. 경쟁과 부에 대한 욕망이 아닌 이타주의가 사업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과학윤리의 중요성 또한 현대의 과학 분야에서 인간의 가치 존중을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타적인 동기가 없다면 과학자들은 유익한 기술과 단순한 편의주의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는 이런 혼동에서 기인한 가장 명백한 사례입니다. 특히 생명의 섬세한 구조를 조작할 수 있는 새롭고 놀라운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합당한 동기가 더욱더 요구됩니다.

 

종교는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종교의 목적은 관용, 너그러움,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인간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심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의 전통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와 정신적, 영적 건강을 위한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무장해제
엄청나게 파괴적인 무기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는 비극을 목격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무기를 축소해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대규모의 군대를 제거하고 국제 통합군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모든 갈등의 요소가 사라진다면 큰 나라건 작은 나라건 모두가 정녕 평등해질 것입니다. 무기 생산을 중단하면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 뒤따라서 예상치 않은 발전이 지구에 찾아올 것입니다.

 

평화의 구역
저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한 나라 또는 여러 나라들에 군사력을 행사할 수 없는 평화의 구역을 지정하여 각 공동체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역 공동체 운동과 함께 평화의 구역은 안정의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규정을 정하여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시에는 유엔이 중재해야 합니다.

 

비폭력주의
저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이가 세계평화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비폭력적인 사람들의 힘’ 운동의 출현은 반론의 여지없이 인류가 압제통치 아래서는 견딜 수 없고 제대로 기능할 수도 없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과학과 종교
또 하나의 희망적 사실은 과학과 종교의 양립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은 매우 정교한 수준에 도달해 많은 연구자들이 우주와 생명의 궁극의 본질을 캐는 심오한 질문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종교의 기본적 관심사입니다. 따라서 더 통일된 관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예로부터 동양은 마음의 이해에, 서양은 물질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제 동서양이 만났으므로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삶의 두 관점이 더욱더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푸페이룽 지음, 한정선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고통도 기쁨도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는 기쁨보다 고통이 많다. 노자는 이것이 모두 인류의 탓이라고 말했다.


“오색령인목맹五色令人目盲, 오음령인이롱五音令人耳聾, 오미령인구상五味令人口爽, 치빙전엽령인심발광馳騁畋獵令人心發狂, 난득지화難得之貨, 영인행방令人行妨. 시이성인위복불위목是以聖人為腹不為目, 고거피취차故去彼取此”

즉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거의 멀게 만들고, 다섯 가지 음은 사람의 귀를 거의 먹게 하며, 다섯 가지 맛은 입의 감각을 잃게 한다는 뜻이다.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손에 넣기 어려운 물건을 발견했을 때는 사람의 행실이 나빠진다. 훔치고 속이고 빼앗아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성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성인은 배불리 먹되 너무 많은 것을 보지 않도록 주의한다. 인간의 인지력이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 지음으로써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인은 이 때문에 수습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하며 취사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자는 수행을 통해 갓난아이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행한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을 처음 갓난아이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노자가 갓난아이로 돌아가라고 한 말은 단순히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더라도 마음만은 어린아이처럼 쉽게 만족하고 기뻐하며 단순해지라는 뜻이다.
영국의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가 말했다.


“인생에는 오직 두 가지 비극만 있다. 한 가지는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학에 떨어졌다거나, 유학 계획이 무산됐다거나, 사랑에 실패했다거나,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면 확실히 비극이니 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이다.”


이 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얻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지, 얻는 것이 왜 비극일까? 바로 얻고 난 후에야 그것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막상 손에 넣고 보니 처음 기대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고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최후의 목표로 달려가는 생명체이며,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인생의 고통과 기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다뤄왔던 엄숙한 문제가 아닌가.
고통과 기쁨은 종교에서 빈번하게 다루는 소재다. 불교에서는 이를 ‘중생개고衆生皆苦’라고 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근본원리로 둔다. 인생에서 고통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선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마지막에 도를 찾아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생을 십자가를 지고 자신이 지은 죄를 속죄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철학에서도 인생의 경험을 빼놓고 고통과 기쁨을 논할 수 없다. 장자는 고통과 기쁨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인간의 감정은 외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잠을 잘 때는 마음이 복잡하고, 깨어나서는 늘 불안하다. 바깥세상과는 복잡하게 얽혀 있고, 매일 서로 헐뜯는다.”


이 말만 보아도 인생은 충분히 피곤하다. 그래서 장자는 수행으로 도달할 수 있는 단계로써 진인眞人을 강조했다. 동시에 진인이 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간단히 알려줬다. 잠을 잘 때는 꿈을 꾸지 않고 깨어났을 때는 걱정이 없으면 된다. 진인은 잠을 잘 때 꿈을 꾸지 않고 깨어 있을 때 아무런 근심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와 정반대다. 잠을 자면 꿈을 꾸고 깨어 있으면 근심 걱정에 시달린다. 매일매일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늘 피곤하다.
고대에는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다양하게 분석했는데 그중 『장자』의 분석이 가장 정확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희喜, 노怒, 애哀, 락樂 네 가지로 본다. 유가의 사서 중 하나인 『중용』에서 특별히 이에 대해 거론한 부분이 있다.


“희로애락지미발喜怒哀樂之未發, 위지중謂之中; 발이개중절發而皆中節, 위지화謂之和”


사람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이 생기기 전을 ‘중中’이라고 하는데 마음이 매우 평온하고 순수한 상태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생기면 절제가 중요한데, ‘절節’은 곧 적절하게 조절하여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라는 뜻이다. 희喜와 락樂만 좋아하지 말고 노怒와 애哀 또한 적절한 선에서 발산해야 함을 명심하자. 유가에서 말하는 이 네 가지 감정에 애愛, 악惡, 욕欲 세 가지를 더한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칠정육욕七情六慾이다.

 

고통이 많고 기쁨이 적은 것은 인생의 필연이다.
내심의 욕망이 외부의 간섭을 받아 고통과 기쁨이 생긴다 .
‥‥‥ 노장의 지혜 ‥‥‥

 

이와 달리 장자는 인간의 감정을 열두 가지로 보았다. 희喜, 노怒, 애哀, 락樂, 노盧, 탄歎, 변變, 열熱, 요姚, 요仸, 계啓, 태態이다. 우리는 기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슬퍼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때로는 걱정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며, 변덕을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또한 아첨하고, 거드름 피우거나 뽐내기도 하며,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고대에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상세하게 표현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장자는 예리한 관찰력을 발휘해 인간의 감정을 상세히 표현했다. 인간은 외부 환경의 간섭 때문에 감정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그래서 기쁨을 얻기도 쉽지 않다. 인간이 기쁨을 얻는 것과 인간의 마음을 따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에 관한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장자는 고통이 많고 기쁨이 적은 것은 인생의 필연이라고 했다. 실제로 고통과 기쁨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마음은 외부의 간섭에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고 깨어서는 근심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기 마음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양의 심리학과는 달리
장자는 인생의 고통과 기쁨의 근원을 무엇이라고 이해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프링 타임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학생운동
클레어 솔로몬 지음, 인윤희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의 학생운동: 스프링 타임

 

 

 

(다음은 런던대학 학생회 회장 클레어 솔로몬Clare Solomon이 2010년 늦게 벌어진 학생운동을 회상한 글입니다. 그는 시위 중에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고 진술했습니다.)

 

2010년이 저물 무렵, 느닷없이 영국의 학생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9년 초 가자지구와 연대해 폭발했던 35건의 점령 시위가 억압받는 사람들과의 연대, 그리고 일부 학생들의 직접행동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2010년 철학과 폐지를 저지하기 위한 미들섹스Middlesex대학 장기 점령, 교육예산 삭감에 맞선 서식스Sussex대학 점령 등 몇몇 대학에서 일어난 강한 항의와 점령 시위는 학생운동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주었다.

2010년 11월에 등장한 학생운동은 연장교육기관Further Education College[16

세 이상의 영국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사회교육 기관]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을 포

함해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였다. 우리가 겪은 모든 일에 관해 일일이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제부터 읽을 이야기들은 전반적인 교육 체계 안에서 정치적 부활의 모습을 담은 스냅사진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증언, 그리고 분석이 담겨 있으며, 이들 대다수는 정치적 직접행동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이다.

2010년 11월 10일, 전국학생연합NUS(National Union of Students)은 대학연합

UCU(University and College Union) 교수들의 후원 아래 ‘S타파 2010’S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수년 동안 좌파 학생 출신의 운동가들은 노동당Labor Party이 이끄는 전국학생연합이 고등교육을 지키기 위해 전국적인 시위를 열 것을 설득해왔다. 하지만 그 사이,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은 대학 등록금 법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블레어가 이끈 신노동당New Labour이 집권해 있는 동안

전국학생연합 지도부는 신노동당을 견제할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신노동당에 대항하지 않은 건 재앙이었다. 전국학생연합이 신노동당에 저항했더라면 2010년, 우리가 토리당Tories과 자유민주당Lib Dems에 대항할 때 훨씬 확고한 지위에 있었을 것이다. 4월에 열린 전국회의에서 곧 시행할 것을 염두에 둔 고등교육 지원금에 대한 브라운 리뷰의 보고서Browne Review[신노동당이 설립한 위원회로 영국의 고등교육예산 방향을 논의하며 등록금 인상 필요성을 제안]가 발표되었고, 그 논의는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 결의안이

채택되었으며 전국적인 시위의 후원과 행정을 맡아 줄 대학연합과 공공서

비스노조UNISON의 즉각적인 지지를 받았다. 관료정치의 목적은 전국학생연합의 공식적인 정치 체제(오늘날 영국 정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삼자합의를 차용하는 것)를 안전하게 지키면서 예산 삭감 및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점잖은 캠페인을 펼치는 것이다.

5월 토리당과 자유민주당 연합정부의 등장은 신노동당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들에 대한 진지한 세력 과시였다. 이번만큼은 전국학생연합의 중요한 자원들을 시위에 총동원하여 현장 운동가들에 견줄 만한 성과를 거뒀다. 암암리에 친노동당 성향을 드러내는 전국학생연합 지도부는 런던 중심가를 즐겁게 거닐며 안전한 행렬을 하다가, 해산하기 전에 편지 쓰기 캠페인 같은 수동적인 행사를 기대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현장의 운동가들은 조만간 더 큰일이 일어날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연좌시위나 예고성 파격 시위 행진이 벌어지기를 은밀히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경찰과 정부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예측했다. 런던 경찰청의 홍보 담당자는 시위 전날 기자들에게 ‘기껏

해야 만 명’정도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학생들 사이에서 자유민주당이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적절한 시기에 자유민주당 본부를 지키기 위한 전담반을 한두 조 파견했다. 하지만 시위 경로에 자리한, 토리당 본부가 있는 밀뱅크 타워는 무방비 상태였다.

11월 10일,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에서 온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오전 8시에 런던대학에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정오에는 런던의 각 대학에서 온 만여 명의 강력한 학생 군단이 정치에 무관심하기로 악명 높은 대학을 규탄하면서 런던대학을 떠나 시위에 돌입했다. 5만여 명의 학생들이 오후 2시까지 행진했으며, 트라팔가 광장에서 밀뱅크 구역까지 가득 몰려들었다. 전국학생연합의 내실을 다진 신노동당의 전통에 비추어볼 때 학생들의 무관심은 지극히 당연했다. 학생들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교육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몇 세대 만에 가장 큰 규모의 학생 시위가 여기에서 열렸다. 수천 명의 대학입시준비과정 학생들과 연장교육기관 학생들이 교육유지수당EMA:Education Maintenance Allowance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매주 30파운드까지 지원하는 제도) 폐지에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당초 계획하지 않았던 대규모 점령이 밀뱅크 타워에서 벌어졌다. 토리당 본부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많은 학생들이 로비에 걸어 들어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 뒤의 시위자들도 흡사 파도가 밀려들 듯 건물 앞마당으로 진입했다. 5천여 명의 학생들이 전국학생연합 대표자들의 제지를 무시하고 건물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행동은 대중에게 활기를 준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것이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갖은 비난을 쏟아냈지만 대중의 의견은 대부분 우리 편이었다.

약 50명의 학생들이 7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갔으며, 휠체어를 타고 있던 한 시위자도 자신의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옥상에 도착한 그들은 현수막을 걸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지상에서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합쳐져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이는 ‘급진적’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50여 명의 경찰들이 도착했지만 학생들의 분노만 가중시켰을 뿐이다. 경찰들과 건물 안에 있던 토리당 당직자들의 적대적인 행동은 시위자들을 자극했고, 우리가 학생운동의 부활을 자축하는 동안 미처 알아챌 새도 없이 유리창이 박살나고 불이 타올라 열기를 내뿜었다. 다른 건물의 로비에서는 커다란 TV 화면으로 이 상황이 뉴스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언론은 어떻게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만 잘 골라서 보여주는가. 우리는 춤추는 모습을 보았지만 언론은 타오르는 불길을 내보냈다. 우리는 분노에 찬 구호를 외치며 춤을 추었지만 언론은 시위가 난장판이 된 것처럼 보이는 장면 한두 개만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자유로워진 것을 느꼈다. 열기가 고조되었을 때 시위에 처음 참가한 한 젊은이가 옥상에서 소화기를 집어던졌고, 그는 본보기로 32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우리는 그를 구제하기 위해 연대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일로 70여 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군중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시위를 자축하기 위해 런던정치경제대학으로 향했다. 기세는 충만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그날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그 뒤 전국학생연합 회장인 아론 포터Aaron Porter가 이번 시위를 ‘T소수의 과격한 학생들’U이 벌인 ‘T비열한’행위라고 비난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런던정치경제대학과 전국의 각 대학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우리가 분노한 원인을 설명하지 않고 어리석고 단발적인 사건을 강조하면서 조직 일원을 비난하는 아론 포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호전적 성향을 가진 제러미 팩스맨Jeremy Paxman이 진행하는 BBC 시사 프로그램 <뉴스나이트Newsnight>에 자유민주당 부총재 사이먼 휴즈Simon Hughes, 그리고 아론 포터와 함께 출연했다. 토론 주제는 ‘여러분은 폭력을 비난합니까, 비난하지 않습니까’였다. 물론 우리는 평화적으로 요구사항을 달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리창 몇 장이 깨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방송에 나올 수 있었을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우리를 지지했다.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폭넓은 지지를 받았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 담겨 있다. 방송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56~76%의 학생들이 우리를 지지했다. 우리는 노동조합원들에게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용기 있는 일부 교수 단체 대표들도 우리를 옹호해주었으나 ‘T폭력’U을 두둔했다는 잘못된 비난과 함께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대학생들 또한 서로 연대할 것을 주장했다. 학생들은 시위 현장을 떠나 학교로 돌아와서 다음 단계를 논의했고 점령 시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런던대학의 소아즈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학을 전문으로 하는 런던대학의 단과대학]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 끝에 우리는 점령 시위에 찬성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학생들이 어떻게,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뒤 이번 학생운동의 중요한 토대가 된 50여 건의 대학 점령 시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엘리 배드콕Elly Badcock이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시위에 관여했거나 시위 학생들을 응원했던 모든 사람들이 지금쯤 깨닫고 있듯이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현재 좌파가 이끄는 캠페인 중 하나는 ‘등록금 인상과 지원금 삭감에 반대하는 전국적 캠페인NCAFC:National Campaign Against Fees and Cuts’이다. 우리는 이번 시위가 벌어지기 이전에 11월 24일을 ‘전국 행동의 날National Day of Action’로 이미 정했으며, 이러한 결정이 11월 10일의 시위에 가속을 붙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전국학생연합과 교육 노조들은 전국 행동의 날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으며, 특히 밀뱅크 사건 이후 그런 태도를 명백히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위가 더 진전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번 시위는 전국학생연합의 공식적인 지지 없이 우리 스스로가 조직한 첫 대규모 시위였다. 11월 10일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에 대한 공격과 체포 이후, 운동가들은 단체와 대학 간의 협조와 지원을 목표로 런던학생의회LSA(London Student Assembly)를 소집했다. 우리는 런던 대학에서 의회 주 건물에 이르기까지 ‘T저항의 축제’T를 준비했으며, 역사적으로 정치 집회와 관련이 깊은 트라팔가 광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정오부터 축제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우리는 공개 무대를 만들면서 집회 연설가들이 아니라 가수 로키 엠씨Lowkey MC를 초대했다. 학생들이 연설에 참여하고 축제에 앞장서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트라팔가 광장 만남의 장소에서 온 보고에 따르면 수천 명의 연장교육기관 학생들이 이 축제에 몰려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에서 젊은 학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무리를 지어 언덕을 넘어오는 기병대 같았다. 학생들은 도착해서 동상마다 걸려 있는 상징적인 현수막과 깃발을 보고 이내 흥분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학우들이 서로 손을 잡고, 껴안고, 흥을 돋우며 춤을 추었다.

안타깝게도 경찰이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는 길목인 알드위치 입구에서 축제를 진압했다. 시위대 뒤쪽은 스트랜드에서 발이 묶였다. 그러나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길목이 막힌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화이트홀로 향했다.

경찰의 저지선이 즉각 움직였다. 그들은 우리를 케틀링했다. 우리는 얼음장 같은 추위 속에 음식과 물도 없이, 화장실에 가는 것도 금지당한채로 9시간 동안 좁은 지역에 갇혀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며 그중에는 열 살밖에 안 된 어린 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이렇게 갇히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시간이 흘렀다. 로키와 음향기기 덕분에 음악은 끊이지 않았고 축제 분위기는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단체로 호키 코키hokey cokey[율동이 있는 영어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사방의 담과 동상 주변에서 몸을 따뜻하게 덥히기 위해 춤을 췄다. 현장의 건물 공사로 생긴 구덩이에는 플래카드와 신문, 쓰레기들을 가득 채워 임시 난로로 썼다. 시위에 처음으로 참가한 한 젊은이는 벽에 ‘S혁명’U이란 단어를 스프레이로 그려 넣었는데, 사람들에게 그 단어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경찰과의 대치가 끝나갈 무렵, 경찰관들이 말을 타고 군중 속으로 돌진했다. 경찰은 그런 적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유튜브YouTube 동영상을 통해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몇몇 사람들도 비슷한 증언으로 경찰의 무자비함을 폭로했다. 맨체스터Manchester대학 학생회 복지 담당인 한나 패터슨Hannah Paterson은 학생들이 처음에 협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말을 타고 온순한 학생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들 중에는 12~13세 정도의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전국학생연합과 대학연합은 다시 한 번 시위 학생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격분했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영국 내 다른 지역에서는 이 시위에 대한 반응으로 엄청난 규모의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이어졌고 몇 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항의들이 빗발쳤다. BBC는 전국에서 13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고양이와 쥐

11월 30일 페이스북에서 또 다른 시위 요청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런던 학생의회의 일부 학생들이 다시 케틀링당할 일을 피하기 위해 시위를 취소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위의 견인력은 너무 강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들썩거렸고, 젊은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참여했다. 전국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제적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업과 학급에 불참했다. 트라팔가 광장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런던에서 우리는 다시 경찰의 케틀링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경찰이 저지선을 만들자마자 화이트홀로 향하던 군중이 방향을 돌려 반대쪽으로 뛰었다. 또 다른 경찰 저지선이 구축되면 다시 방향을 돌렸다. 눈 오는 추운 날씨 속에서 온종일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무리를 작게 쪼갠 뒤 런던 전 시가를 행진했다. 남쪽으로는 빅토리아 역과 하이드 파크 코너까지, 북쪽으로는 옥스퍼드 가를 따라서 행진했다. 다른 그룹은 세인트폴 대성당과 바비칸까지, 또 다른 그룹은 워털루와 피커딜리 광장까지 행진했다. 몇몇 사람들이 트라팔가 광장에서 모이자고 트위터를 했고, 우리 모두 이에 응했다.

소수 사람들은 케틀링당했고, 수십 명이 폭행당하는 일도 있었다. 경찰은 시위대의 ‘평화로운 해산을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150명이 넘는 시위자들을 체포하고 구금했다.

 

 

의회에서의 표결: 형광봉과 온실

12월 3일, 등록금 법안 표결이 12월 9일에 있을 예정이란 소식이 알려졌다. 그날까지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몇 주 동안 숨어 지낸 듯 보이던

전국학생연합과 전국대학연합은 하원을 상대로 점잖은 시위를 하는 한편 오후 3시에 임뱅크먼트Embankment에서 ‘형광봉 농성’을 벌일 것이라고 정중하게 발표했다. 우리는 이번에 어떻게 해서든 대규모 시위 인원을 공식 지도부보다 앞서 의회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런던학생의회는 인원수로 경찰의 봉쇄를 저지하는 행진에 동의했고, 런던대학 학생회와 대학연합 런던 지부가 실행 계획을 지원해주었다.

경찰과 벌인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결과, 의회 광장으로 진입했던 우리는 다시금 ‘공식’시위에 돌입했다. 분위기가 삼엄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따라 길게 저지선을 구축하고 진압 요원들을 대기시켜 놓았다. 짤막한 연설 후 우리는 출발했다. 3만여 학생들이 런던 중심부에 밀려들었고, 경찰관들도 계속 늘어났다. 시끌벅적하고 억제되지 않은 군중이 경찰의 예상보다 앞서 의회 광장에 도착했다. 경찰의 바람과는 달리 사람들은 광장에 머물렀다. 의회가 목표였다. 형광봉 농성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교육의 죽음이 아니라 학생운동의 탄생을 축하했다. 울타리가 허물어졌고 광장 전체가 점거되었다. 다시 음악과 춤, 구호가 이어졌다. BBC <뉴스나이트>의 폴 메이슨Paul Mason은 훗날, 이 날의 시위를 ‘덥스텝 반란Dupstep Rebell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상이 당시의 상황에 대한 나의 회고이다. 새로운 학생 반란에 관해서는 수천 가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튀니지와 이집트, 요르단에서 일어난 폭동에 대해 전해 듣고 이번 학생운동에 대해 보다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못살게 구는 정부에 맞서는 모든 사람과 연대할 것이며,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프링 타임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학생운동
클레어 솔로몬 지음, 인윤희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프링 타임'(도서출판 지와 사랑)

 

 

 

 

 

정부에 저항하는 새로운 학생운동

 

정부에 대항하는 학생운동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다. 가장 과격하게 나타나 정권을 무너뜨린 사례가 학생운동의 정당성과 사회변혁의 기여로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것은 소위 68혁명으로 알려진 19685월 프랑스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연합하여 벌인 대규모 시위로 정부의 탄압에 학생들이 반발한 것을 기폭제로 청년근로자들의 합세하여 4백만 명이 파업과 공장점거, 시위에 참여했다. 그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 소외, 유럽공동체 체제하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들의 요구는 정당했을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드골의 내각을 무너뜨릴 정도로 막강했다.

정부가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수립하자 학생운동은 더욱더 과격해졌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구태정치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뒤떨어진 예전 그대로의 정책결정을 오늘날의 학생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여론을 무시하고 소수 이익집단을 위한 정책에 학생들은 공공건물을 점거하고 농성함으로써 가장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다. 여기에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다수를 위한 정치밖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학등록금이 짧은 기간에 높은 폭으로 인상하자 북미, 유럽, 아프리카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 책의 제목 스프링타임은 이런 기류를 꽁꽁 언 사회를 녹이는 봄의 기운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치가 사회를 꽁꽁 얼게 만들었고, 학생들이 나서서 봄의 기운으로 녹이는 과열된 시위가 한창이다. 학생시위는 공공건물을 점령하여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점령 자체를 막으면서 때로는 물리적 탄압으로 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린다.

영국의 경우 학생들은 시위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교육예산 삭감에 대한 저항은 계급과 인종차별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으로 그 성격이 넓어진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향수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한 반대와 같은 구체적인 남의 나라 정치에도 관여한다. 학생들은 정치가들이 교활해지고 있으므로 점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전략으로 시위에 나선다. 이탈리아에서는 반자본주의 투쟁이 한창이다.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에 직면한 그리스에서는 시위도 과격할 수밖에 없다. 튀니지에서의 젊은이들의 봉기는 정치적 반란으로 규정된다. 이런 전 세계적인 학생운동은 오래 잠들었던 이집트인을 깨우게 했으며, 정부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은 구태정치를 종식시키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 되었다. 등록금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그들의 부모인 교수, 학자, 언론인, 근로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학생들은 관심의 폭을 넓혀 정부의 다양한 정책의 과다한 지불에 반대하며, 실업수당, 복지, 경제민주화 등 사회의 여러 문제에도 관여한다. 이는 학생운동이 단순히 등록금인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익집단의 정치적 영향과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위기가 학생운동을 자초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재벌들이 돈을 더 잘 벌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주고 그들에게서는 세금을 충분히 걷지 못하자 교육 및 복지 예산을 축소하기 때문에 서민과 학생들이 저항하는 것이다.

68혁명의 뿌리에서 자란 학생운동이 근래에 시민들의 동조로 그 규모가 커지는 데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촛불시위에서 보듯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의 동원을 격려하고 선동하는 데 사용되었다. 대중언론은 편견을 가지고 보도하지만, 소셜미디어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시위, 점령, 연좌시위, 토론회, 플래시 몹 등의 단어들이 현저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경찰관들의 무자비한 진압에서도 의회의 표결처리 강행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고 그럴 의지조차 없는 부모세대에게도 분노를 표시한다. 그들은 정부에 저항할 뿐 아니라 무저항과 패배주의 정신에도 저항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소통이다.

 

 

서문 중에서

 

통치자들은 무지와 지식을 동시에 전수하는 전문화 형식을 제도화하고 재정적인 빗장을 걸어 고등교육에 제한을 둠으로써 고등교육의(또 그 밖의 많은 것들의) 틀을 과감하게 새로 짜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또 학생들이 전문화된 연구에 빠져 허우적대기를, 그러면서 지성知性의 발전이 저해되는 현실을 모른 체하길 바란다. 교육은 그 특성이 무엇이든 사회의 총체적인 구조 및 필요와 별개였던 적이 결코 없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한계를 뛰어넘고는 했다. 서양의 대학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지난 60년간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무상교육의 권리 등 개혁을 선도했고, 학교를 대규모로 확장할 길을 닦으면서 극적으로 변화했다.
20세기 전에 영국(과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은 자산과 특권 보호를 유지해 왔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교육해 왔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교육은 부유한 사람들의 몫이었고 불의와 불평등을 영적으로 풍부하게 해 주는 교회의 명령이었다. 차티스트들과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투표할 권리 등 민주적인 권리를 두고 100년 넘게 투쟁했다. 무상교육은 더 늦게 이뤄졌다. 그리고 지금 무상교육을 다시 되돌려 놓으려 한다. 그로 인한 긴장이 아래로부터의 반대와 불길한 예감을 품은 저항을 만들어냈다. 만약 훌륭한 교육이 다시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다면, 이는 장차 민주적인 절차 자체도 공동화空洞化시키겠다는 속셈이 아니겠는가? 이미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온건한 공화주의가 미국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영국과 유럽도 마찬가지인가?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려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은 그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영국의 통치자들은 ‘긴축 조치’에 대한 반응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미국 서부 해안부터 서유럽 곳곳까지, 버소 사가 자랑스럽게 출판하는 이 책은 광범위한 투쟁의 물결 속에 뛰어든 학생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시간 순서대로 구성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경험의 재구성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쌓인 경험들의 영향이 자본주의 사회의 우선순위에 도전할 대안들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시민들에게 약속했고 얼마간 많은 만족을 주었으면서 이제는 거둬들이겠다고 위협하는 사회,
시민들이 한때 당연하게 누렸던 권리를 요구하면 짓누르려고만 하는 이 사회는 어떤 곳인가?
학생들과 혜택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자본주의의 공격에 대항했으나, 그 최종 결과에 대해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사실은 세상의 우선순위가 미래를 내다보게 해줄 전조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대는 더 이상 완전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일자리가 없어 사회에 합류하기가 어렵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학생 세대가 그랬듯 말이다. 시대는 오늘날이 훨씬 가혹해졌다. 그럴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
라, 자본이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인들과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20세기 말에 고안한 시스템에 여전히 푹 빠져 있다. 공산주의 붕괴, 그 후 사회 민주주의 붕괴는 정글의 법칙이 전면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회귀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론과 실제가 정당화해 준 ‘탐욕’이 모든 것을 제압했다. 월 스트리트와 시티 오브 런던에서 제도화되면 모두들 신이 나서 따라 하기 바빴다. 은행가, 기업, 정치인들이란 서로 상대의 명령을 실행하는 데 만족했고 자신들이 창조해낸 인류의 비참함에는 눈감았으며, 기업과 개인의 필요에만 민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옹지마塞翁之馬: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 쌍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가난과 부유함이 상대적인 개념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절대적인 괴로움이나 절대적인 가난이란 없다는 뜻이지요.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괴로움이 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괴로움이 아닐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가난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문제란 말입니다.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혜복지소기禍兮福之所倚, 복혜화지소복福兮禍之所伏

재난은 행복 옆에 기대어 있고, 행복 아래에는 재난이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풀리고 늘 행복했던 사람에게 시련이 닥쳐올 경우 그 사람은 시련에 대한 저항력이 없으므로 그냥 주저앉아버리기 보통입니다.

그 사람은 심한 경우 장차 살아갈 의지마저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온갖 시련을 겪어온 사람은 매우 작은 기쁨에도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듯 괴로움과 즐거움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가 이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한 노인이 말 한 마리를 키우며 고원지대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말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웃 노인이 방문하여 위로했습니다.

“정말 안타깝네요. 말이 없어졌다죠.”

노인이 말했습니다.

“우리 집 말이 안 들어온 것이 왜 꼭 나쁜 일이라는 거요?”

이웃 노인은 그 노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웃 노인은 자신에게 괴로운 일이라면 의당 다른 사람에게도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위로한 것입니다.

며칠이 지나 사라졌던 말이 야생말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노인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웃 노인이 와서 말했습니다.

“기쁘시겠어요. 댁의 말은 정말 대단합니다. 야생말들을 데리고 오다니 이제 부자시네요.”

그러나 노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입증하듯 며칠 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노인의 외아들이 야생말을 타다 떨어져 한쪽 다리가 부러진 것입니다.

이웃 노인이 달려와 위로했습니다.

“아드님이 말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니 정말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들 녀석의 다리 한쪽이 부러진 일이 꼭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 없겠죠.”

정말 남다른 생각을 지닌 노인이었습니다.

얼마 후 나라에 전쟁이 벌어졌고, 건장한 청년들이 모두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총칼에는 눈이 없다는 말처럼 전쟁터에 나가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보통이었습니다.

이웃 노인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드님은 한쪽 다리를 절어 전쟁터에 안 나가도 되니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됐군요.”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는 노장 사상을 보여주는 고사입니다.

남다른 생각을 지닌 노인이 바로 노자나 장자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 가난과 부유함을 단견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인생 전체를 놓고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노자나 장자입니다.

노장 사상은 모든 문제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봅니다.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집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괴로움과 즐거움, 좋음과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등 상대적인 것들을 한 쌍으로 보는 것이 노장의 지혜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괴로움 뒤에 즐거움이 있고, 좋음 뒤에 나쁨이 있으며, 아름다움 뒤에 추함이 있는 것이지요.

뒤집어 말하면 즐거움 뒤에 괴로움이 있고, 나쁨 뒤에 좋음이 있으며, 추함 뒤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헌데 장자가 아내가 죽자 장례식을 치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건 넘 심하지 않았을까요?

후세에 과장되게 전해지는 말이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