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타임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학생운동
클레어 솔로몬 지음, 인윤희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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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타임'(도서출판 지와 사랑)

 

 

 

 

 

정부에 저항하는 새로운 학생운동

 

정부에 대항하는 학생운동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다. 가장 과격하게 나타나 정권을 무너뜨린 사례가 학생운동의 정당성과 사회변혁의 기여로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것은 소위 68혁명으로 알려진 19685월 프랑스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연합하여 벌인 대규모 시위로 정부의 탄압에 학생들이 반발한 것을 기폭제로 청년근로자들의 합세하여 4백만 명이 파업과 공장점거, 시위에 참여했다. 그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 소외, 유럽공동체 체제하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들의 요구는 정당했을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드골의 내각을 무너뜨릴 정도로 막강했다.

정부가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수립하자 학생운동은 더욱더 과격해졌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구태정치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뒤떨어진 예전 그대로의 정책결정을 오늘날의 학생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여론을 무시하고 소수 이익집단을 위한 정책에 학생들은 공공건물을 점거하고 농성함으로써 가장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다. 여기에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다수를 위한 정치밖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학등록금이 짧은 기간에 높은 폭으로 인상하자 북미, 유럽, 아프리카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 책의 제목 스프링타임은 이런 기류를 꽁꽁 언 사회를 녹이는 봄의 기운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치가 사회를 꽁꽁 얼게 만들었고, 학생들이 나서서 봄의 기운으로 녹이는 과열된 시위가 한창이다. 학생시위는 공공건물을 점령하여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점령 자체를 막으면서 때로는 물리적 탄압으로 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린다.

영국의 경우 학생들은 시위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교육예산 삭감에 대한 저항은 계급과 인종차별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으로 그 성격이 넓어진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향수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한 반대와 같은 구체적인 남의 나라 정치에도 관여한다. 학생들은 정치가들이 교활해지고 있으므로 점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전략으로 시위에 나선다. 이탈리아에서는 반자본주의 투쟁이 한창이다.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에 직면한 그리스에서는 시위도 과격할 수밖에 없다. 튀니지에서의 젊은이들의 봉기는 정치적 반란으로 규정된다. 이런 전 세계적인 학생운동은 오래 잠들었던 이집트인을 깨우게 했으며, 정부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은 구태정치를 종식시키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 되었다. 등록금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그들의 부모인 교수, 학자, 언론인, 근로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학생들은 관심의 폭을 넓혀 정부의 다양한 정책의 과다한 지불에 반대하며, 실업수당, 복지, 경제민주화 등 사회의 여러 문제에도 관여한다. 이는 학생운동이 단순히 등록금인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익집단의 정치적 영향과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위기가 학생운동을 자초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재벌들이 돈을 더 잘 벌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주고 그들에게서는 세금을 충분히 걷지 못하자 교육 및 복지 예산을 축소하기 때문에 서민과 학생들이 저항하는 것이다.

68혁명의 뿌리에서 자란 학생운동이 근래에 시민들의 동조로 그 규모가 커지는 데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촛불시위에서 보듯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의 동원을 격려하고 선동하는 데 사용되었다. 대중언론은 편견을 가지고 보도하지만, 소셜미디어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시위, 점령, 연좌시위, 토론회, 플래시 몹 등의 단어들이 현저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경찰관들의 무자비한 진압에서도 의회의 표결처리 강행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고 그럴 의지조차 없는 부모세대에게도 분노를 표시한다. 그들은 정부에 저항할 뿐 아니라 무저항과 패배주의 정신에도 저항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소통이다.

 

 

서문 중에서

 

통치자들은 무지와 지식을 동시에 전수하는 전문화 형식을 제도화하고 재정적인 빗장을 걸어 고등교육에 제한을 둠으로써 고등교육의(또 그 밖의 많은 것들의) 틀을 과감하게 새로 짜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또 학생들이 전문화된 연구에 빠져 허우적대기를, 그러면서 지성知性의 발전이 저해되는 현실을 모른 체하길 바란다. 교육은 그 특성이 무엇이든 사회의 총체적인 구조 및 필요와 별개였던 적이 결코 없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한계를 뛰어넘고는 했다. 서양의 대학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지난 60년간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무상교육의 권리 등 개혁을 선도했고, 학교를 대규모로 확장할 길을 닦으면서 극적으로 변화했다.
20세기 전에 영국(과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은 자산과 특권 보호를 유지해 왔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교육해 왔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교육은 부유한 사람들의 몫이었고 불의와 불평등을 영적으로 풍부하게 해 주는 교회의 명령이었다. 차티스트들과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투표할 권리 등 민주적인 권리를 두고 100년 넘게 투쟁했다. 무상교육은 더 늦게 이뤄졌다. 그리고 지금 무상교육을 다시 되돌려 놓으려 한다. 그로 인한 긴장이 아래로부터의 반대와 불길한 예감을 품은 저항을 만들어냈다. 만약 훌륭한 교육이 다시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다면, 이는 장차 민주적인 절차 자체도 공동화空洞化시키겠다는 속셈이 아니겠는가? 이미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온건한 공화주의가 미국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영국과 유럽도 마찬가지인가?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려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은 그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영국의 통치자들은 ‘긴축 조치’에 대한 반응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미국 서부 해안부터 서유럽 곳곳까지, 버소 사가 자랑스럽게 출판하는 이 책은 광범위한 투쟁의 물결 속에 뛰어든 학생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시간 순서대로 구성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경험의 재구성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쌓인 경험들의 영향이 자본주의 사회의 우선순위에 도전할 대안들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시민들에게 약속했고 얼마간 많은 만족을 주었으면서 이제는 거둬들이겠다고 위협하는 사회,
시민들이 한때 당연하게 누렸던 권리를 요구하면 짓누르려고만 하는 이 사회는 어떤 곳인가?
학생들과 혜택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자본주의의 공격에 대항했으나, 그 최종 결과에 대해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사실은 세상의 우선순위가 미래를 내다보게 해줄 전조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대는 더 이상 완전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일자리가 없어 사회에 합류하기가 어렵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학생 세대가 그랬듯 말이다. 시대는 오늘날이 훨씬 가혹해졌다. 그럴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
라, 자본이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인들과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20세기 말에 고안한 시스템에 여전히 푹 빠져 있다. 공산주의 붕괴, 그 후 사회 민주주의 붕괴는 정글의 법칙이 전면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회귀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론과 실제가 정당화해 준 ‘탐욕’이 모든 것을 제압했다. 월 스트리트와 시티 오브 런던에서 제도화되면 모두들 신이 나서 따라 하기 바빴다. 은행가, 기업, 정치인들이란 서로 상대의 명령을 실행하는 데 만족했고 자신들이 창조해낸 인류의 비참함에는 눈감았으며, 기업과 개인의 필요에만 민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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