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塞翁之馬: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 쌍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가난과 부유함이 상대적인 개념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절대적인 괴로움이나 절대적인 가난이란 없다는 뜻이지요.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괴로움이 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괴로움이 아닐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가난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문제란 말입니다.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혜복지소기禍兮福之所倚, 복혜화지소복福兮禍之所伏
재난은 행복 옆에 기대어 있고, 행복 아래에는 재난이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풀리고 늘 행복했던 사람에게 시련이 닥쳐올 경우 그 사람은 시련에 대한 저항력이 없으므로 그냥 주저앉아버리기 보통입니다.
그 사람은 심한 경우 장차 살아갈 의지마저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온갖 시련을 겪어온 사람은 매우 작은 기쁨에도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듯 괴로움과 즐거움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가 이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한 노인이 말 한 마리를 키우며 고원지대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말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웃 노인이 방문하여 위로했습니다.
“정말 안타깝네요. 말이 없어졌다죠.”
노인이 말했습니다.
“우리 집 말이 안 들어온 것이 왜 꼭 나쁜 일이라는 거요?”
이웃 노인은 그 노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웃 노인은 자신에게 괴로운 일이라면 의당 다른 사람에게도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위로한 것입니다.
며칠이 지나 사라졌던 말이 야생말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노인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웃 노인이 와서 말했습니다.
“기쁘시겠어요. 댁의 말은 정말 대단합니다. 야생말들을 데리고 오다니 이제 부자시네요.”
그러나 노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입증하듯 며칠 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노인의 외아들이 야생말을 타다 떨어져 한쪽 다리가 부러진 것입니다.
이웃 노인이 달려와 위로했습니다.
“아드님이 말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니 정말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들 녀석의 다리 한쪽이 부러진 일이 꼭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 없겠죠.”
정말 남다른 생각을 지닌 노인이었습니다.
얼마 후 나라에 전쟁이 벌어졌고, 건장한 청년들이 모두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총칼에는 눈이 없다는 말처럼 전쟁터에 나가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보통이었습니다.
이웃 노인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드님은 한쪽 다리를 절어 전쟁터에 안 나가도 되니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됐군요.”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는 노장 사상을 보여주는 고사입니다.
남다른 생각을 지닌 노인이 바로 노자나 장자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 가난과 부유함을 단견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인생 전체를 놓고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노자나 장자입니다.
노장 사상은 모든 문제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봅니다.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집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괴로움과 즐거움, 좋음과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등 상대적인 것들을 한 쌍으로 보는 것이 노장의 지혜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괴로움 뒤에 즐거움이 있고, 좋음 뒤에 나쁨이 있으며, 아름다움 뒤에 추함이 있는 것이지요.
뒤집어 말하면 즐거움 뒤에 괴로움이 있고, 나쁨 뒤에 좋음이 있으며, 추함 뒤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헌데 장자가 아내가 죽자 장례식을 치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건 넘 심하지 않았을까요?
후세에 과장되게 전해지는 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