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부산 갈매기

 

 

추석秋夕을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데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 석 달로 나눠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인 명칭이라 합니다. 오늘이 가을 한가운데 있는 날이란 뜻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추석을 가위, 한가위 외에도 가배嘉俳라 하는데, 가배의 연유를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살펴보면 왕이 신라를 6부로 나눈 후 공주 두 사람이 각 부의 여자들을 통솔하여 무리를 만들고 7월 16일부터 매일 일찍 모여서 길쌈, 적마積麻를 늦도록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살펴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놓아 승자를 축하하고 가무를 하며 각종 놀이를 한 것을 일러 가배라 했다고 합니다. 가배의 어원이 ‘가운데’라는 뜻이라니 추석을 일컬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석은 신라 때부터 국가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추석에 농사일로 바쁜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겼는데,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이를 중로상봉中路相逢, 즉 반보기라고 합니다.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 했는데, 추석을 전후하여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로 하루 동안 친정나들이를 하는 것이 여성에게는 큰 기쁨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고향이 아무리 멀어도 7, 8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만 20시간이 넘기 보통이고 차를 갈아타고 가고 또 가야하는 사람은 사흘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반보기’를 한다 해도 이틀은 걸리겠지요.

‘온보기’를 위해서 새가 되어 날아가면 어떨가 생각합니다. 갑자기 부산 갈매기가 생각납니다. 해서 여기 부산 갈매기 사진 몇 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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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와 통영을 다녀왔습니다

 

 

망중한이라고 출판일이라는 게 열심히 하자면 밤새해도 시간이 모자라서 아예 일을 접고 훌쩍 떠나면 여행이 됩니다.

이번에는 콘도를 두 곳 예약하여 미리 시간표를 작성했습니다.

통영에서 철인3정경기가 금요일과 토요일에 예정되어 있어 근처 콘도를 정할 수 없어 통영에는 일요일 오후에 가기로 하고 해운대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습니다.

해운대와 통영 두 곳 모두 다녀온 적이 있어 낯선 곳에 대한 여행이라는 설렘은 없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한 마디로 바다보기였습니다.

금요일 아침 KTX로 부산에 직행 너무도 간편해진 여행입니다.

역에서 내려 곧장 자갈치시장으로 가서 전어와 농어를 회로 즐겼습니다.

추석을 앞둔 때라서 시장에는 크고 싱싱한 물고기와 과일 외에도 각종 제사 준비음식들로 풍성했습니다.

시장이 늘 이랬으면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상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띠는 풍경입니다.

불경기라 하지만 추석만큼은 온 가족이 모이는 흥겨운 명절입니다.

해운대의 센텀과 I. Park 지역에서 지냈는데, 외국의 고급 휴양지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한화콘도에서 묵었는데, 해운대를 중심으로 지난 4, 5년 사이 부산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유리로 지어진 고층 I. Park이 특히 환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부산 시민들에게는 부자들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을 배를 타고 바다에서 바라볼 때 더욱 환상적인 느낌이 듭니다.

외곽으로 나아가거나 구시가, 즉 부산역 근처의 동네들과 비교하면 이 지역에 대한 환상은 극명한 빈부의 차이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언덕에는 여전히 많은 빈가들이 늘어섰는데, 한쪽에는 하늘을 지르는 고층 아파트들.

저곳의 삶은 뭐고 이곳의 삶은 뭘까?

저곳의 만원은 한 가족의 저녁식사 준비인데 이곳의 만원은 두 사람의 커피값입니다.

자갈치 시장에서 만원을 주면 조기가 쇼핑백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두 사람의 커피값에 불과합니다.

 

 

 

 

 

 

 

 

 

 

 

 

콘도에 도착하고 얼마 후 지인의 안내로 기장을 지나 동해 쪽으로 갔습니다.

부산에서 조금만 가면 동해입니다.

부산에서도 일출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외부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아 부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에서 숯불에 구운 아나고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기름을 빼고 구운 후 고추장으로 양념하여 다시 굽는 아나고는 감칠나고 맛이 부드럽습니다.

배를 불리면서 먹는 즐거움이 여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유람선을 타고 오륙도를 돌며 처음으로 여섯 개의 섬을 확실하게 보고 알았습니다.

부산에 가면 주로 이기대 방향에서 오륙도를 가까이 보아왔는데, 그곳에서는 일렬로 섬이 두 개만 보입니다.

바로 눈앞의 섬도 실상은 두 개이고, 그 뒤로 보이는 섬은 실상 네 개입니다.

옆에서 봐야 여섯 개를 모두 볼 수 있는데 배를 타고 바다에서 봐야합니다.

하얀 등대가 있는 섬이 제1도이고 그것으로부터 육지를 향해 일렬로 늘어선 것들이 제2도, 제3도 등입니다.

제6도는 말이 섬이지 암초와도 같습니다.

 

 

 

 

 

 

 

 

 

 

 

 

 

 

 

 

 

 

일요일 아침, 버스로 통영으로 이동했습니다.

금호콘도에 여장을 풀고 근처 유람선 터미널로 가서 장사도를 향했습니다.

마침 오후 4시 마지막 유람선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장사도는 무인도로 야생화를 심어 가꾼 섬입니다.

섬을 둘러보면서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로 45분 거리에 있는 장사도를 자연 그대로 보존했더라도 좋았을 것을 콘크리트 건물들을 여기저기 세워 꿀빵, 빙수, 멍게비빔밥 등을 팔거나 얼음과자 등을 파는 걸 보고 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더구나 그곳에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고 공예관을 만든 것을 보고는 공무원의 문화에 대한 무지와 자연 훼손에 화가 났습니다.

무인도는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보존만 하면 훌륭한 것을 손을 대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건 자연을 망치는 일입니다.

장사도에 간 것을 후회하고 돌아왔을 때는 날이 저물어 더는 갈 곳이 없어 회를 뜨고 찌개거리를 사서 숙소로 왔습니다.

회를 너무 많이 사서 이튿날까지 먹었습니다.

 

 

오른쪽 건물이 내가 묵은 통영의 금호 콘도입니다.

 

 

다음날엔 여객선을 타고 한산도로 갔습니다.

그곳은 개발이 되지 않아 시골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산도에는 택시가 없고 작은 버스가 해변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이 포구에서 저 포구로 주민들을 실어 나릅니다.

운전기사는 아낙들의 물이 흐르는 짐을 내려주며 통영에서 사온 물건을 보고는 “더 이상 이런 거 사오지 마소” 하고 일부러 한 마디 합니다.

중간에 내리니 식당이라고 있지만, 대부분의 물자를 통영에서 가져오는 섬이라 점심식사를 거른 채 다음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버스는 1시간마다 있는 곳이라서 엿가락처럼 늘어진 시간을 정류장에서 앉아 기다리는 모처럼의 시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원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산도를 찾는 건 제승당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왜구침략을 물리친 승리를 기념하는 제승당에는 이순신의 사당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수루 위에 앉아 시를 지었다는 곳에 앉아서 내려다보니 한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앞바다의 물살은 눈에 보아도 빨라 왜구들이 이 지역의 특성을 모르고 혼쭐이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특히 왜구들을 섬 안으로 끌어들인 후 퇴로를 막으면 그야말로 갇힌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지략으로 비교도 되지 못할 열세의 군사력을 가지고 그 많은 왜놈들을 물귀신으로 만든 건 역사에 두고두고 기릴 만한 사건입니다.

세계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름난 제독들이 있고 그들 중에는 일본 제독도 있지만, 훌륭한 전함을 가지고 상대방 전함을 물리친 승전은 그리 칭찬할 만하지 못합니다.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군사력으로 상대방을 무찌르고 실의에 빠진 민족에게 승전보를 안겨준 승리야말로 크게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수루에서 깊은 밤에 조국을 위해 걱정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성호가 자신의 애간장을 끓게 한다는 이순신의 시조는 그분의 성품을 잘 말해줍니다.

그곳에서 해물전에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해물 우동도 한 그릇.

 

 

 

 

 

 

 

 

 

 

 

왼쪽 높은 탑이 이순신 장군 기념탑입니다. 높이 18미터로 박정희 대통령이 세운 것입니다.

 

 

 

 

 

 

 

 

 

 

 

수루입니다.

 

 

 

수루에 달린 이순신 장군의 시조입니다.

 

 

 

수루에서 내려다본 장면입니다.

 

 

 

수루 위에서 바라다본 한산도 앞바다입니다.

 

 

 

 

 

 

 

 

 

 

 

통영은 작은 포구입니다.

그러나 뒤로 가면 바다를 매립하여 신시가가 건립되고 있습니다.

높은 아파트들도 여러 채 있고, 언덕으로 이뤄진 구시가에 비하면 평지라서 여느 작은 도시와도 같습니다.

몇 달 전 통영에 왔을 때는 구시가에만 있다 갔지만 이번엔 두루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

9월 25일, 아침 숙소에서 사우나를 하고 서호시장으로 가서 통영의 별미 시락국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습니다.

바다장어 대가리를 넣고 끓인 물에 시레기를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국입니다.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국밥입니다.

버스로 4시간 10분 걸려 오후 2시 10분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태양이 유난히 따갑습니다.

바다로 가면 날아갈 것 같은데 서울로 돌아오면 왜 다리가 무거워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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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타임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학생운동
클레어 솔로몬 지음, 인윤희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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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부 이상미 기자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1968년 5월, 프랑스 학생과 노동자들은 대학교육 및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줄 것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탄압하자 학생들의 반발을 기폭제로 노동자들도 합세해 400만 명이 파업과 공장점거, 시위에 참여했다. 68혁명으로도 불리는 프랑스의 5월 혁명은 사회변혁운동과 학생운동이 만날 때 생기는 파급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학생운동을 2012년 현재진행형으로 담아냈다. 영국의 학생들은 시위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교육예산 삭감에 대한 저항은 계급과 인종차별,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젤미니 개혁안에 반대하는 반자본주의 투쟁이 한창이다.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에 직면한 그리스에서도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 유럽중앙은행 트로이카의 강력한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과격해지고 있다.
 
튀니지의 학생운동은 반정부 혁명으로 이어져 24년간 집권해온 대통령이 물러나는 사태로 번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주변국 국민들에게도 영감과 용기를 주어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제목 '스프링 타임'은 이런 기류를 꽁꽁 언 사회를 녹이는 봄의 기운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젊은 층에 익숙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나는 새로운 학생운동의 양상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등록금에만 한정하지 않고 교육이나 실업, 복지, 경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 청년들이 처한 어려움, 학생들의 자각과 현 사회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제기해 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위 현장은 물론 경찰의 진압 전술, 무자비한 공격에 이르기까지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다양한 사건들을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아냈다.
 
-스프링타임/클레어 솔로몬 엮음/지와 사랑/1만9000원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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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먼저, 연민을!

 

불교 심리학에 따르면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대부분이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욕망과 집착에서 기인합니다. 우리가 욕망하고 집착하는 것들을 추구하다 보면 공격하고 경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신 과정은 쉽게 행동으로 옮겨져 분명한 결과물로서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낳습니다. 이러한 ‘독소류poisons’, 즉 착각, 탐욕, 공격성을 어떻게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문제의 뒤편에 이러한 독소류가 있으니까요.

 

연민을 가져야 하는 이유
우리는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얻기 바랍니다. 또 이러한 생각은 행복에 대한 보편적인 열망을 결정하는 ‘나’의 느낌에 근거합니다. 실제로 모든 존재는 유사한 욕망을 갖고 태어나며, 그 욕망을 충족시킬 평등한 권리를 지닙니다. 더구나 티베트의 불교 전통은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여기고, 그들을 모두 사랑함으로써 감사를 표하라고 가르칩니다. 불교 교리에 따르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생을 윤회하며, 각각의 존재는 어느 생애에선가 우리의 부모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주 속 인간은 가족 관계를 공유합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사랑과 연민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의 보살핌과 친절에 의존합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질병과 노쇠로 고통받을 때 우리는 또다시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의존합니다. 인생의 시작과 끝에서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의존한다면,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요와 마음챙김
영적인 발전의 또 다른 결과는 고요와 마음챙김입니다. 우리 삶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립니다. 마음

 

1. 행복의 연금술
이 고요하고 청명하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증오, 이기심, 질투, 분노로 마음의 통제력을 상실하면 판단력을 잃게 됩니다. 마음의 눈이 머는 순간에는 전쟁을 비롯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민과 지혜의 실천은 모든 이에게 유용합니다. 특히 국무를 수행하며 세계평화의 뼈대를 만드는 권력과 기회를 손 안에 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친밀감을 키우세요
모든 사람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흔히 전통적인 종교 수행에서 연상되는 독실함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친밀감은 우리가 개발하고 적용해야 할 강력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감정을 종종 무시합니다. 특히 거짓된 안정감을 경험하는 인생의 전성기에 그렇습니다. 장기적인 관점, 즉 모든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무수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우리가 상대적으로 하찮은 존재임을 명심한
다면, 우리의 소유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음을 수양한다면 진정한 연민, 즉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존경심이 가능해집니다. 의식적으로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개인적인 행복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전체의 과정 속에서 훨씬 우수한 부산물로서 저절로 생겨납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세계 종교
지금까지 논의한 원리는 세계의 모든 종교의 윤리관과 일치합니다. 교리의 차이는 문화적인 영향과 더불어 시대와 상황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접근법의 작은 차이를 따지기보다는 모든 종교가 공유하는 좋은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행하는 편이 훨씬 유익합니다. 저는 종교 간 이해를 위해 세계의 다양한 지역들에서 이뤄지는 노력을 환영합니다.

 

우리의 과제
첫째, 우리는 종교 간의 이해를 더욱더 발전시켜야 합니다. 둘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전반적인 인간의 행복을 향상시키는 기본적인 정신적 가치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저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일 년에 한 번 아름다운 장소에서 사사로이 만나 인간적으로 친해질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면 후에 상호 문제와 지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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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고통과 기쁨은 일념지간一念之間의 차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로 대표되는 서양의 현대 심리학은 인간에게 잠재의식이 있다고 본다. 잠재의식은 바다 밑에 숨어 있는 빙산처럼 당신이 깨어 있을 때는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잠이 들어 경비가 소홀해지고 의식이 모호해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서양 사람들은 꿈을 연구하여 인간 심리를 이해하려고 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심리치료도 발전했다. 그러나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가 자기에게 한 건의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그 방법이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참고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정신과 의사가 내린 처방을 서로 교환한다.
당신이 정신과 의사와 약속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의사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당신이 처음 병원에 간 날, 의사는 당신에게 몇 시에 도착했느냐고 묻는다. 당신은 10시 정각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의사는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시간을 딱 맞췄다며 당신을 강박성 인격장애로 분류한다. 두 번째로 병원에 간 날, 의사는 또 묻는다. 이번에는 약속 시각보다 30분 이른 9시 반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의사는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다며 당신을 불안성 인격장애라고 분류한다. 세 번째 갔을 때는 몇 시에 도착했을까? 당신은 10시반이 돼서야 겨우 도착한다. 30분이나 지각을 한 것이다. 30분이나 늦게 갔다는 것은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가는 것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이는 저항성 인격장애에 해당한다. 즉 당신이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 시간을 정했다면 정각에 가든, 일찍 가든, 아니면 늦게 가든 결국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 쌍이다
그들의 눈에 정상인은 없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사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구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스스로 구제하는 것이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자신을 도우려면 먼저 인간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 심리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장자의 견해를 보도록 하자. 사실 인간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려운데 장자는 인간의 마음을 아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당신이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는 마음이 한없이 불타오르지만 막상 그것을 버릴 때는 차갑기가 얼음과 같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을 때는 깊은 연못처럼 물결이 일지 않고 평온하지만 한 번 물결이 일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순식간에 전체로 퍼진다.”
장자는 이렇듯 생동감 넘치는 말로 찰나에 변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는 법이니 이렇게 되면 당장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장자』의 「도척편盜跖篇」은 다른 편들에 비해 유독 비판성이 강한 글이라서 소동파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장자가 쓴 것이 아니라 후세의 사람이 첨가한 내용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과 상관 없이 「도척편」에 나오는 고통과 기쁨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참고할 만하다.
공자에게는 유하혜柳下惠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동생은 큰 도적으로, 이름이 도척盜跖이다. 훔친다는 뜻의 도盜를 이름에 쓰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에는 이름을 지을 때 일종의 관습이 있었다. 장래에 그 아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 그 바람을 이름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사실 이 사람의 원래 이름은 척跖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도적이 되고 난 뒤 자신이 직접 도盜자를 더해 도척이 된 것이었다. 공자가 유하혜에게 말했다.
“형이 아우를 이끌고, 아비가 자식을 인도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자네는 유명한 현인이자 학자인데 아우는 어쩌다 도적이 됐단 말인가? 마땅히 말렸어야지.”
하지만 동생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아는 유하혜는 이렇게 말했다.
“말릴 도리가 없었네. 내 아우의 마음은 용솟음치는 샘물 같고, 의지는 갑자기 불어닥치는 바람과 같다네. 다른 사람과 사귈 때 한 가지 방법이 듣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지. 끊임없이 솟아나는 계책을 막을 수가 없고, 녀석의 생각은 바람처럼 자유로워서 종잡을 수가 없네.”
그래서 유하혜는 아우가 도적이 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공자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보게나. 나는 원래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니 내가 가서 자네 이름을 대고 자네 아우를 만나보겠네.”
공자와 학생들 몇 명을 태운 마차가 산기슭에 도착했다. 그리고 노나라의 공구孔丘가 장군을 뵈러왔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은 도적이지만 듣기 좋으라고 장군이라고 칭한 것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난 두 사람은 선과 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선과 악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벌은 과연 있는지 논쟁했다. 당연히 이런 문제에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당신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 쌍이다
선행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고 했을 때 내가 그에 반대되는 실례를 찾아서 반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도척은 상당히 유식해 보였다. 그러리란 예상은 당연히 하고 있었지만 공자는 말로 그를 이길 수 없었다. 도척은 다음과 같은 아주 그럴듯한 말로 공자를 반박하기도 했다. 도척이 말했다.
“당신이 인간세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별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눈으로는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귀로는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며 입으로는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바라는 바가 늘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지요. 이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흔히 수명을 논할 때 상수上壽는 백, 중수中壽는 팔십, 하수下壽는 육십이라 한다죠. 그런데 어디가 아프거나 근심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당신이 한 달 동안 입을 벌리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은 겨우 4, 5일에 불과합니다. 한 달이 30일이니 당신은 그중 겨우 4, 5일만 웃으며 살고 나머지는 각종 근심 걱정에 시달린다는 말입니다.”
도척의 생동감 넘치는 비유에 공자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갔다. 그는 제자들이 준비한 마차를 탔고, 제자들은 그에게 고삐를 건넸다. 그런데 공자는 고삐를 세 번이나 놓쳤음에도 도척에게 받은 충격으로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노나라에 돌아간 공자는 우연히 유하혜를 만났다. 유하혜는 혼이 나간 듯한 공자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내 아우를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공자가 대답했다.
“휴, 호랑이굴에 들어갔지 뭔가. 하마터면 그 호랑이한테 잡아먹힐 뻔했다네.”
『장자』의 「도척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이 이야기는 옳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어차피 인생에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고통은 주로 외부의 영향을 받은 감정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데다 쉽게 흔들리므로 우리는 인간세상의 가치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반드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고통과 기쁨은 일념지간의 차이다.


인생에서 고통과 기쁨은 일념지간의 차이이다.

고통과 기쁨을 알아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
‥‥‥ 노장의 지혜 ‥‥‥


장자는 도척의 말을 빌려 우리가 고통을 피하고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인생의 고통과 기쁨은 모두 일념지간의 차이에 불과하다. 고통과 기쁨을 알아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과 기쁨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 장자는 어떤 이야기로 이를 설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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